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6 회: 흑요칠마 서율? -->
(진정한 검이란 마음속에 있는 것. 베지 못하는 것은 없다.)
손에 들고 있는 것이 설사 창이라 하더라도 그것을 검으로서 휘두르는 순간 이미 그것은 창이 아니라 날이 달린 쇠붙이였다. 검이라는 물건 자체는 제갈 사혁에게 의미가 없었다. 손에 잡힌 모든 것은 상대를 베기 위해 존재하는 물건일 뿐.
“죽어라!”
제갈 사혁이 창을 던지자 날카로운 창은 그들의 살을 찢고 뼈를 부수며 뻗어나갔다.
“크악!”
여기저기서 쟁자수들이 죽어나갔지만 제갈 사혁은 전혀 그들에게 신경 쓰지 않았다. 그들을 구해주어야 할 명목(名目)도 의무(義務)도 없기 때문이다. 눈앞에 있는 적을 죽이는 것만이 무림인의 명목이고 무림인의 의무고 대의명분(大義名分)이었다.
마교의 습격자가 귀신처럼 다가와 검을 휘두르자 그의 손목을 낚아챈 제갈 사혁은 무릎으로 그의 갈빗대를 부러트리고 턱을 후려쳐 목을 부러트렸다. 그리고 그 시체를 방패삼아 더욱 더 깊숙한 사지(死地)로 뛰어들었다.
이 모습을 보고 있던 마교의 검사는 순간 하던 일을 멈추고 제갈 사혁을 뚫어져라 쳐다봤다. 이제 곧 지천명(知天命)에 들어서는 그는 제갈 사혁에게서 무언가를 느낄 수 있었다.
“어째서 우리를 그토록 증오하는가?”
그는 홀로 제갈 사혁에게 질문 했고 제갈 사혁의 악의를 느낄 수 있었다.
비록 먼저 이들을 습격하였다지만 습격 받는 자는 습격하는 자에게 자신을 지키기 위해 검을 휘두를 뿐 절대 상대가 미워서 검을 휘두르지 않는다. 하지만 제갈 사혁은 달랐다. 오직 살의(殺意)와 악의(惡意)뿐이었다.
“어떻게 그런 마음을 가지고 이토록 아름답게 싸울 수 있지?”
그 모습은 그가 추구하는 무림인의 궁극적인 모습이었고 그를 동경(憧憬)하게 됐다.
제갈 사혁이 그에게 다가왔다. 기괴하게 세워진 손날이 가슴을 향해 날아왔고 질긴 살가죽을 찢었다. 그야말로 귀신의 일격!
나와 다르기에 나와 다른 곳에 서 있기 때문에 너희를 죽이는 일에 망설이지 않고 또한 그것이 즐겁다.
제갈 사혁의 주먹은 그에게 말했고 제갈 사혁의 무(武). 그 속에 진리(眞理)는 존재하지 않았다. 오직 끝없이 뻗어나가는 증오(憎惡)뿐.......
“단장님!”
그제야 겨우 사태를 파악한 마교의 습격자들은 모두 제갈 사혁을 향해 검을 겨누었다.
“이놈이 감히 단장님을!”
가소롭기 짝이 없었다. 죽이고자 왔으면서 죽을 것이라 생각하지 못했다니
“죽어라!”
규칙적인 움직임을 보이며 수십 명의 이리떼들이 달려 들어오자 제갈 사혁은 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
복호백열격.
그리고 그 두 주먹은 마치 거대한 폭풍처럼 모든 것을 쓸어버렸다.
“히익~”
유일하게 살아남은 자는 검을 바닥에 버리고 살기위해 뒤돌아서서 도망쳤다.
그의 뺨에는 눈물이 흘러내렸고 그것은 열일곱 이후로 흘리지 않았던 공포에 의한 눈물이었다. 하지만 제갈 사혁은 도망치는 것도 용납하지 않았다. 먹이를 노리는 뱀처럼 팔을 뻗어 그 머리를 사납게 움켜쥐어 땅바닥에 내동댕이쳤다.
“살려줘!”
너무 무서워서 살려주라는 말 밖에 나오지 않았다.
“도망치면 안 되지......... 너희들은 도망치면 안 되잖아! 나를 죽이러 와야지! 나한테 검을 휘둘러야지!”
“살려줘! 살려달란 말이야!”
그는 너무 무서워서 되레 소리를 질렀고 그 말을 듣는 순간 제갈 사혁은 그자를 두 손으로 들어 올려 무릎으로 허리를 찍어 부러트렸다.
자신의 피는 한 방울도 흘리지 않은 채 타인의 피를 뒤집어 쓴 제갈 사혁의 모습에 살아남은 이들은 한기를 느꼈다.
두 주먹에서 피를 뚝뚝 흘리며 막산 상단의 총 책임자에게 다가가자 겁에 질린 그는 제갈 사혁이 아군(我軍)이라는 사실을 되새기며 용기를 내 제갈 사혁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수.... 수고했네.”
