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8 회: 제자. -->
(잘 정리해보자. 정순한 내공에 대한 반응..... 하지만 다른 건 다 보통 사람하고 똑같단 말이야. 무공에 대한 재능도 그저 그렇고 특출난 점은 동체시력이 정말 뛰어나다는 점이야. 뭐 어려서부터 산을 타고 몸이 재빠른 산짐승들을 사냥하고 다녔으니 그럴 만도 해.)
그럼 방법을 바꿔야 했다. 애초에 제갈 사혁은 잘 못 생각하고 있었다. 자신과 같은 몸을 만들어준 후 무공을 가르치겠다니 이 얼마나 무모한 일인가?
(너무 그거에만 매달리지 말자. 일단 지금까지의 성취를 이용하자.)
지금 충의 상태는 단단한 육신과 약간의 내공 그리고 뛰어난 동체시력.
“지금부터 특성에 맞게 배운다.”
일단 특성을 알아야했다. 수련지에서 충을 데리고 나온 제갈 사혁은 모두 모여 있는 객잔으로 향했다.
“오~ 제갈 오랜만이오. 제자들 들였다 들었소?”
오랜만에 보는 봉명공은 얼굴에 기름기가 좔좔 흐르고 있었다.
“그래 오랜만이다.”
“6번대 소가주를 뵙습니다.”
6번대의 대장인 박몽이 보이지 않은 것으로 보아 혜아의 호위를 나갔으리라 짐작한 제갈 사혁은 일단 모두에게 충의 특성에 대한 의견을 물었다. 그러자 당연하다면 당연하다는 듯 제갈 사혁의 사제인 무종이 먼저 나섰다.
“사질 만나서 반갑다. 이 사숙이.... 후후후 사숙이래. 나는 사숙이다!”
사숙이라는 말에 묘하게 들떠 있는 무종은 완전 푼수가 따로 없었다. 일단 그런 무종을 놔두고 무덕이 이야기를 계속 이어갔다.
“우리 화산파의 제자가 되었으니 당연히 화산파에겐 온리 저수두(蘊利 貯修頭) 검뿐이다! 다른 건 다 쓰레기야! 모든 무기는 검에서 파생된 찌꺼기에 불과해!”
무덕이 오직 검을 노래하자 무풍대 대원 한명이 자리에서 일어나 그의 주장에 반박을 했다.
“그게 무슨 말이오! 아무리 소가주님의 사제라지만 그것이 말이 되는 소리요! 오직 온리 저수두(蘊利 貯修頭) 도(刀) 뿐이오. 다른 건 다 필요 없소. 모든 무기는 도에서 파생된 찌꺼기에 불과 하오.”
각자 자신의 애병에 대한 장점을 말하자 가만히 있던 봉명공도 끼어들었다.
“봉(棒)이오. 봉은 절대 살생을 하지 않소.”
봉명공에 봉에 대해 말하자 다른 무풍대 대원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살인을 하지 않는 병기 따위 무슨 의미가 있소! 창(槍)이 최고요. 살상력과 긴 장대는 길이는 단연 모든 무기 중 최고 아니오.”
“선배 그게 무슨 말입니다. 길이라면 당연히 궁(弓) 활이고 화살이지요.”
일이 이렇게 되자 난감한 이는 단연 제갈 사혁이었다. 도검기까지는 어떻게 가르칠 수 있는데 봉이니 창이니 활까지 나오니 미칠 노릇이었다.
“검 같은 소리하네! 검은 남자의 무기가 아니오! 남자의 무기는 도요. 남자는 한방이라는 명언은 도를 두고 하는 말이오.”
“전 무림 최고의 무기는 검이었어. 이 아저씨야.”
“뭐야 그런 통계 나는 인정 못해!”
결국 서로 애병기에 대한 의견대립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저는..... 주먹으로 하겠습니다.”
그때 혈기 넘치고 고집 센 사내놈들의 논쟁 속에 충이 작지만 결단력 있는 목소리로 자신의 의견을 밝혔다.
“주먹이라.”
“남자는 주먹이지.”
“그래 맞아.”
특성을 알아보러 왔는데 제갈 사혁과 같은 길을 가려하자 제갈 사혁은 처음으로 충이 대견스러웠다.
“그럼 뭐 정해졌네.”
권(拳)이라면 제갈 사혁의 주특기기도 하니 가르치기 수월했다. 그리고 권법을 가르치기로 하자 제갈 사혁은 자신의 노하우를 본격적으로 충에게 전수해주었다.
“잘 봐라.”
하단 발차기를 보여주며 제갈 사혁은 이에 대해 설명해주었다.
