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화산의협-33화 (33/262)

<-- 33 회: 복수와 보복 -->

“혜성....”

혜성이 피를 흘리며 상대에게 당하고 있음에도 어찌하지 못하고 있는 자기 자신을 탓하며 이를 악물었다.

혜성을 이렇게 만든 이는 어느 중년인이었다. 농부를 가장하고 있지만 그에게서 흘러나오는 기의 흐름은 보통 사람의 것이 아니었다.

“뭐가 그렇게 우습지? 그럼 이것도 받아보아라!”

악을 써가며 검을 휘두르는 혜성의 실력은 분명 대단하나 그것은 그 나이 또래에 비교했을 때의 일.

“제법이구나.”

혜성의 검을 손가락 두 개로 잡아낸 중년인은 혜성의 복부를 발로 찼다.

“해(亥)시까지다. 시간을 맞추지 못하면 그 후 또다시 1년이다.”

“시끄러워!”

최대한 극한까지 기를 끌어올린 혜성은 횡보(橫步)를 밟으며 중년인의 기공을 피해냈다. 그리고 제비처럼 파고들며 검을 뻗었지만 이마저도 번번이 한손으로 쳐내는 등 상대와의 차이는 극명했다.

“내 차례구나.”

왼손에 막대한 내공을 끌어올린 중년인이 손을 휘젓는 순간 주변이 삽시간에 아수라장이 되어버렸다. 그 범위가 얼마나 대단한지 이를 지켜보던 봉명공까지 사력을 다해 피해야 할 정도였다.

“젠장!”

주먹으로 바닥을 내리치자 부서진 돌의 파편이 튀어 혜성의 얼굴에 아주 작은 상처를 입혔다.

“뒤로 넘어져도 코가 깨지는 판국이군.”

바로 그때였다. 제갈 사혁이 혜성의 앞에 모습을 드러낸 것은 그런데 바로 그 순간 제갈 사혁이 혜성에게 다가오자 중년인의 호위로 보이는 다섯 명의 무사가 일제히 제갈 사혁을 향해 검을 휘둘렀고 제갈 사혁은 가소롭다는 듯 흡기의 묘리를 발휘해 검의 궤도를 바꿔 다섯 자루의 검이 모두 자신의 한손에 쥐어지도록 만들었다.

“뭐하는 놈들이냐?”

한참 다섯 명의 호위무사를 뚫어지게 쳐다본 제갈 사혁은 갑자기 묘한 미소를 지으며 코웃음을 쳤다.

“참나... 나도 쓸 때 없는 걸 묻는다니까. 네놈들이 누구든 내 알 봐 아니지.”

공격한 이상 공격당한 이상 누구냐며 정체를 캐묻는 것만큼 멍청한 짓도 없었다.

“그냥 죽어라.”

제갈 사혁이 한껏 여유를 부리며 살초를 펼치려는 그 순간 무형의 기운이 침투해 제갈 사혁의 몸을 무겁게 만들었다.

“!”

분명 저기 저 잘난 듯 서 있는 중년인이 뿜어내는 기세가 분명했다.

온 몸을 감싸는 기가 얼마나 대단한지 제갈 사혁도 헛바람을 일으키며 긴장을 할 정도였다.

제갈 사혁은 서둘러 소천성공의 정순한 내공으로 전신을 보호했다. 탁기가 쌓이는 걸 막기 위해 단 한 번도 몸밖에 내보이지 않은 그 기운을 말이다.

“대단하구나. 나를 긴장시키다니.”

하지만 그것은 상대도 마찬가지였다.

“성주. 용서하여 주십시오.”

제갈 사혁에게 기세를 내뿜어 빈틈을 만들어낸 사이 그의 다섯 호위는 전원 자신들의 주군에게 돌아가 있었다.

“어디 그게 그대들의 잘못인가?”

성주라 불렸다면 이는 꽤나 까다로운 상대임이 분명했다. 성주라는 호칭은 아무에게나 붙지 않는다. 강호 무림에서 성주란 마교 10궁의 지배자 중 한사람이며 마교의 장로에게 붙는 호칭이었다.

제갈 사혁은 빠르게 상황을 읽어나갔다.

“화산파 제 1대 제자 무진이라 합니다. 정체를 밝히십시오.”

사외마도를 향해 절대 존대를 하지 않는 제갈 사혁이 존장의 예로 존대를 하며 이름을 밝히자 중년인도 예를 갖춰 자신의 정체를 밝혔다.

“구궁 성주 화경(華憬) 망지성(網智星)이라고 하네.”

구궁이라니 구궁이면 그 위로 십궁이 있고 그 위로 열 개의 궁을 지배하는 지배자 마교의 호법인 십야성주가 있다. 하지만 제갈 사혁에게는 그것보다 더 심각한 일이 눈앞에 있었다.

“십야성주 망지성.....”

