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2 회: 제갈 사혁이라는 이름. -->
감숙과 사천의 경계에 있는 마을을 지나던 제갈 사혁은 우연히 호객 행위를 하는 점소이의 손에 이끌려 반강제로 자리에 앉았다. 객잔에는 손님들로 인산인해(人山人海)를 이뤘지만 이상하게 어느 누구도 술을 마시지 않았다. 심지어 묵언 수행을 하는 스님들도 아닌데 모르는 사람끼리 합석이라도 한 것처럼 이야기가 오고가는 자리도 없었다.
손님이 묵고 간다하여 객잔 술을 마시로 온다하여 주루 기생을 품기위해 온다고 해서 기루라고 부른다. 주루를 주루라 부른다고 해서 객잔과 기루에서 술을 마시지 않는 것은 아니다. 사람이 있는 곳에는 반드시 술이 있다. 곳간에 곡식이 없어도 술병에 술이 없는 날은 없다.
“어떤 걸로 주문하시겠습니까?”
“동화주와 경장육사로 부탁하네. 동화주는 술병을 뜨거운 물에 흔들어서 주게 취하고 싶군. 경장육사의 죽순은 야들야들하게 씹히는 맛이 있었으면 좋겠고 고기는 질기지 않게 잘 두들겨주게 아 그리고 파채는 얇으면 얇을수록 좋겠군.”
평소와는 달리 까다로운 주문을 했지만 점소이는 아무렇지 않게 주문을 받고 가버렸다.
“잠깐 기다리게 물수건 하나 가져다주겠나?”
“알겠습니다.”
사람들 사이에 있지만 조용한 것이 사람의 온기는 느껴지지 않고 바람만 부는 꼴이 꼭 사막 한 가운데에 탁자와 의자만 놓고 앉아 있는 꼴이었다. 잠시 곁눈질로 주위를 둘러보던 제갈 사혁은 이내 천장을 올려다봤다. 천장 사이사이에는 거미줄이 쳐져있지만 거미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오랫동안 청소를 하지 않았다는 뜻이었다.
부자연스러운 몇 가지를 확인한 한 제갈 사혁은 두 팔을 벌려 기지개를 편 후 일부로 뒤로 넘어져 소란을 일으켰다. 하지만 누구 하나 제갈 사혁에게 눈길도 주지 않았다.
사람이 멍청하게 뒤로 넘어지면 비웃거나 이쪽을 보기라도 해야 하는데 꼭 다른 꿍꿍이가 있는 사람들처럼 반응이 부자연스러웠다.
“죄송합니다. 피곤해서 그런 것이니 너무 흉보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제갈 사혁이 뒤쪽에 앉아 있던 농부에게 포권지례를 올리며 정중히 사과하자 농부는 손사래를 쳤다.
“손님 여기 물수건 대령했습니다.”
점소이가 물수건을 가져오자 제갈 사혁은 주머니에서 닷냥 정도를 꺼내 점소이에게 쥐어주었다.
“감사합니다.”
“그거 아나?”
“네?”
“일반적으로 물수건이라고 하면 한번 삶아낸 수건을 말하네. 찬물에 적신 수건을 말하는 게 아니라.”
천장에 거미줄과 객잔에 부자연스런 광경 그리고 한낱 점소이와 농부의 손뼉과 손마디마디에 굳은살.
그 말과 동시에 호황을 뽑아 점소이의 목을 베 버렸다. 그러자 객잔에 앉아 있던 사람들은 일제히 검을 뽑아들었다.
“제갈 사혁! 오늘이 네 제삿날이다!”
“객잔을 위장해 나를 끌어들이며 손님대접을 하더니 이제와서 딴 소리냐? 외첨내소(外諂內疎)구나.”
호황을 칼집에 넣은 제갈 사혁은 자신만만하게 팔짱을 끼며 수적 열세에도 불구하고 절대다수를 압박했다.
“내게서 살아남기 위해 덤벼라!”
“오만방자한 놈!”
그 중 한명이 미친 듯이 검을 휘두르며 달려왔지만 제갈 사혁은 금나수를 펼쳐 상대의 목을 부여잡은 뒤 그대로 꺾여버렸다. 그리고는 사람의 시체를 깔고 앉아 호황의 칼집부분으로 등을 긁었다.
“시간 좀 줄 테니까. 술이라도 한잔하는 게 어때 이승에서 마지막으로 마시는 술은 특별 할 거야.”
“어린놈이 언제까지 여유부리나 두고 보자!”
