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 회: 이래서 사천은 오기 싫었다. -->
다른 문파의 조사원들도 다 같은 방식으로 수사를 하고 있다니 이 이상 투덜거리면 혼자만 얼간이가 되어버릴 것 같아 사혁은 조용히 당소진을 지켜보기만 했다.
“제갈 무진, 저것을 좀 보시오!”
그 때였다. 당소진에게로 껄렁거리는 행색이 딱 봐도 인생의 밑바닥일 것 같은 건달 세 명이 다가왔다. 더 이상 볼 것도 없었다.
“이놈들이다!”
사혁이 궁신탄영(弓身彈影)의 묘리를 발휘에 순식간에 2층 건물에서 뛰어내려 당소진의 바로 코앞까지 당도했다. 이를 본 건달들은 어안이 벙벙하여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같이 좀 따라가 주실까?”
웃는 얼굴로 건달 한 명의 목을 움켜쥔 사혁은 건달들을 후미진 골목으로 끌고 갔다. 그리고,
“형님, 왜 이러십니까!”
“누가 형님이야.”
복부를 걷어차는 것을 시작으로 구타를 하기 시작했다. 몇 대 쥐어박자 건달의 입에서 붉게 물든 옥수수가 튀어나왔다. 그러나 사혁의 구타는 코에서 쌍코피가 터질 때까지 멈춰지지 않았다.
“말해 봐, 너희지?”
“네, 맞습니다, 맞습니다. 뭐든 물어보시면 성실하게 대답해 드리겠습니다!”
신나게 두들겨 맞은 건달들은 필요하면 첫 경험담까지 있는 족족 말할 기세였다.
“사천에서 여인들이 사라지는 건 알고 있냐?”
“네, 잘 알고 있습죠.”
“너희냐?”
“아, 아닙니다! 저희가 동네에서 온갖 망나니짓을 일삼아도 그런 짓은 절대 하지 않습니다!”
“그럼 당 소저한테는 왜 찝쩍거렸는데?”
“요 앞 찻집에서 이야기나 나누어볼까 해서. 저… 저 절대 딴마음 먹지 않았습니다! 믿어 주십시오.”
이 정도로 사람을 피떡으로 만들어 놓으면 눈동자만 보아도 거짓말을 간파할 수 있기 때문에 건달의 말이 모두 사실이란 걸 알 수 있었다.
“후…….”
이놈들은 그냥 당소진의 미모에 꼬인 똥파리들이었다.
길게 한숨을 내쉰 사혁은 굳은살 하나 없는 옥면 같은 손을 들더니 건달의 뺨을 사정없이 때렸다.
“야.... 그냥 이 자식들이 범인이라고 말하고 넘길까?”
“제갈 무진! 이러면 아니 되오. 이 사람들은 죄 없는 선량한 백성이오.”
제갈 사혁이라면 정말로 그렇게 할 것 같았기 때문에 봉명공은 필사적으로 말렸다.
“어슬렁거리다가 한 번만 더 내 눈에 띠면 죽는다.”
슬슬 수사하는 것도 힘들고 해서 내심 이놈들이 범인이면 좋겠다고 생각했던 사혁은 인상을 구기며 골목을 빠져나왔다.
목숨을 부지한 건달들은 겁먹은 아기 고양이마냥 몸을 부들부들 떨며 사혁 일행이 사라질 때까지 그 자리에서 꼼짝도 하지 않았다.
“다시 원점이네요.”
당소진이 아깝다며 입맛을 다시자 봉명공도 아쉬운 듯 고개를 저었다. 한편 주작인은 옆에서 무언가를 적고 있었다.
옥수수떡이 인간의 심리에 미치는 영향.
사혁을 바라보는 그녀의 눈빛은 어딘가 진지했다.
“덕팔아~ 나 잡으면 용치~”
“나도 한 입만!”
