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화산의협-21화 (21/262)

<-- 21 회: 이래서 사천은 오기 싫었다. -->

사혁이 다른 쪽에 앉아있는 사병에서 손짓을 하자 그는 사혁이 시킨 대로 조사 결과를 말하기 시작했다.

“조사 결과 사천에서 총 열한 명의 화공이 실종됐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공통점은 모두 피붙이 하나 없이 홀로 사는 자들이라는 점입니다.”

“봤지? 화공이 딱 열한 명 사라졌어. 홀로 사는 자들이라고 해서 완벽하게 흔적을 지울 순 없는 거야. 사람은 사회적 동물인데 인생을 살면서 친구 하나 안 만들었겠어? 사람 하나 없어지면 주위 사람은 금방 눈치 채. 그래서 완전 범죄가 힘들고 범인이 잡히는 거야.”

여기까지가 하오문에 관해 제갈 사혁이 가지고 있는 의심이었다.

“내가 알고 싶은 건 하오문.”

느닷없이 내가 알고 싶은 건 하오문이라니? 무언가 굉장히 뜬금없었다.

“무슨 말이오?”

“정확히 설명해 줘.”

“…….”

“하오문은 어떤 곳이지? 우리는 왜 하오문을 믿고 있는 거지?”

“그야하오문은최고의정보를지닌집단이니까.무림인이아닌일반인조사에는하오문최고라할술 수 있어”

“바로 그게 문제야. 우리는 하오문이 조사한 자료를 가지고 하오문이 준 지침서대로만 조사를 하고 있어. 한 가지 이야기해 줄까? 사천당가나 공동파, 청성파, 어느 누군가와 사건에 대해 이야기한 적 있어?”

전체적으로 모든 사건에 도움을 주고 있는 사천당가의 일원인 당소진은 순간 머리가 멍해졌다.

“없겠지, 당연하거든. 사천 일대에서 전부 우리랑 똑같은 지침서대로 똑같이 수사를 하고 있으니까. 사천에서 조사 중인 다른 무림인들과 토론을 나눌 이유가 없는 거지. 다들 알겠지만 모든 일의 기본은 의견 교환과 정보 정리야. 그런데 그것까지 하오문에서 따로 해주고 있으니 당연히 회의가 불필요할 수밖에.”

지금까지는 하오문이 껄끄러운 이유에 대한 것이었다. 여기까지 정리가 되자 마지막으로 가장 확신이 없던 점포에 관한 이야기를 해주었다.

“나는 이러한 의심을 가지고 어떤 상황을 가정을 했어. 하오문이 범인이라는 가정을 말이야.”

이것은 그 누구라도 쉽게 알 수 있었던 아주 작은 진실이며 우리 모두가 속았던 거대한 거짓.

사혁은 진실을 깨닫기보다는 거짓을 의심을 했기 때문에 남들보다 조금 다른 시각에서 이 사건을 해결할 수 있었다.

“아이들이 했던 말 기억해?”

“아이들?”

“무슨말을했다는거야,아이들이?”

다들 기억하고 있지 못했지만 봉명공만이 그 일을 기억하고 있었다.

“뺨 때리는 놀이 말이오?”

“그래, 아이들이 가게에 55명이 들어갔는데 54명밖에 안 나왔다고 했지?”

“그게어때서?”

주작인이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짓자 사혁은 쉽게 설명해 주었다.

“당소진과 주작인이 가게에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당소진이 가게에서 나왔습니다. 하우 스님이 가게에 들어갔습니다. 하우 스님이 가게에서 나왔습니다. 그리고 가게 문이 닫혔습니다. 그럼 여기서 문제, 들어간 사람은 세 명인데 왜 나온 사람은 두 명일까요?”

순간 주작인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아이들의 놀이, 그리고 가게에서 나오지 않은 한 명.

“그 날 열두 번째 실종자가 발생했어.”

하지만 그것만 가지고 모든 일의 책임을 하오문에게 돌리는 것은 안일한 생각이었다.

