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화산의협-70화 (70/262)

<-- 70 회: 청하 -->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노인이 연신 젊은이에게 고개를 숙이자 젊은 남자는 쑥스러운 듯 두 손을 저었다.

“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

“덕분에 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구했습니다.”

“그럼 저는 이만....”

젊은 남자가 떠나려 하자 누군가 남자의 옷자락을 붙잡았다. 그 남자의 옷자락을 붙잡은 건 어느 여자아이였다.

“무슨 일이니?”

“어떻게 하면 그렇게 할 수 있어요?”

여자 아이의 질문은 참으로 당돌했다. 어떻게? 어떻게? 쉽게 설명해줄 수 없는 부분이었다.

“부모님 말 잘 듣고 반찬투정하지 않으면 될지도 모르겠구나.”

“정말요? 정말정말정말요?”

“그럼 당연하지~ 그래 이렇게 하자. 부모님 말 잘 듣고 밥도 잘 먹으면 내가 가르쳐주마. 나처럼 되는 법을.”

가르쳐준다는 말에 여자 아이는 신이 나서 방방 뛰었고 남자는 여자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내 이름은 성제란다. 무당파의 성제.”

젊은 남자는 그 어린 여자 아이에게 영웅이었고 삶의 기준점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15년이 지난 지금도 변함없었다.

“푸웃~”

붉은 피가 비단 이불을 물들이자 남자는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사혀엉~”

여인의 걱정스러우면서 애교 섞인 목소리에 제갈 사혁은 여인의 뺨을 부드럽게 쓰다듬어준 뒤 세게 꼬집었다.

“아아!”

“내가 죽을병이라도 걸렸냐? 뭔데 호들갑이야.”

제갈 사혁에게 꼬집힌 여인은 사매인 무윤 서희였다.

“걱정돼서 그렇지 걱정돼서!”

“걱정은 뭔 놈의 걱정 사혀엉~ 돌아가시면 안돼요. 돌아가시더라도 호황은 저한테 물려주셔야 해요. 라고 했던 게 어디 사는 누구냐?”

“농담이에요. 농담.”

간호해준다며 와서는 고작 한다는 소리가 혹시라도 죽게 되면 호황을 달라는 어이없는 부탁이었으니 제갈 사혁으로서는 어이가 없었다.

“정말 구마준을 사형이 죽였어요?”

서희도 못 믿는 눈치였기 때문에 제갈 사혁은 아픈 몸을 이끌고 탁자 위에 있는 함에 손을 올렸다.

“이신 나가있어.”

이신을 밖으로 보낸 후 제갈 사혁은 함을 열어 서희에게 보여주었다. 그러자 그 함에는 한 남자의 머리가 들어 있었고 서희의 눈은 그 나이대의 여인이 가질 수 없는 무정한 눈이 되었다.

“사형 정말 괴물이네요.”

“열심히 하면 이 정도는 뭐 누구라도 금방이지.”

구마준은 열심히 해서 잡을 정도의 사내가 절대 아니었다. 그 결과 지금 제갈 사혁은 몸이 엉망이 되었기 때문이다.

“정말 침 안 맞아도 되겠어요? 일부러 내가 와주었는데.”

“많이 컸네! 우리 서희. 내 품 안겨 울면서 잠들 때가 엊그제 같은데.”

옛날부터 그녀의 사형은 조금 유별난 사람이었다. 그녀가 일곱 살이었을 때 그녀를 돌보던 사형은 불과 열 살이었다. 하지만 단 한 번도 그런 사형이 자신과 3살차이 밖에 나지 않는 어린아이라고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그리고 그건 지금도 마찬가지였다.

“누가 울었단 거예요. 그냥 좀 수련이 힘들어서 땀을 흘렸던 것뿐이에요.”

“다 컸다고 하니까. 자기가 정말 다 큰 줄 아네.”

제갈 사혁이 머리를 쓰다듬어주자 서희는 불만이 가득한 표정으로 제갈 사혁을 노려봤다. 이럴 때면 사매가 아니라 무슨 딸이나 되는 듯 취급 받는 게 복잡 미묘한 서희였다.

“밥이나 먹자.”

“괜찮겠어요? 계속 토혈(吐血)하는데.”

“괜찮아.”

붉은 피가 아니라 검은색을 띈 피를 뱉고 있으니 문제는 없었다.

흡정마공이 완성된 후로 흡기를 할 때 탁기가 전혀 없는 순정한 기운의 내공을 흡수하게 됐지만 자하신공과의 충돌로 인해 흡기 도중 탁기를 흡수해 몸에 문제가 생겼을 뿐 지금 일어나고 있는 토혈은 탁기를 몸 밖으로 배출하기 위한 자연적인 현상이었다.

주머니에서 작은 칼을 꺼낸 제갈 사혁은 손가락을 살짝 그었다. 하지만 칼에 베이고도 상처는 나지 않았다.

