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화산의협-28화 (28/262)

<-- 28 회: 청해로 가는 길 -->

날이 어두워지기도 전 제갈 사혁은 사채업자의 저택을 찾았다. 악을 처벌하는데 어두워질 때까지 기다릴 생각 따윈 없었다. 흡정마공의 비밀을 지키기 위해 어둠을 틈탔던 하오문 때와는 다르다. 악인을 처벌하는데 기다림이란 있을 수 없었다.

“뭐야? 이 새끼는.”

“저리 안 꺼져!”

경비를 서고 있는 낭인 두 명이 제갈 사혁을 제지하려하자 제갈 사혁은 신법을 발휘해 신기루처럼 낭인의 손을 피하고 장법을 내질러 나무로 된 대문을 박살냈다.

“히익!”

“!”

이를 본 낭인 둘은 그 자리에서 꼼짝 달싹도 하지 못했다. 그리고 그런 두 사람을 향해 봉명공이 말했다.

“그대들에게 위해는 가하지 않을 테니 돌아가시오.”

낭인. 어디 가서 한 두 번 나쁜 짓은 했겠지만 그 정도를 가지고 처벌할 수는 없었다. 제갈 사혁도 그것을 알기에 손쓰지 않은 것.

봉명공이 도망갈 것을 권하자 낭인 둘은 들고 있던 창을 버리고 뒤도 안돌아보고 도망쳤다.

“어떤 놈이냐!”

처음에는 건달 몇이 튀어나왔지만 곧 저택에 있던 진짜배기 낭인들이 속속 그 모습을 드러냈다. 그러자 제갈 사혁은 기다렸다는 듯 엄청난 공력이 실린 패성각으로 지면을 박찼다.

“나는 화산파 제 1대 제자 무진이다. 지금 이 자리를 떠난다면 막지 않겠다.”

엄청난 각법을 눈으로 보았지만 낭인들 특유의 자존심이 있는지라 쉽사리 자리를 뜨지 못했다. 그러자 제갈 사혁은 다시 한 번 말했다.

“자존심을 세우지 마라. 죽음 앞에서 떠날 수 있다면 그 누구도 떠나는 그대들을 비웃지 않는다.”

제갈 사혁은 도망친다는 표현보다 떠난다는 표현을 써 낭인들의 자존심을 최대한 살펴주었다. 그러자 약 40여 명 중 30여 명이 제갈 사혁을 거쳐 대문으로 빠져나갔다. 그리고 남은 10여 명은

“구파일방이 뭐 대단하다고.”

“애송이. 우리는 네놈이 엄마 젖통 빨고 있을 때부터 이 짓으로 밥벌어먹고 살았다.”

“명문정파가 별거냐?”

패기가 넘치고.....

“크!”

어리석었다.

제갈 사혁에게 달려든 낭인 하나의 목을 팔뚝으로 후려쳐 부러트린 제갈 사혁은 낭인들을 향해 비웃음을 날렸다.

“구파일방? 애송이? 명문정파?”

그 말과 함께 제갈 사혁은 미친 듯이 웃었다.

“흐하하하하! 구파일방이 대단하지 않으면 무엇이 대단하단 말이냐? 중원은 곧 구파일방의 강호다.”

구파일방이 곧 강호라니 정파 젊은이의 오만한 발언이었다.

지금 이 자리에 남은 낭인들은 강호경험이 풍부한 이들이었고 방금 전 일격에 당한 낭인 역시 제법 알아주는 실력자였다. 하지만 제갈 사혁에게는 상대가 되지 않았다. 그러기에 알 수 있었다. 협공이 아니면 상대가 되지 않음을

“죽어라!”

정확히 11명이 동시에 공격하자 제갈 사혁은 비웃음을 날렸다.

대력금강(大力金剛).

그 11명의 공세를 모두 막아낸 것은 다름 아닌 봉명공의 기막이었다.

“소승이 마지막으로 간청하겠습니다. 물러나시는 게 어떠하신지?”

“닥쳐라!”

건곤삼세(乾坤三勢).

물러나지 않으려 하자 봉명공의 봉술에는 망설임이 없었다.

세 번의 초식은 모두 상대의 갈빗대를 부러트려 버렸다. 그런 뒤 봉을 두 팔로 붙잡고 나선을 그리며 몸을 화전 시킨 뒤 땅바닥에 봉을 내리꽂았다. 제갈 사혁이 보인 패성각과 같은 무력시위였다.

“그대들은 소승은 물론 제갈 시주의 털끝에도 못 미치는 실력이오.”

봉명공은 중원이 곧 구파일방의 강호라는 말에 동의는 할 수 없지만 적어도 구파일방의 명성이 비웃음거리가 되는 것은 참을 수 없었다. 구파일방의 첫 번째는 소림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적어도 이 사실 하나만은 확실했다.

자신이 손을 쓰면 부상으로 끝나지만 제갈 사혁의 손에 당하면 죽는다. 그것은 막아야 했다.

