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8 회: 그 스승. -->
아침이 되자 제갈 사혁은 한노와 함께 계획을 꾸몄다.
“가죽 주머니에 피는 꽉 채우셨죠?”
“돼지 피로 가득 채웠습니다.”
제갈 사혁의 완벽한 계략은 이러했다. 일단 장초랑이가 나타나면 우연을 가장해 공격을 허용한다. 그리고 부상을 입은 척 한 뒤 장초랑을 꺾는다.
“한 번에 져주시면 안 되는 겁니까?”
“안됩니다.”
이미 제갈 사혁의 무공실력을 상대도 보았기 때문에 갑자기 오늘 장초랑에게 져버릴 순 없었다. 오늘은 우연히 부상을 입은 척하고 내일 그리고 내일모래 점점 부상 때문에 힘든 모습을 보여주며 끝에 가서 장초랑의 손에 쓰러지는 장면을 자연스럽게 연출해야 하기 때문이다.
(할 수 있어! 난 제갈 사혁이다! 나의 계략은 완벽해 실패란 없다!)
제갈 사혁이 장초랑을 뒤에서 조종하는 실체를 알아내기 위해 계략을 꾸민지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되도 장초랑은 나타나지 않았다.
“무진 소협 이제 잡을 돼지도 없습니다.”
“그러니까 처음부터 장초랑이 언제 나타나는지 정확하지 않다니까요. 집사 아저씨.”
이틀씩이나 장초랑이 나타나지 않자 옆에서 가만히 지켜만 보던 성혜도 한마디 하기 시작했다. 결국 포기한 제갈 사혁은 그동안 가짜 피를 만들어내기 위해 죽인 돼지를 노릇노릇하게 구우며 오늘도 별 수확 없는 하루를 보냈다.
(아.... 왜 일까? 사마의 뒤통수 후려치는 갈량이 형처럼 안 되는 걸까? 나도 분명 제갈인데 말이야.)
평소에는 가문을 둘러싼 편견과 맞서기 위해 노력하던 제갈 사혁도 이 순간만큼은 어쩔 수 없었다. 스스로도 심계가 깊은 계략이 아니란 건 잘 알고 있지만 시도할 기회조차 제대로 오지 않으니 미칠 노릇이었다.
제갈 사혁은 약간 타운 돼지고기를 그릇에 담아 한노가 있는 성혜의 집무실로 향했다.
“어르신 고기 다됐습니다.”
“아이고 죄송합니다. 일이 바쁘다보니.”
한노는 성혜의 옆에서 서류 정리를 하고 있었다.
“뭡니까? 이게 다.”
“도장을 운영하기 위해서 이것저것 해야 하니까요.”
“어디 줘보세요.”
“무진 소협!”
제갈 사혁이 갑자기 서류를 빼앗듯 가져가자 성혜는 당황했고 이를 몇에서 보던 한노는 어찌할 줄을 몰라 했다.
한노야 뭐 집사지 총관이 아니니 이런 일에 익숙하지 않을 테지만 성혜의 일처리는 제갈 사혁이 봤을 때는 여기저기 구멍 투성이였다. 화산파라는 거대문파의 후계자인 제갈 사혁에게 도장 관리는 일도 아니었다.
“집이 원래 도장이었다가 상단이었다가 했다면서요. 총관은 없었나요?”
“도장 서류도 상단 서류도 숙부님이 하셨어요.”
“일단 여기 봐요. 여기.”
제갈 사혁이 조금 차가운 목소리로 서류를 가리키자 성혜는 다소 못마땅한 눈초리로 제갈 사혁을 쳐다봤지만 제갈 사혁의 분위기에 이끌려 뭐라고 말 한마디 하지 못했다.
“15살 이하는 꾸준히 계약해지하잖아요. 이게 다 큰 애들이랑 같이 가르쳐서 그렇다니까요. 자기보다 덩치 큰 형들이랑 하는데 뭐가 재미있겠어요. 이 나이 때 애들은 힘자랑하려고 배우는 게 아니라 친구 사귀려고 도장에 오는 거예요.”
화산파는 운대관이라고 해서 보무제자들을 가르치는 곳이 있는데 그곳에 아이들은 나이가 아래위로 한 살 차이씩 밖에 나지 않는다. 때문에 학사관에서 대부분 아이들의 인맥이 형성되고 나중에 화산지회에 가입하게 된다. 나이대가 확실하기 때문에 화산지회는 각 기수마다 기강이 대단하다.
