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전 34화. 육신의 힘을 겨루다
굉음과 함께 묘공에게서도 다양한 빛이 터져 나와 허공이 흔들렸다.
사람 그림자 하나가 터지는 빛 속에서 날아 나왔는데 그는 묘공이었다. 날아 나온 묘공의 입가에 피가 묻은 것을 보니 상처를 입은 것 같았다.
쓱!
도철의 꼬리가 뒤로 튕겨져 날아가더니 다시 몸에 붙었다. 결국 꼬리는 빛 울타리를 벗어났다.
도철에게 난 깊게 패인 상처에서 피가 흘러나왔다.
그 모습을 본 금색 원숭이가 의아한 표정을 드러냈다.
원숭이가 다시 기이한 웃음을 드러내면서 거대한 몸을 번쩍이며 구수도철의 머리 위에서 사라졌다가 다시 도철의 왼편에 나타났다.
원숭이의 거대한 몸집과 속도는 이전과 똑같았다.
이게 바로 주천환영보가 지닌 강점이었다. 지금까지 석목은 원숭이로 변신했을 때 힘이 훨씬 난폭해졌지만 속도는 그에 맞춰 느려졌다.
그래서 석목은 심혈을 기울여 거대한 육체 때문에 방해를 받지 않고 속도를 유지할 수 있는 이동 방법을 연구했다.
이윽고 금색 원숭이가 손을 흔들자 커다란 곤봉 여섯 개가 맹렬하게 휩쓸며 무방비 상태에 처해있던 구수도철을 내리쳤다.
두려운 기운이 허공을 채웠으나 풍기는 위력은 일전에 날린 일격보다 더욱 막강했다.
구수도철은 깜짝 놀라 몸에 두르고 있던 검은빛을 전부 왼편으로 끌어 모아 두꺼운 빛방패를 만들었다.
다른 방어 수단을 꺼낼 여유가 없어 찰나의 순간에 여섯 곤봉이 방패를 내리쳤다.
쾅!
빛방패에선 검은 부문이 번쩍이고 있어 매우 두텁고 단단했으나 원숭이가 날린 공격을 받자 가볍게 부서져 버렸다.
여섯 갈래 괴력이 곧바로 구수도철을 내리쳤다.
핏빛이 폭발하더니 묵직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구수도철의 거대한 몸통이 단번에 날아갔고, 왼쪽 옆구리는 어느새 피범벅이 되어 뼈가 부러진 자국까지 드러났다.
“안 돼!”
구수도철이 내키지 않는 듯이 소리를 질렀다.
도철은 몸이 튕겨져 날아가면서 세월의 강과 연결되었던 검은 기운마저 끊어져 버렸다.
세월의 강이 번쩍이더니 하얀빛 또한 다시 가라앉았다.
“빌어먹을……”
구수도철은 상처에서 폭포 같은 붉은 피가 흘러나와 멈춰 섰다. 그러나 구수도철은 상처를 거들떠보지도 않고는 고개를 돌려 세월의 강을 바라보면서 분노에 차서 소리를 질렀다.
세월의 강을 곧 연화하려던 참이었는데 석목에게 방해를 받아 모든 일이 수포로 돌아갔다. 이렇게 중단이 되어 버렸다면 다시 처음부터 세월의 강을 연화시켜야만 했다.
세월의 강은 최고의 영물이라 저장 반지에 담을 수도 없어 도철은 속이 타올랐다.
게다가 강 속에 담겨 있는 시간 법칙의 힘이 너무 막강하여 강제로 흡수하면 설사 진령이라 할지라도 감당하기가 버거웠다. 그리하여 구수도철은 비술을 이용하여 시간의 힘을 한 줄로 뽑아내 제련할 수밖에 없었다.
금색 원숭이는 세월의 강을 한 번 쳐다보고는 긴장을 풀었다.
“잘하셨군요!”
금색 원숭이의 옆에서 묘공이 웃으며 나타났다.
두 사람을 본 구수도철은 눈에 분노가 이글거렸다. 그러나 구수도철은 막무가내로 덮치지 않았다.
