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2 회: 북해빙궁 -->
“중원에서 이름있다하여 오만방자하다니 네놈들이 진정 죽고 싶은 게로구나.”
“중원이 아니면 그 어느 곳에서 이름을 날리건 의미가 없는 법! 이름 없는 소졸 주제에 대인의 흉내를 내는구나.”
“건방진!”
중년의 남자가 한 번의 도약으로 제갈 사혁의 앞에 당도하자 곧바로 권장을 날렸다. 하지만 이에 당황할 제갈 사혁이 아니었다.
“물러서라!”
사제들을 물린 뒤 제갈 사혁은 중년 남자와 손을 섞었다.
상대가 강하게 밀고 들어오자 제갈 사혁은 부드럽게 상대를 농락하며 모든 공격을 흘려냈다. 정통적인 강약의 대응법이며 동시에 기초가 탄탄해야만 무리 없이 사용할 수 있는 전법이었다.
“미꾸라지 같은 놈!”
주먹 공방에만 상대가 집중하고 있을 때 제갈 사혁은 강하게 상대의 종아리를 걷어찼다.
“윽!”
종아리를 차이고 신음소리를 내뱉자 제갈 사혁은 오른손에 모든 공력을 담아 사내의 어깨를 후려쳤다.
“으아악!”
뼈마디가 기괴하게 부서지는 소리와 함께 중년의 남자는 그대로 쓰러지고 그런 그의 멱살을 잡아채며 제갈 사혁은 비정하리만치 차가운 목소리로 남자의 귀를 찢었다.
“납치한 아이는 어디에 있느냐?”
“난 모른다!”
그 말과 동시에 제갈 사혁은 남자의 멱살을 잡은 채 남자의 얼굴을 그대로 후려쳤다.
“아이는?”
“퉤!”
얼굴에 침을 뱉자 제갈 사혁은 사정없이 남자를 후려쳤다. 한참을 때리고 때리고 또 때렸다. 죽었는지 살았는지 이미 그런 건 중요하지 않았다. 그렇게 한명을 보내고 제갈 사혁은 남아있는 북해빙궁의 무사에게 다가갔다.
“아이는 어디에 있느냐?”
“모른다!”
북해빙궁의 무사답게 그는 강직하게 제갈 사혁에게 검을 들이대며 납치한 무학의 존재를 부정했다.
“아이는 어디에.....”
“모른....”
하지만 그것이 마지막이었다. 제갈 사혁이 상대가 겨눈 검을 의식하지 않은 채 손등을 휘두르자 북해빙궁 무사의 머리를 꺾일 수 없는 각도로 꺾였다. 그리고는 또 다시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옆에 있는 북해빙궁의 무사에게 물었다.
“아이는?”
“모.... 모른다!”
떨리긴 했지만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이번엔 뺨을 후려쳐 목을 꺾어버렸다. 그러더니 갑자기 몸을 돌려 연달아 북해빙궁 무사들을 때리며 질문도 하지 않고 내리 세 명이나 죽여 버렸다. 그리고 마지막 남은 한명에게 다가가 북해빙궁 무사의 복장에 손을 올리더니 피에 절여진 손을 닦았다. 손을 다 닦아낸 제갈 사혁과 눈이 마주치는 순간
“설원동(雪園洞)에 있.......”
제갈 사혁이 무릎으로 관자놀이를 박살내 죽여 버렸다.
“말하면 내가 아냐? 데려다 드리겠습니다. 라고 해야지.”
그때 화산파의 사제들은 생각했다. 저 사람이 우리들의 사형이라서 정말 다행이라고 그리고
(저.... 성격 파탄자!)
반드시 저 융통성 없는 인간으로부터 화산파를 지켜내리라 맹세 했다.
제갈 사혁은 북해빙궁 무사들의 옷 속을 뒤졌다.
북해빙궁처럼 복잡한 곳이라면 분명 지도를 가지고 있을 게 분명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무리 뒤져도 지도는 나오지 않았고 그 순간 제갈 사혁의 이마에는 덥지도 않은데 땀이 맺혔다.
(애들 앞에서 폼 잡으려고 다 죽였는데 지도가 없네....)
어차피 이렇게 된 거 제갈 사혁은 끝까지 밀어붙였다.
“가자.”
“사형 잠시 멈추세요.”
