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 회: 무림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방식. -->
“그나저나 어떻게 들어간담?”
그 때 지나가던 식당 안이 꽤나 소란스러워졌다.
“너무 배가 고파서 그러니 쉰밥이라도 남은 것이 있으면 좀 나누어 주십시오.”
“이 거지새끼가 여기가 어디라고 기어들어 와!”
중년의 점소이는 거지의 뺨을 후려치며 거지를 쫓아냈다.
어딜 가든 흔히 볼 수 있는 광경이지만 이곳 호남 장사에는 특히 거지가 많았다.
원래 호남은 풍요로운 곳이라서 거지를 찾아보기 힘들었다. 하지만 그 풍요로움 때문에 요 몇 년 사이 타 지역에서 거지들이 넘어와 하나둘 거지가 늘어나기 시작했다.
점소이가 액땜을 하려고 소금을 뿌리자 구걸을 하던 거지는 바닥에 있는 소금을 주워 먹으며 타인에게 무관심한 제갈 사혁의 가슴 한구석을 짠하게 만들었다.
“불쌍한 놈들.”
개방은 아닌데 뭔 놈의 거지가 이렇게 많은지 온 도시가 거지들로 인해 쓰레기통이 되는 것만 같았다.
곰방대에 쑥을 피우며 장사의 저잣거리를 느릿느릿 걷는 사혁의 모습은 무림인이라기보다는 한량에 가까웠다.
“채용 공고도 안하니 이거 뭐, 잠입해 들어갈 건수가 없네.”
용화장처럼 큰 집안에서 사람을 모집하지 않는 일은 드물었다. 그렇다고 해서 무작정 식객으로 있겠소, 라며 쳐들어갈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용화장에 있다가 저세상 갔다는 무당 놈만 없었어도.”
번화한 저잣거리에서도 거지들은 그곳이 자기 집 안방이라도 되는 양, 남의 집 담벼락 아래에서 쥐죽은 듯 구걸을 하거나 땅바닥에 대(大) 자로 뻗어 잠을 자고 있었다.
쑥을 마저 피우기 위해 돌담에 쭈그려 앉아 곰방대를 문 사혁은 눈 둘 곳이 마땅히 없어 남의 집 담벼락 아래에서 팔자 좋게 자고 있는 거지를 쳐다봤다.
그러고 보니 굳이 용화장에 잠입하지 않아도 용화장을 감시할 수는 있었다. 바로 저 거지처럼.
“난 역시 대단해.”
아무리 생각해도 스스로가 대견스러운 제갈 사혁이었다.
몇 시간 후 새하얀 백룡이 그려진 도포는 어디 갔는지 회색인지 검은색인지 어정쩡한 옷을 입고 머리는 산발을 한 채 나타난 제갈 사혁의 모습은 그야말로 거지 그 자체였고 얼굴에는 여기저기 흉터가 있어 가족도 못 알아볼 정도였다.
사혁은 오늘부터 거지로 위장해 용화장을 감시할 생각이었다. 어차피 거지 따위를 신경 쓰는 사람은 없으니 감시하는데 별 어려움은…
“이보게, 젊은이!”
있었다. 그것도 아주 많이.
“요즘 같은 서역 거래 10억 냥 시대에 사지 멀쩡한 젊은이가 탱자탱자 놀고 있다니 이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는가? 쯧쯧쯧, 자네 사회에 크게 공헌하지 않겠는가?”
“무슨 일인데요?”
“고수익을 보장하며 어려운 이들도 돕는 아주 훌륭한 일이지.”
“그러니까, 무슨 일이냐고요.”
“자네가 이 장화를 구입하면 일정량의 적립금이 쌓이고 우리 조직으로부터 직급과 적립금을 받을 수 있다네. 그 적립금 1,000점이 되면 흑각에서 동각이 될 수 있지. 만약 자네가 사람을 데려와 그 사람을 흑각으로 만들면 물건을 구입하지 않아도 동각이 될 수 있다네. 그렇게 되면 자네가 데려온 흑각이 또 다른 사람을 데려와서…….”
‘생산 과정 없이 소비만 존재하면 그게 제대로 된 돈벌이냐!’
