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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산의협-7화 (7/262)

<-- 7 회: 제갈세가 -->

도산 진인은 자신의 내공이 증발한 것이 이 젊은 사질이 펼쳐낸 무공 때문임을 깨달았다. 주먹이 날아오는 궤도며 타격점에 닿았을 때 기를 분배하는 것까지 모든 게 똑같았으나 결과적으로 이 마지막 내공 증발 현상은 자신의 무공과 확실히 차이가 있었다.

“사형이 제자 하나는 잘 두었구나. 인정하마.”

뒤로 한 발짝 먼저 물러나는 도산 진인을 보며 사혁은 눈썹을 꿈틀거렸다.

‘이건 또 무슨?’

자신이 알고 있는 도산 진인은 이런 사람이 아니었다. 그 불같은 성격을 가진 양반이 이렇게 자신의 잘못을 인정을 하고 순순히 넘어가다니. 지금의 모습은 과거 자신이 알고 있던 스승으로서의 도산 진인의 모습과 너무 많이 달랐다.

“사제도 이쯤 해두게나. 무진이 녀석은 호승심이 강해서 좀처럼 자기 고집을 꺾지 않는 아이라네. 오죽하면 녀석에게 검술을 가르칠 때도 서로 견해가 달라 종종 말싸움이 일어나겠는가.”

“아닙니다, 사형. 이 철없는 사제가 어린 사질에게 저지른 장난이 조금 지나쳤습니다.”

도호 진인 역시 지금의 도산 진인을 의외란 듯 쳐다봤다. 한 고집하기로는 자신의 사제도 마찬가지인데 그 사제가 자신의 잘못이라며 스스로 반성을 하다니 오래 살고 볼 일이었다.

“으음……. 바람이 차구먼. 어서 안으로 들어가세. 무진이 너는 대관에 들러보거라.”

“네, 스승님.”

사혁은 스승인 도호 진인에게 고개를 숙인 뒤 대관으로 향했다. 그러자 그곳에는 여러 매화검수들과 8~9살 정도로 보이는 남자아이가 설탕 과자를 빨며 앉아있었다.

“무진 사형을 뵙습니다.”

사혁을 알아본 매화검수가 그에게 포권을 취하자 사혁은 넌지시 남자아이를 가리켰다.

“누구냐, 저 아이는?”

사형인 사혁의 물음에 매화검수는 남자아이를 한 번 보더니 말하기를 머뭇거렸다.

“그것이…….”

“이 사형에게 말하기 곤란한 것이냐?”

“아닙니다, 사형! 그것이 아니오라…….”

현재 화산파의 젊은 매화검수 대부분은 아직까지 평검수에 불과한 제갈 사혁에게 깍듯이 예의를 표하며 극진한 사형 대우를 해주었다. 그 이유는 그들 모두가 사혁의 배려 덕에 매화검수가 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동안 사혁은 항시 사제들의 무공을 교정해 주며 사형으로서 사제들의 교육도 열심히 하되 또,

“오늘 이 사형에게 매화검법의 묘리를 한 수 가르침 받고 싶다면 계속 그렇게 입을 다물고 있어라.”

“아이의 이름은 총형설이라고 합니다. 도산 사숙님의 자제분이십니다.”

때로는 그것을 핑계로 기합을 주기도 했다.

“자제? 제자를 잘못 말한 거겠지.”

“아니요, 맞습니다. 저 아이가 사숙의 아들이랍니다.”

도산 진인의 아들이라는 말을 듣는 순간 사혁은 현기증을 느끼며 쓰러졌다.

“사형!”

주위에 모인 모든 매화검수들이 당황해하며 사혁을 부축하자 그는 힘겹게 자리에서 일어났다.

‘호북에서 스승님을 만나 제자가 되지 못했다고는 하지만 과거에도 존재하지 않았던 스승님의 아들이라니?’

사소한 변화는 엄청난 결과를 초래해 버렸다. 스승님이었던 도산 진인의 아들이라니?

마음을 가다듬은 제갈 사혁은 총형설에게 다가갔다.

“네가 형설이니?”

“네, 제가 형설이에요. 그런데 형은 누구예요?”

도산 진인을 닮았는지는 잘 모르지만 아이의 인상은 사혁의 마음에 쏙 들었다.

“내 이름은 제갈 사혁이고 이곳에서는 무진이라 불린단다. 아직 입적(入籍)하지 않았으니 혁이 형이라 부르면 된다.”

사혁은 도산 진인과 떨어져 홀로 남겨진 형설을 데리고 화산파 여기저기를 구경시켜 주었다.

“이곳은 옥녀지(玉女池)라 불리는 성역이란다. 화산검파(華山劍派)의 성역이며 모든 화산의 매화검수들은 이곳 옥녀지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정착하여 생활하지.”

“저 알아요. 화산파가 외부의 공격을 받았을 때 옥녀지에 보관 중인 문파의 귀중한 재산과 무공 서적을 적들에게 빼앗기지 않기 위해서지요?”