묘공이 갖춘 실력은 이미 잘 알고 있었고, 석목을 상대로는 오늘 처음 맞섰으나 절대 만만한 상대가 아니었다.
“좋아, 날 찾아온 걸 보니 실력이 꽤 있는 놈들이군.”
구수도철은 석목과 묘공을 바라보며 싸늘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어서 구수도철의 붉은 머리에서 끈적이는 혈무가 뿜어져 나와 찢어진 상처로 스며들었다.
칙, 칙!
구수도철이 왼쪽에 입은 상처에서 새살이 돋아났고, 수많은 붉은 줄기가 튀었다. 그러자 상처가 빠르게 치유되더니 부러진 뼈까지 원래대로 회복되었다.
단 몇 번 호흡을 할 동안 깊게 팬 상처가 전부 회복되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석목은 동공이 줄어들었다.
비록 석목이 익힌 불사신의 경지만큼은 아니었지만 이렇게 육신을 치유하는 수단도 매우 대단했다.
“진령의 신분으로 조용히 수련만 했더라면 이렇게 널 죽이려는 일도 없었겠지. 허나 곳곳을 휩쓸며 수많은 생령을 죽이고 이 세계의 균형마저 깨뜨렸으니 널 없앨 수밖에 없겠구나.”
묘공은 도철이 입은 상처를 한 번 쳐다보고는 싸늘하게 말했다.
“그래, 어디 한 번 덤벼봐라!”
구수도철이 차갑게 웃었다.
양측은 한참 동안 서로를 마주 보며 아무도 움직이지 않는 게 재정비를 하는 것 같았다.
도철과 두 사람 옆에서 하얀 세월의 강이 유유한 빛을 흘려보냈는데 그 빛은 마치 탐스러운 과일 같았고, 승리한 자만이 가질 수 있는 가장 좋은 보물과도 같았다.
호흡을 가다듬은 후에 양측은 다시 공격을 날렸다.
구수도철이 몸통을 힘껏 흔들자 거대한 몸집이 검은 먹구름처럼 밀려왔다.
아홉 머리에서 찬란한 빛이 뿜어져 나오더니 굵직한 빛이 입에서 튀어 나왔다.
빛은 화염, 물, 흙과 같은 오행 공격이었는데 전부 막강한 법칙의 힘이 깃들어있었다.
오행 공격 말고도 나머지 네 갈래 빛은 핏빛이라 끈적이는 비린내를 풍겨 구역질이 났다.
굵직한 번개를 감고 있는 보랏빛.
이 밖에도 하얀 빛기둥은 평범해 보였으나 기이한 기운이 흘러나왔다.
마지막 한 갈래 빛은 굵직한 검은 기운이었고, 유유한 빛이 흘러나오는 게 모든 걸 삼켜버릴 것만 같았다.
아홉 갈래 빛은 서로 얽히고설켜 마치 아홉 마리 용처럼 하늘을 뒤덮으면서 석목과 묘공을 덮쳤다.
금색 원숭이가 눈에 빛을 번쩍이며 공격을 날리려고 할 때였다.
“제가 처리할 테니 구수도철의 본체를 공격하세요.”
이때, 묘공이 석목을 말리면서 말했다.
이어서 묘공이 법결을 짚자 작은 금색 문 법보 하나가 나타났다.
문 법보에서 찬란한 금빛이 뿜어져 나오더니 커다란 금색 꽃처럼 활짝 피었고, 이어 ‘퍽!’ 소리와 함께 금색 꽃이 커다란 진법으로 변하였다. 그리고 진법이 활짝 펼쳐지면서 구수도철의 앞을 가로막았다.
수많은 금색 부문들이 빛 속에서 들끓었고, 범음이 울려 퍼지자 부처가 염불을 외웠는데 그 소리를 들으니 귀가 찢어질 것만 같았다.
아홉 마리 용이 금색 진법에 부딪치자 굉음이 울려 퍼졌다.
아홉 마리 용 중에 일곱 마리가 막혀버렸다.
검고 하얀 용 두 마리는 금색 진법을 뚫어버렸으나 앞으로 다가오지는 못하고서 다시 멈췄다.
