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화산의협-83화 (83/262)

<-- 83 회: 그 제자. -->

이신은 경신법을 펼쳐 몸을 가볍게 한 뒤 순식간에 품으로 파고들어가 공혈겸 무사의 턱을 후려쳤다. 불시의 일격이었고 턱을 맞은 공혈겸 무사는 그대로 주저앉아 버렸다.

“넷.”

다행히 독을 사용하는 노파는 뒤따라오자 않았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들은 더 이상 다섯이 아니다. 그 사실만으로도 소년은 여유를 가질 수 있었다.

소년은 무모하고 대담했다.

상대가 낫을 휘두르자 손을 더욱 깊숙하게 넣어 손목을 붙잡은 이신은 상대의 무릎을 향해 강한 일격을 내질렀다.

파옥(破玉).

“크악!”

효과가 있었다. 자신의 힘이 무공이 기술이 하지만 그것은 상대가 소년을 얕보았을 때 먹혀들었던 방법이다. 공혈겸 무사들은 진을 펼쳐 이신의 눈을 어지럽혔다. 육중한 쌍초겸(雙草鎌)이 바람에 실려 오는 나뭇잎처럼 가볍고 빠르게 스치자 중지손가락을 타고 붉은 피가 흘러내렸다.

죽이기 위한 공격이 아니었다. 서서히 겁을 주어 투쟁의식을 상실하게 하기 위한 방법이었다. 하지만 그러한 방법은 결의에 찬 소년에게는 통하지 않았다.

다시 한 번 낫이 날아오자 이신은 오히려 낫이 날아오는 방향으로 다가갔다. 수십 수백 번 뼈를 부수고 근육을 찢어 영약으로 치료하기를 반복해가며 만든 자신의 육체가 고작 쇳덩이에 잘려나갈 리 없기 때문이다.

“하앗!”

이신은 상대의 코뼈를 으스러트리며 동시에 피가 멈출 줄 모르는 자신의 왼팔을 부여잡았다.

“셋....”

여전히 상황은 분리하지만 이신은 웃을 수밖에 없었다. 처음에는 다섯 명이었는데 어느새 셋으로 줄었기 때문이다. 다른 누구도 아닌 자신의 힘만으로.

일이 이렇게까지 되자 공혈겸의 무사들은 서로 눈치를 주고받았다.

가운데 있는 한명이 이신을 향해 크게 위협적인 공격을 하자 이신은 거대한 쌍초겸을 두 손으로 붙잡았다. 그러자 나머지 공혈겸 무사 두 명이 이신의 양 옆에 자리 잡아 채찍으로 이신의 양팔을 봉했다. 다른 두 명이 이신의 팔을 봉쇄하자 나머지 한명이 다시 한 번 쌍초겸을 휘둘렀다.

“으아아!”

“아가씨......”

그 순간 풀숲을 헤치며 뛰어나온 남궁 미려의 검은 이신을 향해 쌍초겸을 휘두른 공혈겸 무사의 팔을 꿰뚫었다. 그 덕에 쌍초겸은 이신의 머리가 아닌 어깨에 박혔다.

“도망가 보려 했는데 마비가 돼서 말이야.”

“그럼 더욱 도......”

“그만!”

이신의 양팔을 봉하고 있는 채찍을 끊어낸 남궁 미려는 감각이 없는 허벅지를 꼬집으며 이신에게 소리쳤다.

“곧 이대로 움직이지 못할 몸이라면 움직일 때까지 싸우고 또 싸울 거야.”

일단 움직임이 둔해진 남궁 미려는 이신의 보조를 맡았다. 덕분에 이신에게 서툰 방어가 보완이 되어 상황이 나아졌지만 여전히 공혈겸의 남은 세 명은 상대하기 껄끄러운 자들이었다.

“나 말이야. 솔직히 평소에 죽을 위기라는 거 실감을 못했어.”

죽을 위기? 그래 어떤 의미에서 명문정파나 명문세가의 인물들은 보통 죽을 위기와는 거리가 먼 편이다. 사문이나 가문의 보호아래 있기 때문에 여간해서 목숨을 위협 받지 않는다. 하지만 그것은 진정한 의미의 무림인이라 할 수 없었다.

“그런데 이상하게 무섭지가 않아.”

이상했다. 자신을 죽이려고 온 자들이 자신을 노려보고 있지만 전혀 무섭지 않았다. 그리고 깨달았다. 여태까지 자신이 겪었던 무림은 그저 애들 장난에 불과했다는 사실을 말이다.

“그 녀석이 겪는 무림은 이런 거구나. 그러니 후기지수를 애들 모임취급 할 수밖에.”

남궁 미려가 말하는 그 녀석이란 제갈 사혁을 말하는 것이었다.

“그럼 아가씨.”

“가자!”

남궁 미려는 날붙이에 살이 베이는 것도 모른 채 검을 휘둘렀고 이신 또한 자신의 몸을 돌보지 않은 채 오직 눈앞에 있는 적을 쓰러트리는데 모든 정신을 집중했다.

