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 회: 무림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방식. -->
무림맹(武林盟). 정파라 불리는 세력이 사파라 불리는 세력에 대항하기 위해 결성한 연맹체로 모든 정파는 무림맹에 가입한다. 정파 무림 연맹과 마찬가지로 흑사련(黑邪聯) 또한 존재한다.
무림맹은 이 사마맹과 오랫동안 대립하며 존속해 왔다. 이 외에도 이들과 길을 달리하거나 중도를 자처하는 세력도 존재했다.
“하남성(河南省)에 색마 화운 룡(花隕 龍)이 나타났다는데 사실이오?”
무림맹의 맹주인 강서(江西)가 보고서를 펼치며 사건에 대해 논하자 대주들은 하나씩 각자 조사한 자료를 펼쳤다.
“흑랑 대주의 보고서는 하남성의 것보다 늦으나 이 보고서에 적힌 색마 화운 룡의 위치는 정확히 안휘성입니다. 그리고 이보다 더 이전 날짜의 보고서에서는 그가 발견된 장소가 절강이라 하온데 이동 경로를 보아 화운 룡임이 확실합니다.”
어디까지나 추측이라지만 이동 경로를 봤을 때 하남성에 나타난 색마는 무림맹에서 추적하는 그 화운 룡이 확실했다.
“추측인 겁니까?”
“사실에 가까운 추측이옵니다.”
개방 출신인 무림맹주로서는 추측보다는 정확한 정보를 필요로 했다.
“오대주가 전부 쫓고 있지만 색마 놈의 머리카락 한 올 찾아내지 못하고 있는 게 지금의 현실입니다. 왜 그렇다고 생각하십니까?”
그 많은 인원을 가지고 색마 한 명 체포하지 못하고 있는 현실에 모두들 많이 지쳐있었다.
“흑랑, 백호, 봉황, 황룡, 백사, 오대주들이 지휘하는 무인들 수가 몇입니까?”
오대주를 맡고 있는 소림의 무허 대사(無虛 大師)는 그제야 무언가를 알아챘다.
“수가 너무 많은 것이 문제군요.”
“한 명의 오대주가 지휘하는 무인들 수는 서른이 넘습니다. 많으면 많을수록 움직일 때 잡음이 많은 법이지요.”
“인정합니다.”
“이번 일은 각자 자율적으로 맡겨보고 싶은데 혹 지원하시는 곳 계십니까?”
개방 출신인 강서는 조율을 잘하는 사람이었다. 그는 색마의 색출을 중요시하는 한편, 각 문파와 세가의 자율적인 참여를 높여 조직애(組織愛)를 불러일으키고 그것으로 연맹을 탄탄하게 만들려는 계산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아참! 젊은이들로 이뤄지면 좋겠군요. 이런 일에 엉덩이 무거운 우리가 들고 일어날 필요는 없지 않습니까?”
젊은 후기지수들에게 명성을 드높일 기회를 주는 것도 잊지 않았다.
무림맹의 색마 수배령과 함께 정파의 모든 문파에 색마 추적대를 뽑는다는 전령이 전해졌고 각 문파에서는 색마 추적대가 개별적으로 조직됐다. 그리고 이는 화산파 역시 마찬가지였다.
“천하에 이런 호로 잡놈의 새끼!”
성질이 불같은 도산 진인은 무림맹에서 온 공서를 찢었다.
“허허……. 산이 이놈아, 어찌 그리 경솔한 것이냐? 아직 그 공문을 보지 못한 다른 사형제들이 있거늘.”
“장문 사숙! 더 볼 것도 없습니다. 당장 마당에서 탱자탱자 놀고 있는 매화검수 놈팽이들 이끌고 화운 룡이 개잡놈 가랑이를 찢어야 합니다!”
현 무림은 종교적인 그리고 무공에 대한 생각 등의 차이로 대립하며 검에 피가 마를 날이 없지만 색마와 같은 공공의 적에 대해서는 어느 세력에서나 굉장히 엄격했다.
“다른 아이들의 뜻은 어떠냐? 추적대를 파견하는 데 찬성하는 것이냐?”
“저는 찬성합니다. 도산 사제 말대로 이번에 평검수 아이들을 보내는 게 어떻겠습니까?”
화산파 내에서 가장 행동파인 도상 진인은 구체적인 추격대 선발까지 하고 있었다.
“평검수보다는 매화검수들을 보내는 게 어떻겠습니까?”
추격대는 찬성하지만 도호 진인의 생각은 달랐다.
“매화검수들 말이냐?”
“장문 사숙, 화운 룡은 무공 수위가 그렇게 높지 않습니다. 평검수로도 충분하겠지만 이번 기회에 대외적으로 알릴 필요가 있습니다.”
“알릴 기회라니?”
“무원, 그 아이를 보내서 색마를 잡게 만들어 무림맹과 천하에 보여주는 것이지요. 화산을 이끌어갈 대제자를.”
