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화산의협-75화 (75/262)

<-- 75 회: 청하 -->

구궁신행검(九宮神行劍).

아무리 도를 사용하고 있다지만 무당은 본디 검종이다. 때문에 고작 몇 년 사이에 검술이 아닌 도술을 창안하려고 한 무당파와 그 중심에 있는 청하조차 궁지에 몰리면 검술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대천성검법(大天星劍法).

도와 검은 다르다. 때문에 도를 이용해 검법을 펼치면 반드시 빈틈이 드러나기 마련이었다. 제갈 사혁은 재빨리 대천성검법을 펼쳐 청하와 합을 이뤘다.

얼마 안 있어 청하의 도가 흑호를 베었지만 닿은 부분은 날의 반대부분이었다. 그리고 그 순간 흑호는 제갈 사혁의 복부를 발로 차 제갈 사혁을 먼저 떨어트린 뒤 청하의 허벅지를 베고 그로인해 무릎 꿇은 청하의 얼굴을 발로 찼다.

“빌어먹을!”

제갈 사혁은 검붉은 피를 내뱉으며 흑호를 노려봤다. 그 놈의 탄공인지 공탄인지 귀찮은 외가계열 무공만 아니면 흑호의 면상을 한 대 후려갈기고 싶었다.

“서희 도망쳐라.”

“네?”

뜬금없이 도망치라는 말에 서희는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이었고 제갈 사혁은 그런 서희에게 다시 한 번 같은 어조로 말했다.

“도망쳐라. 무조건.”

“사형 설마.....”

“생포고 뭐고 이젠 다 필요 없어.”

임무 조건은 생포가 우선이었지만 이미 이렇게 된 거 생포고 나발이고 제갈 사혁에게는 중요하지 않았다.

“!”

제갈 사혁이 기를 끌어 모으자 주위에 있는 기와들이 흔들리며 그 소리가 신경을 자극했다.

얼마나 기를 끌어 모았는지 제갈 사혁의 긴 머리카락이 마치 노인의 머리카락마냥 하얗고 윤기 없는 백발이 되어 버렸다.

천파지공(千波地恐).

제갈 사혁이 허공을 향해 검을 휘두르자 수 십 개의 검기가 흑호를 향해 날아갔다. 하지만 이 무자비한 공격의 일부는 흑호가 아닌 다른 곳을 향해 날아가면서 항주 시내의 건물들을 부수기 시작했다.

흑호는 자신을 향해 날아오는 검기도 모자라 다른 곳으로 날아가는 검기도 쳐냈다. 그러자 제갈 사혁은 기다렸다는 듯 흑호를 비웃었다.

“그래야지. 항주를 사랑하시는 흑호님께서 그렇게 항주를 지키셔야지!”

제갈 사혁이라면 아니 제갈 사혁이기 때문에 애초에 항주 자체를 이용한 간계를 미리 준비해두고 있었다. 하지만 흑호의 배극구검도 그렇고 공탄이라는 외공도 그렇고 여름날의 더위처럼 짜증나는 상황만 생기다보니 이성을 잃을 수밖에 없었다. 그 증거로 천파지공 같은 요란한 무공을 쓰지 않아도 가벼운 검격을 난사하는 것만으로 항주를 이용해 흑호를 동요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제갈 사혁의 내공은 거짓말 조금 보태서 흡정마공을 이용하면 영원불멸이다. 하지만 몸에 부담을 주지 않는 것은 아니다.

검기는 쉬지 않고 날아갔고 결국 지친 흑호는 검기를 다 쳐내지 못했다. 그러자 제갈 사혁이 만들어낸 검기는 무자비하게 항주 시내를 파괴하기 시작했고 그동안 한마디도 하지 않았던 흑호가 가면을 뒤집어 쓴 채 소리쳤다.

“이노옴~~~~~”

발목에 힘을 주어 제갈 사혁에게 순식간에 다가간 흑호는 제갈 사혁을 향해 검을 휘둘렀고 그 순간 제갈 사혁은 호황을 바닥에 집어던진 뒤 동시에 흑호의 검을 여유 있게 피했다. 그런 다음 가까이 온 흑호의 가슴에 살포시 손에 올렸다.

“기다리다 지치는 줄 알았네.”

그리고 흑호의 가슴에 손을 올린 자신의 오른손을 향해 왼손 주먹을 사정없이 내리쳤다.

“격산타우(隔山打牛)라고 알지?”

권법 대결 그리고 배극구검...... 청하.

여러 가지로 머리가 굳어버린 채로 여러 상황을 맞이하다보니 생각이 단순해져 흑호의 외공이 절대무적인 마냥 착각하고 있었다. 그래서 격산타우. 물체에 힘을 가해 그 배후에 충격을 주는 기본적인 전술도 잊고 있었다.

흑호의 개구리 가면에서 피가 흘러내리면서 흑호는 배를 드러낸 개구리 마냥 바닥에 쓰러졌다.

“이런 미친.... 격산타우가 아니라도 그냥 금나수면 됐잖아.”

