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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계지문-911화 (911/916)

외전 33화. 곤과 도의 협공

석목은 두 발로 허공을 짚어 주천환영보를 시전하였다. 그러자 석목이 사라졌다가 눈 깜짝할 사이에 구수도철의 옆에서 나타났다.

석목에게서 금색 무늬가 번쩍이더니 몸에 공기를 불어넣은 듯이 순식간에 천장이나 커졌다. 그러자 번천곤에서 금빛이 밝게 빛났고, 무궁무진한 금빛이 쏟아져 나왔다.

석목이 팔을 휘두르자 번천곤이 금빛을 흩뿌리며 아래를 향해 내리쳤다.

번천곤에 새겨진 무늬가 전부 밝아지면서 곤봉이 스친 자리의 허공이 일그러지는 순간, 세상이 어두컴컴하게 변했다.

거대한 금색 곤봉이 거의 동시에 양쪽에서 구수도철을 내리쳤고, 막강한 힘이 두 영보에서 흘러나와 천지가 흔들리는 모습은 마치 종말이 온 것만 같았다.

구수도철은 그제야 석목과 묘공을 발견해 붉은 머리를 들어 올리고는 허공에서부터 짓눌러오는 번천곤과 지팡이를 보더니 경멸하듯이 웃었다.

슥!

도철이 몸을 파르르 떠는 순간, 굵직한 꼬리가 사라져버렸다.

석목의 눈앞에서 파동이 일더니 희미한 검은 그림자가 가로로 휩쓸었다. 그런데 석목은 다가오는 게 무엇인지 잘 보이지 않아 손목을 꺾어선 번천곤으로 앞을 가로막았다.

쾅!

검은 그림자가 번천곤을 내리치자 석목은 마치 커다란 행성에 부딪힌 듯이 곤봉과 함께 날아가 버렸다.

지팡이도 마찬가지로 검은 그림자가 스치는 순간, 튕겨져 날아갔다.

절대로 막을 수 없는 막강한 힘이 지팡이를 타고서 묘공의 몸을 내리치자 그는 표정이 굳어서 마치 허수아비처럼 가볍게 날아가 버렸다.

멀리 밀려난 석목은 금색 원숭이 털을 전부 꼿꼿이 세우고는 금빛을 만 갈래 내뿜었다. 그리고 석목은 멈춰 서서 놀란 기색을 드러냈다.

반무 본체를 수련한 후로 순수한 육신의 힘만으로 석목에게 상대가 될 수 있는 녀석은 단 한 번도 나타난 적 없었다. 그런데 오늘 도철이 날린 일격을 맞자 석목은 번천곤과 함께 튕겨져 날아가 버렸다!

다행히도 석목은 수많은 생사의 고비를 겪으면서 정신력이 태산처럼 단단해져 곧바로 마음을 차분하게 가라앉히더니 자리에서 사라졌다.

이어서 석목이 구수도철의 옆에 나타나 마치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조금 전에 있던 자리에 섰다.

석목은 육신이 영보처럼 단단했고, 불사신의 경지에 이르렀기에 튕겨져 날아가긴 했지만 상처는 입지 않았다.

석목의 옆에서 빛이 반짝이더니 묘공이 나타났는데 안색이 그대로인 것을 보니 큰 부상을 당하지는 않은 것 같았다.

“아, 난 또 누군가 했더니 저번에 나타났던 상계의 순찰 사자잖아. 이번에는 도와줄 사람을 한 놈 데려왔군. 이를 어쩌나? 너희가 이삼 일만 더 일찍 왔어도 내가 너희를 두려워했을 텐데. 지금 나는 진극선구(眞極仙軀)를 절반이나 수련했지. 네놈들은 죽기를 자초한 거야……”

구수도철은 묘공과 석목을 한 번 쳐다보고는 냉소를 지었다.

그러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도철의 머리 위에서 빛을 번쩍이며 석목이 나타났다. 석목은 도철이 계속 지껄이는 소리가 듣기 싫었다.

