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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계지문-914화 (914/916)

외전 36화. 표적을 죽이다

“구수도철은 이미 힘을 잃은 것 같으니 빨리 죽여 버립시다. 혹시 모르지 않습니까?”

석목은 허우적대는 도철을 바라보며 눈에 빛을 반짝이면서 말했다.

“네, 도우님께서 하신 말대로 우리……”

묘공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하다가 멈췄다.

도철이 눈을 감고 있다가 번쩍 뜨자 검은빛이 도철의 몸에 나타났는데 곧이어 알 수 없는 법칙의 힘이 흘러나왔다.

쾅, 쾅!

묵직한 소리가 도철의 몸에서 울려 퍼져 마치 무엇인가가 부서지는 것만 같았다.

잠시 후에 구수도철의 몸에서 들끓던 기운이 차분해지더니 울퉁불퉁하게 튀어나온 거품도 가라앉았다.

구수도철은 강제로 몸속에 흐르는 시간의 힘을 제압한 것 같았다.

“말도 안 돼!”

묘공은 깜짝 놀랐다.

슥!

묘공의 옆에 있던 원숭이는 두말없이 빛으로 변하여 도철을 덮쳤다.

묘공도 안색이 굳은 채 몸을 날렸다.

원숭이는 순식간에 도철의 옆에 도착했다.

그리고 주문을 외우면서 팔을 휘두르자 번천곤을 비롯한 여섯 곤봉 법보가 날아 나와 허공에서 맴돌았다.

또 두 자루 곤봉 법보가 석목의 몸에서 날아 나왔다.

현천지보 여덟 자루가 허공에서 빙글빙글 돌면서 놀라운 빛과 위압감을 풍겼다. 그리고 서로 합쳐지면서 눈 깜짝할 사이에 만 장 가까이 되는 팔 층 탑으로 변하였다.

놀라운 법칙 파동이 탑에서 흘러나왔는데 짙은 살기가 섞여있었다.

석목이 입을 벌려 순수한 빛 한 갈래를 탑으로 흘려보내더니 손으로 법결을 짚었다.

우르릉!

탑이 순식간에 커져서는 구수도철의 머리를 향해 내리쳤다. 그러자 숨 막히는 기운 파동이 사방으로 퍼져 나갔다.

구수도철은 움직이지 못하고는 낮게 소리를 질렀다. 그러더니 도철의 머리에서 다양한 빛이 뿜어져 나와 위로 퍼져 나갔다.

쿵!

탑이 운석처럼 떨어져서는 도철의 머리를 강하게 내리쳤다.

도철의 머리 위에서 나던 빛은, 탑에 닿는 순간 곧장 부서졌으나 탑은 계속해서 도철의 머리를 내리찍었다.

쩍!

도철의 머릿속에서 부서지는 소리가 들리더니 이내 틈이 갈라지며 이목구비에서 피가 흘러나왔다. 이제 도철은 곧 숨이 멈추려는 것 같았다.

도철은 무려 탑으로 내리친 막강한 일격을 받아낼 만큼 머리가 생각보다 단단했다.

그러나 이때 갈라진 도철의 머리에서 투명한 빛이 흘러나왔는데 그건 세월의 강물과 매우 흡사했다. 그렇게 빛이 흘러나오는 순간, 머리에 갈라진 균열이 다시 붙더니 곧 숨을 거두려던 도철이 생기를 되찾았다.

“이건……”

원숭이는 안색이 굳어버렸다.

이건 치유 능력이 아닌 시간을 되돌리는 대신통이었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묘공은 안색이 굳어버렸다.

“하하하! 묘공! 네가 잘난 척하며 세월의 강물을 내 몸속으로 던진 덕분에 내가 드디어 시간 법칙의 오묘한 이치를 깨우쳤구나. 세월의 강물을 완전히 연화시키기만 하면 너희는 죽을 게다.”

