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현계지문-913화 (913/916)

외전 35화. 교활한 묘공

오색 전창에서 번개로 적힌 부문들이 나타났고, 천둥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리고 굵직한 번개 다섯 갈래가 앞으로 날아나가 원숭이를 내리쳤다.

원숭이가 두른 영보만큼 강력한 보호 광막도 오색 번개 앞에선 마치 애초에 없었던 양 가볍게 뚫려버렸다.

뚫린 구멍을 중심으로 균열이 넓게 갈라지더니 원숭이가 두른 금빛이 가볍게 터져버렸다.

석목은 깜짝 놀라 뒤로 물러섰다.

그리고 다양한 빛을 뿜으며 간신히 오색 번개를 막았다.

“이것은 무슨 번개지? 천벌의 기운을 머금고 있다니!”

석목은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천벌의 기운은 예전에 신경에 오르며 뇌겁을 받을 때만 느껴봤던 기운이었다.

금색 원숭이의 몸에서 다양한 빛이 흘러 다니면서 불사신의 기운이 풍기자 핏빛이 번쩍이더니 원숭이가 입은 상처들이 순식간에 회복되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구수도철은 콧방귀를 뀌며 계속해서 공격했다.

그런데 이때, 도철이 갑자기 무엇인가 떠올랐는지 자리에 멈춰 섰다.

석목의 옆에 있던 묘공이 어딘지 모르게 사라져버렸다.

도철은 흠칫 놀라며 신식을 펼쳐 묘공을 찾기 시작했다.

도철이 이제 막 신식을 펼치는 순간, 세월의 강 근처에서 빛이 번쩍이면서 묘공이 나타났다.

묘공이 날린 금빛이 찬란한 손으로 변하더니 이어 금색 손은 세월의 강을 단번에 받쳐 들려고 했다.

그 광경을 본 구수도철은 깜짝 놀라다가 이내 비아냥거리는 표정을 지었다.

묘공이 움직이는 동작을 보니 세월의 강물을 담으려는 것 같았다.

만약 세월의 강물을 담을 수 있었더라면 도철은 이미 그걸 챙겨서 안전한 곳으로 가 천천히 연화했을 터였다.

세월의 강물은 많지 않았지만 아주 특이하여 따로 담기는 커녕 움직이기조차 어려웠다. 그러니 담아서 옮기는 건 꿈도 꿀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런데 이때, 웃고 있던 도철은 얼굴이 굳어버렸다.

세월의 강이 격하게 흔들리면서 하얀빛을 뿜더니 천천히 허공으로 올라갔다.

묘공이 손에 찬란한 빛을 뿜자 투명한 빛 속에서 공간의 문이 하나 나타났는데 마치 세월의 강물을 문에 담으려는 것만 같았다.

도철은 안색이 퍼렇게 질리더니 멍청한 생각을 했던 자신이 한심해졌다. 확실히 묘공은 상계에서 왔기 때문에 세월의 강물을 법보에 담을 수 있을지도 몰랐다.

도철은 곧장 번개로 변하여 묘공을 향해 내리쳤다.

“석목 도우님, 빨리 저놈을 막으세요!”

묘공은 구수도철이 날아오자 다급하게 소리를 질렀다.

석목은 눈을 깜빡이며 고민에 잠겼다.

그러나 다시 빠르게 몸을 날려 구수도철의 앞을 가로막았다.

그리고 여섯 팔을 휘두르면서 곤봉 여섯 자루로 앞을 휩쓸었다.

“꺼져!”

도철은 화가 치밀어 올라 오색 전창에 빛을 뿜었다. 그러자 전창의 그림자가 촘촘하게 나타나 금색 원숭이를 찔렀다.

전창의 그림자는 오색 번개를 감고 있었고, 스친 자리는 허공이 전부 부서져 버렸다.

원숭이는 동공이 줄어들었으나 두려운 기색 없이 곧장 진선지체를 놀려 노란빛을 뿜었다. 그러자 방대한 힘이 원숭이의 몸에서 흘러나오는 동시에 여섯 팔이 흔들렸다.