석목이 든 번천곤은 이미 사라지고 없어 그는 두 손으로 허공을 잡았다.

윙!

석목의 두 손에서 금빛과 붉은빛이 날아 나와 찬란하게 빛났다.

크기가 각각 다른 법칙 부문들이 빛 속에서 일렁이고 빙글빙글 돌면서 크기가 수백 장에 이르는 빛나는 구체 두 개로 변하였다.

빛나는 구체에서 빛이 번쩍이더니 찬란하고 강렬한 법칙 파동이 흘러나왔다.

석목이 금빛과 붉은빛 구체를 날려 구수도철을 공격했다.

막강한 법칙의 힘이 거대한 산처럼 짓누르자 허공이 흔들렸다.

빛나는 두 구체는 번천곤과 지팡이를 합친 일격만큼이나 막강했다.

구수도철은 말이 잘려버리자 화가 치밀어 올랐다가 빛나는 구체가 뿜어내는 위력을 느끼고는 안색이 굳었다.

구수도철이 붉은 머리와 바로 옆에서 세월의 물을 흡수하고 있던 금색 머리를 들어올렸다.

구수도철의 머리는 각각 적, 황, 녹, 남, 금, 흑, 백, 자색이었으며 마지막 하나는 짙은 핏빛이었다. 그리고 달린 머리마다 각기 다른 기운을 풍겼다.

아홉 머리 중에는 가운데 있는 검은 머리가 가장 컸다.

붉은 머리와 금색 머리에서 뿜어져 나오던 검은 기운이 사라지더니 이어서 도철은 붉은 머리에 달린 입을 크게 벌리고는 검은 화염을 뿜어냈다.

화염은 온도가 극도로 높아 불길이 스친 곳마다 모든 게 끓어올랐다.

붉은 머리의 미간에서 붉은빛이 날아가 검은 화염 속으로 스며들었는데 그 빛은 수많은 부문들로 이루어졌다.

붉은 화염은 살짝 들끓다가 붉은빛과 검은빛이 섞인 커다란 화염구로 변하여 날아오는 빛나는 붉은 구체와 부딪쳤다.

구수도철이 금색 머리를 들어 올려 큰소리로 포효하고는 만 장이나 되는 금빛 한 갈래를 내뿜었다. 그러자 금빛은 순식간에 톱니가 빼곡히 붙어 있는 검으로 변하였는데 검날에서 날카로운 빛이 번쩍이더니 빛나는 금색 구체를 내리쳤다.

쾅!

빛나는 붉은 구체와 화염구, 빛나는 금색 구체와 금색 검이 강하게 부딪치자 굉음이 울려 퍼졌다.

빛나는 구체와 화염구, 금색 검이 동시에 부서지면서 수많은 불꽃이 튀다가 서서히 사라졌다.

석목이 공격을 날리자 묘공도 곧바로 움직였다.

지팡이 법보가 다시 날아 나와 번쩍이더니 천 장 가까이 되는 거대한 지팡이로 변하여 거세게 앞을 향해 내리쳤다.

금색 지팡이는 희미한 금색 안개를 한 층 감고 있었는데 곧이어 날아가면서 똑같이 생긴 지팡이 수십 개로 변하더니 각각 도철에게 달린 아홉 머리를 공격했다.

금색 안개는 신식을 막아내는 힘이 있을 뿐만 아니라 똑같이 생긴 지팡이를 만들 수도 있었기에 도무지 어떤 게 진짜인지 구분할 수 없었다.

구수도철의 눈에서 분노가 스쳤다.

세월의 물을 연화하던 구수도철은 지금 가장 중요한 시기에 들어서 대화를 하면서 시간을 끌려는 작정이었는데 석목이 눈치를 채고는 도철이 하는 말을 끊어버렸다.

나머지 머리들은 전부 세월의 물을 연화시키고 있어서 도철은 지금 당장 공격을 날릴 수 없었다.

도철이 으르렁거리며 꼬리를 힘껏 흔들자 꼬리 환영 수십 갈래가 지팡이를 내리쳤다.