역시라면 역시고 의외라면 의외라 할 수 있었다. 형설에게 화산의 주요 기관의 이름이 무엇인지만 가르쳐주면 그는 그곳에서 하는 일은 무엇이며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지까지 자세히 알고 있었다.

“아버지께서 항상 화산파에 대해 이것저것을 말씀해 주셨어요.”

“그러느냐.”

형설을 데리고 화산의 여기저기를 누비던 사혁은 형설에게 화산의 제자들이 수련하는 것을 보여주었다.

수행을 하고 있는 화산의 제자들 모습에 자극을 받은 형설이 걸음마를 막 하기 시작한 아기가 어른의 걸음걸이를 따라하려는 것처럼 몇 번 따라해 보았다. 하지만 아직 어린아이가 따라서 하기에는 굉장히 힘든 동작이라 이따금씩 넘어지기도 했다.

“하하하! 네게는 아직 무리란다.”

평검수들의 훈련에서는 내공을 사용했는데 이를 본 형설의 눈이 밤하늘의 별보다 더 반짝거렸다. 그런 형설을 보며 사혁은 형설의 아비인 도산 진인이 형설에게 전혀 무공에 대해 가르쳐주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무진 사형.”

그 때 평검수들 중 가장 나이가 많은 이가 사혁을 알아보고 예를 차렸다.

“실력이 늘었구나, 방덕(方德).”

“이 모든 게 사형의 가르침 덕입니다.”

방덕은 보무제자 중에서도 가장 뛰어나 곧 무 자 항렬로 승급하게 될지도 모르는 청년이었다.

“그나저나 사형께서는 이번에도 매화검수 시험의 결승전에서 일부러 패배하실 겁니까?”

“왜 그러느냐? 그렇다면 이번엔 네가 우승이라도 해보려는 것이냐?”

사혁 덕에 매화검수가 된 사제들이야 좋지만 사형인 그가 계속해서 평검수에 머무는 것은 밖에서 보기에는 썩 보기 좋은 모습이라 할 수 없었다.

“장문인께서 사형이 매화검수가 되지 않으면 파문하시겠다며 엄포를 놓으셨습니다.”

제갈 사혁은 단순히 화산파 장로의 제자가 아닌 무 자 항렬에서 두 번째로 높은 사형으로 대사형인 무원을 제외하면 가장 높은 위치에 있는 셈이었다.

“매화검수라. 슬슬 나도 올라가야겠지.”

실력을 갖추고도 오르지 않는다면 그것은 만용이며 무능력한 것이라는 사실을 사혁도 잘 알고 있었다.

“사제들을 진정 아끼신다면 사형부터 모범을 보이십시오.”

“잔소리 해주는 사제들이 많으니 어서 빨리 감투를 머리에 둘러야겠구나.”

“그런데 그 아이는 누굽니까?”

형설에게 시선을 돌린 방덕은 무릎을 꿇고 형설과 눈높이를 맞췄다.

“굉장히 똘똘한 아이 같아 보이네요.”

“어서 빨리 올라오거라. 그렇지 않으면 이 아이에게 사형이라 불러야 할지도 모르니까.”

“네?”

그 말을 끝으로 방덕을 남겨준 채 사혁은 형설과 함께 평검수들의 수련지를 빠져나왔다.

사혁이 형설을 돌보는 사이 상궁 문주전에서는 담종 진인과 도산 진인, 그리고 도호 진인이 차를 마시며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허허, 손주가 늘어서 좋구나.”

담종 진인이 주름이 가득한 눈웃음을 짓자 도산 진인이 쑥스러운지 연신 머리를 긁적거렸다.

“장문 사숙. 소질(小姪), 실은 청이 있사옵니다.”

부탁이 있다는 말에 담종 진인은 찻잔을 들며 고개를 끄덕였다.

“실은 이 소질의 아들 녀석에 관한 것입니다.”

“무엇이냐?”

“정확히는 그 아이의 어미에 관한 것입니다.”

아이의 어미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자 담종은 하얗게 센 눈썹을 꿈틀거리며 도산 진인을 노려봤다.

“평범한 처자의 아들이 아니로구나.”

“…….”

“무림인이냐?”

“그렇사옵니다.”

무림인이라는데 저런 반응을 보이는 걸로 봐선…….

“정도…인이 아니구나.”

침묵은 긍정의 뜻임을 알기에 담종 진인은 두 눈을 감았다.

반 시진에 가까운 침묵이 있은 후 담종은 서서히 입을 열었다.

“늙으면 겁이 많아져서 무엇을 결정하는 데 굉장히 오랜 시간이 걸리는구나.”

옛날부터 사고만 치던 사질이 하는 부탁이라면 분명 가벼운 일은 아니었다.

“이름이 무엇이냐?”

그 후 형설은 무학(武學)이라는 도호를 얻고 무진의 열여덟 번째 사제가 되었다. 그리고 화산파에 귀환한 도산 진인은 무학을 가르치며 그간의 방랑 생활을 끝내고 화산의 장로로서 그 의무를 다했다.

이 모든 게 제갈 사혁이 매화검수에 이름을 올리고 난 후 3일 만에 일어난 일이었다.

============================ 작품 후기 ============================

2013년 3월 20일 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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