하지만 이런 시련에도 불구하고 용화장에 대한 정보는 며칠이 되도 파악하기 힘들었다.
“엿새 동안 여기서 뭐하는 짓인지 모르겠네.”
“뭐야? 이 거지, 아직도 여기 있네!”
‘이런! 서당 일진회 녀석들이 오늘은 조금 더 이른 시간에 끝났구나, 젠장!’
거지생활을 하는데 가장 큰 시련은 바로. 서당 아이들이었다. 서당 아이들, 그들은 사혁에게는 정말 크나큰 시련이었다.
10~12세 정도의 아이들은 매일같이 서당 공부가 끝나면 사혁을 발로 짓밟으며 괴롭히기 일쑤였다.
‘이… 이 새끼들 정체가 뭐야! 뭔데 어린 노무새퀴들 발길질이 이렇게 아파? 젠장! 나중에 커서 무림인이 되거든 꼭 사파나 마교에 붙어라, 이 개념 없는 시키들아!’
“거지가 아주 때리는 맛이 찰지구나!”
“우헤헤헤헤!”
“바로 이 맛이야! 이 발끝에 감기는 찰진 구타음, 이 맛에 내가 널 때리는 거야!”
“안 돼! 때리는 걸 멈출 수가 없어!”
근육으로 이뤄진 제갈 사혁의 단단한 몸은 때리는 맛이 아주 찰져서 아이들로 하여금 구타를 멈출 수 없게 하는 묘한 매력이 있었다.
‘그만 때려! 니들, 내가 누군지 알아? 이 새끼들아! 그만 때려, 아파, 아프다고! 30전 줄게. 그만 때려라, 제발!’
아이들의 손길은 매서웠으며 자비가 없었다. 무림 고수인 사혁의 몸에 고통을 주는 그들의 비범한 권각술은 과거 화산의협으로 이름을 떨치던 사혁으로 하여금 혀를 내두르게 하였다. 하지만 모진 고난과 역경이 있어도 제갈 사혁은 용화장 감시를 포기할 수 없었다.
그렇게 하루에 몇 차례나 서당 일진회 아이들에게 구타를 당하고 훗날 반드시 복수할 것임을 다짐하던 어느 날이었다.
“괜찮으세요?”
하루는 용화장에서 나온 시녀 하나가 물수건으로 제갈 사혁의 얼굴을 닦아주었다. 얼굴이 퉁퉁 부어서 시녀의 얼굴을 잘 볼 수는 없었지만 시녀의 목소리는 정말 아름다웠다.
“어머? 근골이 아주 뛰어나시네요. 나중에 제가 하는 일이 끝나면 저를 따라오시겠어요? 제가 아주 좋은 곳을 소개시켜 드릴게요.”
그 목소리가 얼마나 아름다웠는지 전생을 통틀어 들어본 모든 여인들 중 가장 최고의 목소리였다.
“수하(水夏)라고 해요.”
그녀는 목소리만큼이나 얼굴도 대단한 미인이었다.
“제…갈사…혁입니다.”
사혁은 아이들의 구타로 너무 힘들어서 이름도 제대로 말할 수가 없었다.
“갈사..... 혁이요? 특이한 성이시네요?”
제갈 사혁입니다, 라고 말하려 했지만 오히려 그녀의 얼굴을 보고 있으면 제갈 사혁이든 갈사 혁이든 상관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여인의 도움을 받은 사혁은 그 여인의 소개로 용화장의 짐꾼이 될 수 있었다.
용화장의 시종들은 늙은이가 아니면 대부분이 여자들뿐이었다. 간혹 물건을 나르는 건장한 사내들이 오기도 했지만 그들은 용화장과 거래를 하는 상단의 짐꾼들이었다.
‘쳇! 그 무당파 놈은 아직인가?’
용화장에는 아직 무당파의 손님이 오지 않은 것 같았다. 그 무당파의 손님 때문에 일부러 거지처럼 분장을 해 용화장을 감시하고 있었는데 정작 그 무당파 놈팽이가 오지 않았다니. 거지로 분장해 고난과 역경을 겪은 지난날이 후회가 되는 제갈 사혁이었다.