구수도철이 미친 듯이 웃어대자 몸의 곳곳에서 투명한 빛이 흘러나와 구수도철을 감쌌다.

구수도철이 내뿜는 하늘을 찌르는 요기는 여전히 파동을 일으켰지만 점점 짙어지며 순수해지는 것이 조금 전에 세월의 강을 연화시킬 때와 같은 기운이었다.

“빨리! 절대 세월의 강물을 연화하게 만들어서는 안 돼!”

묘공은 얼굴이 퍼렇게 질려선 소리를 질렀다.

그러나 석목은 묘공이 말을 떨뜨리기 전에 이미 움직였다.

팔 층 탑이 다시 하늘로 날아올라 여덟 갈래 빛을 뿜었다. 그러자 빛이 스친 자리에서 다시 격렬한 파동이 일었다.

탑은 빙글빙글 돌다가 크기가 줄어들었다. 그러나 위력은 훨씬 커진 채 다시 구수도철의 머리를 향해 내리쳤다.

구수도철이 입을 살짝 벌리고는 주문을 외우자 도철의 몸에서 하얀빛 파동이 퍼지면서 머리에 두른 광막이 점점 두터워졌다.

쾅!

탑이 도철이 두른 광막을 내리치자 광막이 격하게 흔들렸다. 그러나 막강한 일격을 받아도 광막은 끄떡없었다.

석목은 조급해 보였지만 구수도철이 짓는 표정은 여유로워 보였다.

탑으로 내리친 강렬한 공격마저 가볍게 받아 내다니, 시간 법칙의 힘은 역시 막강했다.

묘공도 이미 구수도철 근처로 날아왔으나 표정은 굳어버렸다.

묘공이 푸른 도를 꺼내서는 하늘을 향해 찔렀다.

도에서 부문들이 나타났다가 파르르 흔들리더니 끝에서 푸른 빛기둥이 뽑혀 나와 하늘로 치솟아 번쩍이다가 허공에서 사라져버렸다.

순간, 굉음이 울려 퍼졌다!

허공에서 광풍이 휘몰아치면서 찬란한 빛이 쏟아졌다.

하얀빛 속에는 커다란 문이 하나 있었는데 문 뒤로 수많은 그림자가 일렁거렸다. 또한 그림자 뒤로 방대한 세계가 펼쳐졌는데 수많은 산수하천과 건물들이 있었고, 금색 구름이 흘러 다니는 곳에선 범음이 울려 퍼졌다. 그 모습을 보니 마치 상계의 불타성경(佛陀聖境)인 것 같았다.

묘공이 결국 상계로 통하는 문을 열어버렸다.

하얀빛이 문에서 날아 나와 수많은 부문들을 이루었다.

묘공이 주문을 외우면서 두 손을 바퀴처럼 돌려 앞쪽을 짚었다.

그러자 허공에 모인 하얀 부문들이 빙글빙글 돌면서 푸른 도로 스며들었다.

한 장 크기였던 도는 부문들을 흡수한 후에 눈 깜짝할 사이에 천 장 가까운 크기로 변하였다.

때문에 시간의 법칙을 바탕으로 자신만만하던 구수도철은 도가 내뿜는 위력을 느끼자 안색이 굳어버렸다.

석목은 푸른 도를 신경 쓰지 않고는 먼 곳에 서서 주문을 외우며 빠르게 법결을 짚었는데 마치 주변에서 벌어진 상황을 알아차리지 못한 것만 같았다.

탑 법보가 밀리자 석목은 곧장 뒤로 물러나 다음에 날릴 공격을 준비했다.

탑보다 더 막강한 공격은 구원빙화선술이었다.

그러나 석목은 탑을 거두어들이지 않아 탑은 끊임없이 도철을 공격했다.

탑이 지닌 위력은 한계가 있었지만 구수도철을 정신없게 만들기엔 충분했다.

석목은 두 손으로 법결을 짚으면서 화염 모양을 만들어 입으로 주문을 외웠다.

