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화산의협-6화 (6/262)

<-- 6 회: 제갈세가 -->

열흘쯤 되던 날, 드디어 운대관에서도 무공다운 무공을 배우기 시작했다.

“이형권은 보법이 생명이다. 이형권은 어디까지나 공격이 아닌 보법에 중심을 둔다. 반보(半步)로 피하고 반보로 공격에 들어간다. 이는 육합권법(六合拳法)과 육합검법(六合神劍法), 그리고 이십사수 매화검법(二十四手 梅花劍法)에서도 모두 마찬가지로 적용된다.”

“교관님, 질문 있습니다.”

보무제자 중 한 명이 질문하자 장개는 처음으로 미소라 부를 수 있는 표정을 지었다.

“좋은 자세이다. 말해라.”

“그렇다면 모든 무공은 그 근원이 하나인 겁니까?”

“기본적으로 검법에는 정초 아홉이 있다. 상단 베기, 하단 베기, 찌르기 등등 어떠한 검법도 이 정초 아홉의 틀을 비껴나갈 뿐 크게 벗어나진 않는다. 천하를 발아래 둘 절세 검법도, 그리고 저잣거리 아무렇게나 싸돌아다니는 삼재검법(三才劍法)도 마찬가지다. 곧 죽어도 기초 기본만이 살길이다! 기초! 기본! 기초! 기본!”

기초 기본을 죽어라 외치는 장개. 그러니까 한마디로 농땡이 치지 말고 이형권이나 제대로 익히라는 소리였다.

조금은 과격한 장개의 가르침을 듣고 깨달음을 얻은 몇몇 보무제자들은 그날부터 이형권에 죽기 살기로 열심히 매달렸다.

하지만 사혁은 남들과 달리 하는 둥 마는 둥 대충대충 훈련에 임했다. 이미 화산의 모든 검법과 권법에 대해서는 빠삭하게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니 훈련에 재미를 느끼지 못하는 수밖에.

대신 태을신단을 손에 넣은 그날부터 새로운 고민거리가 생겼다. 바로 흡정마공에 대한 것이었다. 정도 무공이 아닌 흡정마공에 대한 호기심.

“젠장! 그날 바로 파기했어야 했는데.”

흡정마공의 비급을 얻은 순간 호기심에 읽어버린 게 크나큰 실수였다.

“비급은 파기했지만 머릿속에 한 글자도 빼놓지 않고 그대로 기억됐으니 그게 문제란 말이야.”

흡정마공. 타인의 내공을 흡수해 자신의 것으로 삼는 것은 분명 매력적이다. 하지만 이 무공을 익히다 보면 결국 마성에 이성이 제압당해 미치광이가 되고 말 것이었다.

“이런 식의 줄거리면 결국 종극엔 검마니 광마니 적당한 별호를 부여받고 정사 공적이 돼서 섬멸당하겠지? 뻔하다, 뻔해.”

하지만 이놈의 호기심은 계속해서 스스로를 부추겼다.

“하아…….”

결국 계속되는 호기심을 참지 못하고 사혁은 밤에 혼자 흡정마공을 파헤치기로 했다.

“전곡혈(前谷穴)로 빨아들여 운문혈(雲門穴)과 옥침혈(玉枕穴)을 거쳐 현추혈(玄樞穴)에 머물게 한다?”

하지만 타인의 내공 안에 있는 탁기와 여러 내공심법의 특성으로 인한 부작용은 반드시 있기 마련.

“이 조잡한 덩어리들을 전부 한곳에 모이게 하다니 이 무공을 만든 놈은 제정신인가?”

흡수한 내공이 몸 안을 도는 구조는 완벽했다. 내공이 척추에 스며들면 빠르게 흡수되고 척추를 통해 몸 안 여기저기로 기가 퍼져 온몸에 힘이 차오를 것이다. 하지만 머리로 간 탁기는 호흡 기관을 통해 반드시 배출해야 하고 그건 각혈(咯血)을 의미했다.

