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화산의협-40화 (40/262)

<-- 40 회: 제자. -->

남궁이라 불리지만 결국엔 제갈세가의 딸이다.

중화는 부계혈족(父系血族)을 중시하며 부모가 자신을 낳으면 그 아이는 아버지의 성을 따른다. 비록 남궁이라 불리지만 자신의 딸은 남궁의 딸이 아닌 것이다. 하지만 18년 전 그렇게 나와 버린 제갈세가다. 이제서 제갈세가의 도움을 받을 염치가 없었다.

“소화야.....”

“와아~~~~~”

남궁 이화가 소화의 손을 잡으려는 그때 제 1 시합이 시작되면서 사람들의 함성소리에 목소리가 묻혔다.

“제 1 시합! 서쪽 남궁세가 출신의 충!”

충의 이름이 총관에 의해 호명되자 사람들은 이번 대회 최연소 참가자에게 엄청난 환호를 보내주었다.

“잘 싸워라 꼬마야!”

“어린놈이 벌써부터 미인을 알아보는 구나!”

“용기가 장군감이구나. 응원하겠다!”

약간의 약자에 대한 흥미성 응원에 불과하지만 그것은 정말 예상외의 반응이었고 긴장을 한 충에게 힘이 돼주었다. 그리고 그런 충을 향해 봉명공과 무덕 무종은 두 손 모아 간절히 기도했다.

“나무아비타불! 미륵이시여 구원하옵소서.”

“인공형님! 충은 우리 화산파기 때문에 부처에게 빌게 아니라. 원시천존께 빌어야 합니다.”

“그런 거야. 아무렴 어때 부처님께도 빌고 원시천존께도 빌면 좋은 거지! 난 옥황상제께 빌겠어. 세 분 중 한분은 기도를 들어주시겠지.”

“아이참! 이럴 때 오라버니는 어디 있는 거야!”

혜아는 안절부절 어쩔 줄을 몰라 했고 무풍대로부터 들어오는 소식은 전혀 없었다. 이렇게 되자 혜아도 세 사람처럼 무작정 충의 승전을 기도했다.

“제발! 제발 이겨줘. 소화를 위해.”

시합이 시작되자 역시나 물갈이를 위해 황보세가에 고용된 사람답게 그 검에 상대를 존중하거나 배려하는 마음은 없었다. 단순에 목을 베려 검을 휘둘렀고 초식 하나 하나가 노골적이었다. 뛰어난 동체시력을 덕을 보며 자구의 검을 피한 충은 제갈 사혁이 가르쳐준 대로 종아리 안쪽으로 발을 걷어찼다.

“!”

그러자 자구로부터 반응이 왔고 충은 자신의 공격이 먹혀들어갔다는 사실에 자신감을 얻었다.

“어린놈이 감히!”

팔방풍우(八方風雨).

자구 역시 삼류긴 하나 무사였다. 팔방풍우의 횡섬으로 충의 팔을 베어냈다.

“큭!”

하지만 충의 단단한 육신은 자구의 검에 상처만 입을 뿐 팔을 취하지 못하게 했다.

검에 베이자 겁이 났지만 충은 산에서 사냥을 하며 들짐승이 물고 할퀸 것들을 떠올리며 감정을 다스렸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검을 든 자구의 기세는 멈출 줄 몰랐다.

검을 피한 것도 아주 극 초반이었다. 충은 더 이상 검을 피하지 못했다. 두 팔을 들어 검을 막는 것에만 급급할 뿐 하지만 이 순간 제갈 사혁의 충고가 떠올랐다.

(익숙해지면 아무것도 아니다. 주먹에 맞는 것도 검에 베이는 것도.)

제갈 사혁이 자신의 몸을 두들겨 패며 몸을 만들어줄 때마다 해준 말이었다.

(검에 베이는 것도 익숙해지면.....)

“별거 아니야!”