아무도 들을 수 없게 말했지만 구궁의 주인이라 불린 이는 훗날 십야성주의 자리에 오르는 망지성이 분명했다. 누가 무어라 해도 상대는 빠르나 늦으나 언젠가는 십야성주고 지금도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마교의 최고수.

“죽어라!”

그때였다. 서로가 성명을 밝히고 잠시 주춤거리고 있을 때 혜성이 구궁 성주를 향해 검을 휘둘렀다. 제아무리 상대가 마교라고 해도 지금은 서로의 이름을 밝히며 예를 갖출 때였다. 수단방법 가리지 않고 비겁한 수단으로 어떻게든 상대를 제압해야 하는 결투 중이 아니다.

구궁 성주의 바로 코앞까지 혜성의 검이 당도하자 그 순간 검은 빠르게 뒷걸음질 쳤다. 혜성을 제갈 사혁이 따라잡아 그녀의 뒷덜미를 잡고 끌어내렸기 때문이다.

“뭐하는 짓이야!”

혜성이 화를 내자 제갈 사혁은 뒤도 안돌아보고 혜성에게 주먹을 휘둘렀고 이를 봉명공이 비룡승천봉으로 막아내자 엄청난 기의 파동이 온몸에 털을 곤두서게 만들었다.

“내 명예를 더럽히지 마라. 곤륜의 애송이.”

“제갈 무진. 냉정을 되찾으시오. 방금 전 그 권은 살의의 권이오.”

어찌 되었든 사문과 스승께 받은 도호를 밝히며 인사를 하고 있는 중이었다. 예법이란 참으로 까다롭고 번거로운 것이지만 그것이 인간과 짐승의 차이였다.

“사문의 이름을 더럽히지 않기 위해 스승님께서 주신 도호를 밝히고 존대를 했다. 그런데 뭐하는 짓이냐!”

패기 넘치게 말은 했지만 비룡승천봉에 의해 오른 주먹은 피범벅이 되어버렸다. 외공에 의해 웬만하면 상처를 입지 않는 제갈 사혁의 피부가 말이다.

(망할 막대기 같으니!)

제갈 사혁의 투기 넘치는 주먹에 의해 비룡승천봉을 감싸고 있던 천이 찢어지자 구궁성주의 눈이 커졌다.

“비룡승천봉이로군. 주 공자. 이시오?”

“그렇게 부르지 마시오. 구궁성주. 나는 파계승 봉명공이오.”

봉명공에게 주 공자라 부르는 구궁성주를 보며 제갈 사혁은 두 사람의 대화에서 무언가 굉장히 이질적인 느낌을 받았다.

“언제나 그분께서는 그대를 기다리고 계시오. 교주께서도 그대의 발걸음은 막지 않는다 하셨소.”

“막아서는 게 좋을 것이오.”

“젠장! 나를 봐! 다른 사람에게 눈길 주지 마라. 상방!”

그때였다. 혜성의 외침이 화운산 곳곳에 울려 퍼진 것은

“약속한 해시다. 또 1년을 기다려라.”

구궁성주는 바위 위에 모래시계를 가리키며 말했고 혜성은 아랫입술을 깨물며 괴성을 질렀다.

“으아아!”

들고 있던 검까지 던지며 소리 지르는 혜성의 분노는 화운산을 뒤흔들었다.

“주 공자. 그대를 본 것에 대해서는 함구해드리겠소.”

“.............”

마치 공간이 일그러진 듯 호위무사와 함께 사라진 구궁성주를 보며 봉명공은 알 수 없는 얼굴을 했고 두 사람 사이에 끼어버린 제갈 사혁은 미묘한 표정을 지었다.

“구궁성주라니 왜 그런 거물이......”

그때였다. 혜성의 검이 제갈 사혁의 목을 겨눈 것은

“그만두시오. 혜성!”

봉명공이 제지했지만 이미 혜성의 눈은 정상이 아니었다.

“네가! 네가 뭔데!”

혜성 그대로 목에 겨눈 검을 휘두르자 제갈 사혁의 목은 검에 베여 피를 흘렸다. 살짝 베인 정도였지만 보통사람이었다면 목이 잘려나가는 살초였다.

“....... 미치겠네.”

반드시 죽이고자 하는 검초였고 이것을 모를 제갈 사혁이 아니었다.

제갈 사혁은 피범벅이 된 오른손을 왼손으로 감쌌다. 그러자 언제 상처가 냈냐는 듯 멀쩡해졌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목에 난 상처를 만지며 말했다.

“난 상대가 누구든 적당히라는 걸 모르는 사람이다.”

“제갈!”

“나서지 마라. 봉명공!”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사선으로 베어오는 것은 혜성의 검이었다.

“적당히 해라.”

제갈 사혁은 손등으로 혜성의 검을 쳐냈다. 하지만 제갈 사혁정도의 고수가 휘두르는 손동작이 보통의 손동작일 리 없었다. 제갈 사혁의 주먹에 검을 맞대어 본 혜성은 손목을 꺾어버릴 것만 같은 통증을 느끼며 미간을 찡그렸다.