상황이 끝나고 머리가 제대로 돌아가자 제갈 사혁은 타격이 아닌 잡기였다면 상황을 다 쉽게 풀 수 있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고 이내 자신의 멍청한 머리를 원망했다.

“사형 괜찮아.”

서희는 재빨리 나가와 자신의 치맛자락을 찢어 제갈 사혁의 손을 칭칭 감았다.

“신경 쓰지 마. 이딴 거 이틀이면 나으니까.”

“이게 어떻게 이틀이면 나아? 미쳤어!”

손뼈가 박살나긴 했지만 신체를 자유자재로 조종할 수 있는 제갈 사혁에게는 그리 대단한 부상이 아니었다.

“청하 소저 괜찮아요?”

“제갈 소협.”

아직도 제갈 소협이었다. 그리고 그 후에 들려오는 말은 가히 충격적이었다.

“나하고 싸워요.”

“..................”

딱 한번이지만 절대 잘못 듣지 않았고 잘 못 들을 수 없었다.

“지금은 좀 그렇지 않나요?”

서희가 끼어들었지만 곧 제갈 사혁이 서희를 제지했다.

“상관없어요.”

제갈 사혁은 그 말을 듣는 순간 아랫입술을 핥았다.

청하의 눈은 친목수준의 비무를 하자는 그런 사람의 눈이 아니었다. 청하를 정말 좋아한다. 하지만 지금 이 상황 멍청하고 답답하게 넘어가고 싶지는 않았다.

“합시다. 싸움.”

제갈 사혁이 동의를 하자 청하는 비릿한 미소를 지었다.

비겁하다고 해도 좋았다. 지금이 아니면 안됐다. 지금처럼 큰 부상을 입었을 때가 아니면 제갈 사혁을 이길 수 없을 것 같았다. 그 정도로 제갈 사혁을 향한 열등감은 청하에게 견디기 힘든 마음의 종기 같은 것이었다.

첫 공격이었다. 그것도 제갈 사혁에 의해서 시작된.

“!”

낫게 깔면서 정강이를 걷어차는 이상한 발차기였다. 별로 대단할 것도 없었던 공격이라 그렇게 큰 충격을 주진 않았다. 얕보는 걸까?

청하는 이를 악물고 도를 휘둘렀고 이내 그 공격은 제갈 사혁의 육신을 찢었다. 위에서 아래로 벴을 때 손의 감각이 제대로 전해졌다. 청하는 확신했다. 제갈 사혁을 벴다. 라고 말이다.

“남자도 옷이 강제로 벗겨지면 부끄럽거든요.”

하지만 그것은 착각이었다. 베인 건 그가 입고 있는 옷이었고 가슴에는 도저히 자신의 도에 베였다고 생각할 수 없을 정도의 깊지 않은 상처만 있을 뿐이었다.

제갈 사혁이 주먹을 휘두르자 정확하게 복부에 맞은 청하는 무릎을 꿇었다.

이것이 무엇보다 확실한 차이였다. 남자와 여자의 노력으로 좁힐 수 없는 근력의 차이.

“하아!”

무기를 거꾸로 쥐어 손잡이 끝으로 제갈 사혁의 턱을 후려친 청하는 검풍을 일으켜 제갈 사혁과 거리를 벌렸다. 그런 후 호흡을 가다듬고 기수식을 다시 잡아 강철처럼 단단하게 마음을 벼렸다.

포기할 순 없었다. 무력이라는 힘을 키우는데 남자가 유리하다는 것은 인정할 수 있다. 하지만 강호는 남자들만의 것이 아니다.

모든 준비를 마친 청하는 제갈 사혁에게 달려들었고 빠른 연계공격으로 제갈 사혁에게 틈을 주지 않을 생각이었다. 하지만 첫 초식부터 제갈 사혁은 청하의 일격을 왼손 손등으로 흘리며 빈공간을 향해 무릎으로 청하의 갈빗대를 후려쳤다. 그런 뒤 왼손으로 정확히 뒷머리를 움켜쥐고 사정없이 청하의 옆구리를 가격했다. 도저히 정인(情人)을 대하는 남자의 행동이라 보기 힘들었다. 정신을 잃을 정도로 아찔하지만 청하는 점점 고통이 익숙해지는 묘한 기분을 느꼈다.

고통에 익숙해지면서 마음의 여유가 생기자 청하는 왼손으로 제갈 사혁의 눈을 공격했고 제갈 사혁이 당황해하며 왼손으로 눈을 가리자 내공을 끌어올려 왼쪽 어깨에서부터 오른쪽 쇄골까지 대각선 방향으로 강하게 베어냈다.

이고하행(邇高下行).

“사형!”

얼마나 살기가 짙었는지 지켜보고 있던 서희가 비명에 가까운 소리를 내지를 정도였고 제갈 사혁의 몸에 처음으로 상처다운 상처가 생겼다. 청하는 그 순간 자기도 모르고 왼 주먹을 힘껏 쥐어보였다.

(좋았어!)