금색 원숭이는 눈에 화색이 돌았고, 거대한 몸을 날려 구수도철을 공격했다.
쾅!
커다란 곤봉 그림자 여섯 갈래가 하늘에서 쏟아지면서 구수도철을 내리치자 허공에 굵직한 여섯 갈래 균열이 찢어지면서 날카로운 소리가 울려 퍼졌다.
석목이 날리는 공격이 이전보다 몇 배는 더 거세져 구수도철은 흠칫 놀랐다.
그러나 구수도철은 애써 침착한 척을 하면서 코웃음을 치더니 앞발에 검은빛을 일으켜 여섯 곤봉 그림자를 맞이했다.
천둥소리가 울려 퍼지며 다양한 색깔이 터지더니 이어서 허공이 흔들리면서 숨 막히는 힘의 파동이 사방으로 퍼졌다.
금색 원숭이는 그대로 멈춰 서서 비틀거리다가 다시 몸을 가다듬었다.
검은 발과 여섯 곤봉이 허공에서 부딪치자 서로 가볍게 흔들리는 게 양쪽의 힘이 엇비슷한 듯했다.
열두 곤봉이 지닌 위력은 막강했으나 도철이 두 발로 그대로 막아버려 상처 하나 입지 않자 석목은 심장이 쿵 내려앉았다.
날카롭고 단단한 도철의 육신은 엄청난 힘을 지녀 놀라울 정도였다.
석목이 소리를 지르며 여섯 팔을 동시에 휘둘렀다.
그러자 곤봉 그림자 여섯 갈래가 하늘을 뒤덮으며 구수도철을 향해 날아갔다.
도철은 망설이지 않고 앞발로 검은 그림자를 날려 석목이 날린 공격을 맞이했다.
동시에 도철의 꼬리에서도 검은 그림자가 줄줄이 날아 나와 금색 원숭이를 내리쳤다.
쾅!
막강한 육신의 힘끼리 부딪쳤다.
쾅, 쾅!
부딪친 여파로 인해 허공이 격하게 흔들렸고, 단단하기 그지없던 공간이 부서지면서 수많은 균열이 갈라졌다.
천지의 영기는 마치 바다에서 들이치는 파도와도 같았고, 다양한 원기가 얽히고설키면서 하늘이 번쩍거렸다.
격전을 치르는 석목과 도철이 나타난 곳에선 마치 세상이 무너질 것만 같은 기운이 풍겼다.
금색 원숭이는 두 눈이 점점 더 밝아지더니 이어서 고개를 들고는 흥분한 듯이 소리를 질렀다.
석목은 육신의 힘이 대성에 이른 후로 꽤 오랫동안 힘을 겨룰만한 상대를 만나지 못했었다. 그런데 지금 석목과 도철은 온전히 순수한 육신의 힘만으로 격전을 치르고 있었다.
석목은 싸움이 고조될수록 흥분을 감출 수 없어 괴성을 질러댔다. 그러자 몸에서 흐르는 금빛이 눈부시도록 찬란하게 일었다.
금빛 속에는 노란 기운이 섞여있었다.
곤봉 그림자가 노란 기운을 감는 순간, 힘이 몇 배나 더 강력해졌다.
구수도철은 싸울수록 더욱 두려워져 안색이 점점 일그러졌다. 그리고 하늘을 뒤덮은 촘촘한 곤봉 그림자가 태산처럼 짓누르자 숨쉬기조차 버거웠다.
아홉 머리는 더 이상 묘공을 신경 쓸 겨를이 없어 머리마다 다양한 색깔을 띤 공격을 뿜어냈는데 전부 석목을 향한 공격이었다.
석목은 팔을 둥글게 휘둘러 풍차 같은 곤봉 그림자를 만들어서는 날아오는 모든 공격을 가볍게 부숴버렸다.
막강한 곤봉 그림자 풍차가 계속해서 공격을 막아내자 허공이 함께 흔들렸다. 그리고 만 리 안에 흐르는 천지의 영기가 오색영롱한 빛 덩이로 변하여 미친 듯이 모여들었다가 다시 곤봉 그림자 속으로 스며들었다.