사혁에게 입 밖으로 토해져야 하는 건 사람의 말과 술과 안주로 빚어진 토사물, 그리고 꿈과 희망이 가득한 육두문자뿐이어야 했다.

각혈은 엄청난 통증을 유발하며 그로 인해 정신적 피로가 쌓여 몸과 마음에 부담을 주기 때문에 각혈을 주기적으로 하여 마성이 스며들지 않는다 하더라도 무공을 익히는 동안 성정이 사악해질 것이 분명했다.

“하아, 개파조사라도 되지 않는 한 무공을 재구성하는 건 말이 안 되지.”

한숨을 깊게 내쉰 사혁은 머릿속에 있는 흡정마공을 풀이해 낸 한지를 불에 태웠다. 결국 흡정마공은 마공 자체로는 완성도가 높으나 안전성을 생각했을 때는 굉장히 위험한 무공이라 할 수 있었다.

마성에 빠지지 않기 위해 뒤통수에서 모이는 탁기를 다른 곳으로 옮기는 방법도 존재하긴 했다. 예를 들어 소변으로 배출해 내는 방법 말이다. 하지만 이 방법은 본질적으로 도검불침(刀劍不侵)의 경지에 오르지 않는 이상…

“내 아들내미가 터져버릴 거야.”

고자가 될 가능성이 높았다.

도검불침이란 건 기본적으로 외공을 엄청나게 수련해야 도달할 수 있는 외공의 대단히 높은 경지이다. 외공 수련을 내공 수련만큼 열심히 한다거나 그게 아니면 환골탈태를 이룬 후에나 가능한 꿈의 경지.

“탈피는 했지만 환골탈태라 말하긴 조금 뭐하고, 외공은 어느 세월에……. 맞아, 난 태을신단을 먹었잖아!”

생각해 보면 위대극은 어쩌면 지금의 제갈 사혁처럼 흡정마공의 부작용을 없애려고 태을신단을 훔쳤던 걸지도 모른다. 태을신단을 복용하면 환골탈태를 경험하지 않아도 도검불침이 가능할지 몰랐다.

“왜 그걸 잊고 있었지? 그럼 한 번 해볼까?”

하지만 잘못하면 평생 고자가 될 수도 있었다.

“일단 덮어두자. 태을신단이 외공에 엄청난 효과를 보이지만 아직 성장기도 지나지 않았는데 섣불리 외공을 연마했다간…….”

결국 걸리는 건 육신의 나이였고 태을신단의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서라도 이제부터 잘 먹고 잘 자는 수밖에 없었다.

“시간은 모든 걸 해결해 주는 법이니 급한 마음 갖지 말자.”

* * *

그로부터 십여 년이 흘렀다.

“무진(無榛)!”

무진이라 불린 사내의 가슴 부근에 새겨진 매화 나뭇가지는 그가 화산파의 평검수(平劍手)임을 말해 주는 유일한 증거였다. 그리고 그것을 가슴에 품은 사내는 바로 제갈 사혁이었다.

“무슨 일이십니까, 대사형?”

“여전히 찬바람만 날리는군.”

“쑥스러움을 타는 것뿐입니다.”

“세상은 그것을 성격 파탄자라 부른다네, 사제.”

성격 파탄자라는 말에 사혁은 순간 다리에 힘이 풀렸다.

“…오신 용건이나 말씀하십시오.”

다소 날카로운 인상을 주는 미남으로 자란 사혁은 자신을 향해 달려온 대사형 무원(無元)을 향해 무심한 듯 대답했다.

대사형인 무원은 스승인 도호 진인의 사형이 되는 도청 진인(道靑 眞人)의 제자로 같은 무(無)자 항렬에서 가장 높은 연배의 사형이었다. 때문에 악의는 없지만 늘 제갈 사혁을 난처하게 만드는 사람이기도 했다.

“도산 사숙께서 오셨어.”

“…….”