사혁이 골목에서 나오자 맞은편에서 뛰어오던 어린 아이가 그와 부딪혀 넘어졌고 손에 들려있던 월병이 땅에 떨어졌다.
“우에엥~ 내 월병~”
이를 본 세 사람은 소스라치게 놀랐다. 방금 전 사혁의 난폭함을 보았기 때문이다. 서둘러 사혁과 아이를 떨어트리려 했던 그 때 그가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미안하다. 이 형을 용서해 주면 더 비싸고 맛있는 십경월병으로 사주마.”
“우와~”
더 비싸고 맛있는 걸로 사주겠다고 하자 울먹거리던 아이는 금방 웃음을 되찾았다.
“저도요! 저도요!”
아이의 뒤를 쫓아오던 친구들도 사혁에게 월병을 사달라며 조르자 그는 난처하다는 듯 아이들을 보며 웃었다.
“별일이네?”
“그러게말이에요.”
“본인도 놀랐소.”
이를 지켜보던 세 사람은 의외란 듯 사혁을 쳐다보았고 특히나 봉명공은 자신의 눈이 틀리지 않았음을 예감했다.
‘역시 사람은 누구라도 선한 마음을 가지고 있기 마련.’
내심 성정도 불같고 어딘가 잘 안 맞는 부분이 있어서 계속 함께 다녀야 하나 고민했는데 오늘 보니 또 아니었다.
“형,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아이들의 손에 십경월병을 쥐어주고 떠나보낸 사혁은 금방 얼굴은 구겨졌다.
“이놈의 수사, 더러워서 못해 먹겠네.”
그의 그러한 행동이 다른 사람들로 하여금 일부러 화가 난 척 하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그래도 의외네.”
“맞아.사람을다시봤어.”
당소진과 주작인이 한마디씩 하자 사혁이 뭔 소리냐며 눈치를 주었다.
“아이들에게는 잘해주네.”
“위선은아닌것같아.”
원래 제갈 사혁 정도의 젊은이라면 여인들에게 잘 보이려고 애를 쓰는 반면 이러한 일이 닥쳤을 때는 아이들의 잘못을 따지며 짜증을 내는 경우가 많았다.
“아이들은 무엇이든 될 수 있으니까. 그래서 어른은 아이들의 웃는 얼굴만큼은 지켜줘야 하는 거야. 그리고 니들, 왜 갑자기 나한테 반말이냐?”
“나이도 비슷한데, 뭐 어때.”
“많아봐야한두살차이고.”
다시 함정 수사가 계속됐지만 그날도 역시나 제대로 풀린 일이 하나도 없었다.
그날 저녁 답답한 마음에 밖으로 나온 사혁은 냇가에 발을 담구고 하늘을 올려다봤다.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하시오?”
같은 방을 쓰고 있기 때문인지 봉명공은 사혁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따라왔다.
“15세면 여인이라고 부르기도 힘든데 말이야.”
사혁은 이번 사건의 실종자들 중 가장 어린 피해자를 생각하고 있었다.
“수사가 일보(一步)도 진행되지 못해서 답답하신가 보오?”
“모르겠다, 먼저 자라. 난 조금만 더 생각하고 잘 테니까.”
다음 날이 되자 사혁은 일찍 주작인의 처소를 찾아가 피해자들의 초상화에 대해 물었다.
“어디 뭐, 피해자들 얼굴 그려놓은 거 없냐?”
“그거라면하오문에부탁해볼게.”
이번 사건을 위해 여러 잡다한 일을 해주는 하오문이 있기에 참으로 편하다고 생각한 제갈 사혁이었다.
성도에 자리한 하오문 분타.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분타주님.”
후덕한 인상의 남자가 난을 치며 고상하게 앉아있는 목련 소교의 의중을 묻자 목련 소교는 미소를 지으며 살랑살랑 붓을 움직였다.
“필요하다면 제공해 주어야지요. 어디까지나 우리는 만능의 하오문 아닙니까.”
“그럼?”