“너희는 뭐야?”
“왜 그러는가? 자네.....”
“너희는 왜 멀쩡하지?”
갑작스러운 습격이었다. 그래서 고용된 쟁자수들은 제대로 된 대응도 하지 못하고 모두 죽었다. 하지만 막산의 쟁자수들은 달랐다. 그들의 옷은 너무나도 깨끗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들은 단 한 번도 무기를 뽑지 않았다.
“마교와 짰구나?”
“무..... 무슨 소리인가? 우... 우리는!”
“닥쳐라!”
시체에 꽂혀 있는 검을 뽑아 든 제갈 사혁은 검을 휘둘러 총 책임자의 머리통을 날려버렸다. 그리고 거기에서 멈추지 않고 막산의 쟁자수들을 전부 베기 시작 했다. 벤 흔적도 남기지 않는 평소의 예리한 검술과 달랐다. 마치 날이 붙지 않은 뭉뚝한 무언가로 휘둘러 힘에 의해 살이 찢어진 듯한 검상은 평소 제갈 사혁의 검술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지저분하고 난잡했다.
마부까지 기어이 죽이고 나자 남은 사람이라고는 고용되었던 낭인들 중 유일하게 살아남은 두 사람과 상단행렬에 참가했던 시종 일곱뿐이었다.
그 중에는 요화도 있었다. 요화의 옷에는 피가 묻어 있었는데 그것은 전투에 의한 혈흔(血痕)이었다.
요화를 죽여 버릴까? 생각했지만 지금은 생각할 게 너무 많아 뒤돌아서서 상단이 옮기던 물건을 확인했다. 막산 상단이 옮기던 물건은 대부분 향수나 연지 같은 화장품이나 춘화(春畫) 그리고 악기 같은 오락물이었다. 마교와 거래하는 상단이라기에 뭐 대단한 거라도 있는 줄 알았는데.
“사람 사는 게 다 그렇지 뭐.”
흥미가 없어진 제갈 사혁은 살아남은 쟁자수들을 향해 외쳤다.
“너희들 다 가져.”
이미 쟁자수 주원을 연기할 필요가 없어진 제갈 사혁은 자신보다 한참 나이가 많은 쟁자수들을 향해 하대를 했고 제갈 사혁에게서 위화감을 느낀 쟁자수들은 조용히 고개만 끄덕거렸다. 제갈 사혁은 마교인의 시체를 뒤지기 시작했고 그 중에 가장 멀쩡한 검을 찾아내 허리에 둘렀다.
가까운 숲으로 들어가 나무 그늘에 주저앉은 제갈 사혁은 막산 상단에 대해 생각했다.
“아~ 개새끼들 마교와 짜고..... 그럴려면 뭣 때문에 낭인을 고용한 거야.”
굳이 낭인을 고용해서 상단을 꾸리고 자기들은 피 한 방울 안 흘릴 거면서 일부러 마교에 습격당한 이유가 궁금했다.
“그건 이목을 피하기 위해서예요?”
“!”
여인의 목소리가 들려온 순간 제갈 사혁은 검을 휘둘렀고 건장한 사내의 몸통만한 나무가 베어졌다.
“도대체 무슨 짓이에요!”
“요화 서율. 살려준 것만 해도 감사하게 생각해야지 겁도 없이 여긴 무슨 일이냐?”
“요화요? 누구? 나?”
“그럼 아니야? 흑사련의 요화.....”
“잠깐 당신 무슨 소리야! 나는 정파인이야!”
흑사련을 부정하는 것도 모자라 정파라고 거짓을 말하다니 제갈 사혁은 자신이 우습게 보였구나 싶어 검을 쥔 손에 힘을 주었다.
“나는 금왕불문(金王佛門)의 문도야. 무림맹에는 가입하지 않았지만 이래보여도 정파라고!”
“!”
금왕불문이라는 말을 듣는 순간 금왕불문이라는 곳에 대해 생각했다.
금왕불문. 복건성에 위치한 작은 문파로 이미 멸문당한 문파였다. 금왕불문의 문주가 마교에 정보를 팔아넘겼다는 죄목으로 멸문을 당했으니 사실상 이제는 존재하지 않는다.
“금왕불문은 멸문 당했을 텐데 용홍검각(龍泓劍閣)에 의해.”
“용홍검각 놈들이 우리를 모함한 거야! 우리는 절대 마교와 밀약하지 않았어!”
들어줄 가치가 있을까? 제갈 사혁은 잠시 고민을 했다. 하지만 금왕불문이니 용홍검각이니 마교와 연관된 것은 사실이었다.
제갈 사혁은 요화 아니 서율의 손목을 잡은 뒤 서율과 눈을 마주쳤다.
“이름 서율이고 나이는 스물 둘 맞나?”
“맞아. 어떻게 알았어?”