“웃기지 마라. 너희들은 허세에 불과하다. 이미 방금 전 공격으로 공력의 대부분을 썼을 터.”

“그렇다! 너희야 말로 생각이 너무 짧구나. 애송이들.”

반면 낭인들은 달랐다. 아무리 많이 쳐줘도 20대 초중반의 새파랗게 젊은 것들이 자신들보다 강할 리 없다는 확신이 있었다.

“봉명공 더 이상 기다리지 않는다.”

“기다리시오!”

갑자기 제갈 사혁이 나서자 봉명공은 서둘러 제갈 사혁을 붙잡으려 했지만 오행매화보의 신묘함은 봉명공의 손아귀를 농락했다.

제갈 사혁은 가장 먼저 애송이 소리를 입에 담은 낭인의 가슴을 주먹으로 후려쳤다.

“구파일방이 왜 오랜 시간 정파의 수뇌인지 너희들이 아느냐? 내세울 사문도 무공도 없는 주제에 함부로 지껄이지 마라.”

“이놈 우리에게도 사문은 있다!”

사문을 비웃자 낭인 한명은 화를 참지 못하고 성난 멧돼지처럼 달려들었다. 그러자 제갈 사혁은 장대비처럼 쏟아지는 검 사이로 손을 뻗어 낭인의 얼굴을 움켜쥐었다.

“신비문파라는 개소리 따위 지껄이지 마라. 이름 없는 사문은 나약하기 때문이다. 나약하면 무능하다. 어디 대봐라. 얼마나 잘난 사문인지.”

그와 동시에 혈관이 튀어나올 정도로 엄청난 힘을 줘 상대를 압사시킨 제갈 사혁을 보고 있는 봉명공은 불도를 닦는 승려로서 언짢은 기분을 느꼈다. 아무리 그래도 타인의 사문을 비웃다니......

그렇게 애들 다루듯 낭인들을 처리하던 제갈 사혁이지만 끝에 남은 다섯은 제갈 사혁을 몰아붙이기 충분한 실력을 지니고 있었다.

“어린놈이 오만방자하구나.”

그들 다섯의 중심인물은 육순(六旬) 가량의 노 강호였다. 어찌나 대단하던지 이미 도검불침에 가까운 제갈 사혁의 손에 검상을 입힌 것이었다.

“이 칠망검 어르신이 오늘 네놈의 버릇을 고쳐주겠다.”

칠망검(七網劍)이라니 대단한 낭인이었다.

그 유명한 낭인 흑도섬이 바로 이 칠망검을 꺾고 마화천과 함께 낭인 중에 낭인이 불리기 때문이다. 의외지만 칠망검 정도면 상대할 맛이 났다. 오히려 이 싸움이 일방적인 학살이 되지 않아 기쁠 지경이었다.

“칠망검 선배시군요. 이거 몰라 뵙고 무례를 범했습니다.”

“이름 없는 사문은 나약하다. 하였느냐? 그렇다면 어디 받아 보아라. 네가 말한 나약한 사문의 무공을 배운 나의 검을!”

그런데 그때 칠망검 주위에 있던 나머지 4인의 낭인이 움직였다. 제갈 사혁을 공격하기 위해 움직이는 것으로 보이진 않았다. 아마도......

“사채업자.”

“눈치는 빠르구나. 낭인에게도 법도가 있다. 돈을 받고 고용된 이상 의뢰인의 안전은 자신의 목숨보다 중하다.”

일이 이렇게 되자 봉명공이 나섰다.

“칠망검 선배님. 아무리 의뢰인이라고는 하나 그로인해 수많은 이들이 고통 받고 있습니.....”

“너 이 새끼 정말 마음에 안 들어. 오늘은 특히.”

질책의 말이 들려온 곳은 다름 아닌 제갈 사혁 쪽이었다.

“낭인에게 그딴 건 중요치 않아. 의뢰를 수행하는 것이야 말로 그들의 신념. 그러니 그 중놈 특유의 주둥아리로 이 상황을 어떻게 해보려거든 집어치워.”

이미 서로를 향한 살의가 충분히 전해졌다.

한쪽이 죽거나 쓰러지지 않는 이상 끝나지 않을 싸움.

“오만하기 짝이 없지만 말 한번 시원하게 하는 구나. 그렇다. 사나이의 대결에 주둥이는 필요 없다.”

그 말과 동시에 칠망검은 강렬한 검풍을 내지르며 제갈 사혁과 봉명공을 쓰러트렸다.

“와라. 젖먹이들!”

싸움을 찾아 해매는 늑대답게 이빨을 드러내며 웃는 그의 얼굴에는 한줌의 가식도 찾아 볼 수 없었다.

그 모습을 본 순간 제갈 사혁은 온 몸에 전율이 돋아났다. 의심할 여지없었다. 눈앞에 보이는 상대는 누가무어라 해도 중원 최고의 낭인이었다.

