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화산의협-42화 (42/262)

<-- 42 회: 제자. -->

충이 또 다시 주먹을 휘두르자 제갈 사혁은 사력을 다해 충의 주먹을 막은 후 충의 미간에 주먹을 날렸다. 그러자 충의 코에서 코피가 나기 시작했다.

“방어는 또 다른 공격이다. 명심하도록.”

제갈 사혁은 결투를 한다기보다 수업을 하고 있었다. 또 다시 멧돼지처럼 충이 달려오자 옆으로 살짝 피한 제갈 사혁은 충의 등을 발로 찼다.

“공격이 너무 정직해서야 누가 나 때리시오~ 하고 맞아줄 것 같으냐?”

그렇게 수십 번 충의 문제점을 지적하자 점점 충의 공격에는 부족한 점들이 채워지기 시작했다.

바람을 가르는 소리와 함께 복부를 노리고 들어오는 왼 주먹을 제갈 사혁이 막아내자 충은 재빨리 주먹을 거두고 오른 발로 제갈 사혁의 정강이를 걷어찼다. 정강이를 맞고 제갈 사혁이 잠시 주춤하는 사이 시야의 사각으로 귀를 향해 주먹이 날아왔고 제갈 사혁의 귀에서는 이명이 들리기 시작했다. 노리고 한 짓인지는 모르지만 제갈 사혁은 그런 충이 대견스러웠다.

(제법이구나.)

이미 분노로 인해 제정신이 아니지만 상대의 오감을 마비시켜 공방의 우위를 점한 것은 충이 제갈 사혁이 가르쳐준 대로 잘 따르고 있다는 증거였다. 하지만 역시 무공으로서의 묘리가 없는 권각술의 한계는 여기까지

“아직 부족해. 모든 주먹에 발경을 펼쳐라.”

반보로 충의 주먹을 피한 제갈 사혁은 철산고를 펼치며 충과의 거리를 벌렸다. 그러자 발경을 펼치라는 말을 의식했는지 충은 내공을 운용하며 제갈 사혁을 향해 미친 듯이 달렸다.

“저건?”

저건 분명 자세는 다르지만 파강권이었다.

“질 수 없어! 질 수 없어! 질 수 없단 말이야!”

“넌 앞으로 강해질 거다. 그리고 네가 소망하는 모든 걸 손에 넣겠지.”

충의 파강권이 제갈 사혁과 불과 다섯 보도 되지 않은 거리까지 당도하자 그 순간 제갈 사혁은 자세를 잡고 주먹을 날렸다.

“그래..... 이것이 파강권이다!”

제갈 사혁의 주먹과 충의 주먹이 충돌하자 엄청난 기의 폭풍이 몰아치며 연무장을 아수라장으로 만들었다.

온몸이 칼로 베인 듯 보이는 상처를 입은 충은 정신을 잃고 실 끊어진 인형 마냥 쓰러지고 말았다.

춘풍지회는 흑비로 분한 제갈 사혁의 우승이 확실시 되었지만 그때 심판을 겸하고 있던 총관이 정신을 차리고 외쳤다.

“흑비가 시합 중 연무장 밖으로 떨어졌으니 충의 장외 승이오.”

장외 승이라니? 그 말을 들은 제갈 사혁도 아차 하는 마음이 들었다. 분명 폭류신공을 발현한 충의 첫 일격을 맞고 연무장 밖으로 나가떨어진 것은 사실이었다.

(이런!)

흑비로 분해 춘풍지회를 참가한 것은 좋았으니 마무리가 어설펐다. 내심 폭류신공을 사용한 충이 어느 정도인지 가늠해보려 첫 일격을 허용해주었는데 장외를 전혀 생각하지 못한 것이다

.

“잠깐!”

바로 그 순간 연무장에 먹이를 낚아채는 매의 움직임과 같이 재빠르게 남궁 백이 들어왔다. 그것도 검을 뽑아든 채 말이다.

“태상 가주.”

총관이 무릎을 꿇자 모든 이들의 시선이 남궁세가의 태상 가주 남궁 백에게 향했다.

“충의 우승은 인정한다. 하지만 충은 남궁세가의 하인이다. 주인으로서 이 아이가 무공을 익히지 않았음을 나는 안다!”

엄청난 내공으로 연무장에 있는 모든 이들이 들을 수 있도록 소리치는 그의 목소리에는 분노가 녹아있었다.

“그 비정상적인 무공의 근원은 알 수 없으니 필시 마공이 분명하다! 강호의 동도들이여! 정파의 신성한 무림대회에서 마공이라니 있을 수 있는 일인가?”

처음 보면 대뜸 마공이라니 분명 속성으로 강해졌다는 특면과 충의 그 비정상적인 행동으로 인해 보인 모습은 분명 마공처럼 보이겠지만 분명 이것은 화산파가 근래에 창안하고 부작용으로 인해 버린 정파의 무공이다.

