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전 38화. 비승의 겁
시간이 빠르게 흘러 삼백 년이 지났다.
남해성 동해에 자리한 고리 모양 섬엔 하늘에 먹구름이 가득 껴있었다. 그리고 먹구름은 족히 수천 리나 뻗어 빛이 끊임없이 번쩍였다.
고리 모양 섬 가운데에 놓인 검은 돌 위에는 남자 한 명과 여인 세 명이 서 있었는데 푸른 치마에 수려한 눈썹이 돋보이는 여인이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서방님, 비승 천겁은 위험한 일이니 꼭 조심해야 해요.”
말을 하는 사람은 역시 종수로, 그녀의 옆에는 몸이 탄탄한 남자가 서 있었고, 또 바로 옆에는 서문설이 서 있었다. 그리고 금소채는 조금 멀리 떨어진 곳에 서 있었다.
모두 몸에서 빛이 반짝이는 게 삼백 년 동안 수련 경지가 많이 오른 듯했다.
서문설은 이미 신경 후기에 도달했고, 종수와 금소채는 신경 중기에 도달했다.
고작 삼백 년 만에 이렇게 놀라운 성과를 이뤘다니, 석목이 무슨 수단을 부렸는지 알 수 없었다.
“수아, 걱정하지 마. 내 진선지체는 이미 원만에 이르렀어. 그리고 이미 오랫동안 준비를 했으니 천겁을 뚫고 갈 수 있을 거야.”
석목이 부드러운 눈빛으로 말을 꺼내며 다시 서문설에게 시선을 돌렸다.
“서방님께서 갖추신 실력이라면 아마 꼭 성공하겠죠. 걱정하지 마세요. 우리도 꼭 열심히 수련하여 상계로 비승할 테니. 그리고 서방님과 다시 만나 영원히 함께할 거예요.”
서문설이 부드럽게 말했다.
석목은 두 여인을 바라보며 와락 품에 안고는 몸에서 풍기는 향기로운 냄새를 맡았다.
세 사람은 몸이 하나가 되었다.
쿵!
하늘에서 첫 번째 번개가 내리치자 서문설과 종수는 석목의 가슴에 파묻었던 머리를 들어 올리며 그를 올려다보았다.
“어서 가세요.”
둘이 동시에 말했다.
석목은 허리를 펴고는 가볍게 손을 흔들자 파란빛과 붉은빛 그림자가 석목의 몸에서 날아 나와 종수의 옆으로 향했다.
“채아, 수령자, 호법을 서줘.”
석목이 말했다.
“석두, 걱정하지 마. 내가 있잖아. 문제없을 거야.”
채아가 날개를 펄럭이며 가슴을 두드렸다.
한쪽에 있던 수령자는 채아가 하는 말을 듣고서 온통 경멸하는 표정을 지었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수령자는 고개를 돌려 석목을 바라보며 말했다.
“걱정하지 마. 내게 맡겨.”
수령자도 경지가 이미 신경 후기에 이른데다가 후기 중에서도 극도로 높은 수준까지 수련해 심지어 진선지체까지 이루려는 기미가 보였다.
그러나 채아는 조금 뒤처져 여전히 신경 중기였으나 기운 파동을 보니 실력이 꽤 많이 늘긴 한 것 같았다.
석목은 하늘로 날아올라 허공에 서서는 두 눈을 감았다.
석목이 내뿜는 기운이 점점 차분해지면서 얇은 파동만 흘러나왔다. 그리고 파동은 금색 무늬를 이루며 사방으로 흩어졌다.
석목이 일으킨 파동의 흔적은 마치 바닷물이 일렁이는 것 같아 서문설은 눈에서 빛을 반짝였다. 그렇게 석목은 육신이 바닷속으로 들어간 듯했고, 눈을 감는다면 존재조차 읽을 수 없게 되었다.
