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화산의협-65화 (65/262)

<-- 65 회: 흑요칠마 서율? -->

구파일방과 아무 상관없는 무림맹 사람들은 제갈 사혁과 태린에서 이신과 태린으로 중심이 이동하자 재미있다는 듯 지금 상황을 구경하기에 이르렀다. 반면 제갈 사혁은 태린이라는 아이가 검현군의 제자일 것이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왜냐하면 지난 날 검현군에게는 제자가 없었기 때문이다.

“뭡니까. 저 녀석.”

뭐냐는 말에 사매에 대해 잠시 생각을 하던 청하는 이내 인상을 구겼다.

“검현군 사숙의 제자에요. 그래서 그런지 자존심도 강하고 호승심이 그에 못지않게 대단해요. 저 아이.”

“아시겠지만 이신이 화내는 일은 드뭅니다.”

“알고 있어요.”

“그럼 이신은 제가 알아서 하겠습니다.”

“네?”

그 말과 동시에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다른 누구도 아닌 제갈 사혁이 등 뒤에서 이신을 발로 차버렸기 때문이다.

“갈사 소협!”

청하는 설마 제갈 사혁이 이신을 공격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이신이 식당 벽을 뚫고 날아갈 정도로 무식한 발길질에 의해 의식을 잃자 제갈 사혁은 태린에게 다가갔다.

“청하소저의 사매라는 사실에 감사하고 무당파라는 사실을 자랑스러워해라. 그게 네 목숨을 구했다.”

제갈 사혁과 눈이 마주친 태린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 말을 하는 순간 제갈 사혁은 감성이라고는 찾아 볼 수 없는 살인자의 눈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갈사 소협 이게 무슨 짓이에요!”

청하가 따지고 들자 제갈 사혁은 새끼손가락으로 귓구멍을 후비며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우리 집 애는 몸 하난 튼튼해요. 아빠인 제가 보장합니다. 아주머니~”

“누가 아주머니에요. 도대체 사람이!”

제갈 사혁 나름대로 이 상황을 마무리하려 하고 있다는 걸 알고는 있지만 방금 전 그 공격은 도저히 제자에게 행할 수 있는 그런 차원의 공격이 아니었다.

이신을 어깨에 들쳐 업고 방으로 들어온 제갈 사혁은 이신을 침대에 눕히고는 그 길로 서백호를 잡으러 갈 셈이었다.

“얘는 뭐 몸 하난 튼튼하니까. 이렇게 놔두면 알아서 일어날 테고 어디보자.”

지난 날 북해빙궁 사건 때문에 아무렇게나 풀어헤친 짐을 본 제갈 사혁은 서둘러 싸기 시작했다.

“갈사 소협 들어가도 돼요?”

문 밖에서 청하의 목소리가 들려오자 제갈 사혁은 방문을 열어주었다.

“도대체 어떻게 사람이........ 이건 뭐에요?”

들어오자마자 청하는 방금 전 상식을 벗어난 행동에 대해 나무라려 했고 제갈 사혁은 그런 청하에게 짐을 떠넘겼다.

“잠깐만 들어주세요.”

청하에게 짐을 떠넘긴 제갈 사혁은 가죽신에서 짚신으로 신발을 바꿔 신은 뒤 청하의 품에 있는 짐을 다시 넘겨받았다. 그러더니 그 길로

“아~ 이신 좀 부탁드립니다.”

나가버렸다.

“도대체.....”

그런 제갈 사혁을 보며 청하는 미간을 찡그렸지만 이미 제갈 사혁은 떠나버린 뒤였다.

서백호를 잡기 위해 제갈 사혁은 당초 목적대로 서장을 이용한 신강 침입을 생각했고 서장에 오자마자 상단을 이용해 신분을 위장했다. 신분위장은 생각보다 어렵지 않았다. 쟁자수(諍子手)나 낭인이나 어차피 신분이 명확하지 않는 자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상단 막산(漠山)에 온 걸 환영한다. 우리는 서장 제일의 상단이다. 그만큼 일은 고될 것이나 우리 상단은 노력 그 이상으로 보답한다.”

막산 상단에 들어온 이유는 과거 막산 상단이 무림맹에 공격을 받았기 때문이다. 그 이유는 중원 무림이 마교를 악으로 규정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막산은 마교와 거래를 하는 수많은 상단 중 하나였다.

막산 상단의 쟁자수들은 대부분 그때그때 낭인이나 떠돌이 표사들로 채워진다.

“이봐 거기 이름이 뭐라고 했지?”

표두 한명이 제갈 사혁에게 이름을 묻자 제갈 사혁은 허리를 거의 반으로 접어 고개를 숙였다.

“주원입니다. 나으리.”