(몸도 어느 정도 돌아왔고.)

밖으로 나가자 문 앞에서 이신이 기다리고 있었고 이신은 제갈 사혁에게서 구마준의 수급이 들어있는 함을 받았다.

“사숙 얼굴 알지?”

“사숙조요?”

“가져다드려.”

이신에게 심부름을 시키는 모습을 본 서희는 조금 찜찜한 기분을 느꼈다.

“너무 뛰어나도 좋지 않은데.”

“이 사형이 뛰어난 게 걱정이냐?”

“사형도 사형이지만 신이 말이에요. 벌써 발목에 균형이 잡혔어요. 무공실력은 어떨지 모르지만 신체능력은 이미.....”

확실히 이신을 키울 때 온몸에 뼈를 부수고 영약으로 다시 붙이고 반복을 해가며 조금 더 강한 근육과 뼈를 만들었지만 그게 타인의 눈에도 보일 줄은 몰랐다.

“그게 티가 난단 말이야. 후천적으로 만든 건데도?”

“이미 몸은 천골(天骨)이에요. 사형이 어떤 짓을 했는지 모르지만 후천적으로 만들어낸 거라고 해도 그게 너무 몸에 잘 맞아요.”

하지만 제갈 사혁으로서는 도저히 그게 무슨 문제가 되는지 알지 못했다.

“너무 뛰어나면 적도 많은 법이에요.”

“무슨 헛소리야. 화산파잖아.”

“때론 사형이 자랑스럽게 여기는 그게 더 문제가 될 때도 있죠.”

그렇게 말하면서 서희는 제갈 사혁의 등짝을 세게 후려쳤다.

“나 배고파요. 밥 사줘요.”

“너 같은 걸 누가 데려갈지.”

“안 데려가면 사형이 데리고 살아요. 장로노릇하면서 동시에 새언니 등골 빼먹는 못된 시누이 노릇 해줄 테니까.”

그런 서희를 보면서 제갈 사혁은 고개를 저었다.

“저기 좀 봐.”

“누구지?”

서희와 함께 식당에 들어오자 여기저기서 남자들의 탄성 소리가 들려오자 제갈 사혁은 코웃음을 치며 혀를 찼다. 그곳에 있는 사람은 다름 아닌 한껏 차려입은 남궁 미려였기 때문이다.

제갈 사혁은 이신 때문에 무림맹에서 중간 정도 되는 식당을 이용한다. 하지만 남궁 미려는 항상 최상층에 있는 식당을 이용했기 때문에 식사시간에 중급 식당에서 만나는 건 드문 일이었다.

“풀쪼가리 먹어서 힘이나 쓰겠냐?”

채식 위주의 식단을 제갈 사혁이 비꼬자 서희는 제갈 사혁의 손등을 꼬집어서 응수했다.

“사형처럼 채식을 할 줄 모르는 사람은 뒷간에 갈 때 고생 좀 할 걸요.”

“먹는 자리에서 더럽게.”

채식을 하라는 말을 무시한 채 생선구이를 뼈까지 씹어 먹은 제갈 사혁은 갑자기 젓가락을 들어 서희가 먹으려 했던 복숭아에 손을 댔다. 그러자 서희 역시 젓가락으로 제갈 사혁의 만행을 저지하기 위해 사력을 다했다.

“우와~ 저기 봐!”

“뭐 하는 거야. 저 사람들?”

“저 여잔 누구지 엄청난 미인인데.”

복숭아 하나를 두고 젓가락으로 유치하게 싸우고 있는 두 사람이지만 젓가락으로 펼치는 묘리는 각각 대라검(大羅劍)과 육합검(六合劍)이었다.

“제법이네.”

“사형이야 말로.”

“육합검을 네게 가르쳐준 건 이 사형이었다만.”

“무원 사형이 먼저 가르쳐줬거든!”

결국 제갈 사혁의 젓가락이 부러지자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공방 끝났다. 식당 안에 있던 사람들은 대단한 구경이라도 한 듯 제갈 사혁과 서희가 또 다시 한바탕하기를 원했지만 곧 그들의 시선은 원래대로 한껏 차려입은 남궁 미려에게 향했다.

“사형 저기 저 여자 남궁 미려잖아요. 전 무림에서 가장 예쁘다던데 과연 그 명성대로네요.”

서희도 미녀라 할 수 있었지만 그런 서희조차 남궁 미려에게는 한 수 접어줄 정도였다.

“남궁 미려가 뭐가 전 무림 제일이냐. 전 무림 최고는 따로 있어.”

“사형..... 설마 나?”

“청하 소저는 전 무림에서 가장 아름다운 사람이지.”

청하의 이름이 나오자 서희는 젓가락을 내려놓고 썩은 동태 눈깔을 연상케 하는 표정으로 제갈 사혁을 노려봤다.