이때, 석목이 눈을 번쩍 뜨며 옷자락을 흔들면서 빛으로 변하여 바다 깊은 곳으로 향했다. 그러자 금빛 한 줄기가 석목의 앞에서 날아갔다.
윙, 윙!
광풍이 휘몰아치는 소리와 함께 금빛 번천곤이 허공에서 빠르게 불어나 천 장 가까이 되는 기둥으로 변하여 바다를 내리쳤다.
번천곤은 물에 닿는 순간 계속해서 불어나 눈 깜짝할 사이에 바닷속으로 내려가 한 부분만 바다 위로 올라왔다.
석목은 번천곤으로 내려와서는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섬 위 하늘에서 떠다니던 구름들이 전부 석목의 머리 위로 몰려들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먹구름이 낮게 짓눌러와 숨이 턱 막혔다.
그러나 석목은 마치 아무런 느낌조차 없는 것처럼 미소를 지었다.
굉음이 울려 퍼지더니 먹구름 속에서 하얀빛이 일었다가 구멍이 뚫려버렸다. 그리고 커다란 구멍에서 쇠가 부딪치는 소리가 울려 퍼지자 회오리바람 수만 갈래가 하늘을 뒤덮으며 날아왔다.
천겁이 드디어 시작되었다!
“풍겁(風劫)……”
석목은 의외라는 듯이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그러자 번천곤에서 금색 파동이 일면서 커다란 곤봉 그림자 하나가 날아 나왔다.
색이 각각 다른 곤봉 그림자가 석목의 몸에서 줄줄이 날아 나와 얽히고설키며 머리 위에 펼쳐져서는 칼바람을 막았다.
탱, 탱, 탱!
쇠가 부딪치는 소리가 울려 퍼지면서 회색 칼바람이 열두 곤봉을 내리치다가 전부 부서져 버렸다. 그러나 열두 곤봉은 태산처럼 묵직하게 움직이지 않았다.
석목은 숨을 죽이고 자리에 서서는 전혀 움직이지 않았다.
귀가 찢어지는 소리가 온종일 울려 퍼졌지만 석목은 계속해서 가만히 서 있었다.
삼백 년 동안 석목은 실력이 또 늘어 이 정도 풍겁은 눈에도 들어오지 않았다.
이때, 먹구름에 뚫린 구멍에서 빛이 나더니 쇠가 부딪치는 소리가 사라졌다. 이어서 북치는 소리가 촘촘하게 울려 퍼지더니 뜨거운 기운이 속에서 흘러나왔다.
석목이 고개를 들자 구멍에서 붉은빛이 밝아지면서 촘촘한 붉은 부문들이 날아 나와 구멍을 꽉 채웠다. 이어 무수히 많은 부문들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바람 뒤엔 불인가? 보아하니 뇌겁은 그 뒤인 것 같군.”
석목은 혼잣말로 중얼거리며 두 손을 들어 올렸다.
* * *
수백 리 떨어진 섬에서 종수가 서문설의 손을 붙잡고는 긴장한 얼굴로 붉은 구름을 바라보았다.
서문설도 이마에는 땀방울이 맺혔으나 손으로 종수의 등을 두드리며 긴장을 풀라고 말했다.
종수는 고개를 돌려 서문설을 한 번 바라보고는 위안을 하듯이 웃어 보였다. 그러나 종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걱정하지 마. 이 정도 천겁으론 석두를 해칠 수 없어.”
채아가 말했다.
수령자는 종수 일행을 바라보지 않고 뚫어져라 뇌겁만 바라보는 게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었다.
쾅!
묵직한 천둥소리가 촘촘하게 울려 퍼지자 바다 위가 붉게 물들었다. 그리고 불타는 용암이 촘촘하게 소나기처럼 쏟아지기 시작했다.