제갈 사혁에게 배운 무공을 적절하게 쓸 여력은 전혀 없었다. 그저 몸이 움직이는 대로 몸이 기억하는 대로 주먹을 휘두르고 발로 찼다. 그렇게 힘들게 싸우고 난 후 다리가 완전히 마비된 남궁 미려를 부축하며 숲을 빠져나왔다. 하지만 그 두 사람을 기다리고 있던 것은 검은 나뭇잎으로 둘러싸인 고목 나무였다.

고목나무 위에는 어림잡아 12명의 흑사련 무사들이 서있었고 이를 본 남궁 미려는 헛웃음이 나왔다. 아까까지만 해도 무섭지가 않다며 허세를 떨었는데 한고비 넘기자마자 산 넘어 산이었다.

“남궁 미려라니 정말 대박인데!”

“남궁 미려는 내꺼다.”

“미친 놈 놀고 있네.”

그 말을 듣는 순간 꼭 벌레가 종아리를 타고 올라오는 기분이었다. 흑사련 무사들이 나누고 있는 대화가 무엇을 뜻하는지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여인에게는 수치고 자존심이 허락지 않는 일이지만 도저히 대항할 힘이 나지 않았다.

“이 망아지 같은 것들아! 남궁 미려는 생포해야 한다.”

그들을 향해 소리치는 이는 다름 아닌 공혈겸 무리를 이끌던 그 노파였다.

“닥쳐 노인네 우리가 공혈겸 떨거지들인 줄 착각하나본데 죽기 싫으면 그 입 다물어!”

같은 흑사련이라고는 하지만 분위기는 상당히 달랐다.

“누가 죽인데? 재미 좀 잠깐 보자는 거 아니야.”

“이 멍청한 놈들아. 허튼 짓 하지 말고 남궁 미려나 잡......”

노파가 항의했지만 그 순간 등 뒤에서 누군가가 노파를 찔렀다. 워낙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라 이신과 남궁 미려는 어안이 벙벙했다.

“자기가 뭔데 명령질이야.”

어느 조직에나 위아래 못보고 날뛰는 망아지 같은 종자들이 있기 마련인데 하필 이신과 남궁 미려가 만난 이들이 그런 종자들이었다. 그런 자들이 아래로 내려와 일제히 검을 뽑아들자 남궁 미려는 각오를 다졌다.

“저 놈들한테 안길 바에는 혀 깨물고 죽겠어. 이신 아주 잠깐이지만 시간을 끌어줄게 그동안 도망쳐.”

이신을 여기서 죽게 할 수는 없었다. 비록 다리가 움직이지 않지만 이신이 경공을 펼쳐 어느 정도 도망칠 때까지의 시간은 벌 수 있었다.

“도망치지 않아요.”

“이신 명령이야!”

“난!”

이신이 도망치지 않겠다고 하자 남궁 미려는 핏대를 세워가며 외쳤고 이신은 이를 악물며 남궁 미려에게 소리쳤다.

“더 이상 남궁세가의 하인이 아닙니다. 제갈 사혁의 제자 이신입니다.”

사부라면 절대 적을 눈앞에 두고 도망치지 않는다. 하물며 그 제자인 자신이 적을 눈앞에 두고 도망친다면 분명 부끄러워 할 것이다. 사부는 남들처럼 그래도 살아 돌아와서 다행이라는 말을 할 사람이 아니다.

만약 사부가 자신이 이 자리에서 싸우다 죽는 것을 원한다면....

“사부 난 이 자리에서 죽어도 좋아!”

그 말을 듣는 순간 남궁 미려는 절박한 무언가를 느낄 수 있었다. 지금의 이신은 살기 위해서가 아니라 버림받지 않기 위해서 필사적이었다.

“뭐래? 병신.”

이신에게 다가온 흑사련의 무사가 검을 내려치자 이신은 왼손으로 상대의 팔꿈치를 붙잡아 검을 막은 뒤 주먹으로 상대의 가슴을 빠르게 후려쳤다. 주먹을 지르고 빼는 속도는 그야말로 전광석화(電光石火).

“푸!”

그러자 흑사련 무사는 이신의 얼굴을 향해 피를 뱉으며 그대로 쓰러졌다.

“뭐야? 이거 뭐냐고 누가 설명을 해봐 염병!”

다른 흑사련 무사가 이 장면을 보고 소리를 지르자 이신은 본능처럼 그 사람에게 다가가 종아리를 걷어찼다. 그러자 여지없이 종아리가 박살이 나며 어중간한 자세로 주저앉았다. 이신은 상대가 무릎을 꿇자 위에서 아래로 이마를 향해 주먹을 날렸고 그자의 목은 절대 꺾일 수 없는 방향으로 넘어가 버렸다.

이 모습을 본 남궁 미려는 믿을 수가 없었다. 살인이다.

이신이 공혈겸과 싸웠을 땐 부상 정도로만 끝냈다. 그래서 남궁 미려가 직접 공혈겸의 숨통을 끊는 수고까지 해가며 일을 마무리했는데 지금 이신의 모습은 살인을 하는데 있어서 망설임이 없었다.

