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화산의협-39화 (39/262)

<-- 39 회: 제자. -->

“불안하냐?”

“.......................”

그렇지 않다고 말하면 거짓말이겠지만 충은 그 조차도 말하지 못했다.

“명심하거라. 싸울 때 가장 중요한 것은 분노다.”

“분노요?”

항상 신중해야 하며 냉정해야 하지만 제갈 사혁은 분노를 중점적으로 충에게 각인시켜주었다. 어차피 속성으로 가르치는 이상 몸과 마음을 다스리려면 근본적인 해결책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물론 결투란 스스로가 냉정하고 분별 있게 행동해야 하지만 이 춘풍지회는 너 자신을 위한 싸움이다. 서러움 멸시 남궁세가에 대한 원망 그 어떤 것이라도 좋다. 그것이 너의 힘이 된다면......”

“하지만 저는 그렇게 못하겠어요. 서러움도 있었고 멸시 당하기도 했지만 그래도 저에겐 남궁세가가 전부인걸요.”

아둔한 녀석이라며 뺨이라도 치고 싶었지만 이 심성이 따뜻한 녀석에게 그리 할 정도로 못난 사람은 아니었다.

“점소이에게 배가 고프다 들었는데 먹어라. 고구마다.”

제갈 사혁은 품에서 고구마를 꺼내 충에게 주었다. 그러자 충은 두 손을 저으며 그것을 제갈 사혁에게 주었다.

“이렇게 괴상망측한 고구마는 처음 봐요.”

고구마를 거부하는 이유도 참 그 나이에 걸맞았다.

“그래도 먹어. 이 고구마는 생으로 먹어야 속이 든든해진다.”

“으음....”

고구마를 한입 베어 문 충은 고구마의 맛이 쓴지 인상을 구겼다. 아주 조금씩 야금야금 베어 물고서는 넘기기가 어려운지 꽤 오랫동안 씹었다. 그렇게 고구마를 다 먹기까지 두 시진이나 걸렸다.

“누워라. 잠이 잘 오는 안마를 해줄 테니까.”

잠이 잘 올 것이라는 말에 충은 의심 없이 몸을 눕혔고 그 후 그것이 그날의 마지막 기억이었다.

아침이 되자 충은 제갈 사혁의 아침 기초훈련 소리에 눈을 떴다.

“잘 잤냐?”

충은 지금 눈앞에 보이는 광경에 입을 다물 수 없었다. 제갈 사혁이 손등에 달걀을 올려놓고 손등에 있는 달걀이 땅에 떨어지지 않도록 빠르게 주먹을 휘두르고 있기 때문이다.

“신기하냐?”

“네.....”

“열심히 하면 너도 이 정도는 할 수 있을 것이다.”

무공에 대해 잘 모르는 충도 지금 제갈 사혁이 하는 훈련이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 알 수 있었다. 조금만 늦어도 주먹에 맞아 달걀이 깨지고 조금만 빨라도 힘이 가해져 손등에서 떨이질 수 있었다.

“아침을 먹으면 벽산에 함께 가자.”

벽산이라는 말에 충은 다시 근심이 가득한 표정으로 인상을 구겼다.

“걱정 마라. 잘 할 수 있을 거다.”

그때였다. 제갈 사혁의 주먹에 맞아 달걀이 깨진 것은

(기력이 많이 상했나보네.)

평소라면 실수 좀 했겠거니 하고 넘어가겠지만 오늘은 달랐다. 다른 것도 아니고 백년 하수오를 충의 단전이 아닌 신체 곳곳에 흡수시키다보니 엄청난 내공손실이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역시 그 짓은 하지 말 걸 그랬나?”

오후 중에는 후유증이 덜하겠지만 지금 당장은 조금씩 몸에 무리가 왔다.

내공심법을 이용하면 회복하겠지만 떨어져간 내공을 회복하려면 시간이 꽤 필요했다.

흡정마공인에게 빼앗은 영약도 이미 충의 몸을 만드는데 써버려서 먹고 죽을 라고해도 없었다. 같은 내공심법을 운용하는 사제들이 내공을 불어넣어주면 문제없지만 그렇다고 밑장 다 드러내고 사형 체면에 사제들에게 그런 걸 부탁할 수는 없었다.

“아 싫다. 남자는 그 놈의 자존심과 체면 때문에 망하는 법인데.”

이럴 때면 혼자 잘난 척은 다 하는 제갈 사혁도 스스로가 별거 없는 놈이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소승. 무운을 빌겠소.”

“사질 힘내라.”

“화산파가 너의 뒤에 있다는 걸 명심해라.”

“꼭 우승해야 해.”

봉명공과 두 사제 그리고 혜아까지 함께 벽산으로 향하자 저마다 충에게 응원을 해주었다.