“전 무림을 떠들썩하게 만든 다섯 번째 실종 사건부터는 이 옷 가게가 있는 지역에서만 사건이 일어났어. 다들 알겠지만 이 옷 가게는 하오문 소유야. 그리고 전부 다섯 번째 실종 사건 이후 사천의 모든 지역에서 동시에 개업했고. 어때, 뭔가 감이 팍, 하고 오지?”

사혁이 이렇게까지 말하자 모두 슬슬 납득을 하기 시작했다.

“무엇보다 저 옷 가게는 포목점이 아니야. 오직 여인의 옷만 팔고 있어. 왜 남자 옷은 안팔까? 그게 더 돈이 되는데.”

어디든 일반적으로는 남자가 많다. 오래 전부터 뿌리 내린 남아 선호(男兒 選好) 사상 때문이다. 그러니 장사를 해도 남자 옷을 파는 게 남는 장사였다.

설명하는 순서가 뒤죽박죽이지만 사혁은 이미 이 사건을 하오문이 꾸몄다고 확신하고 있었다.

“그럼 인신매매를 위해서란 말인가요?”

인신매매. 범죄 조직에게는 쉬운 돈벌이 수단이지만 하오문에게는,

“하오문은 그런 귀찮은 일 안 해. 세상의 모든 기녀는 하오문을 통하거든. 속된 말로 합법적인 인신매매가 가능한 단체에서 왜 이런 귀찮은 짓을 하겠어? 이번 일은 하오문에게 있어서 하나의 거래일뿐이야.”

“거래라니?”

그래, 거래였다.

“누군지 몰라도 필요한 거겠지. 기녀가 아닌 여자가.”

“왜필요한거지?”

“그딴 건 우리가 알 필요가 없지. 우리는 범인을 잡아서 죽여 버리면 그만이니까.”

사혁에게 체포란 없었다. 오직 죽음뿐이었다. 그리고 다른 건 몰라도 이거 하나만은 확실했다.

“옷 가게를 통해 또다시 납치가 이뤄지면 분명 피해자를 범인이 있는 곳으로 데려갈 테고 우리는 그 때를 노려 뒤따라가기만 하면 돼.”

이미 옷 가게가 자리한 사천의 모든 지역에 무풍대가 깔려 있었다.

그렇게 사건이 일어나기만을 기다렸고 얼마 후 사건이 일어났다.

“관현의 서남쪽입니다.”

“확실해?”

범인의 본거지로 추정되는 곳까지 다녀온 무풍대 대원이 사혁 일행을 안내하며 말했다.

“가게에 들어온 손님의 수가 맞지 않습니다.”

관현의 남서쪽에 위치한 옷 가게에서 나오는 수상한 수레를 뒤쫓아 도착한 곳이 바로 동굴을 토대로 만들어진 석실이었다고 덧붙여 말했다.

무풍대원을 따라 범인의 본거지로 추정되는 곳에 도착한 사혁 일행은 동굴 안에 음식과 필수 생활용품을 나르는 시종을 보고서 이곳이 범인의 본거지임을 확신했다

“저놈들을!”

당소진이 뛰쳐나가려 하자 사혁은 급히 당소진을 막았다.

“생각하는 바가 있어서이니 저들은 그냥 보내줘.”

“어째서? 저들은 하오문도야. 저들을 잡아서…….”

“복잡한 문제가 될 거야.”

당소진 같은 젊은 강호인은 이해를 못하겠지만 사혁처럼 노련한 강호인은 이 사태가 정말 엄청난 일로 번질 수 있다는 걸 알기가 어렵지 않았다.

“여기까지 날 믿고 따라온 만큼 끝날 때까지 날 믿어줘. 그리고 너희 무풍대는 여기서 대기하도록.”

사혁이 무풍대원들에게 대기를 명했지만 그들은 명령에 불복하며 자신들의 의견을 피력했다.

“소가주, 끝까지 따르겠습니다.”

“여기까지 너희들의 노력으로 올 수 있었다. 그러니 너희의 노력에 보답해 이번 일의 마무리는 우리가 하겠다.”

“하지만…….”

“마지막은 우리가 해결해야만 한다. 그러니 더 이상 날 부끄럽게 만들지 마라. 나는 아이가 아니다.”

