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화산의협-78화 (78/262)

<-- 78 회: 후회하지 않는다. -->

“봤지? 봤지! 사형은 이런 사람이야. 시시하게 소원 같은 거 빌 사람이 아니지!”

돈을 모두 가로 챈 무장이 꼴 보기 싫었던 무종은 뒤에서 무장의 엉덩이를 걷어 차 무장을 강에 빠트렸다. 그러자 강에 떠내려가던 수많은 배가 무장에 의해 전복되는 대 참사가 일어났고 이를 본 도산진인이 무장에게 소리쳤다.

“여섯째 사형 막내 제자 놈! 너 이 새끼 뭐하는 짓이야!”

도산진인이 무섭게 소리치자 무장은 물에 빠진 생쥐 꼴로 강에서 나와 쥐구멍으로 숨어들 듯 대문을 향해 달렸고 이를 본 나머지 사형제들은 무장을 희화화하며 이야깃거리 삼았다.

참배객들이 화산파에서 준비한 행사를 끝내자 기다렸다는 듯 강가에서 자리를 펴 술을 마시기 시작했고 이 근방에서 크게 목축업을 하고 있는 사람이 통 크게 소 한 마리를 잡자 여기저기서 박수소리가 끊이질 않았다.

“역시 황씨 아저씨네 소가 최곱니다.”

이때 제갈 사혁이 자리에서 일어나 그를 칭찬하자 기다렸다는 듯 그는 자신의 목장에서 나는 고기가 최고임을 자랑했다.

“저희 집 고기는 다른 집 고기와 차원이 다릅니다. 불에 살짝 구워서 씹으면 참기름 한 방울의 고소한 향이 펴져서 기름장이 필요 없습니다. 그러니 많이 이용해주십시오.”

그 말이 끝나자마자 여기저기서 앞으로는 황씨네 고기만 먹겠다는 여론이 일어났고 이에 동종업계에서 일하는 공씨가 사슴고기를 내놨다.

“우리 집 사슴고기 맛은 이 지방 최고요. 사슴고기는 씹는 맛도 일품이고 특히 남자에게!”

남자에게 라며 말을 끊은 공씨는 미간을 중심으로 얼굴을 찡그리며 주먹을 쥐고 엄지손가락을 세웠다. 이건 더 이상 말이 필요 없었다.

그 후 과수원을 하면 사과와 배를 술집을 하면 곡주를 내와 자신들이 팔고 있는 먹거리들을 선전하기 이르렀다.

“하여간 사람들 선동하는 건 알아줘야 해.”

무원이 제갈 사혁을 보며 징그럽다는 듯 고개를 저으며 곡주를 마시자 제갈 사혁은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발뺌했다. 그리고 뒤에서는 손가락을 까닥거려 무덕을 불렀다.

“네 사형.”

“오늘 음식 나눠준 사람들에게 값을 치러줘.”

애초에 이런 일을 노리고 황씨를 칭찬했고 결과적으로 덕분에 행사의 마지막이 찬치가 되어 풍족해졌지만 저들도 땅 파서 장사하는 건 아니니 도리 상 돈을 지불하지 않을 수 없었다.

“대중을 선동하는 건 쉽지만 그 결과는 어떻게 될 줄 모르죠.”

그 말과 동시에 매서운 바람이 불어와 잔칫상에 촛불을 모두 꺼버리자 여기저기서 난리가 났다.

제갈 사혁의 허리에서 자신의 검이었던 호황을 꺼내든 무원은 화운검을 펼쳐 검 날을 달궜고 그것으로 불씨를 만들어 어두워진 강가를 밝혔다.

“그래서 항상 사람은 내가 아닌 우리가 되어야 하는 법이란다. 성공도 실패도 변수도 모두 함께 해나간다면 결과는 중요하지 않아.”

“네 사형.”

누구랄 것도 없었다. 제갈 사혁도 그리고 다른 사형제들도 무원의 말에 똑같이 대답하며 모두 대사형이라는 존재를 마음속에 담아두었다.

무원은 항상 크건 작건 이런 식으로 사제들을 챙겨주었다.

“아~ 그렇지만 되도록 성공하는 쪽이 좋아. 그래야 여자들한테 자랑할 수 있으니까.”

그리고 늘 특유의 재미없는 농담으로 마무리 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제발 좀 그런 농담 좀 하지 마요. 대사형.”

여기저기서 재미없다는 투로 불만을 토로하자 오히려 무원은 흡족해하며 새하얀 치아를 드러냈다.

다음날 아침에도 화산파 제자들은 개미마냥 바쁘게 움직였다. 참배기간 중에 수많은 사람들 화산파를 들락날락거리기 때문에 누구하나 속편하게 쉴 수 있는 사람이 없었다. 특히 제갈 사혁의 경우는 더더욱 그랬다.

“사형 어르신들 녹차!”

“가져다 드렸어.”