도산 진인은 과거 제갈 사혁의 스승이다. 사혁이 입문한 후 어째서인지 과거와 달리 줄곧 화산에 귀환하지 않고 약 10년을 타지 생활하다가 이제야 화산으로 돌아온 것이다. 이 점은 과거 그의 제자였던 사혁에게 굉장한 의문으로 남았다.

‘어째서 그간 돌아오지 않으신 분이 이제야 오신거지?’

그는 과거 예정대로 도산 진인의 제자가 되지 못했다. 이것이 현재 자신이 알고 있는 미래에 영향을 끼친다면 크나큰 문제였다. 자신이 알고 있는 과거와 미래가 달라진다면 그것은 죽어버린 정보이고 쓰지 못하는 힘이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사숙께서 오셨으니 사질 된 자로서 인사드려야겠죠.”

도산 진인을 보기 위해 발걸음을 옮긴 사혁은 장원에 나와있는 도호 진인과 도산 진인을 보고 재빨리 포권을 취했다.

“평검수 무진, 스승님을 뵙습니다.”

사혁이 도호 진인에게 인사를 하자 도호 진인은 그를 반갑게 맞아주며 도산 진인에게 소개시켜 주었다.

“허허, 어서 오거라. 이쪽은 내 사제이자 네 사숙 되는 도산이다.”

10년이나 늦게 오긴 했지만 여기저기 어지럽게 난 검은 수염과 호탕해 보이는 눈매는 과거 그 모습 그대로였다.

그래서 도산 진인을 봤을 때 제갈 사혁은 왠지 모르게 가슴이 뭉클해졌다. 과거 지병으로 일찍 눈을 감은 자신의 스승님을 정말 다시 만나서…

“사형, 제가 잘못 들은 겁니까? 평검수? 평검수면 쓰레기 아닙니까? 밥값도 못하는 쓰레기 중에 개 쓰레기. 매화검수들 대신 칼침 맞아주는 칼받이들!”

…그 얼굴에 일권복호를 날려버리고 싶었다.

반면 자신의 사제로부터 제자가 쓰레기라는 말을 들은 도호 진인은 어째서인지 웃기만 할 뿐이었다.

“허허, 사제는 여전하구만.”

“평생 제자라고는 안 받을 것 같던 사형이 제자를 받았다기에 어떤 대단한 놈인가 했더니 고작 평검수밖에 되지 못한 쓰레기였습니까?”

말이야 바른 말이지, 화산파 장로의 제자가 돼서 매화검수가 되지 못했다는 사실은 어떤 의미에서는 굉장히 부끄러운 일이었다.

“남들보다 조금 늦을 뿐이네.”

“사형, 제가 세상에서 가장 믿지 않는 말 중 하나가 잠룡(潛龍)이네 뭐네, 지껄이는 겁니다. 잠룡 따윈 이 세상에 없습니다. 도태된 낙오자들이 있을 뿐이죠.”

역시 시간이 지나도 도산 진인의 그 개차반 같은 성격은 변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의 제자가 아닌 제3자의 입장이 돼서 그런 말을 들으니 사혁으로서는 여간해서 참을 수 없었다.

“한번 시험해 보시겠습니까?”

“오호라? 이 사숙에게 다독임(?)으로 격려를 받고 싶은 게냐? 딱밤 정도로 끝나진 않을 것이다.”

딱밤이라는 말에 사혁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솔직히 도산 진인의 실력은 누구보다 지난 생애 그의 제자였던 자신이 가장 잘 알고 있었다. 하물며 그의 버릇까지도.

‘첫째는 느닷없는 일권복호.’

역시나 예상대로 비무의 예도 갖추지 않은 채 날아오는 일권복호. 이미 예상을 했던 터라 피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눈은 제대로 달렸구나!”

“눈만 제대로 달렸을까요?”

그 말이 끝나자마자 도산 진인은 강맹한 기운을 끌어모아 지면을 내려쳤다. 복호천각(伏虎踐脚)이었다. 복호천각을 피하자 이번에는 사정없는 태을미리장(太乙迷離掌)의 향연이 펼쳐졌다.

