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화산의협-13화 (13/262)

<-- 13 회: 무림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방식. -->

흑의인들은 수하가 자신들의 정체를 알아채자 오히려 기세가 등등해졌다. 자신들을 알아봤다는 것은 그녀가 이번 임무의 원인이라는 뜻이기 때문이다. 그들의 입장에서는 그녀만 처리하면 모든 것이 깔끔하게 끝나기에 바로 공격을 개시했다.

지면을 박차고 사방에서 흑의인들의 검이 날아오자 수하는 육합절명도(六合絶命刀)를 펼쳐 방어에 나섰다.

그들 중 한명이 마교의 상위 검술인 추성오파(錐晟五破)를 펼치자 육합절명도의 방어력은 대단했으나 그 추성오파의 공세를 꺾기는 무리였다.

“윽!”

추성오파의 무자비한 검초에 당한 수하가 힘을 잃고 바닥에 쓰러지자 그 때를 놓치지 않고 다섯 명이 동시에 수하를 향해 검을 들이 밀었다.

“하여간 마교 새끼들은 뭐 대단하다고 이따위 허접한 집구석에 추성오파 씩이나 쓰는 놈들을 파견했는지 몰라?”

갑자기 나타나 다섯 자루의 검을 한 손에 쥐어 보인 제갈 사혁은 가볍게 검을 튕겨내어 흑의인들과 수하를 떨어트렸다.

“갈사 소협?”

수하가 어리둥절해하자 사혁은 자신의 얼굴에 손을 올렸다 내렸다. 그러자 놀랍게도 그동안 얼굴에 자리 잡았은 흉터가 마치 처음부터 없었던 것처럼 사라졌다.

“제갈 사혁.”

“네?”

“그게 제 이름입니다. 이제 좀 쉬세요.”

그 말과 동시에 사혁은 수하의 혈도를 눌러 그녀를 기절시켰다.

제갈이라는 성을 밝히자 놀란 쪽은 오히려 흑의인들이었다. 수하가 무당의 제자인 것도 놀랄 일인데 제갈세가의 사람이 이 일에 관여했다는 것은 곧 이 일을 가볍게 묻을 수 없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이얏!”

흑의인 한 명이 검기를 발현해 달려오자 사혁의 일권복호(一拳伏虎) 일격이 흑의인의 가슴을 뚫었다. 그리고 그 피는 사방으로 튀었다.

사혁은 피에 젖은 손가락으로 다른 흑의인을 가리켰고 그 순간 그는 비명을 질렀다. 손가락 끝에서 뻗어 나와 그를 공격한 기공의 정체는 다름 아닌 화산파의 옥녀지(玉女指)였기 때문이다.

“으아아!”

불시일격의 지공(指功)에 또 한 명이 당하자 흑의인들은 당황했다. 제갈세가라고 알았는데 화산파의 무공을 구사하자 흑의인들은 더욱 혼란에 빠졌다. 그도 그럴 것이 오대세가의 사람이 구파의 어느 자리에 앉는 경우는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단 한 사람, 예외가 있었다. 바로 강호에 모습을 보이지 않은…….

“그렇다면 그대가 도호의!”

“화산파 제1대 제자 무진이라고 한다. 그리고 스승님의 존귀하신 도명을 더러운 입으로 지껄이지 마라.”

“귀환하라. 여기는 내가 막는다.”

사혁의 말에 우두머리는 부하들의 앞을 가로막아 서서 비장하게 말했다.

“하지만!”

“항명은 허락하지 않는다.”

우두머리의 명령에 남은 두 명의 흑의인들은(부하들 수는 제가 헷갈렸는데 대장을 제외한 부하 일곱이고 오류는 수정했습니다. 이 시점에서 청하가 처음 한명을 기절 시키고 둘을 처리했습니다. 제갈 사혁이 일권 복호와 옥녀지로 두 명을 처리했고.) 순순히 명령에 복종했다. 그들도 알고 있었다. 무당파에 제갈세가, 그리고 화산파의 이름이 거론된 이상 누군가는 반드시 이 일을 상부에 보고할 필요가 있었다.