종수 일행은 석목과 멀리 떨어져 있었지만 뜨거운 기운이 밀려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파동이 일던 바다 위에선 바람이 거칠게 휘몰아쳤고, 파도가 치면서 하늘로 치솟는 것이 마치 불을 끄려고 기승을 부리는 것만 같았다.
불구름 밑에서 곤봉 몇 자루가 빙글빙글 돌았다.
이번에는 허상이 아니라 실제로 흩날리는 화염을 곤봉이 일일이 막아냈다.
* * *
며칠 뒤, 하늘에서 천둥소리가 울려 퍼지면서 보랏빛과 금빛 번개창이 오색구름에서 쏟아져 바다에 내리쳤다.
석목은 이미 만 장 가까이 되는 원숭이로 변신해 괴성이 울려 퍼졌다. 그리고 석목이 세 머리를 연이어 좌우로 흔들면서 여섯 팔을 동시에 움직여 하늘을 찌르자 원숭이의 손에서 다양한 빛기둥이 터져 나와 보랏빛과 금빛 번개창에 부딪쳤다.
이어 원숭이의 몸통 위로 거대한 고리 음양어뢰환 두 개가 빠르게 돌아가면서 보랏빛과 파란빛을 뿜었다.
수많은 번개창이 꿈틀거리면서 음양어뢰환에 스며들자 법보가 번개를 대부분 빨아들였다.
며칠 동안 뇌겁은 한 차례, 또 한 차례 끊이지 않고 내리쳤다.
뇌겁이 내뿜는 위력은 석목이 예상했던 수준보다 훨씬 막강해 그는 이미 힘이 많이 빠져버렸다.
쿵, 쿵, 쿵!
폭발음이 끊임없이 하늘에서 울려 퍼지며 원숭이 손에서 다양한 빛기둥이 뿜어져 나와 번개창과 부딪치더니 흩어졌다. 그러나 여전히 수많은 번개가 원숭이의 몸을 향해 내리쳤다.
원숭이의 몸에서 오색 광막이 한 층 나타나서는 번쩍였는데 광막에는 금색 부문들과 가마 허상이 흘러 다녔다. 때문에 번개가 내리쳐도 절대 부서지지는 않았다.
종수 일행은 푸른빛과 붉은빛 광막 속에서 초조한 표정을 지으며 번개가 쏟아지는 바다를 바라보았다. 어느새 일행 밑에 자리했던 고리 모양 섬은 이미 사라지고 없었고, 높이가 수백 장 정도 되는 산봉우리가 나타났다.
종수 일행이 서있던 섬은 천겁이 내뿜는 여파로 깎여버려 원래 모습을 찾아볼 수 없었다. 또한 바닷물도 잔뜩 끓어버려 물이 백 장 가까이 낮아졌다.
“곧 끝나려는 것 같아……”
이때, 수령자가 갑자기 입을 열었다.
그러자 모두 석목이 있는 곳을 바라보았다.
단단하기 그지없는 보랏빛과 금빛 번개 폭포가 구멍에서 쏟아져서는 곧장 광막을 향해 내리쳤다.
음양어뢰환이 격하게 흔들리는 것이 더는 받아내기 버거워서 부서지려는 것만 같았다.
음양어뢰환 밑에는 원숭이 한 마리가 허리를 굽히고 있었다. 그렇게 막강한 힘이 원숭이의 몸통을 짓누르자 단단한 몸으로도 견디기 힘들어 보였다.
굉음과 함께 미천거원의 몸에서 노란빛이 뿜어져 나왔다. 그러자 금색 털은 순식간에 사라졌고, 이목구비 또한 계속 변하다가 인족처럼 돌아왔다.
석목은 머리가 세 개에 팔이 여섯 개 달린 노란 거인으로 변하여 번개 폭포로부터 내리치는 압력을 받아냈다.
석목의 두 눈에서 흑백 빛이 반짝였고, 음양의 기운이 쏟아져 나왔다.
