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화산의협-45화 (45/262)

<-- 45 회: 불의를 보고 참는 건 중화 10대 덕목이다. -->

이왕 이렇게 된 거 제갈 사혁은 동생에게 세상 물정이란 걸 가르쳐줄 셈이었다. 미움 받더라도 좋았다. 가르칠 수 있다면 가르치는 수밖에

“다 그렇게 살아. 열심히 돈을 갚고 미래를 꿈꾸는 사람이 있는가하면 갚지 못해서 몸으로 때우는 사람도 많아.”

“그 여자는 갚지 못하니.....”

“갚지 못하니까. 앞으로 또 건달들에게 시달리겠지.”

“네?”

네? 라니 어쩜 이리도 순진하고 철이 없을까?

“네가 한 일은 고작 동네 건달 몇 놈 손봐준 것뿐이야. 네가 빚을 갚아준 게 아니잖아.”

“그럼 당장 가서 빚을 갚아주겠어요.”

정말 대책이 없었다. 다른 가문의 아가씨들은 오만방자해서 대책이 없는데 혜아는 다른 의미에서 오만방자했다.

“네가 갚아주면? 그걸로 끝이냐? 그럼 앞으로 그런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네가 대신 돈을 갚아주겠구나?”

이 아이의 성격이라면 대답은 간단했다. 그럴 거예요! 라고 말이다. 하지만 혜아는 입을 굳게 다물었다. 영특한 아이라서 그것이 근본적으로 크게 잘못된 해답이란 사실을 눈치 챘기 때문이다.

“만약 어린 아이들이 그러한 상황에 처해졌다면 나는 돕는다. 무슨 일이 있어도 돕는다. 아이들은 책임 질 수 있는 힘이 없으니까. 하지만 성인은 달라. 말 하나 하나 행동 하나 하나 전부 홀로 책임져야 해. 스스로 판단하고 자신이 한 일에 책임을 진다. 그게 어른이다. 몸을 팔아서라도 자신이 한 일을 책임 질 수 있다면 책임져야지.”

“하지만 사부 그거와 이거는 다르잖아요. 어째서 그런 명령을 하신 거예요?”

가만히 듣기만 하던 이신이 제갈 사혁에게 무풍대의 일을 묻자 제갈 사혁은 새우볶음 하나를 입에 넣었다.

“혜아가 곤죽을 만들어버린 건달들이 어떻게 할 것 같냐?”

“네?”

“아마도 혜아가 무림인이라는 사실을 알았을 테니 혜아를 찾아내 복수를 하진 못하겠지 그럼 그 화는 도대체 어떻게 삭힐까?”

화를 삭히다니 그게 무슨?

“삭힐 리가 없지 건달인데~ 분를 삭히면 그게 건달인가? 성인군자지. 나도 화나면 못 참아. 물불 안 가려. 당연하잖아. 그러니 어떡해? 그 떡 파는 아가씨한테 화풀이를 하겠지?”

건들거리며 대수롭지 않게 말하지만 하나하나 맞는 말이었다.

“돕고 살지 말라는 뜻이 아니야. 타인의 생명을 구하는 일 이외의 행동을 하지 마. 세상사는 일은 무엇 하나 쉬운 게 없어.”

“하지만 사부 저는 혜아 아가씨의 말이 옳다고 생각해요. 저라면 절대 불의를 선행을! 사부 불의를 참고 선행을 가리는 일 그것은 비겁해요. 사람인 이상 사람으로서 도울 겁니다.”

겁니다. 라니 제갈 사혁은 그런 이신을 보며 입 꼬리를 올렸다. 녀석은 강직하면서 고집스러운 녀석이다. 부러질지언정 휘어지지 않는다. 그런 면에서는 자신의 사제인 무덕과 같았다.

“맞아요. 비겁해요. 앞으로도 그런 일이 있으면 전 또 다시 방금 전과 같은 일을 할.....”

“알았다. 알았으니 더는 말하지 않아도 돼. 가봐. 난 어디.... 놀러나 가볼 테니.”

“네?”

“오라버니?”

아이들을 남겨둔 채 제갈 사혁은 저자거리 구석에 있는 야바위판에 끼어들었다.

“돈 먹고 돈 먹기!”

야바위꾼이 능수능란하게 주사위가 든 컵과 주사위가 없는 컵을 빙빙 돌리면서 눈을 홀리자 사람들은 일사분란하게 눈동자를 굴리며 주사위를 찾기 시작했다.

“여기!”

“그래 여기!”

바람잡이가 먼저 컵을 지정하자 너나 나나 할 것 없이 모두가 같은 컵을 지목했다. 그러자 이를 보고 있던 제갈 사혁도 같은 컵에 돈을 걸었다.

“자아~ 주사위는...... 아이고~ 여기가 아니네!”

야바위꾼이 컵을 열자 그 안에는 주사위가 없었다. 그러자 이를 본 제갈 사혁은 탁자를 발로 차며 행패를 부렸다.

“말도 안 돼! 이건 사기야!”

제갈 사혁이 행패를 부리자 야바위꾼을 지키고 있던 건달들이 제갈 사혁을 제지했다.