“어차피 나중에 도장 커지면 한 번에 다 가르칠 수 없어요. 시간대를 나눠요. 애들 성취도에도 문제가 생겨요. 계속 이런 식이면 막~ 형들은 맨손으로 벽돌을 부수고 지붕 위를 훨훨 날아다니고 인간 살인병기가 되어 가는데 밑에 애들은 벽돌 격파하다가 지 손모가지가 격파되고 이게 이럴 리가 없다. 저 형은 되는데 왜 난 안 되냐? 좌절하고 그러다 안 되면 울면서 엄마 찾고 난리가 아니라니까요. 눈높이 교육! 알았죠.”
“네.”
“뭐해요. 내가 한 말 적어요.”
제갈 사혁은 마치 선생님이라도 되는 듯 성혜를 가르쳤지만 제갈 사혁도 다 지난 생애에서 사숙들에게 욕 얻어가며 배운 것들이었다.
“그리고 중요한 게 지금 애들이 뭐에요. 선우 도장의 1대 제자들이란 말이에요. 걔네들 그냥 가르쳐서 남 좋은 일 하지 말고 몇 놈 추려다가 일 시켜요. 월급도 받고 직장도 생기고 어차피 걔들 자기 부모님이 가게 운영하는 거 물려받으려면 20년은 더 남았어요. 그리고 걔네들 일 시키면 밑에 애들이 어떨 것 같아요? 지금이야 성혜 소저가 소규모로 운영하니까 문제가 안생기지만 사내 자식들 대가리 커지면 되도 않는 반항을 해요. 그럼 뭐 그때 성혜 소저가 애들 때릴 거예요?”
제갈 사혁의 언변에 압도된 성혜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그저 고개만 좌우로 저었다.
“딱 그때 선우 도장에 취직한 1대 제자 선배가 기강을 잡는 거죠. 왜? 밑에 애들은 내 후배니까. 그러면 후배 놈들은 덜덜덜 떨어요. 아까도 말했죠? 저 선배는 벽돌도 씹어먹고 막 맨손으로 호랑이도 때려잡으니까.”
선후배 관계에 대한 것을 전혀 경험해보지 못한 성혜와 한노는 과연 첫 번째 문하생들을 고용해서 직원으로 삼는 것에 회의적이었다.
“내 말을 믿어요. 선배가 얼마나 무서운데 내가 이 이야기는 안하려 했는데 2년 전에 신년회(新年會)를 기념해서 마작을 했는데 그때 후배하나다 장난을 쳤어요. 그래서 선배가 그걸 보고 동작 그만 밑장 빼기냐? 그러기에 후배가 증거 있어? 어디서 약을 팔아! 이러니까 그때 바닥에 만수패 하나 떨어지고 장난친 거 들켜서 그 후배는 뒤지게 맞았죠.”
“이야기가 딴 곳으로 샜네요.”
“아무튼 그만큼 선배는 무섭고 그때 뒤지게 맞은 후배는 나였다는 거죠. 아직도 그때 생각하면 아찔해서 후덜 거려요. 그 패만 안들켰어도..... 그판 끝날 수 있었는데!”
제갈 사혁의 되도 않는 옛날이야기를 들은 성혜는 일단 그래도 도장의 첫 번째 문하생들 몇몇을 고용하는 일을 생각해보기로 마음먹었다.
“그리고 여기서 돈 많이 나가네. 애들 도복 이거는 그냥 포목점에서 일괄 주문하죠?”
“네. 사천에 있는 유명한.....”
“내가 아는 상단이 있으니까 거기에 부탁할게요. 옷감을 중간 상인한테 구입하는 것도 그렇고 포목점은 대량 생산이 안 되니까. 비싼 거예요. 그리고 이거 옷 생긴 거 봐요. 요즘 애들 이런 거 안 입어요. 엄마가 사준 옷도 마음에 안 든다고 꼬장 부리고 나 이 옷 입고 서당 안 간다고 난리치는 애들이 요즘 애들이에요.”
그 밖에도 제갈 사혁은 조금씩 돈이 세어나가는 부분을 바로 잡았다.