“나는 남궁세가의 태상가주이자 이 아이의 주인으로서 이 아이의 우승을 허락지 못한다!”

“그게 무슨!”

“한 가지만 묻겠소.”

그때였다. 제갈 사혁이 따지려 들자 남궁 백의 말을 가로 막은 것은 제갈 사혁이 아닌 어떤 노년의 남자였다. 그는 관중석에서 연무장까지 뛰어왔는데 그 경공 또한 남궁 백에 전혀 밀리지 않는 것이었다.

“무엇이냐?”

“이 아이가 어찌하여 남궁선배의 것이오?”

어째서 남궁세가의 것이냐는 질문에 남궁 백은 당연하다는 듯 말했다.

“이 아이의 증조부가 남궁세가에 역모의 죄를 지어 이 아이의 가문이 남궁가문을 대대로 섬기는 노비가 되었다.”

증조부 내심 그 말이 안 나오면 어쩌나 싶었다.

“여러분 들으셨소? 증조부라 하였소. 황실이 아닌 일개 집안으로서 어찌 노비가 3대를 간단 말이오!”

그 말이 연무장에 울려 퍼지자 너도 나도 동조했다.

“맞아.”

“나라에 죄를 진 게 아니잖아.”

“황실이 아닌 그 어떠한 곳도 그리 할 수는 없는 법이지.”

사람들이 동조하자 남궁 백은 소리쳤다.

“좋다. 하지만 노비가 아니라 하더라도 사악한 마공을 익힌 자다.”

노비에서 이제는 사악한 마공을 익힌 자가 되어버리자 이를 듣고 있던 제갈 사혁은 어이가 없었다. 폭류신공이 사악한 마공? 분명 내상을 입히는 한도 내에서는 충분히 그 부작용은 사악하지만 마공은 아니다.

“마공이라 하셨소?”

“그렇다.”

남궁 백이 확신에 찬 듯 말하자 남자는 쓰고 있던 갓을 벗었다. 그러자 천으로 눈을 가린 특이한 얼굴이 드러냈다.

“그대의 제자는 마공을 익혔습니까?”

다름 아닌 제갈 사혁 아니 흑비를 보며 그가 말하자 순간 제갈 사혁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제갈 사혁이 흑비인 것은 둘째치더라도 충이 제자인 것은 어떻게 알았단 말인가?

“뭐라! 충이 흑비의 제자란 말이냐?”

“그렇소. 남궁 선배.”

“뭐하느냐! 흑비 또한 사악한 마공을 익힌 자!”

남궁 백의 벼락처럼 내리치는 외침에 창룡검대(蒼龍劍袋)가 그 모습을 드러냈다. 그리고 창룡검대가 충을 노리려는 그때 창룡검대의 열다섯 자루의 검이 충의 앞을 가로막은 사내의 왼손에 모두 쥐어졌다. 그야말로 신묘한 착검(着劍)이었다.

“남궁 선배. 그 말 후회하게 될 것이오.”

남자의 그 말에 남궁 백은 미간을 찡그렸다. 그리고 곧 노년의 남자는 다른 한손을 높이 뻗었다. 그러자 춘풍지회 연무장을 중심으로 수십 개의 그림자가 모였다.

“무풍 제 1번대는 들어라. 소가주를 해하려는 자 그대들의 피로 막아라.”

그 말을 들은 제갈 사혁은 깜짝 놀랐다.

(뭐? 제 1번대?)

제 1번대는 한 번도 본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 이유는.....

“소가주 불충 가후(迦厚) 1번대로 복귀하였습니다.”

남자는 뒤 돌아서서 제갈 사혁에게 무릎을 꿇고 이마를 땅에 대며 고개를 숙였다.

1번대 가후라는 말에 제갈 사혁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1번대 대장 가후는 제갈 사혁의 아버지 곁을 지키던 무풍대의 수장이었다. 제갈 사혁의 아버지인 제갈 주원 사망 후 무풍대를 떠나버린 자. 일생 그러니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따로 인사를 드리겠습니다.”

그 말을 끝으로 가후는 자리에서 일어나 제 1번대와 함께 검을 뽑았다.

“소가주를 해하려한 남궁세가의 죄! 제갈세가는 이를 절대 가벼히 넘어갈 수 없소!”

제갈세가라는 말에 남궁 백은 식은땀을 흘렸다. 제갈세가라는 이름이 무서워서가 아니다. 제갈세가 그리고 소가주라는 말은 곧 자신의 외손자라는 말이 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 아이가!”

“그렇소. 남궁 선배. 제갈세가의 소가주이신 사혁 도련님이시오.”

“..........”