묘공의 눈에서 이채가 스치더니 도철의 꼬리와 지팡이가 부딪치는 모습을 지켜보기만 했다. 이어서 묘공은 입을 벌려 금색 빛 덩어리를 내뿜었는데 그건 바로 금색 문 법보였다.

묘공이 법결을 날리자 금색 문이 크기가 천 장에 이르는 커다란 문으로 변하였다.

쾅, 쾅!

도철의 꼬리와 지팡이 수십 갈래가 부딪치더니 지팡이의 환영은 전부 부서졌고, 진짜 지팡이만 뒤로 튕겨져 날아갔다.

구수도철은 의아한 기색을 내비치다가 경멸하듯이 콧방귀를 뀌었다.

그런데 다음 순간, 도철은 안색이 다시 굳어버렸다.

금색 지팡이를 감쌌던 희미한 안개가 금빛으로 변하여 도철의 꼬리에 묻어버렸는데 지팡이의 환영이 부서지면서 튄 것 같았다.

도철이 아무리 꼬리를 이리저리 힘껏 흔들어도 금빛은 떨어지지 않았다.

묘공이 손을 흔들어 날아온 지팡이를 거두어들이더니 다시 흡족한 눈빛으로 주문을 외웠다.

쾅!

묵직하게 울리는 소리와 함께 금색 문이 활짝 열리면서 굵직하고 투명한 빛 한 갈래가 문 안에서 날아 나와 구수도철의 꼬리를 공격했다.

구수도철은 예전에 묘공과 다투며 금색 문 법보가 지닌 위력을 맛본 적이 있어 깜짝 놀랐다. 그래서 도철은 검은 꼬리를 번쩍이며 사라졌다가 수십 장 밖에서 나타났다.

그러자 투명한 빛도 곧바로 방향을 틀어 도철의 꼬리를 쫓아가는 게 마치 굶주린 호랑이가 어린 양을 쫓는 것 같았다.

구수도철은 다급하게 꼬리를 흔들어 환영을 만들더니 사방으로 줄줄이 날렸다.

그러나 아무리 방향을 틀고 환영을 불러내도 투명한 빛이 끈질기게 쫓아와 떨쳐내기는커녕 둘 사이에 벌어진 거리만 점점 좁혀졌다.

빛이 도철의 꼬리를 따라잡은 순간, 도철은 꼬리를 감아버렸다. 그러자 꼬리에 붙어있던 금빛도 반짝였다.

묘공이 다시 빠르게 법결을 날리자 투명한 빛이 울타리로 변하여 도철의 꼬리를 가둬버렸다.

투명한 울타리는 매우 얇아보였지만 단단하기 그지없어 마치 허공에 뿌리를 내린 것만 같았다. 때문에 도철이 꼬리를 힘껏 흔들어도 벗어날 수 없었다.

이 나생광뢰(羅生光牢)는 묘공이 아끼는 신통이라 그가 차갑게 웃었다. 또한 나생광뢰 속에는 공간의 법칙이 들어있다.

예전에 구수도철과 다툴 때, 묘공은 이 법칙을 사용한 적 없었고, 이번이 처음이었지만 단번에 성공했다.

묘공이 손으로 허공을 짚자 손바닥에서 푸른빛이 번쩍이더니 도(刀) 한 자루가 나타났다.

도는 투명한 색이었고, 법칙 부문이 가득 새겨져있었는데 부문마다 투명한 푸른색을 띠고 있어 빛이 번쩍일 때마다 막강한 법칙 파동이 흘러나왔다.

주변 백 리 안에서 천지의 영기가 몰려와 전부 푸른빛 도 속으로 흘러들어갔다.

윙!

푸른빛 도가 ‘윙, 윙’ 소리를 내면서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막대한 기운을 풍겼다.

푸른빛이 미친 듯이 번쩍이다가 크기가 수백 장에 이르는 도영(刀影)으로 뭉쳤다.