“그곳에 가서 그려오세요. 입단속해야 하니 화공들의 처리는 맡기겠습니다.”
“예! 그럼 물러나겠습니다, 분타주님.”
수하가 물러나자 목련 소교는 완성된 난을 바라보며 미소 지었다.
“마음에 안 들어. 다시!”
* * *
그로부터 이틀이 흐른 후 하오문으로부터 총 열한 장의 초상화가 아미파를 통해 제갈 사혁에게 전해졌다.
“이건 또 뭐하자는 짓이야?”
처음 이야기를 꺼낸 것은 사혁이었지만 막상 피해자가 열한 명이나 되니 미칠 노릇이었다. 게다가 이 개념 없는 하오문 자식들이 준 초상화는 피해자 한 명당 한 장씩 해서 딱 열한 장의 초상화.
“아니, 이 멍청한 새끼들! 지금 무슨 애들 장난하는 것도 아니고 전단을 돌려야 하는데 꼴랑 열한 장 가지고 뭘 어쩌라는 거야?”
사혁이 성질을 내며 초상화를 바닥에 던져버리자 봉명공은 한숨을 내쉬며 그것을 하나하나 조심스럽게 주워 담았다.
“소저들 얼굴이 꽤나 심통 맞아 보이오.”
“뭐?”
처음에는 봉명공이 무슨 말을 하는 건가 싶었는데 자세히 보니 초상화 속 얼굴들은 하나같이 어딘가 불만이 많은 표정이었다. 묘하게 머리카락도 흐트러져 있었고.
“요즘은 이런 식으로 초상화를 그리는 게 유행인가 보지? 예쁜 얼굴 망가지게 표정들이 왜 이래.”
보통 초상화를 그릴 땐 최대한 당사자와 똑같이 그리기 위해 표정을 짓지 않는 게 보통인데 이렇게 인상을 구기다니…….
“별일이네.”
조금 특이하지만 사혁은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며칠째 골목이란 골목은 싹 돌아다니다 보니 사천 성도하면 이제는 모르는 길이 없었다. 이쯤 되면 어디 가서 사천 토박이라고 해도 믿을 것이다.
열한 장의 초상화를 가지고 발로 뛰며 수사를 했지만 오늘도 수사는 아무런 진전 없이 진(辰)시가 되어서 끝났다.
“무림 수사 일지 같은 거 보면 막 범인 쉽게 잡던데.”
당소진은 아쉬운 듯 말했고 주작인은 사혁을 보며 눈치를 주었다.
“제갈세가라면서진짜도움안되네.”
“제갈세가인이 다 똑똑하다는 편견을 버려!”
사혁은 오늘도 집안을 둘러 싼 편견과 맞서 싸웠다.
“틀렸다니까!”
“아니거든! 맞거든!”
피로라는 양념에 절여진 장아찌처럼 힘없이 축 늘어진 사혁 일행은 아미파로 돌아가던 중 언성을 높여 싸우고 있는 동네 아이들을 우연히 만났다.
“형아!”
“응?”
어제 월병을 사준 아이가 아는 척을 하자 사혁은 곤죽이 된 몸을 이끌고 아이들이 모여 있는 곳으로 다가갔다.
“너희들, 다 죽었어! 이 형이랑 나 되게 친해.”
사혁이 다가오자 아이는 한껏 자신감에 차서 우쭐거렸다. 별로 친한 건 아니지만 아이의 말을 부정하는 건 사나이가, 더 나아가 어른이 할 일이 아니었다.
“무슨 일인지 모르지만 도와주마.”
아이들은 놀이 결과 때문에 싸우는 거였다.
이런 경우는 많았다. 사혁만 하더라도 지난 생애에서 운대관 시절 마작을 하다가 누가 조금이라도 점수를 얍삽하게 따면 우리 지역에서는 이따위 족보 안 쳐준다네, 아니다, 이게 전 무림 공식족보다, 뭐다 하며 매일같이 싸웠기에 아이들의 싸움을 왠지 모르게 공감할 수 있었다.