참배객들에게 차를 따라주고

“사형 부적 적어야 해요. 닭 피!”

“기다려!”

부적에 쓸 닭 피를 위해 닭 모가지를 비틀며

“사형 나 화장실.”

“대신 맡아줄 게 다녀와.”

사제가 맡고 있는 일을 대신해주며 바쁜 오전을 보냈다. 너무 바쁘게 보내서 사문을 찾아 온 이유도 잊어버릴 정도였다.

“폐관에 들어가 몸을 살펴야 하는데.”

원인 모를 이유로 신체에 점점 탁기가 쌓이고 있는 터라 영험한 산의 기운이 서린 화산파의 폐관수련 동굴에서 원인을 알아보려 했지만 도저히 그럴 시간이 나지 않았다.

“스승님께 물어보기도 뭐한데 말이야.”

일반 제자들도 이렇게 바쁜데 이 기간에 문파의 수장인 장문인은 더더욱 말할 것도 없었다. 벌써 아침 인사와 저녁 인사를 빼면 제대로 이야기 나눠 본 적이 없었다.

“시간 때우고 있는 것이냐?”

그때 제갈 사혁에게 말을 건 사람은 다름 아닌 도청진인이었다.

“도청 사숙.”

(맞아. 사숙이 계셨어!)

도청진인은 누가 뭐라 해도 화산파에서 제일 연배가 높고 대사형 무원의 스승이자 사사로이는 장문진인의 사형이 되는 사람이다.

“사숙께서는 이 시간에 어쩐 일로?”

“마음을 갈고 닦기 위한 선도의 수련을 하고 있었다.”

선도의 수련은 검을 버리고 그야말로 도를 쌓는 도사 본연의 수련이다. 사실 도사라고 칭하는 이상 검보다는 이런 선도의 수련을 우선시해야 하지만 강호라는 주위 환경이 마음의 힘보다는 육체의 힘을 우선시하는 곳이기 때문에 화산파 내에서도 좀처럼 선도의 수련을 하는 이는 없었다.

“무슨 고민 있느냐?”

역시나 사숙이었다. 제갈 사혁의 얼굴만 보아도 어떤 근심이 자리하고 있다는 걸 정확하게 꿰뚫어 보고 있었다.

“저기 사숙.......”

“여자 문제란 게 다 그렇단다. 나도 젊은 시절에 지금의 집 사람을 만나기 전에 강호를 돌아다니며 수많은 여자를 만났단다. 그 중에 네 살 어린 여자를 만났는데 어찌나 애교가 많던지....”

“사숙!”

곤란하다는 눈치를 주며 제갈 사혁이 소리치자 도청진인은 무원과 같은 묘한 미소를 지었다.

“그래 고민이 무엇이냐?”

“탁기가 쌓이는데 이걸 어떻게 하죠?”

“탁기? 네가?”

제갈 사혁이 다른 사람들과 다른 체질을 가지고 있다는 건 화산파에서도 유명했다. 탁기가 쌓이지 않는 몸은 환골탈태한 몸과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탁기가 쌓이는 건 당연하다.”

“네?”

“일반적으로 그것은 당연한 일이다. 물론 탁기가 쌓여 특정 혈관이 막히면 병을 얻지만 당장 탁기가 쌓이는 것만으로 사람은 죽지 않는다. 네가 탁기를 쌓이지 않게 하는 것이 오히려 인위적인 것 아니냐?”

“인위적이요?”

인위적이라는 말에 제갈 사혁은 아리송했다. 원래 아기들의 몸은 모든 혈맥이 뚫려있다. 그거야 말로 자연 그 자체의 모습이다. 그런데 그런 몸 상태를 유지하는 게 인위적이라니?

“우리 몸은 쌓이는 탁기는 지극히 정상이지만 너는 그것을 허락하지 않고 있다. 한마디로 순리에 맞서고 있는 것 아니냐?”

사숙에게 도움을 청하고는 있지만 제갈 사혁은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다. 사숙이 하는 말 그 자체가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어렵게 일궈낸 논밭이 불에 타고 있는데 아무것도 하지 말라니.

“에... 그럼 실례하겠습니다.”

제갈 사혁이 답을 얻지 못하고 오히려 혼란만 얻고 돌아가자 도청진인은 묘한 미소를 지었다.

“없던 게 생기면 그 이유가 있단다. 젊은 너희야 결과를 중요하게 생각하겠지만 살다보면 결과가 아니라 원인이 중요할 때도 있는 법이다.”

사람마다 가지고 있는 문제가 다르면 답도 다른 법.

참배기간이라 바쁜 건 알지만 당장 자신의 일이 급했던 제갈 사혁은 폐관수련 동굴에 자리를 마련했다. 무공을 수련할 책도 육신을 단련할 무기도 허기를 채울 식량도 없이 그저 동굴에 앉아 내공심법에만 매달렸다. 내공심법을 활용해 억지로라도 혈관을 뚫어볼 속셈이었다.