석목의 손바닥에서 빛이 번쩍이더니 화염 모양 부문이 하나 나타났다.

화염 모양 부문은 평범한 무늬보다 훨씬 복잡했다.

푹!

석목의 손바닥에 나타난 금색 화염은 끊임없이 퍼져서는 온 팔을 감아버렸다.

유금화염(鎏金火焰)은 활활 타오르고 있었지만 아무런 열기도 없었다.

석목은 화염이 진기를 대부분 빨아들여 안색이 창백해졌다. 그러나 얼굴에는 기쁜 기색이 가득했다.

역시 선술 화염이라 석목은 화염이 내뿜는 위력을 뚜렷이 느낄 수 있었다.

이때, 석목의 허리춤에서 빛이 반짝이더니 푸른 용이 날아 나왔다.

수령자는 심각한 얼굴로 파란빛을 풍기고 있었는데 빛에서는 차가운 기운이 흘렀다.

수령자의 미간에서 파란빛이 반짝이다가 파란 화염 모양의 부문이 나타났는데 석목이 이룬 부문과 매우 흡사했다.

퍽!

수령자의 미간에서 파란 빙염(氷焰) 부문이 날아 나왔다.

유금화염처럼 파란 빙염에서도 아무런 기운을 느낄 수 없었다.

금빛과 파란빛 화염이 부딪쳤다.

석목과 수령자는 안색이 굳더니 각자 빠르게 주문을 외웠다. 그리고 둘은 법결을 줄줄이 날려 자신이 피워낸 화염을 조종했다.

금빛과 파란빛 화염이 천천히 돌면서 마치 태극의 음양처럼 조화를 이루었고, 석목은 미소를 지으며 다시 고개를 들었다.

이 공법을 시전하며 꽤 많은 시간을 써서 거의 묘공과 동시에 준비를 마쳤다.

석목은 묘공이 불러낸 푸른 도를 바라보며 눈에 빛을 반짝였다.

푸른 도에서 놀라운 기운이 흘러나왔는데 그 기운은 열두 곤봉으로 만든 석목의 탑보다 훨씬 막강한 묘공의 필살기였다.

석목은 눈에 빛을 번쩍이더니 이어서 탑에 붉은 피를 뿜어냈다.

그러자 탑에서 빛을 번지더니 순식간에 넓적한 도끼로 변하여 다양한 여덟 갈래 빛을 뿜었다.

석목은 이미 능수능란하게 열두 곤봉을 다룰 수 있었다.

석목이 법결을 날리자 도끼는 다시 번개로 변하여 구수도철의 머리를 향해 내리쳤다.

도끼가 내리치는 순간, 석목이 옷자락을 휘둘러 열 몇 가지 법보의 빛을 날려 도철의 머리를 공격했다.

법보들은 전부 위력이 막강한 영보였고, 노란 구슬 법보도 그중에 있었다.

구수도철은 여전히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고 있다가 석목에게 공격을 받자 머리에 빛을 번쩍였다. 그러자 방패가 한 층 더 두터워진 것 같았다.

쾅!

도끼가 하얀 방패를 내리치자 굉음이 울려 퍼졌다.

방패가 격하게 흔들리면서 어두워졌으나 도끼도 튕겨져 날아갔다.

도철이 한숨 돌리기도 전에 법보 열 몇 개가 동시에 날아왔다.

“폭(爆)!”

석목이 법결을 짚자 영보 열 몇 개에서 동시에 굉음이 울려 퍼지면서 찬란한 빛이 터져나와 도철의 머리를 향해 드리웠다.

막강한 충격 때문에 파동이 일며 사방으로 퍼졌다.

찬란한 빛에 가려졌지만 석목과 묘공은 빛 속 상황을 볼 수 있었다.

영보 열 몇 개로 공격을 받자 도철이 꺼낸 하얀 방패가 더욱 어두워졌다.

