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화산의협-89화 (89/262)

<-- 89 회: 그 스승. -->

“집사 아저씨 이게 도대체?”

“아가씨 장초랑입니다.”

“하지만 저 사람은 천곤지사잖아요.”

“하지만 장초랑입니다.”

모르는 사람이 장초랑이라 칭하며 나타났을 때는 그러려니 했지만 아는 사람이 장초랑이라며 나타나자 성혜는 이 상황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이 노인네가 진짜!”

두 손을 허리에 모은 제갈 사혁은 천곤지사의 무지막지한 박치기가 들어오는 순간 두 개의 손날로 천곤지사의 배를 찔렀다.

“안 돼!”

“!”

다행히 제갈 사혁의 공격은 천곤지사의 피부를 약간 베어낸 정도에서 끝이 났다.

성혜의 비명소리가 아니었다면 제갈 사혁의 두 손은 두 자루의 창이 되어 기어이 천곤지사의 목숨을 끊었을 것이고 그렇게 되면 사태는 심각해졌다.

천곤지사의 움직임이 멈추자 제갈 사혁은 재빨리 두 팔로 천곤지사를 밀어냈다.

“무진 소협 죽이면 안돼요!”

“알고 있습니다!”

(이건 쓰기 싫었지만 한번 써보는 수밖에.......)

이 일격에 모든 것을 걸 생각을 한 제갈 사혁은 경공을 펼쳐 순식간에 천곤지사에게 다가갔다.

(이신을 위해 만든 무공이지만!)

제갈 사혁은 평소와 다르게 힘이 전혀 실리지 않은 내공권으로 천곤지사의 왼쪽 가슴을 후려쳤다.

(뇌제교연(雷帝嶠燃).)

내공권이 가슴에 닿자 전류가 천곤지사의 몸을 꿰뚫고 지나갔다. 그로부터 약 3초 후 밖으로 빠져나갔던 전류가 역으로 뇌전이 만들어낸 섬광을 따라 흘러들어와 천곤지사의 몸을 휘감았다.

“으아아아아!”

천곤지사는 고막이 터질 듯한 비명을 질렀고 그것은 제갈 사혁 역시 마찬가지였다.

뇌전에 내성에 있는 이신과 달리 뇌전에 대한 내성이 전혀 없기 때문에 천곤지사를 꿰뚫고 돌아온 뇌전은 고스란히 제갈 사혁에게도 영향을 주었다.

(이래서 쓰기 싫었단 말이지.....)

하지만 상대를 죽이지 않고 제압하는 데는 이만한 기술이 없었다.

뇌제교연은 자신의 정전기(靜電氣)와 상대의 정전기를 전부 밖으로 배출해낸 뒤 밖으로 나간 정전기가 대기 중에 마찰을 일으켜 엄청난 양의 뇌전이 생성되면 그것을 다시 끌어오는 방식이었다. 그 과정에서 피폭자는 물론 시전자 또한 피해를 입게 된다. 어떤 의미에서는 자폭이나 다름없지만 사용자가 이신 같은 뇌전에 재능이 있는 자라면 그야말로 천하제일.

깨달음으로 이뤄낸 성취와 화산파의 실패한 무공들을 활용해 만들어낸 어떤 의미에서는 제갈 사혁 자신조차 길들일 수 없는 오직 이신만을 위해 만든 무공이었다.

뇌전이 가져다 줄 충격을 예상하고 있었기 때문에 제갈 사혁은 견딜만했지만 천곤지사는 그 자리에서 기절하고 말았다.

다음날이 되자 제갈 사혁은 먼지를 뒤집어쓰며 선우 도장의 연무장에 쓰러졌다.

“감히 나를 공격하다니! 어린놈이 눈에 뵈는 게 없구나!”

제갈 사혁을 공격한 사람은 다름 아닌 천곤지사였고 그런 천곤지사 앞을 성혜가 가로 막았다.

“대협! 어찌 이러십니까? 대협은 그때 제정신이 아니셨습니다.”

“닥치시오! 그렇다고 하나 감히 본인의 몸에 상처를 입히다니 이게 무슨 짓이오!”

“물러서세요!”

“성혜 관장이야 말로 끼어들 자리가 아니오!”

성혜가 가로막자 천곤지사는 성혜를 거칠게 밀어냈다. 그러자 이를 본 제갈 사혁은 허리에 차고 있는 호황을 꺼내들었다.

“성혜 소저의 입장을 생각해 사정 봐줬는데 뭐가 어쩌고 어째?”

“어린놈이 오만하구나!”

유성추월검(流星追月劍).

제갈 사혁이 먼저 공격을 들어오자 유성추월검의 모든 초식을 피해낸 나한권(羅漢拳)의 초식으로 제갈 사혁을 제압했다. 나한권의 무자비한 타격에 제갈 사혁은 피를 뱉으며 쓰러졌고 천곤지사는 피가 섞인 침을 뱉으며 성혜를 향해 경고했다.