사방에서 검을 내려치자 제갈 사혁은 그것을 한손으로 받아냈다. 수십 자루의 검을 한손으로 움켜쥔 채 손아귀에 힘을 쥐어 검을 구부러트리자 실뭉치처럼 엉킨 쇳덩어리가 되었다.
이 괴이한 장명은 목격한 습격자들은 저마다 할 말을 잊은 채 멍하니 한때 자신의 검이었던 쇳덩어리를 바라보기만 할 뿐이었고 제갈 사혁은 여유 있게 넋이 나간 사람의 옷으로 피범벅이 된 왼손을 닦았다.
“요새 외공이 약해진 건가? 하긴 먹고 자고 내공 훈련만 했으니 약해질 법도 하지.”
왼손에 상처가 아물자 볼일 다 끝났다는 듯 수건 대용으로 사용한 사람의 턱주가리를 후려갈겼다. 그러자 넋이 나가 있던 습격자들은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마음을 단단히 먹었다.
“니들이 누구인지 어떤 이유로 이러는지 모르지만 몰라도 상관없어.”
정말 상관없을 리 없지만 녀석들의 무공을 견식하면 대충 답이 나오리라 생각했고 정 안되면 몇 놈 살려다가 협박을 하던 고문을 하던 무슨 짓을 해서든 알아낼 셈이었다.
의자를 집어든 제갈 사혁은 의자를 휘둘러 가장 가까이에 있는 적부터 처리했다. 얼마나 세게 휘둘렀는지 의자가 박살이 나면서 튀는 파편에 피해를 입을 정도였다.
주먹으로 상대의 얼굴을 으스러트리며 길을 연 제갈 사혁 객잔을 빠져나왔다.
객잔을 빠져나와 확 트인 곳에 자리를 잡은 뒤 자신을 따라 좁은 객잔 문을 통해 적들이 나오려하자 입구 하나를 두고 화운검(火雲劍)을 펼쳤다.
화운검의 열기에 의해 객잔 나무 기둥에 불이 옮겨 붙자 순식간에 연기가 피어올라 객잔 안에 있는 습격자들을 정신적으로 압박했다. 수십 명의 사내들이 앞뒤 안 가리고 창문을 통해 빠져나오자 제갈 사혁은 그 모습을 보며 박장대소를 했다.
“푸하하하~ 등신들!”
“뭐가 웃겨 이 미친놈아!”
검은 어디다 두고 왔는지 창문 열대 걸어두는 막대기를 휘두르자 다리를 걸어 넘어트린 후 발로 밟아 척추를 부러트렸다.
정신을 차린 놈들은 하나 둘 제갈 사혁을 물어뜯을 기세로 달려들었고 그때마다 제갈 사혁은 팔을 꺾어버리거나 다리를 부러트리는 식으로 상대를 쓰러트렸다. 아무리 무공을 견식해봐도 그냥 이름 없는 낭인이라는 판단밖에 서지 않았다.
“커헉....”
“이 개새....”
“내 다리! 아윽.... ”
“염병할 눈이 안보여? 누가 좀 말 좀 해봐 내 눈이 어떻게 된 거냐고?”
처음 죽여 버린 점소이와 이하 6명을 제외하면 나머지는 전부 부상차원에서 끝을 냈다.
모든 일이 끝났을 때 제갈 사혁의 행색은 흡사 거지보다 못했다. 몇 십 명이 제갈 사혁 하나 죽이자고 달려들자 피하지 못한 공격도 많았고 그러다보니 몸은 멀쩡해도 옷은 걸레로도 사용하지 못했다.
“자~ 다른 사람들 목숨 너한테 달렸다. 한 번에 가자.”
두 다리가 잘리고 목숨만 붙어 있는 낭인의 멱살을 붙잡은 제갈 사혁은 낭인과 두 눈을 마주친 뒤 최면을 걸 듯 늘어지는 목소리로 낭인의 귀에 속삭였다.
“누가 시켰어? 말해봐.”
“.............”
하지만 낭인은 제갈 사혁을 무섭게 노려보기만 할 뿐 절대 입을 열지 않았다. 저 눈빛은 이미 각오를 한 눈빛이었다.
“후우~”
한숨을 내쉰 제갈 사혁은 그대로 낭인의 목을 꺾어버렸다. 그리고는 바로 옆으로 가 똑같은 방식으로 멱살을 잡고 눈을 맞췄다.
“나도 나쁜 사람 아니다. 그냥 의뢰인이 누군지만 말하면 그냥 살려줄....”
“퉷!”
“요새 내 얼굴에 침 뱉는 사람이 왜 이리 많아. 이러니까 내가 여자들한테 인기가 없지.”