“으악!”

가장 가까이에 있는 흑사련 무사를 두 손으로 안은 채 무릎으로 사정없이 갈빗대를 부러트리자 부러진 뼈가 폐부를 찢었다.

공격대상은 무조건 가까운 사람이 먼저였다. 절대 서 있는 자리에서 다섯 발짝 이상 가는 일이 없었다.

“강호에 이름도 없는 새끼가 어디서!”

악밖에 안남은 흑사련 무사들은 이신을 물어뜯기 위해 죽을힘을 다했다.

내세울 명성도 없는 애송이가 사람을 종잇장 마냥 찢어 버리는 이 상황은 무림에서 구를 때로 굴렀다는 자신감하나로 살아온 이들의 자존심을 건드리기 충분했다.

“이거 안 놔!”

이번에도 가장 가까이에 있는 자를 붙잡은 이신은 자신보다 신장이 큰 성인 남자의 발목을 잡고 둔기 휘두르듯 사람을 휘둘렀다.

“저 새끼 도대체 정체가 뭐야?”

그렇게 한참 난전에 계속되자 흑사련 쪽에서는 남은 인원으로 한꺼번에 달려들었다.

“오늘 남궁 미려 옷자락 하나라도 못 벗기면 저 새끼 살가죽이라도 벗긴다!”

흑사련 무사들이 일제히 이신을 향해 달려들자 이신은 지면을 박쳤다.

패성각(覇成脚).

대지를 뒤흔드는 패성각은 미친 듯이 달려오는 늑대무리를 움찔거리게 만들었다.

(권격이 상대에게 닿을 때마다 내공을 터트려! 탁! 탁! 타닥!)

그때 이신 자신이 만들어낸 제갈 사혁의 환영이 또 다시 그 모습을 드러냈다.

(내공 분배는 흐름일 탄다는 느낌으로 정확하게 야야! 중지가 도드라지게 주먹을 쥐어야지! 멍청아!)

환영이지만 그것은 이신의 기억을 기초로 만들어낸 환영이었다.

(총 스물다섯 대를 때리지만 스물다섯은 어떻게 만들어도 느낌이 안 나니까 이름을 그렇게 지은 거다. 정말로 백대를 다 때려서가 아니라. 알겠냐?)

총 스물다섯 차례의 가격. 일격에 망자(亡者)가 되어도 초식이 끝날 때까지 육신(肉身)은 찢겨져 나간다. 이것이.....

“복호백열격(伏虎百閱拳)!”

오직 사람의 생명을 끊어버리기 위해 존재하는 권법이 그 효과를 발휘했을 때 복호백열격의 강맹함은 사람의 형체를 바꿔버렸다.

“누가 좀 가르쳐줘 내 팔.... 내 팔 있어!”

“눈이 안보여 어떻게 된 거야? 어떻게 된 거냐고!”

살아남은 자들은 불구가 되어버렸고 그나마 가장 멀쩡한 사람은 달려오던 흑사련 무사들 무리에서 가장 뒤에 있던 사람 단 한명 뿐이었다.

이신은 남은 한명을 죽이기 위해 그리고 그 역시 이신을 죽이기 위해 검을 있는 힘껏 쥐며 달려들었다.

상혼쾌검(傷魂快劍).

쾌검을 빠르게 구사했지만 이신의 눈에는 모든 검로(劍路)가 뚜렷하게 보였다.

눈에 보이는 검법따위 더 이상 쾌검이라 부를 수 없었다.

아슬아슬하게 검을 피해낸 이신은 쾌검의 빈공간 사이로 매화오품지(梅花五品指)를 날렸다. 지공(指功)은 보통 손가락에서 나가는 장풍의 일종이기 때문에 다른 무공과 달리 3초에서 5초 정도의 준비 시간이 필요하지만 이신에게 준비 시간 따윈 존재하지 않았다. 이것은 제갈 사혁도 불가능한 일이었다.

“젠장!”

왼쪽 어깨가 관통당한 흑사련의 무사는 무릎을 꿇었다.

“얕보지 마라!”

재빨리 일어나 다시 한 번 검을 휘두르자 이신은 그의 손목을 붙잡아 난화수(亂花手)를 펼쳐 뼈와 관절 사이를 끊어버렸다.

“아아!”

하지만 그는 오히려 기합을 내지르며 이신의 목을 물어뜯었지만 그런 짓은 자살행위였다. 상대가 가까이 붙어 있으면 있을수록 주먹으로 상대를 제압하기 쉽다. 특히 권사에게는 더 더욱.

“커억!”

한번 물면 절대 놓지 않는다는 자라처럼 끈질기게 이신의 목을 물어뜯어 그 숨통을 끊으려 했지만 목구멍에서 피가 올라오자 그는 더 이상 이신의 목덜미를 물어뜯을 수 없었다.

============================ 작품 후기 ============================

2012년 10월 5일 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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