“이번 일 그냥 넘어가지 않겠소.”

천곤지사가 선우 도장을 나서자 성혜는 서둘러 제갈 사혁의 상태를 살폈고 제갈 사혁은 피를 토하며 힘겹게 한노의 부축을 받았다. 그리고 이를 지켜보던 선우 도장 문하생들은 성혜가 사라지자 저마다 한마디씩 하기 시작했다.

“무림맹에서 왔다더니....”

“너희들 봤어? 저 사람 실력 말이야.”

“나도 선우 도장 때려치우고 거기나 갈까. 여기서 얼마 안 걸리는 곳에 있다고 하잖아.”

그렇게 문하생들의 입을 통해 소문이 퍼져나가자 곧 난주 지역 전체에 무림맹에서 파견된 무사를 천곤지사가 제압했다는 내용의 소문이 퍼졌고 마치 이 때를 기다렸다는 듯 창을 든 중년 남자의 모습을 한 장초랑이 나타났다.

“성혜! 나 장초랑이 왔다!”

천곤노사 때와 마찬가지로 이번에 나타난 장초랑도 알 듯 모를 듯한 말을 내뱉으며 팔푼이처럼 나타났다.

“기다리고 있었다......”

머리에 붕대를 싸맨 제갈 사혁은 장초랑을 막기 위해 아픈 몸을 이끌고 나타났다.

“무진 소협 안됩니다!”

“이거 놓으십시오!”

한노가 급히 달려와 제갈 사혁의 팔을 붙들고 말렸지만 제갈 사혁은 한노의 팔을 거칠게 뿌리치고 장초랑과 싸웠다.

난화불혈수(蘭花拂穴手)를 펼쳐 제압하려 했지만 움직임이 이전과 같지 않아 장초랑을 제압할 수 없었다. 가볍게 금나수를 피한 장초랑은 반동을 이용해 역공에 들어갔고 창대가 제갈 사혁의 복부를 후려치자 그대로 쓰러진 제갈 사혁은 힘겹게 숨만 쉴 뿐 제대로 일어나지 못했다.

“멈춰요! 여기서부터는 내가 상대하죠!”

성혜가 자세를 잡고 싸울 준비를 하자 그 순간 어디선가 남자의 웃음소리가 울려퍼졌다.

“하하하하~ 지나가는 길 여인의 비명소리가 들려서 가던 길을 멈추고 참견 좀 할까 하오!”

하늘에서 뜬금없이 나타난 백의의 남자는 발차기 한방으로 장초랑을 쓰러트린 뒤 성혜의 손을 마주잡았다.

“안심하십시오. 소저.”

장초랑을 일격에 쓰러트린 남자는 얼핏보면 선우 도장과 성혜를 위험에서 구해낸 구세주였다.

“놀고 있네~”

바로 그때 피범벅이 되어 쓰러진 제갈 사혁이 아무렇지도 않게 자리에서 일어나 좌우로 목운동을 하면서 특유의 건방진 말투로 백의의 남자에게 욕설을 내뱉기 시작했다.

“내공 한점 안 느껴지는 발차기 한방에 장초랑이가 뻗어? 말이 되냐 새꺄?”

제갈 사혁이 생각보다 멀쩡하자 어째서인지 백의의 남자는 당황한 기색이 역역했다.

“무슨 소리이오?”

“사내새끼가 모른 척 빼기는~ 내가 하는 말 귓구멍 파고 잘 들어. 너 새됐어 이 새꺄.”

“본인은 무슨 말인지 모르겠소.”

“내가 장초랑이한테 얻어맞자마자 딱 좋은 시점에 나타나더라. 너무 기가 막히게 말이야.”

“아까도 말했지만 지나가는 길이었소.”

지나가는 길이었다는 말에 제갈 사혁은 가소롭다는 듯 백의의 남자를 쳐다봤다. 그리고 어디론가 손짓을 하자 곧 선우 도장의 문하생 한명이 모습을 드러냈다.

“이자는 저기 정육점 지붕 위에서 이곳을 구경하고 있다 무진 소협이 장초랑에게 당한 순간 나타났습니다.”

그 말은 곧 지나가던 길이 아니라 지붕 위에서 때를 기다렸다는 말이 됐다.

“지나가는 길은 개뿔!”

“......”

“말해봐. 정육점 지붕에서 뭐 하고 있었는데 별 구경했냐?”

천천히 뽑아든 호황의 날이 달빛에 비치며 바라보는 이들로 하여금 이유 없이 목덜미를 더듬게 만들었다.

“별구경 왔다고 해봐. 그럼 니가 네 아빠다.”

제갈 사혁이 검을 뽑아들자 어디선가 경공을 펼칠 때 들려오는 소리가 났고 소리를 인지했을 땐 이미 흑의인이 나타나 백의의 남자를 감싸고 달아나려했다.

“어림없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선우 도장의 지붕 위에 숨어 있던 천곤지사가 흑의인을 제압했다.