가후를 통해 흑비의 정체가 제갈 사혁임을 안 남궁 백은 조용히 검을 거두었다.

“창룡대 검을 거두어라.”

태상 가주의 명령에 창룡대는 조용히 검을 거뒀다.

“연무장에 손님들을 돌려 보내시거라.”

그 말을 끝으로 창룡대는 연무장의 사람들을 모두 내보냈다.

“이리 장성한 모습은 처음 보는 구나.”

남궁세가에 단 한 번도 발 걸음하지 않았으니 처음 본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처음 뵙겠습니다. 그리고 웬만하면 보고 싶지 않았습니다.”

이 아이의 말투에 가시가 있음을 그리고 그 이유를 모를 리 없었다.

“소가주. 먼저 해결해야 할 일이 있기에 잠시 실례를 범하겠습니다.”

그때 혜아를 따라온 직후 여태까지 모습을 보이지 않았던 무풍 3번대 대장 료장이 모습을 드러냈다.

“가주께서 보내신 전언이시오. 현 가주이신 남궁 연철 대협께서는 들어주시길 바라오.”

태상 가주라 불리는 남궁 백이 건재하지만 현재 세가의 모든 일을 처리하고 승인하는 것은 전적으로 현 가주인 남궁 연철의 몫이었다.

품에서 서신을 꺼낸 료장은 제갈세가의 뜻이 남긴 서신을 읽었다.

“제갈세가의 가주로서 질녀의 처우를 외가에 맡기고 그 성씨 또한 제갈이 아닌 남궁으로 불리는 것에 침묵한 것은 한때 제갈세가의 사람이었던 아우의 처에 대한 그리고 아우를 지키지 못한 죄 그리고 그것에 대한 죄책감 때문이었소. 하지만 중화는 부계중심의 사회임을 말하는바 성년이 되는 질녀의 신변에 대해 더 이상 양보할 수 없음을 밝히며 더욱이 혼례에 관해서 외가인 남궁세가가 친가의 허락 없이 행하는 일련의 행동에 대해 결코 가벼이 넘어갈 수 없소. 제갈세가 가주 위 제갈 민.”

성년이 되었으니 더 이상 소화에 대한 신변 처우를 남궁세가에게 맡기지 않겠다는 뜻이었다. 이를 들은 제갈 사혁은 고개를 갸우뚱 거렸다.

(백부께서 이런 글 따위 써주실 리 없다. 뭐지.... 뭐가 백부님을 움직인 거지?)

그 순간 제갈 사혁은 한 가지 이유를 떠올릴 수 있었다.

지금 자신이 여기 와 있지 않은가?

혹 자신이 이곳에 온 이유가 소화의 춘풍지회를 막기 위해서다. 라고 백부께서 생각하셨다면

(료장이 움직인 걸로 봐선 혜아 고것이 머리를 썼구나.)

화산파 장문진인 그리고 안휘성으로 온 제갈 사혁과 조금 늦긴 했지만 도착한 백부의 서신.

모든 것이 혜아의 노림수라면 꽤 골치 아팠다. 여자는 요물이라더니 고 귀엽기만한 것이 이런 악랄한 수를 둘 줄 누가 알았단 말인가?

“1번대.”

“예 소가주!”

“물러나라.”

“하오나.”

“나를 헤하려는 자가 여기 누가 있더냐?”

미우나 고우나 외가다.

고개를 숙인 가후는 충을 데리고 먼지하나 일으키지 않고 연무장에서 사라졌다.

연무장에 남은 이들은 남궁세가 식솔과 창룡대 그리고 제갈 사혁과 연무장에서 아직까지 이를 지켜보고 있는 제갈 사혁의 일행들뿐이었다.

“들으셨으리라. 믿습니다. 외조부. 외숙.”

굉장히 낯선 호칭이었지만 제갈 사혁은 제갈세가의 일원으로서 할 말을 하기 시작했다.

“소화 그 아이의 처우는 이 날 이후로 제갈세가에서 맡겠습니다.”

어차피 방계축출이니 뭐니 시작된 이상 남궁세가에서 계륵과 같은 존재가 되었다.

“그는 아니 될 말이다.”

하지만 그것은 남궁세가의 일이고 그 아이의 외조부인 남궁 백의 사정은 달랐다.

“고집 피우시지 마시죠. 더 복잡해질 뿐입니다.”

남궁 백에게는 외손녀였다. 비록 손자를 위해 방계축출을 행하였지만 황보세가에 시집보내면 그래도 잘 살 것이라 생각했다.

“이번 춘풍지회가 잘 못 돌아갔다는 건 아셔야죠.”

“너의 어미도 제갈세가에서 잘 살았다.”

어미라는 말에 제갈 사혁은 미간을 찡그렸다.

============================ 작품 후기 ============================

2012년 9월 2일 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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