소설리스트

현계지문-910화 (910/916)

외전 32화. 도철이 나타나다

곤상의 입에서 또다시 붉은 피가 뿜어져 나오더니 그는 몸을 비틀거리며 바닥에 쓰러져버렸다.

연이은 공격을 당해 곤상은 드디어 무너져버렸다.

명룡족들은 전부 절망스러운 얼굴로 바닥에 쓰러져있었다.

이때, 금빛 한 갈래가 철창 안에서 날아 나왔는데 그 정체는 바로 석목이었다.

석목은 이미 혈맥의 힘을 촉발해 열 장이 넘는 금색 원숭이로 변하였다. 그리고 번천곤에서 금빛이 만 갈래 뿜어져 나와 금색 파동을 일으켰다.

석목이 이룬 수련 경지는 과거 천정과 대전을 치를 때보다 더욱 강해져 번천곤을 훨씬 능수능란하게 다루었다.

석목은 고개를 숙여 곤상을 한번 쳐다보고는 눈에 싸늘한 빛을 비쳤다.

“빨리 도망가라! 갈라져서 도망가! 어떻게든 살아남아야 해!”

곤상이 굳은 얼굴로 검은빛을 두르더니 먼 곳으로 도망가면서 소리를 질렀는데 천요번마저 챙기지 않고선 꼬리를 말고 도망쳤다.

명룡 일족은 허겁지겁 사방팔방으로 날아갔다.

그러자 석목이 냉소를 지으며 손을 흔들었다.

번천곤이 희미해지면서 사라져버렸다.

이어서 천둥소리가 울려 퍼졌다.

곤상의 머리에서 만 장 가까이 되는 금빛이 번지더니 길이가 천 장에 이르는 금색 곤봉 그림자가 하늘에서부터 머리를 짓눌렀는데 그건 마치 하늘을 찌르는 커다란 기둥과도 같았다.

윙!

금빛 파동이 번천곤에서 흘러나와 금색 영역을 이루며 순식간에 사방으로 퍼졌다.

곤상과 명룡 일족은 금색 영역에 갇혀버렸다.

곤봉 그림자는 무정하게 모든 사람을 짓눌렀다.

천지를 뒤흔드는 굉음과 함께 허공이 정신없이 흔들리더니 이어서 막강한 파동이 사방으로 퍼졌다.

금빛이 폭발하며 흩날리다가 한참 후에야 고요하게 되었다.

금빛 속에서 시체 한 구가 바닥으로 떨어졌는데 그 정체는 곤상이었다.

다른 명룡족들은 시체마저 보이지 않았고, 번천곤으로부터 막강한 일격을 맞아 전부 사라져버렸다.

곤상은 수련 경지가 높은데다가 육신도 단단했기에 간신히 시체가 남았지만 신혼은 이미 파멸되고 없었다.

저장 반지도 부서져 버려 조금 아쉽긴 했다.

검은 철창은 번천곤으로 날린 일격 때문에 부서져 버려 다시 십이천요번으로 돌아왔다.

십이천요번에서 나는 빛이 어두워졌지만 훼손되지는 않았다.

석목이 손가락을 굽히자 노란 화염이 날아 나와 곤상의 시체를 감아버리더니 시체가 잿더미로 변했다.

곤상의 시체가 사라진 자리에서 핏빛 한 덩이가 떠다녔는데 그건 막강한 혈맥의 기운이 흐르는 명룡 혈맥이었다.

석목은 옥병을 꺼내 혈맥의 힘을 챙겼다.

쓸 만한 물건이라 다른 사람에게 선물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석목은 다시 힘 한 갈래를 날려 십이천요번을 끌어와서 한 번 훑어본 후에 저장 반지에 넣어두었다.

석목이 고개를 돌려 독수리눈 남자를 바라보았다.

남자는 이 모든 상황을 지켜보자 어안이 벙벙했다. 그러다가 석목과 시선을 마주치더니 깜짝 놀라 등골에서 식은땀을 흘렸다.