부하들은 소가주가 걱정이 될지 모르나 스스로 할 수 있는 것을 아랫사람에게 명하는 것은 무능한 사람이나 하는 실수였다.

게다가 이번 실종 사건은 사문에서 제갈 사혁이 아닌 화산파 제1대 제자 무진에게 내려진 임무. 수사 과정에서 사사로운 힘을 사용했다고는 하나 마지막 결과만큼은 자신의 힘으로 마무리 지어야 했다.

“걱정하는 것은 이해한다. 하지만 나는 제갈세가의 사혁이다. 겨우 이까짓 일로 몸이 상한다면 그따위 자손은 제갈세가에는 필요 없다.”

제갈세가는 흔히 머리는 좋고 무공에는 두각을 나타내지 않는다는 소리가 많은데 개소리이다. 어차피 무림에서는 가식적으로 예의를 뒤집어쓰더라도 근본적으로 힘이 없으면 살아남지 못하기 때문이다.

무림의 거친 비바람을 버텨온 제갈세가는 결국 살아남았고 그것은 힘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피해자들이 전부 생존했을 시 그들을 안전하게 데려가야 한다. 그러니 대기하라.”

하오문도들이 돌아가자 사혁은 봉명공과 당소진, 그리고 주작인에게 신호를 주었다.

동굴 안은 실로 대단했다. 체계적인 건설 기술로 만든 듯 굉장히 넓고 갈래로 나뉜 길도 많았다.

“도진은 두 사람과 함께, 그리고 나는 혼자 간다.”

사천당가니 아미파니 해도 결국 직계도 본산 제자도 아닌 이상 그 나이대 실력은 안 봐도 뻔했다.

“어째서?혼자는위험할텐데차라리함께움직이는게나을거야.”

주작인이 혼자 가는 사혁을 제지했으나 그는 주작인을 보며 고개를 저었다.

“시간이 없어. 내가 아니더라도 결국 도진이 남고 내가 너희와 함께 간다. 사람만 바뀔 뿐 구성은 변하지 않아.”

“하지만함께하면위험부담도…….”

“날 믿어, 사람을 믿는 건 그만큼 어려운 거다.”

평소라면 사혁의 근거 없는 자신감으로 비춰질 법도 했지만 주작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것은 분명 그의 집안 배경과 사람을 부리는 능력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곧 그의 힘이기도 했다.

일행과 헤어진 사혁은 돌아다니던 중 서재처럼 보이는 곳에 도착했다.

“뒤져보면 뭐라도 나오겠지.”

서재에 도착하자 그는 범인에 대한 실마리를 찾기 위해 서재를 뒤졌다. 무림에서 일어난 범죄는 범인이 누구이냐 만큼 무슨 목적으로 범행을 저질렀는지가 중요했다.

“응?”

한참을 뒤지자 범인의 일기장이 나왔다. 일기장 같은 귀찮은 걸 쓰다니 생각보다 꼼꼼한 녀석이라고 생각한 사혁이었다.

하오문에 거액을 내고 거래를 했다. 목련 소교는 겉으로 드러난 행색과 달리 돈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하는 전귀(錢鬼)였고 다행히 거래는 잘 이뤄졌다. 목련 소교는 돈과 관련해서 절대 배신하지 않는 장사치였기에 나는 목련 소교에게서 방년이 되지 않은 아이들을 제공 받았다.

여기서 부터가 중요했다. 바로 무엇 때문에 범행을 저질렀는가? 이런 경우 대부분 일반인이라면 음욕을 채우기 위해서였고 무림인이라면 마공을 수련하기 위한 놈들이 대부분이었기 때문이다.

처녀, 특히나 이제 막 수태가 가능한 여인에게는 특별한 기운이 있다. 이 기운은 생명을 잉태하기 위한 기운인데 이것을 흡수하면 흡정마공을 한 단계 높일 수 있다.

“뭐?”

순간 잘못 보았나 싶었었다. 흡정마공이라니, 설마 그 흡정마공을 말하는 걸까?