“누구 마음대로? 난 여기서 니네들 다 죽일 건데.”

“!”

“!”

“!”

방금 전까지 그들의 앞에 있었던 사혁은 어느새 그들의 배후를 점하고 있었다. 사혁은 후퇴하려는 두 명의 목덜미를 잡아 눌러 흑의인들을 강제로 무릎 꿇렸다.

“왜, 오행매화보(五行梅花步) 처음 봐? 처음 본 애들처럼 놀라긴.”

“이놈!”

제갈 사혁에게 농락당했다는 사실을 깨달은 우두머리는 순간 침착함을 잃고 검기를 발현해 검을 휘둘렀다.

내공이 담긴 검이 날아오자 사혁은 뒷목을 눌러 제압하고 있던 흑의인 두 명을 일으켜 세웠다. 그러자 우두머리의 검이 썩은 동아줄 잘라버리듯 두 명의 부하를 베어버렸다.

“부하들을 자기 손으로 죽이다니 사람도 아니군.”

엄밀히 말하면 사혁이 두 사람을 방패로 사용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이놈!”

사자멸세(死者滅世).

패도적인 초식이 사혁을 압박하자 그는 내공을 운용해 손을 감싸 검을 막았다.

태을신단을 복용한 덕에 맨손만으로도 상대의 검에 어느 정도 대응할 수 있었지만 상대가 허초를 섞으며 초식의 기세를 달리하자 점점 피하기 힘들어졌다.

사자멸세에서 파생되는 허초는 하나같이 짙은 살기를 띄고 있었지만 사혁은 오히려 침착하게 막았다. 사혁의 대응에 공격하는 이는 그의 견고한 방어를 깨트리기 위해 연속된 초식을 거두고 일격을 날렸다.

반보의 움직임으로 사자멸세의 가장 강맹한 공격을 피한 사혁은 철산고 계열인 복호파산(伏虎破山)으로 상대의 중심을 무너트린 후 손등으로 우두머리의 턱을 후려쳐 목을 꺾어버렸다. 아무리 마교에서 온 자들이라곤 하나 사혁의 상대가 되지 않았다.

“열심히 사는 사람들이었는데…….”

조용히 용화장을 둘러본 사혁은 고개를 저었다. 죽어간 이들에게 어떠한 깊은 정이 있거나 그들을 동정하는 건 아니지만 적어도 무림인의 하찮은 아귀다툼에 억울하게 희생될 사람들은 아니었다. 무림과는 전혀 관계없는, 그저 열심히 사는 사람들이었다.

발소리를 내며 걸어간 사혁은 갑자기 손을 뻗어 흑의인의 몸을 뒤집었다. 그는 제일 처음 수하에게 검을 빼앗기고 정신을 잃은 흑의인이었다.

“오래 기다렸지?”

그는 처음부터 모든 것을 보고 있었다.

동료들이 찢어발겨지는 그 순간까지 죽은 척을 하면서 제갈 사혁이 물러나기를 기다렸다. 그런데 어떻게 된 일인지 녀석이 자신을 귀신같이 찾아냈다.

살 수도 있었다. 제갈 사혁만 아니면 살 수도 있었다. 살 수 있었는데! 분했다. 분해서 미칠 것 같았다.

흑의인은 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

“살려줘! 살려만 주면 무엇이든 다 말할게!”

“살고 싶어? 저 많은 사람들을 죽여 놓고 너는 살고 싶다고?”

살고 싶었다. 어떻게 해서든 살아남고 싶었다.

“너희가 마교라는 사실, 그 사실 하나만 알면 돼. 언제, 어디서, 무엇을, 어떻게, 왜? 그런 건 의미가 없어. 알고 싶은 것도 알 필요도 없어.”