곤봉 그림자가 촘촘하게 나타났는데 그림자마다 노란빛이 붙은 채로 창 그림자와 부딪쳤다.

쾅!

하늘을 뒤덮는 창 그림자와 곤봉 그림자가 동시에 부서지면서 굉음이 울려 퍼졌다.

금색 원숭이는 몸이 흔들려 뒤로 두어 걸음 밀려나서야 멈춰 섰다.

구수도철도 깜짝 놀랐다.

흩날리는 창 그림자는 반 정도가 흩어졌지만 오색 번개는 여전히 사라지지 않은 채 하늘에서 흩날렸다.

도철이 다시 법결을 날렸다.

오색 번개가 들끓기 시작하다가 눈 깜빡할 사이에 뇌룡으로 변하여 원숭이를 덮쳤다.

순간 원숭이는 뒤로 물러나며 동시에 푸른빛과 보랏빛 번개를 날렸다. 그러자 빛은 곧장 번개 고리인 음양어뢰환 두 개로 변하여 오색 뇌룡을 막았다.

쾅!

오색 뇌룡은 단번에 두 번개 고리에 부딪혀 찬란한 빛을 뿜어냈다.

빛이 흩어지면서 속이 그대로 드러났다.

오색 뇌룡은 머리와 배가 음양어뢰환에 묶여버렸고, 음양어뢰환은 용의 피부를 파고 들어가기 시작했다.

두 고리가 들끓다가 하나로 변하더니 혼탁한 빛을 뿜어내 뇌룡을 안으로 가둬버렸다.

오색 뇌룡이 내뿜는 번개는 혼탁한 빛에 닿는 순간, 빠르게 속으로 스며들었다. 이어서 고리는 급속하게 줄어들어 순식간에 절반으로 작아졌다.

음양어뢰환은 역시 선계의 보물이라 석목은 눈에서 화색이 돌았다. 과연 오색 천둥마저 제압할 수 있었다니.

구수도철은 분노가 치밀어 올라 창을 들고 덮쳤다.

금색 원숭이가 도철을 맞이했다.

구수도철은 사람 모양으로 변하면서 힘이 대폭 상승했다. 게다가 오색 번개의 힘까지 더해져 원숭이가 밀렸다.

그러나 석목은 불사신의 경지인데다가 음양어뢰환이 있었기에 구수도철이 아무리 미친 듯이 공격해도 석목에게 상처를 입히지는 못했다.

구수도철은 초조한 눈빛으로 원숭이의 등 뒤를 바라보았다.

묘공은 이미 세월의 강물을 들어 올려 곧 반지에 넣으려고 하는 것 같았다.

이때, 구수도철이 막강한 살기를 펼쳤다.

쾅!

곤봉과 창이 다시 한번 부딪치자 석목과 도철은 뒤로 밀려났다.

구수도철이 포효하더니 몸통이 한참 동안 들끓다가 다시 본체로 돌아왔다. 그러나 본체는 전보다 몇 배는 더 막강해졌고, 거대한 몸통에서 어두운 그림자가 흘러나와 하늘을 가렸다.

도철의 아홉 개의 머리에서 검은빛이 튀어 나와 하나로 뭉쳤다. 그리고 다시 커다란 머리로 변하였는데 머리는 산봉우리만 했고, 눈이 아홉 쌍이나 박혀있었다. 또한 울퉁불퉁한 살갗에 뾰족한 살덩이가 튀어나와 보기에 매우 추악했다.

도철이 입을 크게 벌리고는 공기를 빨아들였다.

쾅!

굉음이 울려 퍼지며 바람이 일기 시작했다.

막강한 흡입력이 드넓게 펼쳐지는 게 족히 만 리까지 뻗어나간 것 같았다. 그리고 공간 파동이 미친 듯이 일렁이다가 거울처럼 부서졌다.

수많은 공간의 힘이 막강한 흐름을 이루며 구수도철의 몸속으로 흘러 들어갔는데 천지의 영기는 말할 필요조차 없었다.