“왜?”
“변복(變服)을 합시다.”
“변복?”
“여기 북해빙궁 무사들의 옷이 많이 있잖습니까.”
북해빙궁 무사들의 옷을 본 제갈 사혁은 고개를 저었다.
“피가 묻었잖아.”
변복을 해도 피가 묻은 게 가장 큰 문제였다.
“피가 많이 묻었지만 싸우다가 이랬다고 하면 되죠. 여기 사매들을 인질로 끌고 가면서 말입니다.”
“너 머리 좋다.”
“...........”
무덕은 차마 이 유리 심장을 가진 사람에게 ‘다른 사람들도 다 이 정도는 생각했을 걸요. 사형만 빼고!’ 라고 사실대로 말할 수 없었다.
무덕의 말대로 복장을 바꾼 뒤 사매들을 줄에 묶어 끌고 가자 곧 다른 북해빙궁 무사들과 마주쳤다.
“인질을 잡았다.”
변복을 한 제갈 사혁이 자연스럽게 인질로 만든 사매들을 보여주자 북해빙궁 무사 몇몇이 다가오더니 갑자기 걸음을 멈췄다.
“너흰 누구냐?”
“야 이씨! 안 통하잖아!”
그 말을 듣는 순간 제갈 사혁은 변복이 통하지 않음을 깨닫고 호황을 뽑아들어 앞에 두 명의 목을 베어버렸다.
“아무래도 북해빙궁은 소수 민족이다보니 외지인을 금방 알아채는 것 같습니다.”
“아이고 잘났다. 그래~ 근데 설원동이 어디냐?”
무덕의 볼을 꼬집으며 제갈 사혁은 유일하게 살아 있는 북해빙궁 무사에게 다가가 어깨에 손을 올렸다. 방금과 같은 실수를 하지 않기 위해 아까 일부러 살려둔 한명이었다.
“넌 알지? 설원동 말이야.”
“설원동은 입교(入敎) 하는 곳입니다.”
“사형 그거 마교 애들이 하는 거잖아요.”
“여기도 사람 사는 동네잖아. 지들 끼리 섬기는 신이 있겠지.”
무종이 머리를 긁적이며 상황이 귀찮게 돌아갔다는 표정을 짓자 옆에 있던 무덕이 북해빙궁 무사의 멱살을 잡았다.
“납치한 아이도 거기에 있는 거냐?”
마교가 입교를 하던 북해빙궁이 세수를 하던 제갈 사혁이 알고 싶은 건 그런 게 아니었다. 누가 무어라 해도 총형설은 무학이라는 이미 선적에 든 도사다. 입교라니 용납할 수 없었다.
북해빙궁 무사의 안내로 설원동에 도착하자 거대한 호수 주위에 백여 명의 아이들이 있었다.
“저기 무학입니다.”
유독 무학만이 북해빙궁 무사가 양 옆에 붙어 있었다.
“데리고 와. 주위 애들 신경 쓰지 마. 무학만 구하면 나머지는 알 봐 아니다!”
“갑자기 뛰어들면 아이들이.....”
“신경 쓰지 마.”
“사형!”
신경 쓰지 마라는 말에 사매들이 반발하자 제갈 사혁은 약간 격양된 목소리로 사매들에게 말했다.
“멍청하게 굴지 마! 죽이라고 안 했어. 신경 쓰지 마라는 거야. 편하게 검 휘둘러.”
아이들은 두 손을 뻗어도 기껏해야 그들의 허벅지에 닿는 정도의 키밖에 되지 않았다. 어차피 아이들을 고의로 다치게 하려는 게 아닌 이상 검이 닿을 일은 없었다.
“출발.”
제갈 사혁의 지시에 첫 번째 침투조가 엄청난 속도로 무학에게 다가갔다. 그러자 기척을 느낀 북해빙궁 무사들은 침투조를 공격했고 동시에 제갈 사혁과 나머지 인원들이 뛰어 들어갔다.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자 아이들은 비명을 지르고 어른들의 몸에 밀려 넘어지고 다치는 등 사고가 잇따랐지만 누구도 멈추지 않았다. 그러나 북해빙궁의 무사들은 날랐다. 아이들이 다칠까봐 무기를 크게 휘두르지 못했는데 이는 화산파에게 좋은 먹잇감이 되었다. 그때 제갈 사혁은 재빨리 무학을 낚아채고 두 손으로 무학의 눈을 가렸다.