특히 노란 구슬 법보가 폭발하며 일으킨 위력은 막강해 마치 사라지지 않는 천둥과도 같았다.

“참(斬)!”

묘공이 눈에 금빛을 반짝이며 오른손을 흔들었다. 그러자 커다랗고 푸른 도가 그림자로 변하여 하얀빛에서 가장 얇은 곳을 내리쳤다.

하얀빛은 연이은 공격을 받자 드디어 버티지 못하게 되었다.

쩍!

빛방패에 균열이 갈라졌다.

묘공은 희색을 드러내며 입을 크게 벌려서는 금색 피를 뿜어냈다. 그러자 피가 부문으로 변하여 푸른 도로 스며들었다.

쾅!

도에서 화려한 빛이 번지더니 야수가 포효하는 소리가 울렸다. 이어서 도가 윙윙 흔들리면서 간신히 하얀 빛방패를 베었다.

도철은 안색이 굳더니 두려운 기색을 내비쳤다. 그리고 도철은 온 힘을 다해 머리 위를 덮은 방패로 시간 법칙을 날려 보냈지만 여전히 푸른 도를 막아낼 순 없었다.

방패에 균열이 갈라지더니 드디어 터져버렸다.

그러나 푸른 도도 크기가 빠르게 줄어들어 수십 장으로 변했다.

묘공의 눈에서 사나운 기색이 스치더니 그는 다시 금색 피를 뿜어내어 도에 불어넣었다.

정혈을 두 번 뿜자 묘공은 안색이 창백해졌다.

쾅!

푸른 도에서 화염이 타오르면서 수많은 부문이 들끓었다.

불타는 푸른 도가 희미해지면서 아래를 향해 내리쳤다.

“안 돼!”

도철은 온통 내키지 않는 듯이 소리를 질렀다.

이제 시간이 조금만 더 주어지면 도철은 몸속에 깃든 시간의 힘을 써서 공격을 날릴 수 있었다.

그때가 되면 석목과 묘공은 절대 구수도철을 죽일 수 없을 터였다.

푸른 도가 번쩍이며 도철의 피부를 뚫고는 머릿속으로 들어갔다.

도철이 소리를 질렀으나 결코 움직일 수 없어 온몸을 부들부들 떨다가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묘공은 아난파계도(阿難破戒刀)와의 신식 연결이 갑자기 끊어져 안색이 굳었다. 또한 도대체 도철이 무슨 수단을 부렸는지 알 수가 없었다.

“그만하고 이제 죽어라!”

이때, 도철의 뒤에 석목이 나타났다.

석목은 낮게 소리를 지르며 팔에 금빛과 파란빛 화염을 감더니 칼처럼 바꿔 도철의 머리를 찔렀다.

원숭이의 굵직한 팔이 곧장 도철의 단단한 머리를 찔러버렸다.

처참한 소리가 도철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펑!

금빛과 파란빛 화염이 동시에 번지며 구수도철의 머리를 감았다. 그러자 극도로 뜨겁고, 극도로 차가운 기운이 동시에 폭발했다.

금빛 화염이 활활 타오르더니 순식간에 모든 것을 허무로 태워버렸다.

파란 빙염 기운이 스친 곳은 모든 게 얼어붙었다가 산산조각이 났다.

석목이 손을 흔들자 붉은빛과 파란빛 수화선정이 날아 나와 금빛과 파란빛 화염으로 스며들었다.

금빛과 파란빛 화염은 몇 배나 더 왕성하게 타오르다가 하나로 합쳐져서는 하얀 화염으로 변했다.

하얀 화염은 매우 평범해보였지만 민멸(泯滅)의 기운을 풍기고 있었다.

구수도철의 머리가 화염에 말려 빠르게 줄어들더니 단 몇 번 호흡을 할 사이에 철저히 사라져버려 신혼마저 허무로 돌아갔다.

묘공이 꺼낸 푸른 도 한 자루만 허공에 떠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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