특히 혜아는 충의 두 손을 꼭 쥐어주며 간절하게 소원을 빌었다. 그리고는 제갈 사혁을 쏘아 보는 것을 잊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혜아 입장에서는 제갈 사혁이 시합에 나가 우승을 해서 소화가 정략결혼을 하지 못하도록 해줬으면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 춘풍지회는 비공식적으로 구파일방은 물론 황보세가를 제외한 문파에 출전 자제 요청을 했기 때문에 화산파에 몸을 둔 제갈 사혁으로서는 출전을 할 수가 없었다. 아니 하고 싶지 않았다.

예선전은 비 공식전이다. 그런데 문제는

“어떻게 할까요?”

“져야지 하는 수 있나.”

문제는 제갈 사혁이 심어놓은 무풍대 대원 두 명이 모두 예선에서 충을 상대하게 되는 어이없는 일이 일어나고 만 것이다. 이에 무풍대 대원들은 충에게 일부러 져주는 촌극을 보이며 제갈 사혁의 미간을 찡그리게 만들었다.

“죄송합니다. 소가주.”

제갈 사혁은 미칠 노릇이었다.

“뭐지.... 뭐야 도대체 왜 내가 무슨 계략만 짰다하면 하나도 제대로 되는 게 없는데? 무슨 계략이나 술수. 수작질은 다 제갈세가 몫이잖아! 그런데 왜 제대로 된 성공을 거두지 못하는 거야!”

제갈 사혁은 괴성을 지르며 눈에 보이는 소나무를 발로 차 박살을 내버렸다.

“하아~ 모르겠다. 수고했다.”

정말 포기한 건지 제갈 사혁은 어깨를 축 늘어트리며 공중 화장실로 갔다.

“미친! 세상이 다 그렇지 뭐~”

뜻대로 되지 않는 세상을 한탄하며 제갈 사혁은 바지를 내리고 볼일을 봤다. 그리고 볼일을 다 보고 나가려는 순간.

검은 천을 뒤집어 쓴 남자와 어깨를 부딪치고 말았다.

“아이씨~ 거 잘 좀 보고 다닙시다?”

기분이 좋지 않았던 터라 제갈 사혁은 쉽게 화를 냈고 제갈 사혁이 그런 식으로 말하자 부딪힌 남자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내가 누군 줄 알고 피라미 놈이 감히!”

“형씨가 누군데?”

약지로 귓구멍을 후비며 제갈 사혁은 너 같은 놈 모르겠다는 투로 상대를 깔봤다. 그러자 검은 천을 뒤집어 쓴 사내는 제갈 사혁의 어깨에 손을 올리며 말했다.

“안휘성 최고의 검객 나.......”

그 순간 제갈 사혁의 주먹이 화장실 특유의 썩은 내 가득한 악취를 뚫고 사내의 얼굴을 후려갈겼다.

“누구? 안 들리잖아. 크게 말해.”

성격 더러운 제갈 사혁 입장에서는 ‘너 이 새끼 잘 걸렸다.’인 셈이었다.

“아이고! 대협 왜 이러십니까!”

“말해봐. 안휘 최고의 뭐?”

“아... 안휘 최고의.....”

그 후 사내는 제갈 사혁에게 총 아홉 번이나 두들겨 맞았다.

“아 진짜~ 기분도 더러운데 별 이상한 놈이 사람 신경 건드리고 난리야.”

오른 발로 화장실 문을 후려갈기며 나온 제갈 사혁은 거만하게 목을 좌우로 꺾으며 길가에 침을 뱉었다. 그런데 그때였다.

“소가주 무슨 일이십니까?”

아직 밖에 있던 무풍대 대원 하나가 제갈 사혁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자 재빨리 다가갔다. 소가주의 기분을 상하게 한 흉수라면 무풍대로서는 가만히 있을 수 없는 일.

“파리가 날아다녔을 뿐이다.”

파리가 많다며 뒤에 뻗어있는 자를 가리키자 무풍대 대원의 눈이 가늘게 변했다.

“소가주 제 말 좀 들어보시겠습니까?”

“응?”

충이 무풍대 대원 두 명의 고귀한 희생을 발판으로 본선에 진출하자 대회를 운영하는 남궁세가 측에서는 꽤 놀랍다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

“그 아이가 올라 올 줄은 몰랐습니다.”

남궁세가의 총관이 의외란 듯 말하자 세가의 소가주이자 이번 대회를 주관한 남궁 선중은 표정이 심히 좋지 않았다.

“총관 내 부탁 하나만 들어주겠는가?”

갑작스레 남궁 선중의 부탁이란 말에 총관은 어찌할 바를 몰랐다. 명령도 아니고 부탁이라니 그것도 소가주가

“할아버님께서는 역모를 전부 두 눈으로 목격하셨던 분이네. 하지만 저 아이에게 충이라 이름 짓고 노예처럼 부리는 것이 나는 마음에 들지 않네.”