“봉명공 빠져라. 나 혼자 상대한다.”

“무모하오이다. 상대는 칠망검 선배이오.”

강호 무림에서 선배니 후배니 하는 건 쓰기편한 호칭일 뿐이다. 강호에서 근본적으로 선배란 결국 뛰어넘어야 할 대상에 불과하다.

“흑도섬이 칠망검 선배를 이겼을 때 지금의 나와 불과 다섯 살 밖에 차이가 나지 않았어.”

제갈 사혁은 화산파와 제갈세가 이런 배경을 떠나서 자신의 시대를 열고 싶었다.

“물러서.”

제갈 사혁이 고집이 세다는 걸 알고 있는 봉명공은 순순히 물러났다. 하지만 마음속으로는 언제든 형세가 기울면 뛰어들 준비가 되어 있었다.

여유로운 칠망검을 보며 제갈 사혁은 기를 일으켜 온몸의 세포 하나하나를 일깨웠다. 여태까지 얕잡아볼 수밖에 없던 상대와 싸우거나 육신의 능력을 과신하여 싸워왔다면 지금이야 말로 자기 자신을 시험해볼 때였다.

앞으로는 보다 뛰어나지 않으면 아니 됐다. 아버지의 원수가 혹 흑사련 련주라면 농담 삼아 말하듯 흑사련 련주의 목을 딸 정도가 되어야 한다.

소리 없는 일격.

눈을 깜빡이는 시간도 모자랄 정도로 제갈 사혁의 공격은 빠르고 무게 중심의 변화가 없었다.

온 몸의 힘은 오체를 기준으로 균형 있게 잡혀 있었다. 지천명(知天命)을 넘긴 후로 이 정도의 권사를 만난 적은 그리 많지 않았다. 그런데 눈앞에 보이는 이 새파란 놈은 젊은 나이에 굉장했다. 그리고 깨달았다. 이미 자신의 시대가 저물고 있는 것을.......

“대단하구나. 허나!”

대지에 몸을 누이며 하늘을 지붕 삼아 강호를 유랑하다보면 질 때도 있고 이길 때도 있다. 하지만 이 나이에 패배한다는 것은 곧 은퇴를 뜻했다. 그러니 순순히 퇴물이 될 수는 없었다.

칠망검의 검은 마치 독사처럼 유연하며 바람처럼 자유로웠다. 이에 제갈 사혁은 훈련으로 갈고 닦아온 오감을 전부 활용해 검면을 주먹으로 후려치며 칠망검의 공세를 꺾었다.

이래에서 위로 올리는 장타를 날리자 칠망검은 검 손잡이로 턱을 노리고 들어오는 신속 은밀한 장타를 막았다.

변화무쌍한 권장은 칠망검을 압박했지만 칠망검은 노련하게 제갈 사혁의 공격을 막았다. 하지만 바꿔 말하면 피할 수밖에 없었다고 표현해야 옳았다.

온몸에 충격이 남는 묵직한 주먹은 곤봉처럼 매서웠으며 손에 닿는 모든 것을 찢어버릴 듯한 강렬한 힘은 한평생 금나수만을 수련한 달인의 노련함이 느껴졌다. 지금은 괜찮을지 모르지만 계속해서 이러한 공격을 외공으로 막는 것은 미련한 짓이었다.

풍망귀(風網龜).

그의 검은 강력한 막을 이루었고 이내 제갈 사혁은 검막에 의해 튕겨져 나갔다.

풍망귀는 거북이의 단단한 껍질과도 같았다. 하지만 제아무리 단단해도 결국 깨어지기 마련.

주먹을 힘껏 쥔 제갈 사혁은 기수식을 바로잡았다.

두 주먹으로 원을 그리며 주먹을 폄과 동시에 강맹한 내공을 날렸다.

천뢰극공(天雷極功).

그러자 풍망귀의 검초는 강맹한 기공에 흔들렸고 제갈 사혁은 이를 놓치지 않았다.

천성붕권(天星崩拳)

내지르는 일권에 망설임은 없었다. 그야말로 일격의 살초 하지만 칠망검은 검면으로 그 일격을 쳐내 자신에게 가해져오는 힘을 줄였다.

“푸우!”

하지만 입에서 피를 쏟아내며 검을 내려놓을 수밖에 없었다.

기격이란 그런 것이었다. 무기로 전하는 내공과 직접 육신으로 전하는 내공은 다르다. 도구를 이용한 공격이 오직 외적인 것만을 부순다면 내공을 직접 다루는 신체를 이용한 공격은 내적인 것을 부술 수 있다.

칠망검의 입에서 피가 쏟아지자 제갈 사혁은 두 번째 공격을 찔러 넣으며 완벽한 승리를 손에 쥐어보였다.

두 번째 일격은 단순히 힘이 실린 주먹이었지만 칠망검을 쓰러트리기 충분했다.

============================ 작품 후기 ============================

2012년 9월 2일 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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