그 순간 충은 자구가 조금 더 강하게 검을 휘두르기 위해 팔을 높이 든 순간 기본 보법인 반보를 활용해 자구에게 다가가 자구의 오른 쪽 팔꿈치를 손바닥으로 쳤다. 그러자 내려치기 위해 팔을 위로 들었던 자구의 팔을 손쉽게 꺾어 자구의 검을 봉쇄하고 왼손으로 자구의 심장을 향해 장타를 날릴 수 있었다.

“크악!”

자구가 뒤로 몇 발자국 물러나자 지면을 박차며 공중으로 뛰어 올라 자구의 관자놀이를 두 주먹으로 후려쳤다.

“소림오권 호아구(虎牙口)군.”

봉명공이 주먹을 불끈 쥐자 그 순간 자구가 코에서 피를 흘리며 쓰러지고 온몸에 자잘한 검상을 입은 충이 무릎을 꿇은 채 가파른 숨을 들이쉬었다.

“허.... 헉........”

대회장은 조용했고 그 순간 누군가 외쳤다.

“남자는 역시 한방 멋지다!”

그리고 그 응원이 기폭제가 되어 사람들의 함성소리가 울려 퍼졌다. 승자를 외치는 총관의 목소리도 묻어버릴 정도로 거대한 함성이

“이겼다.”

그제야 자신이 이겼다는 사실을 깨달은 충은 자잘하게 상처가 난 자신의 주먹을 감싸며 혼자만의 작은 기쁨을 누렸다.

“앞으로 두 번.”

남궁세가의 식솔들이 자리한 귀빈석을 바라보던 충은 조용히 눈을 감았다.

언제나 멀게만 느껴졌던 위치였는데 오늘은 어쩐지 뻗으면 닿을 것 같았다.

“사부. 저 욕심 부려도 되는 거죠?”

겨우 겨우 몸을 움직여 대기실로 들어온 충은 그대로 바닥에 누워버렸다. 그러자 대기하고 있던 의원들이 충의 몸을 살폈다.

“지혈을 서두르게.”

“몸에 열이 많으니 얼음을 가져오게!”

의원 둘이 충을 돌보자 이를 본 제갈 사혁은 조용히 고개를 숙였다.

“소가주.”

“말하라.”

“흑비(黑秕)라 불리는 자로 광동출신입니다. 황보세가와의 결착점은 보이지 않아 신분에 걸릴 것은 없습니다. 강호에 알려지지 않은 삼류 낭인으로 전혀 걸릴 것도 없으며 그자에게 고향에서 농사지을 땅과 돈을 쥐어주었더니 순순히 함구해줄 것을 약속했습니다.”

흑비라는 자에 대해 듣고 있던 제갈 사혁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쓰고 있던 갓을 눌러 썼다. 지금 제갈 사혁의 행색은 화장실에서 시비가 붙었던 그 흑비의 모습이었다.

“수고했다. 너의 기지 덕에 일이 쉽게 풀리는 구나.”

“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

물갈이를 위해 잠입했던 무풍대 대원이 본선 진출자인 흑비를 알아본 것이 참으로 다행이었다. 어차피 이번 대회에 참가한 어중이떠중이들은 돈이 목적이다. 그러니 그 돈을 쥐어주면 일 처리도 쉬웠다.

(그런데 왜 하필 비를 써도 쭉정이 비(秕)야.)

치료를 받고 잠이 든 충은 참으로 태평했다. 그리고 그 모습을 본 제갈 사혁은 자신도 모르게 입 꼬리를 올렸다.

“와아~~~~~~~~~”

“!”

커다란 함성소리에 잠에서 깬 충은 급히 소리가 들린 대회장 쪽으로 달려갔다. 그런데 그곳에 펼쳐진 광경은 실로 놀라운 것이었다.

“흐.... 흑비 승.”

다름 아닌 황보세가의 황보 환이 대회장 바닥에 피를 흘리고 쓰러진 것이다. 그 난투가 얼마나 대단했는지 대회장 대리석이 다 박살이 나버렸다.

내심 이처럼 무자비한 경기를 원했던 이들도 상당수라 반응은 대단했지만 그 역충격은 남궁세가의 몫이었다.