딱히 충을 가엽게 여겨서가 아니었다. 다만

“이번 대회에서 실력을 보여준다면 세가 내에서 그 아이를 보는 시각은 달라질 거라네. 비교적 쉬운 상대와 대진을 짜주게 그 정도라면 해줄 수 있으리라 믿네.”

“하오나.... 태상 가주께서 나중에 문책하시면.”

“설마 총관이 대진표를 조작하리라 생각하시겠는가? 혹 문제가 생기면 내가 돕겠네.”

이번 춘풍지회가 세가의 여식에게 좋은 낭군을 짝지어 준다는 미명아래 행해지고 있다.

방계축출은 소가주인 자신을 위한 일이다. 하지만 이러한 식의 방계축출이 곱게 보일 리 없었다. 게다가 황보세가와 이미 사전에 이야기가 오고 간 것이라면 더더욱 마음에 들지 않았다.

“나 역시 너를 그리 좋아하진 않는다만.”

역모가 무엇이고 노비가 무엇이란 말인가? 착한 아이이다. 그거면 되지 않은가?

“싫지는 않다.”

내심 우승해줬으면 하는 마음도 있지만 그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하지만

“세상 일 무엇 하나 정해진 것 없다.”

본선이 시작되자 남궁세가의 총관에 의해 대진표가 짜여 지기 시작했다.

“제 1 대결.....”

그렇게 승자전(勝者戰) 방식으로 치러지는 이번 대결은 경험이 부족한 충에게 굉장히 힘들었다. 하지만 반대로 경험을 빠르게 쌓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인 셈이었다.

총 여덟 명이 진출했고 3번을 싸워 이겨야만 한다.

귀빈석에 이번 대회를 주관한 남궁세가의 중추적인 인물들이 자리하자 관중석에서는 커다란 함성이 들려왔고 본선 무대를 밟은 충은 귀빈석에 자리한 이화를 발견하고 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

“아가씨.”

제 1대결은 충과 청해 출신의 무사 자구(恣口)라는 자였다. 이를 본 제갈 사혁의 눈에서는 묘한 비웃음이 서려있었다. 청해라면 황보세가의 물갈이 지역이었다. 모르긴 몰라도 분명 황보세가의 사주를 받은 놈이 분명했다. 아마 무슨 짓을 해서든 충과 싸워 이기려할 것이 분명했다.

“아니 저 아이는 충이 아니냐?”

태상가주인 남궁 백이 긴 수염을 쓰다듬으며 심기가 불편한 듯 말하자 가주인 그의 아들 남궁 연철은 어찌할 줄을 몰라 했다. 그러자 이 반응을 예상했던 소가주 남궁 선중이 특유의 설득력을 내세워서 자신의 할아버지를 설득했다.

“충은 집안의 사람 아닙니까? 서당 개 3년이면 풍월을 읊는 법입니다. 어차피 황보세가의 환을 이길 수 없을 것입니다. 자그마한 유흥이라 생각하시고 보아주십시오.”

늘 자신을 실망시키지 않았던 손자가 그리 말하자 남궁 백은 주위의 눈도 있고 하니 형식상으로 나마 구겨진 인상을 폈다. 그리고 세가의 남자들이 자리한 곳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남궁 소화와 그의 어머니 남궁 이화가 자리했다.

“소화야 보거라. 황보세가의 도령이 네게 손을 흔드는 구나.”

어머니의 말에 소화는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그저 본선 무대에 올라가 있는 충이 걱정되어 모든 것이 눈에 보이지 아니하며 귀에 들리지 아니했다.

“어머니. 이 대회는 황보 환 소협이 이기기로 되어 있다면서요?”

황보 환으로부터 들은 이야기를 어머니에게 말하자 어머니인 남궁 이화는 고개를 저었다.

“무슨 말이냐? 그렇지 않단다. 아가. 분명 황보세가의 도령께서 유리한 것은 사실이나 엄연히 춘풍지회다. 그럴 일 없단다.”

“그러면 왜 다른 명문 정파에서는 사람을 보내지 않았죠? 저들을 보세요. 저들이 본선에 오를 실력을 갖춘 자들인가요?”

“무슨 말을 하는 것이냐?”

“어머니 때도 이랬나요? 아니죠. 아니에요. 구파일방이며 오대세가에서 어머니와 결혼하기 위해 수 십 명의 고수들이 왔을 것 아니에요. 보세요. 어머니의 딸인 저의 춘풍지회를......”

“..........”

방계축출. 남궁세가의 일원이라면 잘 알고 있는 사실이다. 단순히 새 가주의 새로운 집권을 위해서만 이뤄지는 것이 아니다. 여식의 경우 정략결혼으로 이용해 집안의 힘을 든든하게 만드는 것이 그 목적이다. 남궁 이화 자신도 그리 하여 춘풍지회를 열고 제갈세가에 시집을 갔다. 하지만 딸아이의 춘풍지회는 자신과 너무나 달랐다.

============================ 작품 후기 ============================

2012년 9월 2일 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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