“그 검. 좋은 상표인가보네?”

반면 제갈 사혁은 귀엽다는 듯 눈을 내리 깔며 혜성을 비웃었다.

“이야~ 이래서 무기도 상표가 중요해 안 그래? 우리 사형도 비싼 거 들고 다니거든 알지 우리 사형? 사천성 백칠 공방에서 제조한 리(唎) 겸도(鉗刀) 78번작. 호황(虎皇). 어렸을 땐 어찌나 그런 게 부럽던지 그거 하나만 있으면 나도 무림고수가 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제갈 사혁의 비아냥거림에 화가 난 혜성의 검술은 청해를 새하얗게 뒤덮는 화운산의 눈보라보다 더욱 더 매서워졌다.

“초식을 나누며 농이나 치자는 거냐!”

제갈 사혁의 비아냥보다 더 자신을 화가 나게 하는 것은 바로 제갈 사혁의 무공실력이었다. 분명 무원의 사제라고 했지만 이 실력은 도저히 그 나이 때 가질 수 없는 것이었다. 그리고는 급기야

“농담 아니야. 봐. 비싼 만큼 명검이잖아.”

피를 뚝뚝 흘리며 오른손으로 검날을 움켜쥔 제갈 사혁이 개구쟁이와 같은 미소를 지으며 혜성의 검을 봉쇄해버렸다.

모든 것은 상당한 수준차이가 나지 않으면 할 수 없는 ‘장난’이었다.

“이 악물어라. 성치(成齒) 나가도 모른다.”

제갈 사혁은 있는 힘을 다해 혜성의 얼굴을 후려쳤고 혜성은 화운산의 거친 땅바닥을 정확히 7번 구르며 나가떨어져 버렸다.

“제갈!”

“제갈! 제갈! 부르지 마. 임마. 그렇지 않아도 내 성씨는 제갈이야. 제갈량과는 하등 관계없지만.”

“무엇하는 짓이오. 혜성은 같은 정파이오. 그대가 그토록 자부심을 가지고 있는!”

“그래서 내가 잘못했냐? 몇 대 후려친 것 가지고 되게 잔소리네. 가서 엎어와. 곤륜으로 가자.”

제갈 사혁의 평소와 같은 빈정거림에 냉정을 되찾은 봉명공은 서둘러 기절한 혜성을 엎었다.

품에서 곰방대를 꺼낸 제갈 사혁은 솔잎 말린 것을 넣고 피웠다. 겨울도 아닌데 여름에 눈이 오다니 별일이었다.

혜성이 실신해서 돌아오자 곤륜파는 한바탕 난리가 날 것 같았지만 생각보다 조용했다. 마치 혜성이 이렇게 나타날 것을 예견이라도 한 듯 각종 약재와 의원 여섯 명이 대기하고 있었다.

“그자가 이번에는 진지하게 다룬 모양이오. 이 아이가 기절한 채로 본문에 귀환한 것은 13살 이후 처음이오.”

혜성의 사형인 중년인이 수염을 만지며 말하자 제갈 사혁은 곰방대로 무릎을 치며 맞장구쳤다.

“마교의 성주 중 한명 아닙니까.”

제갈 사혁은 안됐다는 듯 고개를 저었고 제갈 사혁의 가증스러운 위증에 놀란 봉명공은 속으로 혀를 찼다.

(할아버지의 이름을 걸고 말하는데 범인은 저자이오!)

하지만 자칫 잘못하면 일이 꼬일 수 있기에 차마 입 밖으로 내뱉을 순 없었다.

“소승은 먼저 혜성 소저의 상태를 보겠소.”

봉명공이 자리를 뜨자 조용히 곰방대를 품속에 넣은 제갈 사혁은 늑대 한 마리가 그려진 부채로 입을 가리며 능구렁이 같은 눈을 하고서 곤륜의 대사형에게 물었다.

“마교의 장로 엄연히 적대세력의 수뇌 아닙니까? 어째서 그가 곤륜의 제자에게 손을 쓰고 있던 것입니까? 이 사실이 무림맹에 나아가 강호 무림에 퍼지기라도 하면 곤륜의 체면이......”

제갈 사혁이 대사형을 떠보자 그는 올 것이 왔다는 듯 크게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우리에겐 그를 막아낼 권한도 혜성을 막을 권리도 없소.”

“무슨 말씀이십니까?”

“그것이.......”

이야기는 이러했다. 지금으로부터 30년 전 당시 곤륜파의 제자였던 혜성의 어머니는 주창이라는 선비와 정을 나누는 사이였다고 한다. 그 선비 주창이 지금의 망지성이다. 그런데 선비 주창의 친우였던 자가 혜성의 어머니를 짝사랑했고 주창이 입신양명(立身揚名)의 뜻을 두고 황성으로 떠난 사이 두 사람의 사이가 가까워진 것이다.

“흔한 이야기네.”

============================ 작품 후기 ============================

2012년 9월 2일 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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