“소저, 감사합니다.”
“아니에요, 갈사 소협. 소협의 몸이 튼튼해 주인님께 부탁을 드렸을 뿐이에요. 물론 나중에 용화장에서의 일이 끝나면 제가 진짜 일자리를 구해 드릴게요.”
갈사 소협이라니, 이름을 어떻게 조합했기에 저런 망측한 이름이 나오는지 참으로 알 수 없는 노릇이었다.
“어떤 일자리이기에?”
“제가 원래 일하던 곳이라고만 알아두세요. 갈사 소협처럼 타고난 신체를 가지신 분들이 필요한 곳이거든요. 일이 조금 고되지만 잠자리도 제공되고 삼시 세끼 걱정 없는 곳이에요.”
“무엇을 하는 곳입니까?”
“여기저기서 일이 들어오면 처리해 주는 곳이에요.”
여기저기서 일이 들어오면 처리해 주는 곳이라는 말에 사혁은 흥신소나 하오문 같은 곳을 생각했다. 하오문에서는 시녀나 시종 같은 계약직 구직자의 일자리도 연결해 주기 때문이다.
용화장에서의 일은 그런대로 평범했다. 짐이 오면 옮기고 옮길 짐이 없으면 마당을 쓰는 등 잡스러운 일이 전부였다.
“갈사 소협, 수고하셨어요.”
“수하 소저도 수고하셨습니다.”
수하와는 그런대로 이야기 정도는 주고받는 사이였다. 딱히 그녀가 미녀라서 그녀와 좀 더 친하게 지내는 것은 아니었다. 정확하진 않지만 그녀가 하오문 출신이기 때문이다.
하오문은 보다 정확한 정보를 취급하는 단체이고 이번 일이 끝나면 하오문을 소개시켜 준다고 하니 친해질 필요가 있었다.
용화장은 호남에서 알아주는 부잣집인 만큼 많은 물건을 취급하고 있었다. 대개 물물 교환이나 각 지역의 시세 차이로 이득을 보는 사업방식 덕에 상단 측 사람들이 많이 오갔다.
하루는 서역을 주로 다니는 단 대인이라는 상인이 와서 용화장에 물건을 맡겼는데 그는 그것이 서역의 물건은 아니고 신강성(新彊省)에서 가지고 온 물건이라고 했다.
“대력도(大力刀)라고 합니다. 신강에서 가지고 온 귀한 물건이니 잘 좀 부탁드립니다.”
“단 대인께서는 발이 참 넓으십니다.”
“과찬이십니다, 부인. 저는 그냥 보잘것없는 장사치일 뿐입니다. 어쩌다 운이 좋았을 뿐이죠.”
용화장을 통해 물건을 맡기는 일은 꽤나 흔한 일이었다. 물건을 맡김으로써 그 수고비를 받으니 보관하는 일은 용화장의 가장 큰 수익원이며 동시에 가장 쉬운 일 중 하나였다.
단 대인은 따로 시종을 두지 않았기 때문에 유일하게 용화장에서 젊은 시종인 제갈 사혁이 대력도가 든 함을 직접 창고에 넣었다.
‘제법 무겁잖아.’
대력도라기에 조금 커다란 무기 정도로 생각했건만 상자 너머로 느껴지는 무게는 범상치 않았다.
“이것은 약조 드린 대금입니다. 석 달 뒤 조모라는 사람이 올 것입니다.”
“매해 잊지 않고 용화장을 찾아주셔서 감사합니다.”
물건을 맡기는 이유는 대부분 가지각색이었다. 세금을 내지 않기 위해, 혹은 누군가에게 물건을 전해주기 위해.
“갈사 혁, 네 덕에 이번에도 쉽게 물건을 옮겼구나.”
용화장의 책임자인 곽 집사의 칭찬에 사혁은 고개를 푹 숙였다.
“아닙니다, 집사 어르신. 젊은 놈이 힘밖에 더 있겠습니까.”
“수하가 거지를 데려왔다기에 내 별 신통치 않은 아이라 여겼는데 이렇게 잘해주다니. 앞으로도 부탁하겠네.”