상대는 협상을 모르고 필요로 하지도 않았다. 더 이상 희망이란 없었다.

“어… 어머니.”

집에서 자신을 기다릴 노모를 생각하니 눈물이 멈추질 않았다.

“쉿!”

손가락으로 그의 입을 막은 사혁은 이렇게 말했다.

“인과응보(因果應報).”

무림인에게 이보다 더 어울리는 말은 없었다.

마교 무리를 모두 처리한 사혁은 호남을 떠나지 않은 우 총관과 제갈세가의 호위무사들을 불러 용화장을 정리했다.

“시체 처리는 모두 끝냈습니다.”

“수고했다.”

“그나저나 도련님, 창고에 있는 것들은 어떻게 할까요?”

용화장은 호남에서 가장 알아주는 집안이기 때문에 창고에는 엄청난 보물들이 가득했다.

많아도 너무 많다보니 우 총관은 용화장의 보물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몰라 사혁에게 물어본 것이다.

‘하지만 도련님이시라면 이 보물을 죽은 시종들의 유족들에게…….’

“보물은 싹 우리가 챙긴다.”

“당연히 우리가… 네?”

전혀 생각지도 못한 말이 튀어나오자 우 총관은 갈피를 잡을 수가 없었다. 저런 날도둑놈 심보가 과연 유수(流水)와 같은 역사 속에서 명문으로 흔들림 없이 부귀영화를 이어가는 제갈세가의 소가주 입에서 나올 수 있는 말인지 의심이 들었다.

“뭐가 문제야? 이제 주인도 없는데.”

당연한 말이지만 우 총관은 그래도 인간의 도리를 다하고 싶었다. 하지만 눈앞에 있는 사람은 이기주의의 결정체! 말해 봐야 씨알도 안 먹힌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어차피 아무 문제될 것 없는 것들이야. 재당숙(再堂叔)께서 집안의 돈을 담당하고 계시니 그쪽으로 모두 보내드려.”

제갈 사혁은 백부의 육촌에 해당하는 재당숙 어른이 모든 자금을 관리하고 계시니 이만한 물건을 처리하는 일도 결코 어렵지 않을 것이란 판단을 했다.

“이 정도 자금이면 본가가 흥청망청 써도 능히 10년은 버틸 수 있는 돈입니다.”

“그런 게 어디 있어. 돈은 쓰자고 마음먹으면 금방 써. 내가 한번 보여줘? 1년 만에 다 탕진해 봐?”

“하지만 장물입니다.”

“어차피 주인 있는 물건이라 해도 이 바닥에서 이 사람 저 사람 주머니로 넘어가면 다 몰라. 혹시라도 나중에 사라진 보물이 문제가 되면 마교 놈들이 가져갔다고 하면 돼.”

그 말을 듣고 충격을 받은 우 총관은 갑자기 눈앞이 어두워졌다. 사혁이 마교의 자객들을 전부 흔적도 남기지 말고 묻으라고 명령했을 때부터 뭔가 일이 이상하게 흘러간다고 느끼고 있었는데, 설마 이럴 줄이야.

“어차피 누가 믿겠어? 이제 막 강호에 출두한 애송이가 사자멸세의 초식을 사용하는 마교 놈을 죽였다고.”

아무리 어렸을 때부터 남다른 소가주였지만 이만한 수를 상대로 가벼운 검상조차 입지 않고 끝나다니 이건 이미 후기지수의 상식을 뛰어넘었다고 해도 과하지 않았다.

“나는 수세에 몰려 도망치다가 너희의 도움으로 살 수 있었던 거야. 그리고 보물은 전부 마교에서 가져갔다. 어때, 말 되지?”

“마교에서 겨우 보물을 탐했다는 말을 쉽게 믿을까요?”

“사라진 물건은 전부 단 대인이라는 놈과 거래를 한 물건이라고 잡아떼면 돼. 그놈이 마교의 하수인이니까. 그리고 기본적으로.”