순간, 독수리눈 남자가 손을 들어 올리며 다시 공격을 날리려 할 때였다.

석목이 그림자를 이끌며 순식간에 백 장 가까이 날아가 남자가 드리운 광막 옆에 나타났다.

석목은 공간의 힘을 매우 능숙하게 다룰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자신만의 무공 경험을 바탕으로 다양한 법칙의 영역도 깨우쳐 주천환영보법(周天幻影步法)을 만들었다.

독수리눈 남자는 안색이 퍼렇게 질렸으나 그가 미처 반응하기도 전에 석목이 번천곤을 휘둘렀고, 번천곤에서 금빛이 뿜어져 나왔다.

펑!

곤봉 그림자가 하얀 보호 광막을 내리쳤다.

구원과 나소도 계속해서 하얀 광막을 공격했기에 광막은 이미 너덜너덜해졌다. 그러다가 번천곤으로부터 일격을 맞아 광막은 순식간에 찢어져 버렸다.

곤봉 그림자는 살짝 어두워졌다가 계속해서 아래를 향해 내리쳐 두 남자에게로 향했다.

독수리눈 남자와 코가 긴 사내는 이미 번천곤의 위력을 맛보았기에 경거망동하지 못해 소리를 지르며 흑백 깃발로 진기를 불어넣었다.

흑백 깃발은 다시 몇 배나 불어났고, 빛을 뿜어냈다. 그리고 빛이 한곳으로 모여 흑백 태극무늬를 이루더니 금색 곤봉 그림자를 막았다.

막강한 법칙의 힘이 흑백 태극무늬에서 흘러나왔는데 그건 시간 법칙의 힘이었고, 이전보다 훨씬 강력했다.

두 남자는 죽을힘을 다해 막아냈다.

쾅!

금색 곤봉 그림자가 흑백 태극을 내리치니 흑백 태극에서 일던 빛이 미친 듯이 흔들렸다. 그러나 시간 법칙의 힘은 곧 부서질 듯하면서도 단단하게 버텨냈다.

곤봉 그림자와 흑백 태극은 한참 동안 대치 상태를 이루었다.

석목은 눈썹을 치켜뜨며 차갑게 웃더니 입을 크게 벌려 굵직한 금빛을 뿜어냈다. 그러자 금빛에서 수많은 부문이 튀며 막강한 법칙 파동이 흘러나왔다.

금빛이 반짝이며 검영으로 변하여 태극 그림을 찌르는 순간, 날카로운 법칙의 힘이 흘러나왔다.

시간의 힘이 담긴 태극무늬는 번천곤을 막으면서 막강한 힘을 쏟아내 순식간에 궁지에 몰렸다.

이윽고 시간 법칙이 사라지며 태극무늬가 찢어져 버렸다. 그리고 다시 흑백 빛으로 변하여 흩어졌다.

쾅!

금색 곤봉 그림자가 우르르 몰려와 흑백 깃발을 내리쳤다.

이어서 막강한 힘이 흑백 깃발을 가로질러 두 남자의 몸을 내리쳤다.

코가 긴 사내는 육신이 막강했기에 안색이 조금 하얗게 질리는 정도였지만 독수리눈 남자는 피를 뿜어내며 뒤로 열 몇 걸음 밀려나서야 간신히 멈춰 섰다.

흑백 깃발은 금색 곤봉 그림자의 힘에 밀려 두 사람의 손에서 벗어났다.

순간, 수많은 법보의 빛이 사방에서 몰려와 소나기가 쏟아지듯이 두 남자를 공격했다. 그렇게 시기를 기다리고 있던 두 종족이 철저하게 두 남자를 무너트리려고 했다.

두 남자는 더는 공세를 막을 수 없어 입에서 피가 뿜어져 나왔다.

흑백 깃발을 더는 다스릴 수는 없었지만 깃발에서 나는 빛은 사라지지 않았다. 그리고 깃발이 빙글빙글 돌면서 하얀빛 깊은 곳으로 날아갔다.