하지만 이 계획은 오히려 무원의 스승인 도청 진인이 반대를 했다.
“무원이는 분명 지난 무룡지회 때 강호에 출두한 이후 확실히 이름을 남겼습니다. 이번에는 무진이 가는 게 어떻겠습니까?”
“제갈 아이 말이냐?”
도청은 손가락 두 개를 펼쳐 보이며 말했다.
“고 녀석이 그간 무슨 심보로 매화검수가 되는 걸 질질 끌었는지 모르지만 무 자 항렬 내에서는 그 녀석이 둘째입니다. 그리고 슬슬 그 아이도 강호행을 떠날 때가 되지 않았습니까. 행실도 바른 아이이니 밖으로 내보내서 화산을 알리는 것도 나쁘지 않지요.”
사혁의 이름이 거론되자 스승인 도호 진인은 의외로 침착했다.
“도청 사형의 의견에 찬성합니다.”
색마의 체포도 체포지만 진정한 목적은 한마디로 화산파 나름의 자식 자랑인 것이다.
“제갈 아이라면 걱정 없겠구나.”
“그럼 그리 명하겠습니다.”
제갈 사혁을 추천한 도청 진인이 장문인의 명을 받아 그의 스승인 도호 진인을 대신해 하산을 명했다.
* * *
“화운 룡이란 말이지?”
명을 받은 제갈 사혁은 화려하게 매화가 새겨진 도복을 벗고 새하얀 백룡이 새겨진 도포를 입었다.
“그렇게 입으니까 못 알아보겠는데, 사제.”
하산하는 길목에는 대사형 무원이 사혁을 마중 나와있었다.
“속세의 옷을 입은 건 굉장히 오랜만이라 어색하지만 굳이 나쁜 놈 잡으러 가는데 매화검수임을 나타내는 도복을 입고 나다닐 필요는 없잖습니까. 화 운룡(제갈 사혁이 상대를 깔보며 이름 가지고 장난 친 겁니다.) 이 개자식한테 너 잡으러 간다고 떠드는 것도 아니고.”
“화 운룡이 아니라 화운 룡이라네.”
“농담 좀 한 겁니다.”
“아니, 예전부터 사제는 어떠한 단어나 말 같은 걸 이상하게 해석하는 버릇이 있었어. 이것도 분명 농담 아니야.”
“...........”
어느새 마을까지 내려온 두 사람은 사람들과 상인들로 북적이는 저잣거리까지 나왔다.
“조심해라. 무진, 아니, 사혁아.”
사형의 다정한 배웅을 받고 돌아서려는 그 때 무엇인가가 눈에 들어온 사혁은 입가에 작은 미소를 지으며 사형을 불렀다.
“사형.”
“왜 그러느냐?”
“먼 길 떠나는 사제에게 선물 하나 해주지 않으시렵니까?”
선물이라는 말에 무원은 고민하지 않고 돈주머니를 꺼냈다. 그러고는 약간의 고민 끝에 곰방대 하나를 골랐다. 호랑이 무늬가 새겨진 곰방대였다.
“약초를 피우려면 지금 가지고 있는 곰방대로는 안 될 거다. 지금 가지고 있는 건 많이 낡았으니까.”
이 곰방대가 그때 자신이 죽는 순간까지 애용했던 그 곰방대인지 알 수는 없었다. 그러나 사형이 선물해 주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이제야 다시 태어나 새로운 삶을 살아간다는 사실이 실감나기 시작했다.
“감사합니다, 사형.”
“약초 이외에 양귀비 같은 것은 피워선 안 된다. 명색이 신선이 될 도사가.”
이 시시한 농담도 한 글자 틀림없는 그때 그대로였다.
사형과 헤어진 후 홀로 길을 떠나게 된 제갈 사혁은 곰방대를 입에 문 채 지도를 펼쳤다. 이 지도는 무림맹에서 배포한 것으로 화운 룡의 최근까지의 행적이 그러져있었다.
“그러고 보니 운룡이 이 개자식은 옛날에 곤륜 쪽에서 잡았던 놈인데 말이야. 자아, 어디 보자. 하남에서 잡혔던가?”
사실 화운 룡을 잡는 일에 직접 나설 필요가 없었다. 그는 얼마 후 하남성에서 곤륜파 제자들에게 잡히기 때문이다.
초장부터 잡는 걸 포기한 사혁은 방향을 틀어 호북에 있는 제갈세가로 향했다.
제갈세가로 향하는 내내 사혁은 곰방대를 한시도 입에서 떼지 않았다. 이 곰방대는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도화선과도 같았기 때문이다.
“후후후…….”
미친놈으로 오해받아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제갈세가로 향하는 내내 웃음이 터져 나왔다.
경공을 펼쳐 하루 만에 본가에 당도한 제갈 사혁은 마당을 쓸고 있는 풍쇠의 어깨에 손을 올리며 격려했다.