아버지의 이름인 제갈 주원에서 이름을 따 가명을 지은 제갈 사혁은 호황 대신 창을 허리에 매고 있었고 얼굴에는 가짜 수염을 붙였다.

“나이는 서른다섯이라는데 생각보다 젊네.”

일전에 양전을 잡으러 갔을 때 호남 하오문과의 거래관계를 잘 유지해서 진짜와 같은 가짜수염을 구할 수 있었다.

“제가 좀 젊다는 소리 자주 듣습니다.”

“준비하게 오늘부터 출발이네.”

마차에 몸을 실은 제갈 사혁은 마차에 오른 뒤 그로부터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원래 낭인들이나 쟁자수들은 서로 서로 떠도는 처지다보니 친해지기 위해 술도 건네고 이야기도 나누는 게 그 바닥의 예의지만 제갈 사혁은 단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다른 쟁자수들에게는 고깝게 보일 수 있었지만 제갈 사혁은 신경 쓰지 않았다. 어차피 신강까지만 가면 그만이기 때문이다.

“이거 드실래요?”

한쪽에서는 어떤 여자가 쟁자수들에게 다가와 다과를 건네고 있었는데 상단에 의해 고용된 시종인 듯 보였다.

(요것 봐라.)

그 여자 시종을 본 순간 제갈 사혁은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다름 아닌 요화(妖花) 서율(曙栗)이었기 때문이다. 못 알아볼 리 없었다. 흡정마 종방영이 포함된 흑요칠마 중 한명이기 때문이다.

(요화라..... 이거 일이 재미있게 돌아가네.)

서백호 일만 아니면 지금 이 자리에서 죽여 버리고 싶지만 흑사련 소속의 요화가 막산 상단에 잠입해 들어왔다는 것은 제갈 사혁과 같은 임무 때문임을 알 수 있었다.

“드시겠어요?”

제갈 사혁의 앞에 다가와 다과를 건네자 제갈 사혁은 미소를 지으며 요화에게 추근거렸다.

“별로 생각이 없습니다. 그보다도 소저는 바다의 진주처럼 참으로 아름답군요.”

“어머~ 대협 농담이 심하세요. 어찌 소녀 같은 여자가.”

사실 요화의 얼굴은 추녀에 가까웠다. 하지만 제갈 사혁이 “알아본 얼굴”이 추녀일 뿐 본래 모습은 굉장한 미인이고 그것을 안 제갈 사혁은 일부러 요화를 알게 모르게 자극했다.

(요화가 할 수 있는 분장은 총 두 가지 뿐인데 노파 아니면 추녀지.)

요화는 전문적인 변장의 명수가 아니기에 변장할 수 있는 모습은 노파와 추녀뿐이다. 특히 지금 하고 있는 저 추녀 얼굴은 제갈 사혁에게 익숙한 얼굴이었다. 바로 저 얼굴을 하고 무림맹의 중간 간부들을 독살했기 때문이다. 요화라는 별호도 그때 얻었다.

(나도 신출내기였을 땐 한동안 저 얼굴이 그려진 초상화를 들고 요화를 쫓아다녔으니까.)

요화는 무공이 뛰어나지는 않았지만 독을 이용한 암살이 특기라서 흑요칠마를 부를 땐 항상 요화를 뜻하는 흑요(黑妖)를 먼저 두고 부르게 됐다.

지금이야 그 중심점인 종방영이 존재하지 않아 흑요칠마 또한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는 게 되어버렸지만 요화의 실력은 대단했다.

“얼굴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내면의 아름다움이 중요한 거죠.”

“농담도 참~”

그렇게 내빼면서 요화는 제갈 사혁의 가슴을 후려쳤고 갑작스러운 기습공격에 당황한 제갈 사혁은 연신 기침을 하기 시작했다.

“자네 주원이라고 했나? 보기보다 영~ 여자 보는 눈이 없구만.”

“그러게 말이여 여자는 자고로 얼굴이 최고여!”

장난삼아 요화를 자극한 했을 뿐인데 역으로 놀림감이 돼버리자 쓴웃음을 삼켰다. 어찌 되었든 요화가 이곳에 나타난 이상 요화의 의도는 알 수 없으나 목적지는 아마도 마교일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마교에 도착할 때까지 아무 일 없을 거라며 마음 놓을 순 없었다. 상대는 누가 무어라 해도 무림맹을 쑥대밭으로 만들었던 독살의 대가.

“여기서부터 휴식 시간을 갖겠다.”

거대한 수레를 두 개를 두고 차례대로 마차에서 내려와 지속적으로 걷기 때문에 상단 일이란 게 쉬운 일은 절대 아니었다. 그리고 그것을 깨달았을 땐 이미 청년은 문어가 되어 있었다.