“일단 영업신고도 다시해요. 문파로 신고 되어 있죠?”
“네. 문파 등록되어 있어요. 도장은 조금 애매해서.”
“교육 관련으로 해요. 그렇게 등록하면 세금도 적게 낼 수 있으니까.”
“그거 탈세 아니에요?”
“누가 요즘 세금을 전부 다 내요. 내 말대로 해요. 안 걸려요. 원래 위에 놈들이 돈 좀 더 받아 먹을라고 문파는 따로 세금을 더 내는데 문파에서도 가르칠 거 다 가르쳐요. 글공부부터 인성교육까지 문파가 교육기관이 아니면 어디가 교육기관인데요? 뭐 어디 마교가 교육 기관인가? 아무튼 도장은 문파가 아니에요. 교육기관으로 해놓으면 세금도 적게 내고 나중에 조사 들어와도 아무 말 못해요. 법이 어중간해서 걔네도 어떻게 못해요. 서당에서 애들한테 검술 가르쳤다고 해서 서당이 문파는 아니죠. 그렇잖아요.”
가만히 듣고 있으면 말이 되는데 이성적으로 판단하면 정말 이건 배울 게 못됐지만 지금은 제갈 사혁의 말대로 해야 했다.
“뭐 대충 이렇게 하면 되겠네요.”
제갈 사혁이 서류 정리며 세금 문제며 기타 여러 금액을 줄인 결과 한달 도장 운영비용에 절반이 조금 안 되는 금액을 아낄 수 있었다.
세 사람이 마당으로 나왔을 땐 이미 날이 저물어가고 있었다. 그만큼 정신노동은 힘들었다.
“어디 뭐 술 한 잔 하실래요? 한노 어르신.”
“저야 좋습니까.”
“저도 껴줘요.”
세 사람은 마치 무슨 퇴근하는 공무원 마냥 술을 찾았고 근처 객잔에서 술을 마셨다.
“오랜만에 마시는 술이라서 그런지 입에 착착 감깁니다.”
“무진 소협은 술을 좋아하시나 봅니다.”
“저도 이래저래 아시잖습니까. 남자가 사회 생활하다보면 남자들 간의 그.....”
제갈 사혁이 특유의 표정과 알아먹지도 못할 손짓을 보이자 대충 남자들만의 대화로 어떻게 이해를 한 한노는 잔잔한 미소를 지었다.
“나 더 이상 못 먹어~”
한참 무르익어갈 때 성혜가 그만 뻗어버렸고 하는 수 없이 제갈 사혁이 성혜를 업고 객잔을 나왔다.
“무진 소협이 계셔서 다행입니다. 남자라고는 다 늙어가는 저 뿐이라 사실 불안했습니다.”
“무얼요. 한노 어르신께서 계신 덕에 성혜 소저가 이렇게 열심히 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무진 소협 이번 일이 끝나면 저희 도장에.....”
“성혜! 어디에 있나! 나 장초랑이다.”
정말 어이없는 순간이 아닐 수 없었다. 기분 좋게 한잔 하고 들어가려는데 장초랑이 나타났다.
“한노 어르신 돼지 주머니 있습니까?”
“그런 게 지금 있을 리 없잖습니까!”
“일단 성혜 소저부터 내려놓고.....”
성혜를 내려놓고 장초랑의 얼굴을 본 순간 제갈 사혁도 그리고 한노도 그 자리에서 굳어버렸다. 이번에 나타난 장초랑은 다름 아닌 종사 도장의 관장인 천곤지사였기 때문이다.
“천곤지사! 이게 무슨 짓이오!”
“나는 장초랑이다!”
천곤지사가 경공을 펼쳐 순식간에 다가오자 제갈 사혁은 급히 두 팔을 올려 방어 자세를 취했지만 몸이 그대로 붕 떠버려 저택 벽을 부수고 날아가 버렸다.
먼지 풀풀 날리는 황토 잔해 속에서 힘들게 일어난 제갈 사혁은 천곤지사의 상태가 정상이 아님을 알 수 있었다. 그동안 본 장초랑들은 하나 같이 자신을 장초랑이라는 가상의 인물이라 주장했지만 천곤지사는 달랐다. 그는 분명 종사 도장의 천곤지사였다.