흑백 깃발에는 시간 법칙이 들어있는데다가 막강한 위력도 담겨있어 석목은 눈빛을 반짝였다. 만약 깃발이 구수도철의 손에 들어가면 큰일이 날 터였다.

석목이 두 손으로 노란빛을 날리자 빛은 고리로 변하여 순식간에 멀어져가는 흑백 깃발을 끌어왔다.

흑백 깃발은 노란빛 고리에 묶여 날아가는 속도가 느려졌다.

석목이 두 손으로 앞을 짚었다.

그러자 노란빛 고리에서 수많은 부문이 뿜어져 나와 쇠사슬로 변하더니 커다란 봉인을 이뤄 흑백 깃발을 묶어버렸고, 이어 순식간에 금제된 흑백 깃발이 허공에 둥둥 떴다.

석목이 미소를 지으며 두 깃발을 거두어들였다.

그리고 석목이 고개를 들어 두 남자를 바라보자 고만족과 수라주 일족이 두 남자를 포위했다.

두 남자가 갖춘 실력은 구원이나 나소보다 훨씬 강했으나 묘공을 묶어두느라 너무 많은 원기를 소모했다. 게다가 석목에게 공격을 받아 부상을 당하여 실력이 절반으로 줄어들었다.

석목은 두 남자를 한 번 쳐다보고는 다시 빛나는 하얀 구체로 시선을 던지더니 구체를 부숴 묘공을 구했다.

쾅!

빛나는 하얀 구체가 폭발하면서 묘공이 날아 나왔으나 그는 안색이 좋지 않았다.

묘공은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다가 경거망동하여 고작 신경 후기 두 명이 놓은 덫에 걸려버렸다. 비록 상대가 막강한 영보로 묶어둔 것이었지만 어찌 됐든 묘공은 제대로 망신을 당했다.

묘공은 빛나는 구체 속에 갇혀있었지만 바깥에서 벌어진 상황을 다 알고 있었다. 만약 석목이 두 남자를 물리치지 않았더라면 묘공은 아마 흑백 깃발에 봉인되어 벗어나지 못했을 터였다.

상계에서 온 사자로서 매번 석목에게 도움을 받으니 체면이 말이 아니라 묘공은 안색이 시꺼멓게 탄 듯 어두워졌다.

이때, 이변이 생겨 햐얀빛 깊은 곳에서 굉음이 울려 퍼지더니 허공이 흔들렸다.

“큰일이군!”

석목과 묘공은 지금 체면 따위를 신경 쓸 때가 아니었고, 안색이 동시에 퍼렇게 질렸다.

두 사람은 곧장 빛으로 변하여 하얀빛의 깊은 곳으로 날아갔다.

이제 두 남자는 구원과 나소에게 맡겨도 될 수준이었다.

“구수도철이 이미 세월의 강을 연화하고 있는 것 같군요. 빨리 막아야 해요.”

묘공이 묵직하게 말하자 석목이 고개를 끄덕였다.

* * *

석목과 묘공은 눈 깜짝할 사이에 하얀빛의 깊은 곳에 도착했다.

석목은 안색이 살짝 바뀌었다.

여긴 커다란 공간 소용돌이가 천천히 떠돌아다니며 막강한 위력을 풍기는 또 다른 세상이었다.

공간 소용돌이 가운데에선 하얀 물이 흘렀는데 그 길이가 족히 수백 장이나 되었다. 그리고 수많은 점이 소용돌이 가운데에서 반짝이는 것이 마치 하늘에 뜬 별과 같았다.

하얀빛들은 매우 강렬한 시간의 힘과 공간의 힘으로 그것들은 마치 시간의 법칙과 공간의 법칙을 합쳐서 만든 것 같았다.