“이런 미친놈이 죽고 싶냐?”

건달들이 나타나자 제갈 사혁은 건달들을 일부러 자극했다.

“이런 사기꾼들아. 내 돈 내놔!”

제갈 사혁이 망아지처럼 날뛰자 건달들은 제갈 사혁을 둘러싼 채 제갈 사혁을 구타하기 시작했다.

“내가 오늘 염라대왕 죽음서책에 이름 써주마 개자식아!”

그렇게 한참 제갈 사혁을 구타하던 건달들은 제갈 사혁이 기절한 것을 확인한 뒤 자리를 떠났다.

“어떻게 됐냐?”

건달들이 떠난 것을 확인한 제갈 사혁은 조용히 입을 열었다. 그러자 허공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적룡회(赤龍會)라고 주먹패입니다. 이 근방에는 남궁세가의 위세 때문에 하오문이 없지만 대신 이런 건달조직이 성행하고 있습니다. 고리대금업으로 돈을.....”

“짧고 간결하게 알아야 할 것만.”

“다 죽였습니다.”

어차피 제갈 사혁에게는 하오문이나 건달패나 거기서 거기였다.

“안내해.”

무풍대의 안내를 받고 도착한 곳은 각종 도박이 성행하는 투기장이었다. 투기장 문을 열자 무풍대 대원들의 모습이 보였다.

그들의 검에는 붉은 땀방울이 맺혀있었고 바닥에 널브러져 있는 시체만 서른 구가 넘었다. 한 폭의 지옥도(地獄圖)가 따로 없었지만 제갈 사혁에게는 참으로 익숙한 광경이었다.

“이 놈이 우두머리입니다.”

유일하게 살아 있는 적룡회의 우두머리가 눈에 핏대를 세우며 무릎을 꿇지 않으려 하자 무풍대 대원이 칼집으로 등을 후려쳤다.

“도대체 우리한테 왜 이러는 거요!”

그들로서는 영문도 모른 채 당한 것이니 억울할 수밖에 없었다.

바닥에 주저앉은 제갈 사혁은 말없이 적룡회 우두머리의 뺨을 손으로 토닥토닥 거렸다.

“청룡회(靑龍會)가 너희들이냐?”

“청룡회라니? 우리는 적룡회다!”

적룡회라는 말에 제갈 사혁은 깜짝 놀라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당혹스러운 표정으로 무풍대 대원들에게 소리쳤다.

“뭐야? 청룡회 찾으라니까. 웬 적룡회야?”

제갈 사혁의 반응에 순간 무풍대 대원들은 굳어버렸으나 곧 제갈 사혁의 표정을 읽어내고 침착하게 마음을 바로잡았다.

“미안하다. 살다보면 실수 할 수도 있는 거지. 뭐해 풀어줘.”

적룡회 우두머리는 동공이 풀린 채 부하들의 피가 스며들어 붉게 물든 모래를 두 손에 가득 쥐며 눈물을 흘렸다.

실수라고? 실수라고!

“야 이 개새끼야! 장난 하냐!”

붉게 물든 모래를 자신의 얼굴을 향해 던지자 제갈 사혁은 뚜벅 뚜벅 걸어가 손등으로 적룡회 우두머리의 머리를 후려쳤다. 그러자 적룡회의 우두머리는 기괴하게 머리가 비틀린 채 숨통이 끊어졌다.

“미안하다했잖아. 왜 화를 내고 그래?”

시체로 가득 찬 투기장을 나오자 어느새 날이 저물고 있었다. 피비린내 나는 오후라는 정말 최악이었다.

“이래서 사람은 오지랖이 넓으면 손해 본다니까.”

“뭐야? 저 새끼.”

그때였다. 방금 전까지 야바위 도박을 향하던 야바위꾼과 건달들이 투기장에 나오는 제갈 사혁과 눈이 마주쳤다. 몇 시간 전까지 떡이 되도록 제갈 사혁을 때렸던 건달들은 기세등등한 표정으로 제갈 사혁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어쭈구리~ 이 새끼 봐라. 여기가 어........”

하지만 곧 제갈 사혁의 뒤를 따르며 투기장에서 나온 무풍대 대원들을 본 순간 건달들은 그대로 굳어버린 채 눈만 깜빡거렸다.

“소가주.”

“아니야. 놔둬.”

야바위꾼과 건달들은 아마도 적룡회의 일원인 듯 했지만 목격자따위 있어봐야 그 누구도 이 일을 언급할 수 없었다. 이 세상은 원래 그런 세상이기 때문이다.

“야.”

건달들은 지은 죄가 있기 때문인지 몸을 부들부들 떨며 제갈 사혁과 감히 얼굴도 마주하지 못했다.

“미안하다. 내가 아까 돈을 좀 잃어서 좀 흥분했거든 이거 받고 풀어라.”

금자를 주는 제갈 사혁은 우월감에 가득 차있는 역겨운 미소를 지었지만 그 누구도 그것을 역겹다 말 할 수 없었다.

“뭐야. 안 받아?”

금자를 흔들며 받을 것을 재촉하자 건달은 고개를 숙인 채 덜덜덜 떨리는 손으로 금자를 받아들었다.