기본적으로?

“제갈세가에서 보물을 털어갔다고 누가 믿어?”

“그거, 말 되네요.”

협의할 자세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소가주를 보며 우 총관은 정말 울고 싶었다.

제갈세가는 무림세가 중 엄청난 부호였다. 종친들이 운영하는 상단의 규모가 크진 않지만 조정에 적을 둔 친인척 등의 연줄로 엄청난 이득을 취하고 있는 대부호였다. 그리고 무림에서 세가의 명성은 그야말로 정인군자(正人君子). 세가에 대한 의심 자체가 성립되지 않았다.

“알겠습니다.”

소가주의 명령은 부당하나 가문에 득이 되는 일을 하는 것은 총관으로서의 판단이었다.

“용화장과 관련해 공식적인 발표가 있기 전까지 입 다물고 있으면 그만이야.”

이제 더 이상 어린 시절의 순수한 도련님은 없었다. 옛날에는 그렇게 동생도 잘 챙기고 백부모(伯父母) 내외 걱정 안 시키는 훌륭한 도련님이었는데 이제는 속이 시커먼 사내 놈 하나만 있을 뿐이었다.

“명을 따르겠습니다.”

제갈세가에서 기본적인 뒤처리를 하자 사혁은 쓰러진 수하를 안고서 숙소가 준비되어 있는 기루로 향했다.

기절한 여인을 안은 채 기루로 향하자 여기저기서 기녀들이 사나운 눈빛으로 사혁을 노려봤다. 무언가 큰 오해를 하는 것 같았지만 굳이 그들에게 사정을 설명할 필요를 느끼지 못했다.

“부상자를 수발들어 줄 사람이 필요한데. 이왕이면 같은 여인이면 좋겠군.”

수발들 사람으로 기방에서 가장 나이 많은 30대 중반의 기녀와 가장 나이가 어린 9살 여동(女童)이 찾아왔다.

“무엇을 하면 되는 겁니까?”

기녀는 아직도 사혁을 파렴치한으로 보는 듯 조금 쌀쌀맞은 태도를 보였다.

“옷을 벗겨 상처가 있는지 확인해 주고 상처가 없으면 그냥 옆에서 지켜보기만 하면 된다.”

그렇게 이야기하고는 사혁은 등에 맨 짐을 풀었다. 짐에는 새하얀 도포과 매화검수임을 나타내는 검은 도복이 있었다.

“잠시 실례하지.”

원래 그렇고 그런 일(?)을 하는 곳이기 때문인지 딱히 옷을 갈아입을 곳이 없어 사혁은 기녀의 시선이 닿지 않은 쪽에서 옷을 갈아입었다.

옷을 갈아입는 중에도 여동이 계속 사혁을 감시하는 듯 쳐다보자 그는 미간을 찡그렸다.

“다른 곳을 봐주겠니?”

“싫어요. 마마(媽媽)가 아저씨 잘 감시하라고 했어요.”

마마면 기녀들의 총책임자였다. 역시 예상은 했지만 그런 놈(?)으로 오해를 받은 듯했다.

그러나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옷을 갈아입은 사혁은 아직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는 수하 곁으로 다가가 내가요상술을 펼치기 시작했다.

사혁의 행동에 시종일관 쌀쌀 맞아 태도를 보이던 기녀는 식은땀을 흘리며 긴장을 하기 시작했다. 그가 무림인이기 때문이다.

‘역시.’

그녀의 반응을 보면서 사혁은 무림인에 대한 사람들의 경계심을 읽을 수 있었다.

다행히 수하의 상태는 나쁘지 않았다. 내상을 입은 것도 아니고 검에 베인 상처도 살짝 긁힌 정도였다.

혈도를 짚어 기절 시켰으니 다시 혈도를 풀어 깨어나기만을 기다리면 됐다.

============================ 작품 후기 ============================

2013년 3월 20일 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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