곤봉 그림자는 몇 배나 더 커져서는 하늘을 뒤덮으면서 구수도철을 압박했다.
곤봉 그림자가 내리치기도 전에 커다란 산 수천 개가 짓누르는 것만 같은 기운이 밀려왔다.
구수도철은 깜짝 놀라 비틀거리면서 뒤로 물러났다.
그 광경을 본 묘공은 얼굴에 화색이 돌았으나 이대로 긴장을 놓지는 않았다.
교활한 구수도철은 절대 이대로 무너질 놈이 아니라 분명 숨겨놓은 술수가 더 있을 터였다.
묘공이 다시 법결을 날렸다.
금빛 진법이 번쩍이면서 줄어들었다가 다시 금색 문 법보로 변하여 묘공의 소매 속으로 날아갔다.
묘공이 번쩍이며 자리에서 사라져버렸다.
석목이 날리는 공격은 점점 더 거세져 수많은 곤봉 그림자가 산처럼 밀려와 구수도철은 막강한 충격을 받으며 계속 밀려났다.
펑!
구수도철이 방심하는 사이에 곤봉 그림자 한 갈래가 도철의 복부를 내리쳤다.
도철의 거대한 몸통이 단번에 날아가 버렸다.
“빌어먹을!”
구수도철은 곧장 몸을 멈춰 세웠다. 게다가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는 모습을 보니 그리 큰 부상을 당한 것 같지는 않았다.
이어서 도철의 몸에서 검은빛이 번지더니 갑자기 빠르게 몸집이 줄어들어 만 장 가까운 크기가 되었다. 이제 도철은 금색 원숭이와 크기가 비슷해졌다.
그리고 도철은 머리를 빼면 인족처럼 변했는데 아홉 머리는 여전히 짐승 머리였다.
몸집이 줄어들었지만 구수도철이 풍기는 기운은 오히려 더 막강해졌다.
도철의 몸에서 짙은 검은빛이 풍기는 것이 마치 잘 제련된 강철과 같았다. 또한 검은 무늬가 온몸에서 흘러 다녔고, 미세하게 반짝여 몸에서 신선의 기운이 흘러나왔다.
도철이 두 손으로 허공을 잡자 오색 빛이 번쩍이며 낡은 전창이 하나 나타났다.
전창에는 수많은 부문들이 붙어있었고, 창에서 번개 다섯 갈래가 맴돌았다. 그리고 전창에서 흘러나오는 기운 때문에 허공에는 물결이 일렁였다.
오색 전창은 아주 막강한 현천지보로, 번천곤을 비롯한 열두 곤봉보다 한층 더 등급이 높은 무기 같았다.
구수도철이 창을 손에 들자 기운이 곧바로 바뀌어 두 눈에서 번개가 튀었고, 오색 빛이 몸을 감쌌다. 이어 도철에게서 천하를 삼킬 듯한 기운이 흘러나왔다.
“당(當)!”
오색 전창이 곤봉을 막았다.
두 현천지보가 부딪치자 괴력이 폭발하면서 공간이 부서지기 시작했다.
뿐만 아니라 금색 원숭이는 몸이 비틀거려 뒤로 몇 걸음 밀려났다. 그러나 구수도철은 잠깐 흔들리기만 했을 뿐, 바로 멈춰 섰다.
금색 원숭이는 육신의 힘이 도철에게 밀려 심장이 쿵 내려앉았다.
“죽어라!”
구수도철이 냉소를 지으며 팔을 흔들자 전창이 빛으로 변하여 앞으로 튀어 나갔다.
금색 원숭이는 안색이 굳더니 오른쪽 팔 세 개를 동시에 휘둘러 곤봉들로 전창을 막았다.
세 곤봉이 하나로 겹쳐지면서 힘이 한 곳으로 모였다.
전창에 깃든 힘에 밀려 금색 원숭이는 뒤로 한 걸음 물러서긴 했으나 튕겨져 날아가지는 않았다.
도철의 눈에서 비웃는 기색이 스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