공간 소용돌이에는 공간 통로가 수두룩하게 뚫려 통로를 통해 수라의 심장 일 층 구역을 훤히 볼 수 있었고, 심지어 바깥 성역 대세계까지 보였다.

하얀 물은 규칙을 따라 꿀렁이는 것이 마치 심장과도 같았다.

물이 한 번 움직일 때마다 짙은 천지의 영기와 공간의 힘, 그리고 시간의 힘이 흘러나와 검은 통로를 타고 비경 곳곳으로 퍼져 나갔다.

하얀 물은 비경의 핵심이었고, 비경 곳곳에 무궁무진한 힘을 불어넣었다.

“세월의 강!”

석목과 묘공은 하얀 물을 바라보며 눈에 빛을 반짝였다.

특히 묘공은 눈에 뜨거운 열망을 내비쳤다. 심지어 몸도 부들부들 떨었고, 마음 같아서는 곧장 날아가 하얀 물을 챙기고 싶은 듯이 보였다.

그러나 묘공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하얀 물 근처에 산처럼 커다란 검은 괴물이 엎드려있었기 때문이었다.

짐승은 몸이 사자나 범처럼 거대했고, 피부는 검고 거칠었다. 또한 울퉁불퉁한 피부 위에 튼실한 다리 네 개가 붙어있었는데 유유하게 빛나는 비늘이 온 다리를 뒤덮어 매우 단단해 보였다. 그리고 네 발은 독수리의 발처럼 뾰족하게 튀어나와 보기만 해도 소름이 돋았고, 굵직한 꼬리에는 검은 비늘이 달려 금속과도 같은 광택을 내뿜었다. 그런 짐승이 몸을 말고는 조용히 엎드려있었다.

가장 놀라운 점은 뻗어있는 아홉개의 목이었는데 목마다 작은 산봉우리처럼 커다란 머리가 하나씩 달려있어 다른 색깔을 내비쳤다. 그러나 얼굴들은 전부 흉악하게 일그러진 표정을 지었다.

방대하기 그지없는 사나운 기운이 검은 짐승에게서 흘러나왔다.

“구수도철이군!”

석목이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도철은 석목보다 경지가 낮았지만 법력은 석목보다 훨씬 강했다.

묘공은 안색이 굳더니 눈에서 싸늘한 빛을 비쳤다.

도철에게 달린 아홉 머리에서 굵직하고 검은 기운이 뿜어져 나왔다. 그리고 검은 기운은 끈적거리는 흡입력을 풍겼는데 그 기운은 도철의 자수들이 시전했던 흡수 신통보다 열 배는 더 강력해 보였다.

격렬한 공간의 힘은 아홉 갈래 기운에 닿는 순간, 전부 도철의 머릿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검은 기운은 마치 촉수 같았고, 하얀 물 주변에서 맴돌고 있었다.

구수도철이 시전하는 막강한 흡수 신통에도 불구하고 하얀 물은 미동조차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검은 기운이 한동안 맴돌더니 이윽고 물에서 하얀빛이 강제로 뽑혀 나왔다. 그리고 하얀빛은 천천히 검은 기운에 스며들었다가 다시 구수도철의 입으로 흘러 들어갔다.

하얀빛은 번쩍일 때마다 미세하게 조금씩 줄어들고 있었다.

구수도철이 풍기는 흉악한 요기는 점점 흐려졌고, 순수한 선령의 기운으로 바뀌었다.

구수도철은 온통 세월의 물을 연화하는데 신경을 쏟고 있어 석목과 묘공을 보지 못했다.

“죽어라!”

이때, 묘공이 소리를 지르며 앞을 향해 덮쳤다.

금빛이 묘공에게서 날아 나와 지팡이 법보로 변하였다.

지팡이는 순식간에 천 장 가까이 불어났고, 수많은 금색 무늬가 허공에 나타나 알갱이 같은 금색 부문들이 지팡이에서 톡톡 튀었다.

금색 지팡이는 막강한 힘을 감고서 구수도철의 머리를 향해 내리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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