혹시 몰라 사혁은 다른 곳도 뒤졌다. 분명 흡정마공의 진본은 자신이 직접 파기했다. 그런데 흡정마공을 익힌 자가 또 있다니. 그렇다면 분명 여기 어딘가에 필사본이 있을 가능성이 높았다.

책장을 전부 뒤집어엎어 아수라장을 만든 후에 겨우 낡은 책 한 권을 찾아낼 수 있었다.

읽어본 결과 분명 여기서 말하는 흡정마공은 제갈 사혁이 위대극으로부터 얻은 그 흡정마공이 맞았다.

사혁은 다시 일기를 거꾸로 넘겼다. 그리고 이 인물과 위대극의 관계를 찾기 시작했다. 하지만 위대극에 관한 자세한 이야기는 이 한두 줄이 전부였다.

사형은 외공을 익혀 흡정마공을 완성하겠다고 했다. 하여 사형과 나는 흡정마공의 진본에서 필사본을 만들어 나눠 가졌다. 사형은 진본을 나는 사본을.

이자는 위대극의 사제인 셈이었다. 마공인 이상 흡기를 통한 부작용은 반드시 있다. 당연히 흡정마공의 정통계승자인 위대극과 그 사제는 부작용을 없애려고 노력했을 것이다.

위대극은 모용세가로부터 태을신단을 탈취해 자신의 몸을 도검불침으로 만들어 흡기의 부작용인 탁기를 소변을 통해 배출하려 했을 터. 그렇다면 이 남자는?

소변을 통해 탁기를 배출한다는 이론은 실패하고 나는 그만… 미래를 잃어버렸다.

사혁이 포기해 버린 가설을 놈은 몸소 실천했다.

“이 용감한 새끼, 저질러 버렸군…….”

남자라면 알 것이다. 웃으면 안 되는데 웃을 수밖에 없는 이 상황을.

“푸웃! 아들내미가… 아들내미가 터져버렸어! 풋! 멍청한 새끼, 정말로 저질러 버렸어! 큭큭…….”

두 손으로 입을 막아 필사적 웃음을 참아낸 사혁은 일기를 계속 읽었다. 그러던 중 다소 충격적인 이야기를 보게 됐다.

흡정마공을 포기할 수 없었던 나는 사형이 흡정마공의 비급을 찾았다던 비고로 향했다. 그리고 그곳에서 놀라운 사실을 발견했다. 흡정마공은 본디 두 명이 익히는 무공이라는 사실 말이다.

흡정마공은 흡기를 하면 할수록 필연적으로 현추혈에 탁기가 쌓이게 된다. 이때 흡정마공을 함께 익힌 자의 내공을 흡기하면 온몸에 쌓인 탁기가 상대에게 흘러들어 가고 상대의 내공이 몸에 안착하면서 동시에 혈관 곳곳에 천천히 충격을 주며 혈관을 강하게 만든다. 종극에는 흡정마공의 부작용에도 아랑곳하지 않는 몸이 되는 것이다.

사형은 이 사실을 알고 있던 것일까? 그래서 내게 흡정마공을 익히게 했던 것일까? 나는 결심했다. 만약 그것이 사실이라면 내가 먼저 사형을 흡수하겠다고…….

흡정마공을 응용해서 사용하는 사혁에게는 엄청난 정보였다. 흡정마공의 힘을 응용해 상대의 내공을 흐트러트리는 우회적인 방법을 사용하고 있었지만 잘하면 흡정마공을 부작용 없이 직접적으로 쓸 수 있는 방법이 생길지 몰랐다.

“어디 보자.”

사혁은 흡정마공의 정리 요약본을 찾기 위해 서재를 또다시 뒤졌다. 흡정마공같이 복잡하고 기묘한 마공은 결코 머릿속의 이론만으로 그 체계를 구성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한참을 찾은 후에야 사혁은 흡정마공이 풀이된 서적을 찾을 수 있었다.

“오호, 이런 거였어? 흡정마공은 애초에 처음부터 이런 거였어......”

============================ 작품 후기 ============================

2012년 9월 2일 수정했습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