젊은이가 없다시피한 용화장이기에 사혁의 역할은 어느 때보다 중요했다.
하지만 사혁은 다른 생각으로 머릿속이 복잡했다.
바로 단 대인이라는 자가 주고 간 대력도 때문이었다. 대력도 자체에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니었다.
신강은 마교의 근거지이고 용화장과 마교를 연관 지을 수 있는 건 현재로서 신강에서 왔다는 대력도 뿐이었다.
‘한번 알아봐?’
이에 대해 조사할 필요가 있던 사혁은 집사에게 신강 지역에서 자주 물건이 오는지 물었다.
“오늘처럼 신강에서 물건이 자주 옵니까?”
“대부분 단 대인이 가지고 오시지. 한데 그건 왜?”
“너무 무거워서요.”
“걱정하지 말게, 저런 물건은 아주 가끔이니.”
“가끔요?”
“그래, 아주 가끔.”
가끔이라면 문제가 될 것은 없었다. 일반적으로 서역으로 가려면 신강이나 서장(西藏)을 통해서 가는 길 밖에 없기 때문이다.
“전달 방식도 늘 그렇지.”
전달 방식이라는 말을 듣는 순간 제갈 사혁은 집사에게 그것에 대해 더 물었다.
“전달 방식이라뇨?”
“받는 사람은 늘 다르지만 신강에서 물건을 가지고 올 때는 늘 저렇게 무거운 물건을 맡기신다네. 그리고 물건을 받으러 오는 사람들도 대부분 석 달 후에 물건을 받으러 오지.”
하지만 그것만을 가지고 억지로 마교와 대력도 사이를 끼워 맞출 수 없었다.
그렇게 한동안 고민을 하던 차에 용화장에 웬 건장한 사내들이 찾아왔다.
“용화장주 계시오?”
젊은 청년 한 명이 자신의 권위라도 세우려는 듯 용화장 대부인을 경박하게 불렀다.
이를 본 대부인은 안색이 나빠졌지만 그들 앞에서 그것을 내색할 수는 없었다. 비록 불청객이기는 하나 그들 앞에서만큼은 숙이고 들어가야 했기 때문이다.
“대영문(大影門)의 영웅들께서 보잘것없는 용화장에는 무슨 일이시온지요?”
대영문은 최근 몇 년 전 이 근방에 자리 잡은 문파로 정파에 소속되었기는 하나 존재감이 희박한 방파 중 하나였다.
“이번에 우리 공녀께서 과년(瓜年)에 이르시어 조촐한 연회라도 열 터이니 참석해 주길 바라오.”
겉으로는 잔치 초대였지만 연회에 참석하려면 연회비가 있어야만 했다. 정파를 표방하고 있으니 대놓고 돈을 요구하지는 못할 테고 연회를 핑계로 얄팍한 수작질을 부리려는 것이다.
“때를 일러주시면 꼭 참석하겠사옵니다.”
대부인은 예의를 갖춰 대영문의 무사들을 상대했다.
결국 약자인 용화장으로서는 연회 참가를 거부할 명분도 힘도 없었다. 그저 그들이 달라면 주는 수밖에......
이를 지켜보고 있던 제갈 사혁은 조소를 띄었다.
“대영문이면… 뭐야, 무림맹에 들려고 제갈세가에 꼬리치던 그 치들이잖아.”
정확히는 지난 생애 사혁의 나이가 스물하고 넷이 되던 해였다. 그 해 생일은 화산파가 아닌 세가에서 가족끼리 치루었는데 대영문이 제갈세가를 방문해 잘 보이기 위해 굉장히 값이 나가는 보물을 가지고 온 것이다. 그 외에도 총관 말로는 혜아의 생일 때마다 매년 선물을 가져왔다고 했다.
무림의 이해관계란 굉장히 복잡하면서도 단순하다. 대영문은 제갈세가에 준 뇌물 덕에 무림맹에 들게 되지만 결국 마교와의 전면전에서 가장 먼저 개죽음을 당하는 소모품에 불과했다.
“별 시답잖은 집단이네.”
============================ 작품 후기 ============================
2013년 3월 20일 수정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