시력을 되찾은 제갈 사혁은 커다란 상처를 입고도 아무렇지 않게 청하를 향해 주먹을 휘둘렀고 유효한 타로 인해 마음의 여유가 생긴 청하는 여유롭게 제갈 사혁의 주먹을 피해냈다. 그녀는 점점 제갈 사혁과의 싸움에 익숙해져감과 동시에 마음의 안정감을 되찾자 자신의 실력을 뛰어넘는 상장을 보여주었다.

발을 쭉 뻗어 발차기를 날리자 청하는 한 박자 늦었음에도 불구하고 도를 휘둘러 제갈 사혁의 발차기를 쳐냈다. 찰나의 순간이었고 오직 제갈 사혁과 같은 뛰어난 동체시력과 감각을 지닌 자들만 느낄 수 있는 속도를 청하는 겪고 있었다.

내심 청하에 대해 자신보다 한참 아래라고 판단했는데 이렇게 되면 평가를 다시 해야만 했다.

(역시 그건가?)

청하의 피가 말라붙어 검게 보이는 옷을 본 순간 짐작할 수 있었다.

제갈 사혁이 항주로 오는 길에 경공을 사용하지 않았던 건 무공의 내력이 밝혀져 쓸 때 없는 싸움이 일어날 것을 예방하기 위해서였다. 오랜 강호생활로 터득한 지혜지만 강호 경험이 부족한 청하는 멋도 모르고 경공을 펼쳐 항주로 왔을 테고 그 과정에서 싸움이 일어난 것은 어찌 보면 필연이었다.

단기간에 수많은 적을 상대하며 성장한 청하 그리고 지금 자신을 상대하며 또 다시 성장하는 청하.

“정말 대단하군요. 청하 소저. 이만큼 성장하다니 예상외입니다.”

“비꼬는 건가요?”

비꼬는 거냐는 말에 제갈 사혁은 잠시 고민하더니 생전 보기 힘들 정도로 진실성이 묻어나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네.”

그 말과 동시에 청하에게 순식간에 다가간 제갈 사혁은 강력한 지면을 아니 지붕을 쳤다.

패성각(覇成脚).

패성각에 의해 지붕이 완전히 박살나자 제갈 사혁은 경공을 펼쳐 다른 건물의 지붕 위로 몸을 옮겼고 청하가 뒤따라오자 기다렸다는 듯 주먹을 휘두르는 변칙 아니 비겁한 공격으로 청하를 압박했다.

“이 정도쯤이야!”

청하도 절대 지지 않고 도를 휘둘러 제갈 사혁에게 대항했다. 그리고 그 순간 제갈 사혁이 기다렸다는 듯 청하의 오른손 손목을 붙잡았다. 헤어지자는 여인의 손을 붙잡은 채 놓아주지 않는 꼴사나운 남자처럼 청하의 손목을 계속 붙잡은 제갈 사혁은 청하가 주먹을 휘두르려 하자 손을 잡아 당겨 청하의 중심을 흔든 뒤 오른 손 주먹을 힘껏 쥐었다.

“저 멍청이!”

이 모습을 본 서희는 이를 갈며 제갈 사혁을 노려봤고 제갈 사혁은 기어이 부러진 오른 주먹으로 청하의 관자놀이를 후려쳐 청하를 기절 시켰다.

실이 끊어진 인형처럼 주저앉아 버린 청하를 어깨에 짊어진 제갈 사혁은 서희를 향해 천진난만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이 손 고칠 수 있지?”

“몰라. 그딴 거.......”

청하와 개처럼 싸울 땐 몰랐는데 패성각으로 박살을 내버린 지붕 위에는 기절한 흑호가 있었고 제갈 사혁이 미쳐 날뛴 덕에 그만 흑호를 놓쳐버렸다.

“흑호 놓쳐버렸네.”

“내일 잡지 뭐.”

“내일 안 나타나면?”

“잡을 때까지 있는 거지 뭐.”

“저거저거 입만 살아가지고!”

제갈 사혁을 보며 서희는 이를 갈았고 그런 서희를 보며 제갈 사혁은 껄끄러운 미소를 지었다.

다음 날 오후 무림맹에서 온 사람들이 정신을 잃은 청하를 데려가고 서희와 함께 저녁을 먹은 제갈 사혁은 식사가 끝나자 붕대를 감은 오른손으로 호두를 움켜쥐어 단단한 껍질을 박살냈다.

“하루 만에 그게 돼요? 사람도 아니야......”

“왜에?”

미소를 지으며 자기는 아무것도 모른다는 표정으로 말하자 서희는 질렸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 오른 손 절대 하루 만에 나을 수 있는 게 아니거든요.”

“무슨 소리야. 우리 서희가 의술이 뛰어나서 나았잖아.”

“우리 서희든 너희 서희든 불가능한 건 불가능하거든 이 멍청아!”

서희가 자신의 멱살을 잡자 제갈 사혁은 평소의 냉정해보이고 어딘가 성격에 문제가 많을 것 같은 표정을 지었다.

============================ 작품 후기 ============================

2012년 10월 5일 수정했습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