“어찌된 일이냐? 황보세가의 자제가 지다니!”

“저도 보았습니다.”

남궁 백과 남궁 연철 또한 생각지도 못한 이변이 발생하자 입을 다물지 못했다. 하지만 한 집안의 가주인 남궁 연철은 냉정하게 상황을 파악했다.

“아버님. 저자가 황보세가의 황보 환보다 더 뛰어난 자라는 건 확실합니다. 그는 뛰어난 무림인입니다.”

어차피 황보세가와 정략결혼이 틀어진 이상 춘풍지회 본연의 의미인 뛰어난 무림인을 남궁세가의 여식과 짝을 지어준다는 취지를 살려도 남궁세가로서는 손해 볼 것이 없음을 강조했다.

“황보세가에서도 이번 일에 큰소리치지 못할 겁니다. 그 역시 방계니까요.”

어차피 황보 환도 황보세가의 방계다. 황보세가로부터 뒤끝이 있을 리 만무했다. 한편 이를 옆에서 조용히 듣고 있던 남궁 선중은 달랐다.

(그래도 황보세가인데 일개 낭인이.... 그야말로 호각.)

총 서른여섯 번의 공방이 있었고 둘의 공격은 비등비등했다.

경기가 끝난 흑비는 부축을 받으며 대기실로 향했다.

“아이쿠 괜찮으십니까?”

과장된 몸짓으로 건장한 체격의 남자가 흑비를 부축하자 대회 운영을 주도하는 남궁세가의 하인들은 남자에게 흑비를 맡기고 대기실을 나갔다.

“하아~ 일부러 호각인 척 하는 것도 힘드네.”

뒤집어 쓴 천조가리를 벗자 흑비 제갈 사혁을 부축했던 남자는 무릎을 꿇었다.

“소가주. 여기 말씀하신 물건입니다.”

좀 전까지 제갈 사혁을 부축했던 건장한 체격의 사내는 무풍대 대원이었고 그의 손에는 제갈 사혁의 곰방대가 들려 있었다.

“이제 어찌하실 생각이십니까?”

“그래도 동생이잖아. 내가 우승하면 정체를 밝히고 무효화하면 되지.”

“너무 유치하지 않습니까?”

내심 머릿속에 그려놓은 최선의 방법이었는데 부하 그것도 집안의 가신에게 그런 소리를 듣자 제갈 사혁은 자존심이 상했다.

“그럼 뭐 넌 좋은 생각이라도 있냐?”

“충을 우승시켜서 두 사람을 맺어주면....”

그 말도 일리가 있긴 하지만 거기엔 조금 심각한 문제가 있었다.

“충을 남궁세가와 다시 엮이게 할 수는 없다.”

충이 우승하면 남궁세가와 어떻게든 엮이게 된다. 그건 절대 용납할 수 없었다. 엮이지 않게 하려면 화산파의 이름을 빌어야 하는데 하지만 그것도 문제가 있었다.

“화산파는.....”

그렇다고 충을 다음 항렬에 넣을 수는 없었다.

과거에도 이미 화산파의 후계자가 된 제갈 사혁이지만 그것은 대사형의 지병으로 인한 죽음과 여러 요소가 작용해서다. 제자를 두게 되면 다른 사숙들이 제갈 사혁을 더 눈여겨보고 과거보다 일찍 후계로 낙점할 가능성이 있었다. 사숙들은 대사형 무원이 오래살 수 없는 몸임을 알고 있다. 그러나 대사형이 살아있는 동안 후계남점은 아니 될 말이다.

화산파는 둘째인 제갈 사혁이 밑에서 사제들을 끌어주고 사제들은 그런 제갈 사혁을 따른다. 그리고 위에서는 제갈 사혁이 대사형을 존경함으로서 밑에 있는 사제들이 무원에게는 존경을 제갈 사혁에게는 우애를 표하며 탄탄하게 형제애로 묶여있다. 그러니 화산파를 위해서도 충을 다음 항렬에 포함 시킬 수 없었다. 지금에서 생각해보면 제자를 둔 것은 참으로 경솔한 행동이었다.