(젠장 이렇게 힘든 일이인 줄 알았다면 하지 않는 거였는데.)

체력에는 자신 있는 제갈 사혁이었지만 천천히 그리고 오래 걷는 건 영 체질에 맞지 않았다.

땀을 뻘뻘 흘리고 먼지를 뒤집어 쓴 채 땅바닥에 앉아 보리로 만든 주먹밥을 꼭꼭 씹어 먹으며 제갈 사혁은 주위를 살폈다.

“어이~ 주원이 마작 한판 둘란가?”

그때 제갈 사혁과 같은 상단의 쟁자수가 제갈 사혁에게 마작을 권했고 제갈 사혁은 인상을 쓰며 고개를 저었다.

“됐습니다. 누굴 벗겨먹을라고~”

“허이~ 남자가 배짱이 없어서 어디 쓰겠나?”

웃으면서 제갈 사혁을 실없는 사람 취급하던 쟁자수는 이내 다른 사람을 찾으러 떠났고 홀로 보리밥만 씹어 먹던 제갈 사혁은 조용히 생각을 정리했다.

(서백호를 만나려면 무영곡(無影谷)에 가야하는데 말이지.)

일단 신강에 도착하면 서백호가 있는 마교의 하위 문파 무영곡에 가야만 했다. 그렇다고 무영곡에 소속된 무인들과 서백호를 동시에 상대할 수는 없는 노릇 무영곡에 가면 일단 서백호를 며칠 감시하다가 혼자 있을 때를 노려야 했다.

생각 같아서는 무영곡도 서백호도 한꺼번에 때려잡고 싶지만 서백호의 실력이 어느 정도인지 모르는 상태에서 무영곡과 서백호를 동시에 상대할 수는 없었다.

“물드세요.”

“!”

갑자기 요화가 다가오자 제갈 사혁은 허리에 찬 창에 손을 댔다.

“죄송해요..... 하지만 체하실까봐.”

요화의 정체를 알기 때문인지 도저히 요화 앞에서는 쟁자수 주원 노릇을 할 수가 없었다.

“내 뒤에 서지 마라.”

“앞에 있었는데요.”

“...............”

한숨을 쉬며 요화가 건네준 물을 조심스레 건네받은 제갈 사혁은 물을 마시지 않고 자신의 옆에 놔뒀다.

“마시지 않으실 건가요?”

바보 천치가 아닌 이상 요화가 주는 걸 덥석 받아먹는 무림인은 이 세상에 없었다.

“지금은 체기가 올라오지 않아서 괜찮습니다. 나중에 목이 마르면 마시도록 하겠습니다.”

“그럼 그렇게 하세요.”

요화는 별 대수롭지 않게 자리를 떴고 제갈 사혁은 작은 구멍을 판 뒤 구멍에 보리밥을 조금 넣고 물을 부었다. 얼마 후 개미가 보리밥 주위에 시커멓게 들끓기 시작했고 이를 본 후에야 요화가 준 문을 마셨다.

요화가 사리분별 못하고 독살을 일삼진 않을 거라고 머리로는 알고 있지만 편견이란 그런 것이다.

“하아~”

신강에 돌입하게 된 건 그로부터 10여 일이 지난 후였고 제갈 사혁은 슬슬 지루함을 느끼기 시작했다.

요즘 산적이란 산적은 다 죽었는지 강호출두를 한 뒤로는 산적을 만난 적이 없었다. 오다가다 한 놈 걸리면 주머니도 채우고 참 좋은데 말이다.

(오라는 산적은 없고 산에 호랑이만 득실거리잖아.)

그 말과 동시에 제갈 사혁은 우거진 숲 속에 눈길을 한번 주었다.

(우리가 신강에 들어오자마자 호랑이 새끼들이 발정 났나?)

신강의 경계를 넘는 순간부터 일련의 무리들이 막산 상단을 감시하기 시작 했다. 그리고 감시를 한지 정확히 3일 째 되는 날 드디어 호랑이가 모습을 드러냈다.

(어디 사는 놈들인지 그 등짝 좀 보자!)

제갈 사혁이 창대를 부여잡고 놈들을 향해 진부하지만 진솔하게 외쳤다.

“웬 놈들이냐!”

제갈 사혁은 갑자기 습격해 들어오는 일련의 무리들이 마교일 것이라 단정 지은 상태였고 마교와 물자 거래를 하는 막산 상단을 공격하는 마교의 행동에 의문을 가졌다.

“물러서라 버러지들아!”

허리에서 창을 뽑은 순간 거대한 창신은 무자비하게 인간의 몸뚱이를 베어냈다.

============================ 작품 후기 ============================

2012년 10월 5일 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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