얼굴과 이름뿐이지만 일단 아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이런 말도 안 되는 행동과 언행을 보이다니 이는 필시 조종당하고 있는 게 분명했다.
(하지만 어떻게?)
강호무림에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는 마약은 존재하지만 이토록 정확하게 상대를 움직일 수 있는 ‘방법’은 존재하지 않았다. 그런 게 가능한 자가 있다면 그는 인간이 아니라 신이다.
“알게 뭐야!”
지금은 그딴 걸 생각할 여유가 없었다.
난화불혈수(蘭花拂穴手).
상대는 천곤지사였다. 성혜와 같은 난주 지역의 관장. 성혜를 위해서라도 죽일 수 없었다. 최대한 금나수로 잡아 상대를 제압하려 했지만 천곤지사의 실력은 쉽게 제압으로 끝날 수준이 아니었다.
“천곤지사 미리 사과드리겠소!”
생각을 바꾼 제갈 사혁은 천곤지사를 쓰러트리기로 마음먹었다.
표미각(豹尾脚)으로 천곤지사의 심장을 노렸지만 천곤지사는 무쇠와 같은 두 팔로 막아냈다.
묵직한 주먹과 어떠한 공격도 튕겨내는 강인한 근육은 제갈 사혁처럼 영약을 이용해 신체를 튼튼하게 만든 것과 달리 오랜 시간 외공을 기초부터 차근차근 수련한 느낌이었다.
두 팔로 공격을 막고 있을 때 일부러 그곳을 집중 공격했다. 그러자 공격 주도권을 빼앗기 위해 천곤지사는 방어를 풀었고 그 순간 제갈 사혁은 가볍고 빠르게 천곤지사의 턱을 후려쳤다.
(느낌이 왔어!)
턱을 빠르고 가볍게 후려치면 순간 다리가 풀린다. 하지만 천곤지사는 아무렇지 않게 두 손으로 제갈 사혁을 들어올렸다.
(망할!)
제갈 사혁은 재빨리 천곤지사의 왼팔에 역십자 꺾기를 걸어 천곤지사의 팔을 부러트렸다.
팔이 꺾여 힘이 빠지자 천곤지사의 손아귀에서 벗어난 제갈 사혁은 그 틈을 맹공을 퍼부었다. 하지만 이미 통증을 주는 수준으로는 천곤지사를 어떻게 할 수 없었다.
“나는 장초랑이다!”
제갈 사혁의 뒷머리를 움켜쥔 천곤지사는 그대로 박치기를 날렸다.
“도대체 이게 무슨?”
제갈 사혁과 천곤지사가 싸우는 소리에 잠에서 깬 성혜는 이 상황을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다.
“집사 아저씨 이게 도대체?”
“관장님 장초랑입니다.”
“하지만 저 사람은 천곤지사잖아요.”
“하지만 장초랑입니다.”
모르는 사람이 장초랑이라 칭하며 나타났을 때는 그러려니 했지만 아는 사람이 장초랑이라며 나타나자 성혜는 이 상황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 작품 후기 ============================
정말 어제는 많은 분들이 오타 지적을 해주셔서 전부 수정할 수 있었습니다.
앞으로도 문법상 틀린 부분이 있으면 지적해주십시오.
여러분들의 지적 하나하나가 저의 경험이 되고 이 소설의 양분이 됩니다.
제가 쓰기만 했을 땐 단순히 그냥 글에 불과하지만 여러분이 읽어주셨을 때 이 글은 소설이라 불릴 수 있게 됩니다. 앞으로도 틀린 점이 있으면 쪽지나 댓글 써주십시오.
쓰다보니 후기 쓰는 걸 잊었네요.
인터넷을 바꿨습니다. 그런데 좀 짜증나더군요.
작년에 우연히 스마트폰 바꾸면서 인터넷도 같이 바꿨는데 1년 지나자 마자 연락이 왔습니다. 인터넷 사업장에서....
인터넷 내가 바꿀 때 바꾸는 거지 1년 지난 고객 명부까지 존재하는 게 완전 무슨 고객 사육 하는 것도 아니고 속도는 빨리 나오지만... 기분 더러웠습니다.
1년 지난 걸 니들이 왜 계산하는데? 뭐 고객이 물고기냐? 때되면 밥주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