“유치하든 뭐하든 일단 내가 우승해야겠다.”

그것 말고 현재로선 달리 방법이 없었다.

충의 두 번째 시합은 그야말로 끔찍했다. 상대는 둔기를 사용하는데 엄청난 거한이었다.

“으얏!”

충은 처음에 발을 움직여 둔기를 피했지만 엄청난 길이를 이용한 타법 때문에 움직이면 족족 쇠방망이의 무자비한 공격에 당할 수밖에 없었다.

그게 엄청난 힘으로 둔기를 휘두르자 그 통증은 고스란히 충의 몫이 되었고 이를 본 제갈 사혁은 자신도 모르게 주먹을 꽉 쥐었다.

(이 멍청한 녀석아! 네 놈의 동체시력은 축복이란 말이다! 보고 피해!)

하지만 이런 제갈 사혁의 재촉에도 불과하고 충은 거대한 둔기에 모조리 맞고 있었다.

(망할!)

12월의 눈보라처럼 몰아치는 둔기의 난폭함은 충을 점점 지치게 만들었다. 이미 눈으로 볼 수 있는 적의 공격도 몸이 따라주지 않아 피할 수 없음을 알고 있는 충은 포기하려했다. 어차피 스승도 우승은 불가능하다 하셨으니 이쯤에서 포기해도......

(충은 내가 시집간다니까. 좋아?)

“!”

(좋지 않을까요? 주인어른께서 정해준 낭군님이시잖아요. 분명 훌륭한 분일 거예요.)

그때였다. 갑자기 소화와의 대화가 떠올랐고 그 순간 황보 환이 떠올랐다. 충은 그런 자에게 소화를 시집보낼 수 없었다.

(파강권이다.)

그때였다. 불연 듯 스승이 일격에 적을 제압하는 살초라며 가르쳐준 외가권법이 떠올랐다.

온 몸에 기를 자연스럽게 주먹 끝으로 모아 상대의 몸에 주먹이 닿기 전에 기를 폭발시킨다. 이것이!

(파강권!)

그 순간 충은 둔기에 머리를 맞으며 동시에 파강권의 일격을 상대의 가슴에 때려 넣었다. 그러자 충의 두 배에 달하는 거대한 둔기가 땅에 떨어지고 충보다 먼저 상대가 무릎을 꿇었다.

충의 승리가 확실시 되어진 순간이었다.

“와아!”

“꼬마가 아주 제법인데!”

사람들의 함성소리를 들은 충은 그대로 연무장 위에 대(大)자로 뻗었다.

(아... 맞다. 그 사람은 탈락했구나.)

그때서야 충은 황보 환이 탈락했다는 사실을 깨닫고 편히 눈을 감을 수 있었다.

제갈 사혁이 고개를 까닥 거리자 이를 본 무풍대 대원은 남궁세가의 하인보다 더 빨리 충을 데려와 서둘러 내가요상술을 펼쳐 충을 치료해주었다.

“어떠냐?”

“괜찮습니다. 충격이 심하지만 몸이 워낙 튼튼해서 금방 일어날 겁니다. 그런데 신기한 것이....”

“무엇이냐?”

“의식이 없을 텐데도 일주천을 하고 있습니다.”

“!”

의식이 없을 텐데 내공을 혈액처럼 온몸에 순환시키는 일주천을 행하고 있다니 어찌된 것일까?

분명 이전 시합까지만 해도 이는 불가능했다. 그런데 이게 어떻게 된 일인가?

“설마 그 무식한 둔기가 이 녀석의 뻣뻣한 혈관을 매질해주어 부드러워 진건가?”

간혹 강호에서는 매질을 해 혈관을 뚫어내는 어처구니없는 기행도 있다하지만 실제로 보니 어이가 없었다.

============================ 작품 후기 ============================

2012년 9월 2일 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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