“금왕불문의 문도고 정파인이지?”
“맞아.”
“흑사련을 어떻게 생각하지?”
“별로.”
“그 얼굴은 가짜고”
“어떻게 그걸?”
눈동자의 흔들림도 없고 맥박도 정상이었다. 흔히 무풍대에서 거짓여부를 알아보기 위해 사용하는 방법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무조건 믿는 건 아니었다.
“좋아. 내가 오해했다 치고 사과하지.”
끝까지 잘못했다고 말하지 않는 제갈 사혁이었다.
“당신도 정파인이야?”
서율은 미심적은 듯 제갈 사혁을 떠보더니 이내 제갈 사혁의 몸에 손을 대며 어떠한 행동을 취했다.
“세상에 냉천한월공(冷天寒月功). 화산.....”
제갈세가라는 특수한 배경 덕에 제갈 사혁이 익힌 내공심법은 다섯 가지지만 현재까지 이용하는 내공심법 총 세 가지다. 하지만 그중에 하나인 냉천한월공(冷天寒月功)을 익힌 사실을 알아낸 것만으로도 이는 엄청난 일이었다.
“너 어떻게 알았어!”
서율의 어깨를 붙잡고 거칠게 등나무 사이로 밀어버린 제갈 사혁은 금방이라도 서율을 죽일 기세였다.
자신이 있었다. 두 번의 기회를 얻은 후 두려울 게 없었다. 그래서 매사에 그렇게 별거 아닌 척 별 일 아닌 듯 여유만만이었는데 이런 애송이에게 내공심법을 들킬 줄이야.
“미.... 미안해요. 하지만 이건 우리 금왕......”
서율은 제갈 사혁의 악의가 넝쿨줄기처럼 뻗어오는 것을 느꼈다.
긴 생애를 살아온 것은 아니지만 이런 종류의 사람은 처음이었다. 이 남자는 자신의 감정을 마치 타인에게 전염시키는 그런 종류의 사람이었다.
서율과 눈이 마주친 제갈 사혁은 존대와 하대를 번가라가며 어찌할 줄 모르는 그녀를 보며 한숨을 내쉬고 감정을 다스렸다.
“금왕불문이고 나발이고 다시는 그런 짓 하지 마.”
익히고 있는 심법이 무엇인지 들켰다는 건 그다지 중요한 하지 않았다. 다만 얕보았던 상대가 의표를 찌르자 순간 자존심에 금이 가 이성을 잃었다.
제갈 사혁처럼 우월감에 젖은 인물이라면 특히 이런 일에 민감했다.
“사과는 안 해. 그 정도는 알고 있지?”
“알고 있..... 아니 알아요. 상대의 내공심법을 알아내는 방법은 금왕불문의 비전이고 수많은 문파들이 우리 금왕불문을 노리는 이유였으니까요.”
정확히 말해 이 비전이라는 것 때문에 금왕불문은 용홍검각의 모함에 의해 멸문 당했다.
“그딴 건 내 알 바 아니고 넌 막산 상단에 무슨 볼일이 있던 거지?”
“사실은 우리 금왕불문이 아니라 용홍검각이 마교와 내통하고 있어요. 그리고 그 증거를 잡기 위해서라도 전 꼭 마교로 가야해요.”
정말 생각이 없어도 이렇게 없다니 제갈 사혁은 어이가 없었다.
“마교의 어디 어느 어떤 곳을 가야 용홍검각이 마교의 끄나풀이라는 증거가 있는데?”
“...........”
존재할지도 하지도 않는 증거를 찾기 위해 마교의 세력권에 들어온 그 정신력은 훌륭하지만 거기까지였다.
“돌아가.”
“싫어요.”
“이대로 신강에 가면 개죽음이다. 아직 젊잖아.”
“하지만 이제 돌아갈 사문도 없어요. 나는 꼭.....”
꼭 다문 입 모양이 꽤나 고집이 있을 것 같은 느낌을 주었다. 아니 이 나이 때 여자들은 다 고집이 세지만 그것이 무언가를 향한 원한이나 의무일 때는 정말이지 중년의 꽉 막힌 아저씨 그 이상이었다.
눈물을 필사적으로 참아내는 모습이 보기 딱했지만 그런 것에 마음이 흔들릴 제갈 사혁이 아니었다. 돌아가라며 한마디 해준 사실 하나도 이미 그로서는 타인에게 해줄 수 있는 최고의 배려며 인정(仁情)이었다.
제갈 사혁은 더 이상 서율에게 신경 쓰지 않았다.
(그러고 보니.)
그 순간 제갈 사혁은 서율의 팔목을 붙잡았다.
“너 사람하고 접촉해야만 알 수 있나?”
“네?”
정말 밑도 끝도 없이 알 수 있나? 라니 서율은 제갈 사혁의 대화법에 심각한 결여가 있다는 걸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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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10월 5일 수정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