“이 발차기는 상대의 다리를 묶는데 자주 이용된다. 그냥 걷어차는 느낌으로 차도 되지만 중요한 점은 타격지점이다. 바깥 쪽 종아리를 걷어차도 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다리 안쪽이다. 뭐 내공을 운용해서 찬다면 상대를 무릎 꿇게 만들 수 있는 아주 좋은 초식이지.”
이문정주나 철산고를 기본으로 하는 초식을 가르칠 수는 없었다. 철저히 기본 초식 위주로 가르쳐야만 했다. 어차피 충을 두 달 더 가르쳐도 춘풍지회 우승은 힘들다. 하지만 본선에는 올려야 했다.
“하나 둘. 이렇게 왼손 오른손. 궤도를 달리하면 허초도 섞을 수 있다.”
그렇게 제갈 사혁은 주먹 휘두르는 법에서부터 발을 이용해 중심을 잡고 이동하는 법까지 대략 기본적인 것들을 가르쳤다. 그러다보니 제갈 사혁도 권법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가질 수 있었다.
그 동안 하루도 빼놓지 않고 기본을 충실히 다졌지만 충이 무엇을 배울 때의 자세를 보니 제갈 사혁 자신도 참으로 배울 것이 많았다. 초식을 재해석하고 조금 더 간결하고 조금 더 실용성 있게 다질 수 있었다.
(사교도학(師敎徒學)이라 하더니 오히려 내가 녀석에게 배우는 짝이군.)
하지만 이렇게 열심히 가르침에도 시간은 야속했다. 어느새 춘풍지회까지 일주일이 남은 것이다.
“하는 수 없지.”
결국 제갈 사혁은 최후의 방법을 사용했다.
“일격에 끝장낼 수 있는 비기를 전수해주마.”
내가권법의 일종인 복호일권이 아닌 철저한 외가권법 파강권(破鋼拳)을 가르칠 필요가 있었다.
“앞에 서있어 봐라.”
충을 자신의 앞에 세운 제갈 사혁은 이내 자세를 잡더니 갑자기 왼손을 뻗어 충의 얼굴에 가져다댔다.
“!”
제갈 사혁의 왼손으로 인해 시야가 좁아진 충은 순간 당황했고 이때 충의 왼쪽 가슴을 향해 제갈 사혁의 오른손 주먹이 날아왔다.
“큭!”
내공이 실리지 않았지만 순수한 근력으로 내질러진 주먹을 맞은 충은 저 멀리 날아가 버렸고 그런 충을 보며 제갈 사혁은 춘풍지회에 나가서 충이 잘 할 수 있을지 걱정이 되었다.
“여기에 내공을 실으면 이것을 파강권이라고 한다. 지금부터 이것만 연습해라.”
어차피 몸은 어느 정도 무림인이라 할 수 있고 문제는 초식의 체화 속도와 실전경험이었다.
충은 상당히 가르치기 힘든 아이였다. 아니 제갈 사혁 자신으로 인해 가르치기 힘든 아이가 되어버렸다. 단전을 이용하지 않고 내공을 피처럼 혈관을 이용해 순환시키는 고된 과정 때문에 내공을 자유자재로 다루지 못했다. 오히려 남들과 똑같이 가르쳤다면 지금보다 더 나아질 수 있을지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이미.
“후회해봐야. 늦은 일.”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춘풍지회 출전 접수 안휘 예선 당일이 되자 제갈 사혁은 충의 출전접수를 하기 위해 춘풍지회가 열리는 남궁세가 사유지인 벽산(璧山)에 도착했다.
“춘풍지회 예선 접수 신청 마감까지 앞으로 두 시진이오.”
명문정파의 참전을 막았다는 말이 사실이었는지 출전자들은 대부분 낭인이나 중소방파의 제자들이었다. 그 중엔 제법 실력이 있을 법한 사람도 몇 있었는데 전부 한 30대 중후반은 되었을 법한 놈들이었다.
“얘가 아직 19살인데 이런 미친놈들!”
내심 소화를 걱정하기 때문인지 아니면 저들의 도둑놈 심보가 괘심해서인지 제갈 사혁은 그들을 보며 이를 갈았다.
“출전비용은 은자 한 냥이오.”
출전비용치고는 가격이 제법 비싸지만 남궁세가가 주관하며 또한 우승할 경우 남궁세가와 인연을 맺을 수 있다는 걸 생각했을 때 비싼 값은 아니었다.
제갈 사혁은 이름과 나이 그리고 소속 등을 적어 충의 출전신청을 끝냈다.
“역시 불안하단 말이야.”
이 중에 누구 하나 충이 만만하게 이길 수 있는 상대가 없었다. 사력을 다해 싸워도 이길까 말까한 상대는 손에 꼽을 정도였다. 그것도 추첨 운이 잘 따라줘야 가능한 일.
“하는 수 없지.”
제자라 부르고 사부라 불린 이상 적당히 할 생각은 없었다.