만 리 안에 있는 모든 것들이 전부 허무로 돌아갔다.

금색 원숭이는 때마침 구수도철의 앞에 있어 흡입력 때문에 도철의 입으로 빨려 들어갈 뻔했다.

거무튀튀한 도철의 입속으로 빨려 들어가면 큰일이라 석목은 깜짝 놀랐다. 그리하여 석목은 실력이 막강했음에도 이번엔 위기감을 느꼈다.

석목이 소리를 지르자 수많은 노란빛이 나타나 노란 영역으로 뭉쳤다. 그리고 금색 몸통은 순식간에 노란 육체로 변했다.

노란 영역에는 무수한 빛이 흘러 다녔고, 단번에 도철이 내뿜은 흡입력을 막아냈다.

석목은 그제야 깊은숨을 내뱉었다.

멀리 떨어진 곳에 있던 묘공도 흡입력 때문에 몸이 빙글빙글 돌기 시작했다. 그리고 몸 앞에 떠있던 세월의 강물도 흡입력에 휘말려 흔들리다가 멈췄다.

묘공은 당황하지 않았고, 오히려 화색을 드러냈다. 그리고 몸에 빛을 밝히면서 자신과 세월의 강물을 안쪽으로 드리웠다.

묘공을 바라보고 있던 석목은 눈에서 이색이 스치더니 다시 생각에 잠겼다.

구수도철은 묘공이 취하는 행동을 보자 더 막강한 흡입력을 뿜어냈다.

금빛 속에 숨어있던 묘공이 하얀 부적을 하나 꺼냈다. 그러자 부적에서 수많은 무늬가 번쩍였고, 공간 법칙의 파동이 흘러나왔다.

이 부적은 묘공이 오랜 시간 동안 숨겨왔던 대나이선부(大挪移仙符)라 그는 눈에 내키지 않는 기색이 스쳤다. 그러나 묘공은 망설이지 않고 부적을 던져 손가락으로 허공을 짚었다.

하얀 부적이 부서지면서 수많은 부문으로 변하였다. 그리고 세월의 강물 근처에서 빠르게 재조합되더니 이내 깃털 모양 진법을 이루었다.

묘공이 낮게 소리를 지르며 입을 벌려 하얀빛을 진법 속으로 흘려보냈다.

진법이 밝아지면서 안에 있던 세월의 강물과 함께 사라져버렸다.

이어서 도철의 입가에 하얀빛이 반짝이더니 진법이 나타났다.

퍽!

하얀 진법이 부서져 다시 부문으로 변하여 도철의 입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세월의 강물은 그 자리에 남겨졌다.

구수도철은 멈칫하다가 이내 깜짝 놀랐다.

도철의 입가에서 빨아들이는 힘이 가장 강렬했기에 세월의 강물은 이내 휘말려버렸다.

세월의 강물은 묵직했지만 막강한 흡입력 때문에 하얀 그림자로 변하면서 구수도철의 입 안으로 빨려 들어가 버렸다.

구수도철이 다급하게 입을 다물었지만 이미 온 힘을 다해 흡입력을 시전하고 있어 곧바로 멈출 수가 없었다.

도철이 입을 닫기도 전에 세월의 강물은 결국 몸속으로 들어가 버렸다.

구수도철은 얼굴이 굳어 다급하게 몸을 움츠렸다. 그러자 검은빛이 들끓으며 도철의 배가 부풀었다가 꺼지기를 반복하는 것이 세월의 강물을 토해내려는 것만 같았다.

구수도철은 이미 흡입력을 내뿜는 것을 멈추었지만 만 리 안쪽에 흐르던 공간의 힘은 아직 회복되지 않았다. 또한 부서진 공간도 마찬가지로 격하게 흔들렸다.

검은 공간 통로도 흔들렸고, 그 속에서 수많은 시공간 폭풍이 용솟음치더니 점점 불어났다.

그러나 석목과 묘공은 주변 상황을 신경을 쓸 겨를이 없었다.

이 정도 공간 파동은 두 사람에게는 아무런 영향도 미치지 못했다.