테을미리장까지 선보였다면 이미 이것은 사질 간의 단순한 비무라고 부르기 힘들었다.

“복호백열격(伏虎百閱拳)!”

그 순간 화산 최고의 권법가인 도산 진인의 독문절기이자, 과거 수많은 사파 거두들의 육신을 짓이기며 화산과 무림을 통틀어 최고라 불렸던 제갈 사혁의 비전이 펼쳐졌다.

호랑이를 제압하는 용맹한 주먹이 태을미리장과 충돌하는 순간 엄청난 내공의 충돌에 의해 도산 진인이 튕겨져 나갔다.

도산 진인은 두 발을 빠르게 움직여 쓰러지지 않기 위해 모든 정신을 집중했지만 결국 도호 진인이 뒤에서 그를 받혀주어야 했다.

“이놈!”

도산 진인의 포효가 대기를 흔들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이가 본다면 싸움에 져버린 개가 짖는 꼴이라며 비웃겠지만 사혁은 도산 진인이 이렇게까지 화를 내는 이유를 잘 알고 있었다.

“어찌하여 네놈이…….”

“어떠하십니까? 저의 독문절기 복호백열격입니다.”

“복호백열격이라니? 이 초식의 이름은 복호백열권(伏虎百閱拳)이다, 권! 그리고 뭐? 네놈의 독문절기? 이놈이 어디서 남의 무공을!”

말이 끝남과 함께 날아오는 도산 진인의 복호백열권. 모든 면에서 사혁의 복호백열격과 똑같았으나 그가 몇 년 전 복호백열격에 어떤 무공을 조합해 낸 후로는 본류인 복호백열권을 뛰어넘은 지 오래였다.

이 무공에 대한 이해가 남다른 사혁이었기 때문에 다른 무공과의 합은 어렵지 않았다. 그리고 그 다른 무공은 바로 흡정마공이었다.

흡정마공의 경우 최근 3년 간 사혁은 속성으로 흡정을 할 때 생기는 부작용들을 발견해 이를 바탕으로 새로운 것을 이뤄냈다.

흡정마공은 상대를 붙잡은 상태에서 짧은 시간 안에 내공을 빨아들여야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상대의 탁기까지 빨아들인다. 그래서 부작용이 생길 수밖에 없는데 사혁은 이를 복호백열격에 흡정마공을 접목시켜 해결했다.

백타라고는 하지만 실제로는 스물다섯 타를 때리는 복호백열격은 주먹으로 상대를 때릴 때마다 상대의 내공을 조금씩 흡수했다. 내공을 조금씩 흡수하기 때문에 정순한 내공만이 몸에 들어오고 초식이 끝났을 때는 상대의 내공을 상당량 빼앗을 수 있었다.

“이놈! 무슨 짓을 한 것인지는 내 모르나 복호백열권은 나만의 독문절기이다. 어디서 내 무공을 훔쳐 배운 것이냐!”

“소질, 자신하건데 이 무공은 복호백열격이라 하여 소질이 만들어낸 무공입니다.”

“거짓말하지 말거라, 이름도 비슷하지 않느냐! 어디 한 글자 다르다고 끝까지 다른 무공이라 할 것이냐?”

“소실이 사숙께 질문하건데 사숙께서는 화산에 돌아오지 않으신 최근 10년 간 잠깐이라도 화산에 귀환하신 적이 있으십니까? 이 소질 또한 10년 간 화산을 떠난 적이 없사옵니다. 또한 사숙께서는 사숙의 무공을 최근 10년간 누구에게 보여주신 적 있으십니까?”

반박할 수 없었다. 분명 지난 10년간 화산에 돌아온 적도, 10년 간 독문절기를 펼칠 정도로 치열한 혈투와 비무를 벌인 적도 없었다. 하지만 어떻게 주먹이 날아오는 궤도며 주먹을 쥐는 방법이 자신의 무공과 이리도 똑같단 말인가?

‘아니, 조금 다르다. 분명 내 내공을…….’

============================ 작품 후기 ============================

2013년 3월 20일 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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