묘공이 난해한 법결을 외우며 한 손을 들어올리니 하늘을 찌르던 도영이 도철의 꼬리를 잘랐고, 세월의 강을 중심으로 커다란 소용돌이가 나타났다. 그리고 도영이 일어난 소용돌이를 두 덩이로 갈라버렸다.

도철은 얼굴이 굳더니 이어서 금색과 붉은색, 그리고 파란색, 노란색, 푸른색 머리 다섯 개를 번쩍 들어 올렸다. 그렇게 도철은 더 이상 세월의 강을 연화할 수 없게 되었다.

다섯 머리를 동시에 들어 올리다니, 무슨 수단을 부리려는 걸까.

이때, 도철의 머리 꼭대기에서 석목이 굉음을 울리며 나타났다!

석목의 몸에서 금색 무늬가 촘촘하게 맴돌면서 대진을 이루더니 눈부신 금빛을 뿜어냈다.

수많은 금색 대진이 번쩍이다가 다시 석목의 몸속으로 스며들었다.

그러자 석목의 육체가 크게 부풀며 갈비뼈에 금빛이 번쩍였다.

다시 굉음이 울려 퍼지며 머리가 세 개, 팔이 여섯 개 달린 크기가 만 장에 이르는 금색 원숭이가 나타났다.

막강한 힘의 파동이 원숭이의 몸에서 퍼졌다.

원숭이에게 달린 여섯 팔에서 빛이 번쩍이자 번천곤외에 색깔이 각각 다른 다섯 곤봉이 나타났는데 그것들은 열두 곤봉 중에 다섯 개였다.

여섯 갈래 금, 황, 적, 남, 녹, 백색이 곤봉 여섯 개에서 흘러나와 막강한 산이 짓누르는 것만 같은 느낌을 풍겼다.

석목은 반무 본체로 변신하여 포효하더니 팔을 휘둘렀다. 그러자 여섯 곤봉이 굵직한 빛 여섯 갈래로 변하여 맹렬하게 내리쳐 묘공이 꺼낸 도와 거의 동시에 날아갔다.

쾅!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막강한 위력이 하늘에서 쏟아지자 천지가 뒤집히며 허공이 맹렬하게 흔들리더니 파동이 사방으로 퍼져 곳곳에 균열이 갈라졌다.

구수도철은 그제야 상황이 심각하다는 사실을 알아차려 아홉 머리 중에 검은 머리를 뺀 여덟 머리를 전부 들어 올리고는 일제히 하늘을 바라보며 포효했다.

순간, 도철은 여덟 마리로 분리되면서 다섯 마리는 석목에게로, 그리고 나머지 세 마리는 묘공에게로 향했다.

또한 가장 큰 검은 머리로는 검은 기운을 한 갈래 뿜어내 세월의 강 위로 흘려보냈다.

부문들이 검은 기운에서 흘러나와 세월의 강 속으로 스며들었다.

그러자 세월의 강에서 하얀 점이 번쩍이더니 곧이어 부서지려는 기미가 보였다.

검은 머리에 달린 두 눈은 미칠 듯이 기뻐하다가 곧바로 기색을 거두었고, 세월의 강에 흐르던 검은 기운은 점차 굵게 변해갔다.

석목을 덮친 다섯 머리가 동시에 입을 크게 벌렸다.

검붉은 화염, 파란 물빛, 눈부신 금색 구름, 노란 폭풍, 찬란한 푸른빛.

빛 다섯 갈래가 뿜어져 나와 얽히고설키면서 커다란 오색 발로 변했다. 그리고 발은 곧장 석목이 쥔 빛 여섯 갈래를 붙잡았다.

이어 굉음이 울려 퍼졌다.

굵직한 여섯 갈래 빛이 다섯 갈래의 발에 붙잡혀버렸다.

색이 각기 다른 커다란 발 다섯 개에서 한참 동안 폭발음이 울렸고, 발에 균열이 줄줄이 갈라졌지만 완전히 터져버리지는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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