그 후로도 똑같이 회유하고 설득해봤지만 나오는 건 없었다.
단호한 의지 사나이의 침묵 좋았다. 다 좋은데........
“말하면 살려준다고 이 미친놈들아! 무슨 벼슬을 하겠다고 비밀을 지키고 지랄이야! 양아치는 양아치답게 목숨을 구걸하라고 내 바짓가랑이 붙잡고 살려 달라 빌란 말이야!”
힘으로 우겨서 깔아뭉겠더니 뭐 하나 쉬운 게 없었다. 무슨 정협지사도 아닌 놈들이 쥐뿔도 없으면서 의뢰인을 위해 침묵을 지키는 꼴은 여간해서 봐주기 힘들었다. 그렇지 않아도 사제인 무덕이 강호의 정세가 좋지 않다는 소리를 하기에 대충 그런가보다 하고 넘어갔는데 다른 사람도 아니고 화산파의 후계자를 노골적으로 노리고 오는 놈들이라니 기가 찰 노릇이었다.
두 손이 피에 절었지만 이 정도는 늘 있는 일이기 때문에 제갈 사혁은 콧노래까지 부르며 마을 우물로 향했다. 그런데 그 순간 제갈 사혁은 눈앞에 펼쳐진 광경을 믿을 수 없었다.
우물 주변에는 총 5명의 시신이 있었다. 아마도 살펴보니 모두 평범한 사람들이었다.
“그러고 보니!”
그 난리를 겪는 덕에 잊고 있었지만 마을이 너무 조용했다.
제갈 사혁은 가장 가까운 집에 찾아갔다.
창호지로 되어있는 문에는 붉은 핏자국이 흐릿하게 드러났고 그것을 본 순간 가슴이 미친 듯이 뛰기 시작했다. 떨림이 멈추지 않는 손으로 천천히 문을 열자 그곳에는 비극뿐이었다.
“이게 뭐야..... 이게 뭐냐고 누가 설명 좀 해봐!”
제갈 사혁은 그날 근처 방파를 통해 화산파에 연통을 넣었다. 이 일은 지극히 개인적인 용무였다.
다음날 새벽이 돼서야 화산파의 매화검수들이 나타났다.
그날 오후부터 새벽까지 낭인들의 시체를 쌓아 만든 산 위에서 뜬눈으로 밤을 보낸 제갈 사혁을 본 순간 화산지회에서 온 사람이 제갈 사혁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백사혁이 오랜만이다.”
백사혁 실로 오랜만에 듣는 이름이었다.
운대관시절 동기였던 비성(斐星)이 손을 흔들자 제갈 사혁은 그제야 시체 산에서 내려왔다.
“뭔 일이야. 나도 선배들이 갑자기 보내서 무슨 이야기인지 못 들었어.”
속가 제자 모임인 화산지회에 소속된 비성의 본업은 의원이었다.
“시체 좀 부검해봐. 이 새끼들 어떤 무공을 익혔는지 알아야겠어.”
“오랜만에 만나서는 일거리만 잔뜩 주기냐?”
비성은 불평을 늘어놓으면서 이미 부검 준비를 하고 있었다.
밤새 한숨도 쉬지 못한 제갈 사혁이 허리에서 호황을 꺼내자 무덕이 호황을 두 손으로 받아들었다.
“무덕 마을 사람들의 시신을 묻어주어라.”
“네 사형.”
무덕으로부터 심상치 않다는 경고를 들었지만 무덕 본인도 자세한 것은 모르고 있었다. 그저 지금은 부검결과를 기다리는 수밖에 달리 방법이 없었다.
근처 냇물에서 몸을 씻는 내내 제갈 사혁의 미간은 펴질 생각을 하지 않았다.
이런 게 아니었다. 제갈 사혁의 생각한 ‘내일’은 이런 게 아니었다. 제갈 사혁이 생각한 내일은 무림맹에 입성하고 이신이 임무에 대해서 물으면 거짓말을 있는 대로 다 긁어서 무슨 한 시대를 뒤흔들 대 사건마냥 부풀린 후 거만한 표정으로 곰방대를 물며 “그래봤자 별거 아니었어.”라고 허세를 떨면 그만이었다.
“내가 누구인줄 알고 감히!”
오늘이었어야 할 그 내일을 망쳐버리다니 용서할 수 없었다.
============================ 작품 후기 ============================
후기는........................
아프리카에 쿠데타가 일어났데요.
다이제 초코 맛이 맛있네요.
스마트폰을 폴더 폰으로 다시 바꿨습니다.
그리고 저 내일 생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