“무슨 일 때문에 그러는데?”
“가게에 사람이 몇 명 들어갔다 나오는지 맞추는 놀이를 했는데요.”
“뭐? 무슨 놀이? 가게에 들어가는 사람? 아! 가게 손님.”
“가게에 사람들이 들어갈 수도 있고 나올 수도 있잖아요.”
“그렇지, 아무래도 가게니까.”
“편을 짜서 그걸 맞추는 거예요. 사람이 가게에 들어가면 그 뒤를 따라 다른 사람이 들어갈 수도 있는 거고 들어간 사람이 나올 수도 있잖아요. 그걸 맞추는 거예요.”
아이들의 놀이는 대충 어느 가게 한곳을 골라서 손님이 들어가면 들어간 손님이 나올 것인가, 아니면 다른 손님이 가게 안으로 들어갈 것인가를 맞추고 최종적으로 드나든 사람들의 총수를 맞추는 놀이었다.
‘일종의 홀짝이군.’
“그리고 틀리면 틀린 수대로 한 명당 한 대씩 맞아요.”
틀린 수대로 한 명당 한 대라니. 이를 가만히 듣고 있던 사혁은 아이들의 놀이에 순수함 따윈 없다고 생각했다.
“아! 나도 그런 놀이한 적 있어. 이런 거 비슷한 거잖아. 저잣거리에 커다란 선을 그려놓고 사람들이 선을 왼발로 밟는지 오른발로 밟는지 내기를 해서 틀리면 뺨 맞기 같은 거. 옛날 생각나네, 옛날에 정말 그것 때문에 많이 맞았는데.”
‘때리는 쪽이 아니라 맞는 쪽이었냐!’
당소진의 이야기까지 듣고 정말로 사천 아이들의 놀이에는 무언가 순수함이 크게 결여됐다고 생각한 제갈 사혁이었다.
“그러니까, 저기 옷 가게에 들어간 손님이 총 55명이었는데.”
“나온 사람은 54명이었어요.”
“거짓말하지 마! 55명 들어갔는데 어떻게 나온 사람이 54명이냐?!”
“거짓말 아니다!”
아이들의 놀이는 참으로 맹랑했다.
사실 이 놀이는 사람의 숫자가 반드시 꼭 맞을 수는 없었다. 보통 가게라는 게 밤까지 영업을 하지만 아이들의 경우 진시(오후 5시)면 집으로 돌아가기 때문이다. 그리고 정말로 55명의 손님이 가게에 들어가도 54명만 나올 수도 있었다.
“실수로 한 명 빠트렸겠지. 아니면 가게에서 일하는 사람이라 가게가 끝날 때까지 안 나올 수도 있는 법이고.”
사혁이 어렵지 않게 일을 해결해 주자 그가 편들어 준 아이는 거만하게 팔짱을 끼며 소리쳤다.
“들었지, 들었지?! 너 이리와, 뺨 맞아.”
너 이리와, 뺨 맞아, 라니. 역시 사천 아이들의 놀이는…….
사혁은 대충 그래도 얼굴을 알고 있는 아이의 편을 들어주고 뒤돌아서서 다시 아미파로 향했다.
그리고 이날 또 한 명이 실종되었다. 횟수로 열두 번째 사건이었다.
사혁 일행은 수사할 때마다 마을 아이들을 만났고 그러다 보니 이제는 정말 제법 아이들과 친해졌다.
“오늘은 75명이야.”
“이번엔 정확히 맞았지.”
아이들은 아직도 그 살벌한 놀이를 하고 있었는데 아이들의 놀이 대상이 되는 가게는 며칠 전 사람 수가 맞지 않는다던 그 가게였다.
“장사가잘되나보네.”
“뭐하는 곳이기에 저렇게 장사가 잘 되는데?”
“여인들의 옷을 팔고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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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3월 20일 수정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