원숭이는 멍하니 도철을 지켜보며 공격을 멈추었다.

“묘공님, 어찌된 일입니까? 저놈이 세월의 강물을 삼켜버렸는데 괜찮은 건가요?”

석목이 묘공을 바라보며 묻더니 동시에 법결을 하나 날렸다.

노란 영역이 사라지면서 몸에 감고 있던 노란빛도 사라져 석목은 다시 금색 육신으로 돌아왔다.

원숭이 옆에서 그림자를 번쩍이면서 묘공이 다가왔다.

“석목 도우님, 걱정하지 마세요. 세월의 강물은 시간의 힘을 머금고 있어서 귀한 보물인 건 맞으나 또 화를 부르기도 하지요. 강물 속에 있는 시간의 힘은 천천히 연화시켜야 합니다. 저 도철 녀석이 단번에 삼켜버렸으니 이제 곧 죽겠지요. 막대한 시간의 힘 때문에 육신이 터져버릴 겁니다.”

묘공이 후후 웃으며 싸늘한 눈빛으로 도철을 바라보았다.

그 말을 들은 원숭이는 안색이 계속 바뀌었다.

“묘공 도우님, 역시 대단하십니다. 이런 생각을 다 해내시다니.”

원숭이는 깊은숨을 들이마시며 손을 굽히면서 말했다.

“도철은 깊은 법력과 막강한 육신을 지녀 만약 이런 수법을 쓰지 않았다면 저놈과 승부를 가리기 어려웠을 테지요. 그리고 이긴다고 해도 시간이 오래 걸릴 테니 변수가 생길 수도 있었어요.”

묘공이 자신 있게 웃으며 말했다.

원숭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까지 싸움으로 보아, 석목은 도철이 막강한 존재라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그러니 만약 이런 술수를 부리지 않고 단순히 싸우기만 했다면 아마 몇 날 며칠이 걸려도 승부를 가릴 수 없었을 터였다.

묘공이 말을 마치기 바쁘게 고통스럽게 울부짖는 소리가 들려왔다.

구수도철은 데굴데굴 굴러다니면서 허우적대더니 고통스럽게 소리를 질러댔다. 그러자 도철의 몸통 곳곳에서 핏빛 거품이 튀어나왔는데 그 모습이 극도로 혐오스러웠다.

구수도철의 모습을 보자 석목은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도철이 내뿜는 혼란스러운 기운이 점점 격해져 마치 몸속에 깃든 악마가 끊임없이 발버둥을 치면서 도철의 몸을 뚫고 나오려는 것만 같았다.

정말 묘공이 한 말대로 육신이 폭발하여 죽어버릴 터였다.

석목은 그제야 긴장을 풀었다.

비록 술수를 부려 도철을 죽일 수 있게 되었지만 석목의 입장에서도 나쁜 일은 아니었다.

“그렇다면 묘공 도우님은 조금 전에 미끼를 던져 도철이 흡입력 신통을 부리게 만들어서 세월의 강물을 저놈의 몸속에 집어넣으시려는 계획을 세우셨나요? 그렇다면 도우님이 세월의 강물을 담으려고 한 행동은 연기였습니까?”

석목은 긴장이 풀리자 묘공과 담소를 나누기 시작했다. 그리고 다시 묘공이 손목에 두른 팔찌를 한번 바라보았다.

“역시 석목 도우님의 눈을 피할 수는 없군요. 세월의 강 속에는 수많은 공간의 법칙과 시간의 법칙이 들어있습니다. 그러니 평범한 저장 법기에 절대 담을 수 없지요. 물론 상계에는 저 보물을 담을 법보가 있긴 하나 저 같은 순찰자 따위가 갖고 있을 리 없지요. 제가 가진 건 평범한 저장 법기일 뿐입니다.”

묘공은 자신이 펼친 연기가 만족스러운지 팔찌를 흔들면서 큰소리로 웃었다.

그러나 석목은 오히려 묘공을 경계하게 되었다.

이렇게 치밀하고 교활한 자는 늘 조심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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