제갈 사혁이 허공을 향해 손짓하자 곧 몸을 감추고 있던 무풍대 대원 두 명이 모습을 드러냈다.
“하명하십시오.”
“하명하십시오.”
잔뜩 군기가 들어간 것이 꽤나 믿음직해보였다.
“출전 신청해 둬라.”
“소가주.”
“명을 받들겠습니다.”
어차피 황보세가에서 지역 예선에서부터 물갈이 했다는 건 이미 화운산에서 들어 알고 있다. 그러니 애초에 이따위 무술대회에 정당이란 있을 수 없었다. 그렇다면 보여주는 수밖에 제갈세가의 물갈이를 말이다.
부채를 활짝 펴 입을 가린 채 벽산방면을 바라 본 제갈 사혁은 눈을 가늘게 뜨고는 이내 코웃음을 치며 사라져버렸다.
객잔에 도착하자 혜아가 봉명공과 제갈 사혁의 두 제자등과 함께 마작을 두고 있었다. 가만히 보면 참으로 나이 또래 비슷한 이들끼리 친분을 다지는 아주 건전한 자리지만 문제는 그게 아니었다.
“이건 말도 안 돼! 이런 족보는 없어!”
각각 호북 섬서 하남 출신인 네 사람이지만 문제는 지역마다 마작의 족보다 다르다는 것이 문제였다. 통일된 족보가 없으니 나이 불문하고 네 명만 모이면 한다는 마작이 금세 싸움으로 변질되는 건 당연했다.
“사암각 단기 같은 거 족보에 안셔줘!”
“무슨 소리입니다. 혜 매께서 모르시는 것 같은데 두배 역만이라 하여 사암각 단기는 당연히 공식 규정입니다. 인공 형님께서는 사암각 단기를 세십니까?”
봉명공의 본명으로 부르며 인공 형님이라 칭하는 무덕의 말에 봉명공은 고개를 끄덕거렸다.
“우리 하남에서도 역만이 두배라 하여 인정하고 있소만.”
“보십시오. 이게 공식규칙입니다. 사암각 단기를 세지 않는 어처구니없는 규칙은 도대체 어디서 배웠습니까?”
무덕이 족보를 따지고 들자 혜아는 식탁을 내려치며 절대 인정할 수 없다며 소리쳤다.
“호북! 호북! 무한시(武漢市)! 호북 전 무림 마작 동호회 25년 연속 우수 동호인 약초방 장씨 할아버지!”
언성이 커지자 제갈 사혁은 발을 쭉 뻗어 식탁을 박살 내버렸다.
“바보냐! 너희 그리고 혜아 너! 언제까지 여기 있을 셈이냐. 공부는?”
제갈 사혁이 오자 아까까지만 해도 눈에 불을 켜고 따지고 들던 혜아는 사라지고 온순한 여인네 한명만 그 자리에 앉아 있었다.
“춘풍지회 끝나면 돌아갈 거예요. 그리고 지금은 학기 이수하고 쉬는 주간이구요.”
제갈 사혁이 두 사제에게 눈치를 주자 겁을 잔뜩 먹은 무덕은 두 손을 등에 대고 군기가 잔뜩 들어간 자세로 또박 또박 말했다.
“사형이 안휘성을 떠나실 때까지 함께 하는 것이 사제된 도리입니다.”
어차피 제갈 사혁이 안휘성에 왔는지 감시하는 일로 왔으니 크게 문제는 없지만 객잔에서 마작이라니
“손님들 계신다. 조용히 놀아라.”
대회 바로 전날 밤이 되자 제갈 사혁은 갑자기 불안해졌다. 그래서 몇 번이고 잠을 설쳤다. 마음이 불안해서 잠이 오지 않자 제갈 사혁은 객실에서 나와 산책을 하려했다.
“아이쿠 나으리!”
문을 열고 나가려던 순간 점소이와 부딪혔고 그 순간 깨진 유리그릇과 함께 바닥에 고구마가 뒹굴었다.
“죄송합니다. 소인 밤 눈이 어두워.”
“무슨 일이지?”
“옆방에 일행 분께서 시장하시다기에.....”
“응?”
옆방이라면 충의 방이었다. 아무래도 당사자인 만큼 제갈 사혁처럼 긴장되어 잠이 오지 않았을 것이고 배가 고팠을 것이다.
“야식은 되었으니. 그릇 값이나 가져가시오.”
“아이고~ 나으리 감사합니다.”
제갈 사혁은 점소이에게 은자를 주고 충의 방으로 향했다.
“자냐?”
“사부.”
객실 안에서 충은 파강권을 연습하고 있었다.
제갈 사혁이 절대적인 비기라고 칭한 초식이니 아마 파강권의 일격만이 가장 믿음직한 방법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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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9월 2일 수정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