공중에 높이 떠 떨어지는 힘을 이용해 두 무릎으로 상대를 제압하는 소림의 가장 악랄한 무공 응조희강(鷹鳥凞强).

실제로 보는 것은 제갈 사혁도 처음이었다.

“나가자! 우와와와~”

그리고 그와 동시에 횃불을 하나씩 들고 선우 도장의 문하생들이 달려나와 선우 도장 주변을 둥글게 감쌌다. 빠져나가기는커녕 쥐구멍도 찾을 수 없었다.

이 일이 있기 바로 전날 밤이었다.

다행히 천곤지사는 친하진 않지만 면식(面識)이 없는 사람은 아니다. 깨어나면 자조지정을 들을 수 있었다. 흑의인이 또 나타날지 몰라 잠시 경계하던 제갈 사혁은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르자 경계를 풀고 쓰러진 천곤지사를 방으로 데리고 갔다.

다음 날 새벽 천곤지사는 간신히 의식을 되찾았고 성혜와 한노는 천곤지사에게 자조지정을 듣기 위해 자리에 함께했지만.

“연합회가 끝난 뒤 돌아가려고 마차에 올라타는데 그 후에 기억이 전혀 나지 않소. 하지만 돌아가는 길에 마차 안에서 무슨 향을 맡았던 것까지는 기억하오.”

수면 향 같은 건 무림에 흔하지만 중요한 건 천곤지사를 마음대로 조종했다는 점에 있었다. 그런 건 중원 어디에도 없는 마교도 하지 못할 신묘한 술수였다,

제갈 사혁은 천곤지사에게 그가 정신을 잃었을 때 행했던 일들을 하나하나 각인시켜주었다. 그러자 천곤지사는 잠시 고민에 빠지더니 성치 않은 몸으로 갑자기 연무(演武)를 펼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무슨 짓인가 싶었는데 차츰 제갈 사혁은 천곤지사의 의도를 알 수 있었다.

(소림사의 속가제자였군.)

천곤지사의 무공은 모두 소림의 것이었고 연무를 끝마친 천곤지사는 근심이 가득한 얼굴로 제갈 사혁의 표정을 주시했다.

“저와 합을 겨루실 때 단 한초식도 쓰지 않으셨습니다.”

“사문에 누를 끼치지 않아서 다행이오.”

사문의 무공을 써서 해를 끼치지 않았다는 것에 만족한 천곤지사는 제갈 사혁과 성혜 모두에게 무릎을 꿇었다.

“이번 일에 제 도움이 필요하시다면 어떠한 일이든 돕겠습니다.”

도와주겠다니 기쁘지만 제갈 사혁은 이 틈을 놓치지 않고 오히려 천곤지사를 고양(高揚) 시켜 주었다.

“이것은 결코 저희를 돕는 일이 아닙니다. 천곤지사님께서 스스로의 명예를 되찾는 일일 뿐입니다. 저희를 돕는다고 생각지 마십시오.”

아무리 듣기 좋으라고 꾸민 말이지만 젊은 사람이 그렇게까지 신경써주자 천곤지사는 경의를 표하며 포권을 취했다.

“제 계획이 있는데 혹시 도와주실 수 있습니까?”

“내 명예를 찾는 일이며 동시에 선우 도장에 끼친 누를 해결할 수 있다면 어떠한 일이라도 돕겠소.”

제갈 사혁은 자신이 계획한 일을 천곤지사에게 알려주었고 이를 듣고 있던 천곤지사는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소협의 심계는 훌륭하나 내 여기에 몇 가지를 더하겠소. 한번 들어보시오.”

그리고 오늘 밤 제갈 사혁과 천곤지사 그리고 선우도장의 문하생들이 만들어낸 그물에 대어가 잡혔다.

“야.”

평소의 거만한 미소를 지으며 제갈 사혁은 불도 안 붙인 곰방대를 물었다.

“세상을 살다보면 절대 건들이면 안 되는 사람이 있지?”

그리고 그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선우 도장의 문하생이 제갈 사혁의 곰방대에 불을 붙였다.

“그게 나야.”

============================ 작품 후기 ============================

슬슬 이번 이야기도 마무리를 지어야겠네요.

요즘 하루에 한번 글을 올리고 있지만 글 쓰는 속도는 평소와 같습니다.

하루 2~3시간....

그 중에 생각하는 시간이 1시간 30분 정도 되는 것 같으니 실제 글 쓰는 시간은 1시간 30분 정도입니다. (심심해서 오늘 작업한 거 계산해보니 그렇더군요.)

글쓰는 게 힘들지는 않습니다.

자연스러운 사건전개나 제가 생각했던 주제와의 연계가 어려울 뿐이죠.

옴니버스 형식이라 전체적 흐름이 잘 안나가는 것도 있지만 어차피 출판되면 쳐낼 건 쳐내신다고 하니 오히려 부담없이 글을 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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