방대한 음양의 기운이 음양어뢰환으로 스며들자 흔들리던 법보가 다시 한 층 불어나면서 미친 듯이 번개 폭포를 삼켰다.
그러나 번개 폭포는 끊이질 않고 쏟아져 마치 영원히 멈추지 않을 것만 같았다.
시간이 흐를수록 번개 폭포가 내리치는 위력은 점점 커져 그대로 석목을 묻어버렸다.
석목은 진선지체를 시전했지만 안색이 점점 하얗게 질렸다.
* * *
반시진 뒤, 굉음이 울려 퍼지며 보라색 번개 폭포가 드디어 조금씩 사라졌다. 그리고 음양어뢰환이 갈라지더니 이내 조각이 나서 터져버렸다.
하늘에 뜬 오색구름은 한참 동안 들끓다가 점점 희미해졌고, 가운데에 있던 하얀빛이 점점 밝아져 하늘을 밝게 비추었다. 그렇게 있는 듯 없는 듯 보이던 하늘의 문이 조금씩 모습을 드러냈다.
석목은 얼굴이 하얗게 질린 채 몸에 힘이 풀려 다시 백 장 정도로 줄어들었다. 물론 진선지체는 여전히 시전하고 있었지만 세 머리와 여섯 팔은 이미 사라졌다.
석목은 깊은숨을 들이마시더니 하늘의 문을 향해 날아갔다. 그렇게 점점 문과 가까워졌지만 석목은 몸이 산처럼 무거워서 앞으로 나아가기가 힘들었다.
석목이 소리를 지르며 두 팔을 힘껏 휘두르자 번천곤이 나타나 하늘의 문을 내리쳤다.
“열어!”
쾅, 쾅!
공간 파동이 퍼지며 하늘의 문이 움푹 파이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빛 한 갈래가 밝아지며 문에서 범음이 울려 퍼지다가 드디어 하늘의 문이 활짝 열렸다.
“석두, 됐어. 됐어. 하하하……”
환호하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석목의 몸이 다시 인족으로 돌아왔고, 호법을 서던 채아와 수령자는 석목에게로 날아갔다.
둘은 석목의 영총인데다가 수령자는 비술을 수련했기에 둘은 하계의 기운을 숨겨 석목과 함께 비승할 수 있었다.
“서방님……”
종수와 서문설이 날아와서는 석목을 바라보았다.
석목은 고개를 돌려 두 여인을 바라보았다. 그렇게 석목이 이제 막 무엇인가를 말하려 할 때, 하늘의 문 속에서 하얀빛이 나와 그를 빨아들이듯 끌고 들어갔다.
석목은 천천히 날아가 문 속으로 사라졌다.
수많은 하얀 부문들이 빛기둥에서 흘러나왔고, 기이한 영력 파동이 사방팔방으로 퍼졌다.
서문설과 종수, 금소채는 파동에 밀려나 버렸다. 이어서 세 사람은 놀란 기색을 드러냈다.
순간, 하늘의 문에서 석목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건 상계 법칙의 힘이야. 잘 깨우쳐……”
그 말이 떨어지기 바쁘게 막강한 힘이 커다란 문에서 흘러나왔다.
석목은 몸이 가벼워지면서 이내 사라져버렸다.
금색 문에서 천천히 파동이 일더니 다시 하늘로 사라져버렸다. 그러나 법칙의 힘에서 일어나는 파동은 멈추지 않았다.
금소채는 얼굴에서 화색이 돌더니 다급하게 가부좌를 틀고 앉아 법칙의 힘을 깨우치기 시작했다.
그러나 종수와 서문설은 법칙의 힘에서 일어나는 파동은 쳐다보지도 않고 멍하니 하늘만 올려다보았다.
『현계지문』 완결
그동안 <현계지문(玄界之门)>을 구독해주신 애독자 여러분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늘 건강하시고 애독자 여러분의 가정에 항상 행복이
가득하시길 기원합니다.
작가 忘语 배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