“그 사람은 무당파잖아. 이 자식아!”

화산파는 무당파를 증오한다거나 하지 않는다. 화산파의 무당파에 대한 질투는 거의 무슨 습관 같은 거다. 그래서 서희의 반응은 반쯤 농담이지만 반쯤은 진담이었다.

“그 사람 그냥 무당파가 아니야. 성제의 제자란 말이야. 무당파의 성제!”

청하의 스승이 성제라는 건 익히 알고 있었지만 그뿐이었다. 성제인 게 무슨 잘못이 되는지?

“도종을 일으킨 사람이란 말이야. 그게 말이 돼? 검이 최고잖아!”

검에 대한 자부심 때문에 그런 거라면 이해는 하지만 이 반응은 상당히 지나친 감이 있었다.

“검으로 일류가 될 수 있었는데 어느 날 도(刀)에 빠져서는 이류가 돼버렸잖아. 그 성제란 사람.”

확실히 청하도 도를 사용하고 있지만 지난 날 보았던 청하의 실력은 그리 대단하지 않았다.

“검종을 버리고 도종을 택하다니 난 그 사람별로야. 그 사람 제자도.”

굳이 무당파고 화산파고를 떠나서 어떤 무기를 사용하느냐도 편을 가르는 방법이 되었다. 특히 니편 내편 가르기를 좋아하는 무림에서는 더더욱.

“뭐 내가 이런 말 해봐야. 사형 인생이니까. 상관은 없지만 그 사람이 새언니가 되면 나 진짜 운다. 나 막 술 마시고 진상 부릴 거야.”

그런 서희를 보며 제갈 사혁은 실없는 미소를 지었다. 아직 청하와 마음도 주고받지 못했는데 벌써 혼인을 운운하는 게 여간 귀엽지 않을 수 없었다.

“오.... 오랜만이에요.”

서희와 나름 즐겁게 밥을 먹고 있던 그때 누군가가 제갈 사혁에게 다가와 기어가는 목소리로 인사를 건넸다.

“아이참~ 왜 거기에 간 거니!”

그리고 그 뒤를 따라 한껏 차려입은 남궁 미려가 보기완 다르게 우악스럽게 치맛단을 거두고 제갈 사혁이 있는 쪽으로 다가와 여인의 팔을 낚아챘다. 그리고 그 장면 본 서희는 제갈 사혁에게 인사를 한 여인의 얼굴을 보더니 갑자기 도둑고양이 마냥 제갈 사혁의 무릎에 앉아 애교 철철 넘치는 목소리로 말하며 제갈 사혁의 목을 감싸 안았다.

“하아~ 낭군님 소녀 어지러워요.”

그리고 서희의 속셈을 알아챈 제갈 사혁은 무미건조한 목소리로 말했다.

“청하 소저가 아니야. 소화 내 동생이다.”

“쳇!”

그러자 그 말과 동시에 재빨리 품에서 벗어난 서희는 아깝다는 듯 청경채를 씹어 먹었다.

“저 집안일을 돕고 있어요. 상단에 들어온 물품의 품질을 선별하는 일이에요. 저.....”

말끝을 흐리는 걸로 봐선 아직도 제갈 사혁을 어떻게 불러야 할지 몰라 어쩔 줄을 몰라 하는 모습이지만 제갈 사혁은 신경 쓰지 않았다.

피붙이에게 냉정하다 할지 모르지만 이 아이에게 상냥해지면 질수록 이신에게 좋지 않다. 피를 나눈 여동생이지만 남궁 성을 쓰고 그 집안에서 살고 그 집안의 일을 돕고 있기 때문이다.

“그게 말하고 싶었던 거냐?”

듣고 싶었던 말과 전혀 다른 말이 나오자 소화의 눈동자가 크게 흔들렸고 이를 본 제갈 사혁은 자리에서 일어나 소화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열심히 하거라.”

전혀 감정이라고는 없는 한마디였지만 소화는 그것으로 만족했다. 그리고 말이 끝나기 무섭게 남궁 미려가 소화를 끌고 나갔다.

“저 녀석이랑 말 섞지 마.”

“언니.”

“자 어서 가자.”

소화와 남궁 미려가 가버리자 서희는 진짜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진짜 사형 여동생이에요? 완전 딴판인데.”

“뭐가?”

“아니 그렇잖아. 내가 울면 옆에서 위로해주고 이불에 실례한 것도 빨아주고 밥도 챙겨주던 사형이 어떻게 친동생한테는 저래?”

굳이 이신이 어떻고 소화가 어떻고 집안 사정이 어떻고 줄줄이 늘어놓기 귀찮았던 제갈 사혁은 서희의 뺨을 꼬집는 것으로 서희의 입을 막았다.

============================ 작품 후기 ============================

2012년 10월 5일 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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