“젠장!”

하지만 3일째 되던 날 반드시 막힌 혈관을 뚫겠다는 각오는 분노로 변해 있었다. 벽을 향해 주먹을 휘둘러 벽을 부수며 풀리지 않는 실타래에 좌절하며 악을 질렀다.

제갈 사혁의 내공은 평소와 다르게 극에 달해 있었다. 내공의 흐름은 드러나지 않는 불씨처럼 타오르고 있었고 개미 한 마리가 우연히 제갈 사혁의 손에 닿자 아무 이유 없이 죽어버렸다.

“뭐가 문제야? 도대체 뭐가 문제야!”

점점 시간이 지날수록 몸이 둔해지는 것을 느꼈다. 폐관수련에 들어간 후로 더욱 더 그것이 가속화 된 것 같은 느낌마저 들었다. 제갈 사혁은 알 수 없는 그 무언가를 향해 원망하고 분노를 표출했다. 그리고 수많은 시간을 먹지도 자지도 않은 채 생각만으로 보낸 어느 날 더 이상 이 모든 일에 신경 쓰지 않으려 마음먹었다.

비록 탁기가 쌓이고 몸이 예전과 같지 않지만 문제는 없었다. 살아가는데 그리고 힘을 얻는데 부족함이 없었다. 여전히 그는 제갈 사혁이고 여전히 화산파의 후계자다. 그렇게 생각하자 마음이 편해진 제갈 사혁은 최근 일어난 일을 떠올렸다.

“흑호.”

흑호와 배극구검 그리고 금광수에 대해 생각하자 나뭇가지처럼 생각이 뻗어나갔다. 그리고 점점 거슬러 올라가 종방영이라는 인물을 떠올렸다. 그래 종방영이 모든 일의 시작이었다. 종방영 때문에 죽고 종방영 때문에 의문만 남았다.

“종방영.”

종방영의 이름을 부르는 그 순간 눈앞에 환영이 찾아왔다.

환영이 보여준 것은 용화장에 피를 흘린 채 쓰러진 청하의 모습이었다.

제갈 사혁은 그저 앉아 있었다. 청하가 죽어가고 있지만 아무런 행동도 취하지 않았다. 이것이 환영임을 알기 때문이다. 그리고 장소는 바뀌어 대나무 숲으로 변했다. 그곳에는 놀랍게도 제갈 사혁이 있었다. 정사대전이 벌어진 뒤 첫 전투였다. 그리고 장소는 다시 바뀌어 금광수가 보였다.

낭인들이 병장기를 하늘 높이 들며 금광수를 칭송하고 있었다.

“뭘 말하고 싶은 거냐?”

환영은 사건이 일어난 순서에 상관없이 제갈 사혁의 일생을 보여주는 듯 보이지만 그도 아니었다. 그도 아니었다......

어느새 환영이 만들어낸 이야기는 종막을 향해 가고 금광수에 대한 질투로 인해 기어이 금광수를 꺾어낸 제갈 사혁의 모습이 연기처럼 사라지자 청사단과의 마지막 일전이 펼쳐졌다. 하지만 환영은 청사단과 제갈 사혁이 검을 뽑고 대치하는 순간 안개처럼 사라져버렸다.

자리에서 일어난 제갈 사혁은 주위를 둘러봤다. 여전히 이곳은 화산파의 폐관수련 동굴이 아닌 환영 속이었다. 그리고 그 순간 누군가가 제갈 사혁의 허벅지를 때렸다.

“?”

아이였다. 아주 어린 아이였다. 어디서 많이 본 것 같은데 기억이 나지 않았다.

“무슨 짓이냐?”

아이에게 질문을 던지자 아이는 금방이라도 울 것 같으면서도 원망이 가득한 표정으로 제갈 사혁을 쳐다봤다. 이 아이에게 무슨 원망이라도 산 걸까? 하지만 도저히 아이의 얼굴도 아이의 이름도 기억나지 않았다. 그러던 그때 갑자기 누군가가 검을 휘둘러 아이를 죽였다.

“......”.

그 누군가는 다름 아닌 제갈 사혁이었다. 그리고 얼마 후 또 다른 남자의 모습이 보였다. 금광수였다. 그 금광수를 죽인 이도 제갈 사혁이었다.

용화장에서는 애처롭게 어머니를 부르는 흑의인의 숨통을 끊었고 마지막으로 흡정마룡 위대극에게서 종방영을 떼어낸 모습이 보였다. 제갈 사혁이었다. 그 모두가 다 제갈 사혁이었다.

환영은 모래처럼 바람에 쓸려 사라지고 어느새 사방에는 시체가 깔려 있었다. 그리고 시체에 엉덩이를 붙이고 앉아 곰방대를 피우는 제갈 사혁이 있었다.

그는 스물일곱의 제갈 사혁이었고 과거의 자신이었다.

============================ 작품 후기 ============================

2012년 10월 5일 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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