(무학. 우리가 왔다. 안심해라.)
“.........”
무학은 제갈 사혁의 목소리를 알아듣고 침착하게 가만히 서있었다.
“무종 항렬 밑에서 3명 그리고 사매들 챙겨서 북해빙궁을 빠져나가라!”
“네 사형.”
무종이 무학을 데리고 떠나려하자 북해빙궁의 무사들이 그 앞을 막았다.
“물러서라!”
백팔식광풍쾌검(百八式狂風快劍).
무종의 검이 순식간에 무사 둘의 사지를 찢어버리자 누구도 쉽사리 무종에게 덤비지 못했다.
“가라. 무종!”
무종이 떠나자 제갈 사혁도 더 이상 신경 쓸 게 없다는 듯 호황을 뽑아들었다.
“이게 무슨 짓이냐!”
“큭!”
그때 젊은 남자들이 설원동에 모습을 드러냈다. 입은 옷이 여태까지의 북해빙궁 무사들과는 확연히 다른 자들이었다.
“너희들은 누구기에 이토록 잔혹한 짓을 한단 말이냐!”
잔혹한 짓? 제갈 사혁은 가소로웠다.
“나는 화산파의 후계자인 무진이다! 북해빙궁은 감히 화산파 장로에게 검을 휘두르고 그 자녀를 납치하였다. 이것은 우리 화산파에 대한 모독이며 도전이다!”
“이런 무례한 놈!”
“그만하라.”
제갈 사혁과 논쟁을 벌이던 젊은 남성을 제지한 이는 다름 아닌 여성이었다.
“나는 북해빙궁의 궁주인 유현승(楡泫承)이다.”
북해빙궁의 궁주.
궁주는 생각보다 젊었다. 또한 여인이었다. 강호무림도 좀처럼 여인을 지도자로 내세우지 않기 때문에 의외라면 의외였다.
“너희가 말한 그 장로와 자녀가 총가의 아들이냐?”
총가라니 사숙을 보고 총가라 말하자 화산파 문도들의 오른 손에 힘이 들어갔다.
“그렇다. 그분의 자제분이시다. 지난 날 감히 화산파로 쳐들어와 그분에게 위해를 가하고 화산파를 더럽힌.....”
“그 아이는 북해빙궁에서 태어난 북해빙궁의 사람이다.”
갑자기 총형설에 출신에 대해 언급하자 제갈 사혁은 인상을 구겼다.
“그 아이를 납치한 이유가 무엇이냐?”
“말하지 않았느냐? 북해빙궁에서 태어난 북해빙궁의 아이다. 우리 북해빙궁의 아이들은 10살이 되는 해에 북해빙궁의 무공을 익힐 수 있는 설정(雪錠)을 가지게 된다. 그리고 확인결과 그 아이는 설정을 가졌다.”
설정이니 뭐니 하는 게 몸에 생겼다고는 하나 이는 아니 될 말이었다.
“우리가 보복해올 줄 몰랐더냐?”
“알고 있었고 준비했다.”
확실히 준비는 단단히 했지만 그것뿐이었다. 영양가 있는 고수는 한명도 없었다.
“혹시 그 아이의 어미가 이곳에서 중요한 사람이냐?”
혹시라도 그런 이유에서라면 화산파까지 쳐들어와 아이를 데려 갈만 했다. 하지만......
“아니다. 북해빙궁의 여인이고 그 아이는 북해의 혈통을 지닌 우리 북해빙궁의 아들이다.”
북해빙궁의 여인. 그 말을 그대로 풀이해보자면 그냥 동네사람이라는 말에 불과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제갈 사혁의 눈이 이전과는 많이 달라져 있었다.
“웃기지 마라. 그 아이 어머니가 북해빙궁 궁주 딸이고 그 아이가 북해빙궁 궁주 손자라 해도 지금 상황을 이해할까 말까인데 뭐? 북해빙궁 여인의 아들?”
제갈 사혁의 목소리는 그 어느 때보다 중저음이었다.
“장난 하냐? 이 개새끼야!”
그리고 터졌다.
============================ 작품 후기 ============================
2012년 10월 5일 수정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