“수고가 많다. 풍쇠야, 나 왔어.”
“도련님, 오셨어요.”
지난생애와 달리 이번생애는 행방불명도 아니었고 때가 되면 자주 찾아오기도 했기 때문에 세가 내에서 제갈 사혁을 금의환양(錦衣還鄕)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집안으로 들어가자 사혁은 풍쇠에게 했던 것처럼 시종들에게 하나하나 인사를 하며 자신의 귀환을 알렸다.
“백모, 저 왔습니다.”
“밥은?”
“저도 좀 주세요.”
상을 가지고 들어가는 시종들과 백모를 따라 안으로 들어가자 백부인 제갈 민은 서찰을 읽고 있었다.
“백부, 저 왔습니다.”
“그래.”
가문의 후계이지만 어디 가서 사파의 무공을 배운 것도 아니고 같은 정파 내에서도 명성이 자자한 화산파의 제자가 되었기에 제갈 민은 사혁의 행보에 늘 만족했다.
“몇 년이 흘렀는데도 종친회에서는 말이 많더구나.”
“저도 매년 종친회 가기 싫습니다. 종친회만 참석하면 어른들이 한마디씩 하시는데…….”
“하하하! 화산파로 도망쳤으면 그 정도는 참아라, 이 녀석아.”
길은 달랐지만 결국 화산 역시 제갈세가와 같은 정파의 기둥. 하지만 종친들의 생각은 달랐다.
“몸에 균형이 잘 잡혔구나.”
“뭐가요?”
제갈 민이 본 사혁은, 정말이지 무인의 본보기 그 자체였다. 모든 움직임에 힘보다 부드러움이 스며들어 있었고 기골은 말할 것 없이 사내대장부 그 자체였다. 화산파의 가르침이 틀리지 않은 것이다.
“도사가 산을 내려오는 일이 흔하진 않은데 무슨 일로 내려왔느냐? 집안에 일이 있는 것도 아니고 네 생일도 아니다만.”
“도사는 무슨… 그냥 사문에서 제게 일을 맡겼습니다.”
“무슨 일이냐? 내 도울 수 있다면 도와주마.”
“별건 아니고 이번에 색마, 그놈을 잡으러 내려왔습니다.”
“색마라니, 정사 어디에도 그러한 놈은 용서가 안 되는 법! 언제 떠날 생각이냐?”
언제 떠날 생각이냐니? 한동안 집에 눌어붙어 있을 생각이었던 사혁으로서는 황당했다. 집에 오자마자 그놈의 색마 화운 룡 때문에 쫓겨나게 되다니.
“내일쯤…….”
제갈 사혁은 백부의 불타오르는 협객심을 느끼며 차마 팔자 좋게 조금만 쉬고 갈게요, 라는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어허, 대장부가 할 일이 있으면 미루지 않고 바로 바로 해야 하는 법. 하물며 그 일이 중원 무림의 평화를 지키는 것이라면 더더욱!”
백부는 뼛속부터 정도를 추구하는 정의로운 사람이기에 사혁은 대화로써 어찌해볼 상대가 아님을 깨닫고 억지로 미소를 지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소질, 다음에 본가를 찾을 땐 그놈의 모가지를 가지고 오겠습니다.”
“오냐! 그래야 세가의 사내이고 세가를 이어갈 소가주라 할 수 있느니라.”
“네? 소가주라니요?”
소가주라니 이건 또 무슨 소리인가?
“왜 그러느냐? 이놈아, 당연히 옛날부터 지금까지 네 녀석이 소가주이다.”
하지만 사혁이 아는 한 지금 이맘때 제갈세가의 소가주는 당연히 늦둥이로 태어난 제갈 현종이었다.
“현종은 뭐하는데요?”
“아직 어리지 않느냐.”
“하지만 백부님의 아들인 현종이 가주직을 물려받는 것이 당연하지 않습니까.”
“사혁아, 네놈이 죽었느냐?”
“네?”
이건 또 무슨 말인가?
“사지 멀쩡한 소가주를 어찌 바꾼단 말이냐? 그렇다고 네가 화산파의 후계자가 되는 것도 아니지 않느냐. 화산파에는 엄연히 너의 사형인 무원도 있다. 하지만 우리 집안에는 너뿐이니라.”
지난 생애에 사혁은 어디까지나 행방불명이었다. 하지만 이번 생애에는 화산파의 제자로서 가문과 왕래가 있었다. 때문에 소가주직은 사혁이 모르는 사이에도 계속 그의 것이었다.
“무엇하느냐? 어서 길을 떠나지 않고!”
소가주 문제를 해결하고 싶었지만 아직 때가 아닌 것 같아 사혁은 백부인 제갈 민에게 절만 올리고 집을 나섰다.
============================ 작품 후기 ============================
2013년 3월 20일 수정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