“감사합니다.”

제갈 사혁은 건달의 어깨에 있는 먼지를 털어주며 가증스러운 눈웃음을 지었다.

“날도 어두운데 집으로 가. 요즘 나쁜 사람들이 얼마나 무서운데.”

새벽 공기가 뼈를 시리게 할 정도로 추운 날씨에도 봉명공은 잠자리에 들지 않고 홀로 술잔을 기우리고 있었다.

“하아.”

늘 실없이 웃기만 하던 봉명공이지만 오늘따라 그의 얼굴에는 근심이 가득했다.

“청승맞게 뭐하는 짓이냐?”

“제갈 무진.”

봉명공의 처소에 나타난 제갈 사혁은 귀신처럼 봉명공의 술잔을 빼앗아 단숨에 털어 넣었다.

“어떻게 할 셈이냐?”

“무엇이 말이요?”

제갈 사혁은 봉명공의 이런 점이 싫었다. 알면서도 한번은 모른 척을 하고 넘어가는 노인네 같은 대화방식이 말이다.

“나하고 계속 있으면 흑사련의 간자를 하던 소림의 간자를 하던 일에 지장 있을 텐데.”

“............”

두 번째 잔을 들이키며 제갈 사혁은 조용히 봉명공에게 잔을 건네주었다.

“너 사실은 이 일 자체가 하기 싫은 거 아니냐?”

“무슨 소리요?”

봉명공이 이번에도 한번 모른 척을 하자 제갈 사혁은 오히려 실없이 웃었다.

“또 모른 척 하긴 사내자식이 그렇게 자꾸 빼기만 하면 안 된다.”

“.......”

“목적. 목표. 무엇이 되었든 하고자 한다면 해야 한다. 그게 내 방식이야.”

진중하게 말하는 제갈 사혁을 보며 봉명공은 눈동자를 크게 떨며 말했다.

“소승. 실은 마교 장로의 외조카이오.”

“이 새끼는 출생의 비밀도 있고 아주 그냥 없는 게 없구나.”

그 말이 농담이 아님을 알기에 제갈 사혁은 더욱 더 농담조로 답했다.

“그럼 흑사련을 이용해 마교를 치려는 거냐?”

“그런 이유였다면 소승이 굳이 소림을 나갈 리 없잖소.”

그렇다면 소림을 나가면서까지 흑사련의 있어야 할 이유가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소림과 무관함을 알릴 필요가 있었소.”

소림이 봉명공과 무관함을 알아야 한다? 소림과 마교가 도대체 무슨 관계가 있어서? 아니 있긴 있었다. 분명

“마교와 소림의 분쟁은 29년 전이다. 당시 마교는....”

“내가 이야기하겠소.”

당시 소림과 마교의 커다란 무력다툼이 있었는데 이유는 개종(改宗) 때문이었다.

무림에서도 종교 색채가 가장 강한 두 단체였기 때문에 이는 굉장히 민감한 사항이었고 마교에서는 소림을 급습해 학승과 참배객까지 무자비하게 도륙한 일이 있었다. 그리고 그 사건의 중심에 마교의 일원이 개종을 한 사건이 있었다.

“묘운 대사라고 계시오. 내 사숙되시는 분인데 내가 그분을 죽였소.”

“뭐?”

출생의 비밀 이야기를 하다가 개종이 어쩌고 하더니 이번엔 뭐? 기사멸조(欺師滅祖)?

“놀라지 마시오. 정말 내가 사숙을 해한 것은 아니오. 사숙은 자연사하셨소.”

자연사했는데 왜 자기가 죽였다고 말하는 걸까?

“혹시....”

“그렇소. 내가 죽인 것으로 되어 있소. 또 그 사실 또한 비밀로 되어 있소.”

파계 이유가 그런 것이고 또 비밀로 되어 있다?

비밀이 있으면 캐내려는 자가 있을 것이고 캐내려는 자는 봉명공의 흑사련 가입을 탐탁하게 여기지 않는 흑사련의 인물일 것이다. 만약 일부러 감추었던 그 비밀이 밝혀진다면 봉명공은 소림의 적이 되며 확실하게 소림과 연이 끊겼다고 믿게 된다. 비밀을 가장한 거짓일수록 더 진실처럼 느껴질 터.

“너무 복잡해서 정리가 되지 않는다. 그러니까 뭐야. 넌 뭘 하고 싶은데.”

“말해주고 싶은 건 여기까지요.”

말 해주고 싶은 건 여기까지라니 정말 해도 해도

“너 이 새끼 정말 마음에 안 들어.”

“그렇소? 나는 제갈 무진이 좋소만.”

뭔가 말해줄 듯 석연치 않게 말해주지 않은 것이 있다 것은 알고 있지만 그것을 물어볼 수는 없었다. 다만 그 화살촉이 마교로 향하고 있다는 것 정도는 눈감고도 알 수 있었다.

“그래서 어쩔 거냐?”

“이제 제갈 무진과도 헤어져야하지 않겠소. 그대 말대로 하고자 한다면 해야 하니까.”

============================ 작품 후기 ============================

2012년 9월 2일 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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