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5 회: 제갈 사혁이라는 이름. -->
“젠장....”
불의의 일격에 제갈 사혁이 쓰러지자 곧바로 제갈 사혁에게 당했던 또 한명의 암살자가 빠르게 접근했다.
“당신 뭐야?”
동종업계 사람이라는 것은 척 보기만 해도 알 수 있었지만 보통 암살자들은 서로 왕래가 없는 편이었다. 보통 이렇게 만나게 되는 경우가 없기 때문에 제갈 사혁을 가장 먼저 노렸던 암살자는 자신의 소속 단체를 밝혔다.
“무영곡(無影谷)이오.”
“나도 무영곡이오.”
살수단체의 경우 이상하게 이름이 겹치는 경우가 많았다. 우스운 이야기지만 강호에 무영곡이라는 이름의 단체만 네 곳이 있다. 그 중 세 곳이 살수단체고 나머지 한 곳이 일전에 제갈 사혁이 서백호를 잡으러 간 마교의 분타다.
“나는 사천이오.”
“운남 쪽 식구요.”
제갈 사혁을 제일 먼저 노렸던 이가 운남 그리고 이번에 제갈 사혁의 방에 침입한 자가 사천 쪽이었다.
“내가 제갈 사혁을 먼저 노렸소. 양보하시오.”
운남 무영곡이 먼저 제갈 사혁에 대한 권리를 주장하자 사천 무영곡은 제갈 사혁과 운남 무영곡을 쭉 보더니 이내 땅에 떨어진 족자를 주웠다. 제갈 사혁이 방에서 도망칠 때 챙겨온 족자 두 개였다.
“그쪽 마음대로 하시오. 나는 이거만 있으면 되니까.”
암살을 목적으로 하는 살수이면서 암살 대상이 아닌 물건을 탐하는 경우는 그리 많지 않았다. 때문에 운남 무영곡은 사천 무영곡이 가져가려는 족자에 관심을 보였다.
“그게 무엇이오?”
“왜 이러시오. 운남 형씨 남에 것에 관심을 갖는 건 불문율에 어긋나오.”
살수들 간의 불문율까지 언급을 하자 운남 무영곡은 족자에 더 관심을 가졌다.
“좀 봅시다.”
“허허~ 거참!”
운남 무영곡이 끈질기게 따라 붙자 사천 무영곡은 못이기는 척 족자의 끈을 풀었다.
“형씨만 알고 계시오. 이것은 말이오.”
그 순간 족자를 세게 잡아당기자 족자에서 새하얀 먼지가 퍼지며 운남 무영곡의 눈 코 입에 닿았다.
“만리제독선(慢鯉制毒腺)이라고 하오.”
그 말과 동시에 운남 무영곡은 정신을 잃고 쓰러졌다.
“야~”
다시 일어났을 때는 배에 칼을 맞고 쓰러진 제갈 사혁이 자신의 뺨을 때리며 깨우고 있었다.
“이름이 뭐냐?”
제갈 사혁이 멀쩡한 모습으로 자신을 취조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은 운남 무영곡은 눈동자를 재빠르게 굴려가며 주위를 살폈다.
사방이 쇠로 된 밀실이었다. 그 말은 곧 절대 도망칠 수 없음을 뜻했다.
“제남(濟南)이오.”
살수는 보통 이름이 없다. 하지만 운남 무영곡 아니 제남은 본명이 따로 있었다.
“살수 주제에 이름도 있네.”
“나으리~ 제남. 이게 뭐겠소? 산동 제남에서 따온 것 아니오.”
“아무튼 이름 아니야!”
자세히 보니 옆에는 사천 무영곡도 함께 있었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이오?”
“미안하게 됐수다. 제남 형. 이 바닥이 다 그런 거 아니겠소. 내 주인은 제갈 사혁 나으리시오.”
제갈 사혁이 살수를 고용해 자기 자신을 급습하게 했다는 말인가?
제남은 자신이 함정에 빠졌다는 것을 깨달았다. 하지만 살수들 간의 불문율이라는 게 있었다. 살수들은 절대 무슨 일이 있어도 다른 단체나 혹은 그에 준하는 자의 일을 방해하면 안 된다.
“불문율을 어기는 것이오?”
“제남 형. 무슨 말이오? 내가 말했잖소. 내 주인은 제갈 사혁 나으리라고.”
“주인?”
살수에게 주인이란 있을 수 없었다. 살수에게......
“!”
“이제 감이 오시오. 나는 살수가 아니오. 무풍대라고 들어봤수?”
무풍대면 제갈세가의 무력단체였다. 하지만 그런 것 치고 이자는 살수들의 법칙에 대해 정말 자세히 알고 있었다.
“내가 사실은 정말로 사천 무영곡 출신이오. 들어봤수? 괄귀(适鬼)라고.”
괄귀. 일찍이 살수세계에서는 유명한 자였다. 5년 만에 1000명을 죽여 사천 무영곡으로부터 자유의 몸이 되었다고 알려진 자였다.
그자를 여기서 보게 되다니 게다가 생각보다 젊었다.
“정말 괄귀요?”
“이제서 무슨 거짓말을 하겠소?”
괄귀가 가볍게 어깨를 으쓱거리자 제남은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이 모습을 지켜보던 제갈 사혁은 신경질 적으로 주위에 있는 물통을 발로 찼다.
“무슨 말이 그렇게 많아?”
제갈 사혁이 짜증을 내자 괄귀는 하는 수 없이 고문 도구를 꺼냈다. 제남의 입에서 의뢰인의 이름과 위치를 알아내기 위해서였다.
“제남 형. 선수끼리 괜한 눈치 싸움 하지 말고 한 번에 갑시다.”
고문을 꺼려하는 건 아니지만 자신이 동종업계에 있었던 만큼 되도록 험한 일은 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제남에게 언질을 주었고 제남도 고개를 끄덕였다.
“의뢰인이 누구요?”
“진해창(陳海昌)이네. 칠객 송수겸의 부하지.”
“칠객 이외에 다른 사람은 없소?”
“진해창만 만나 보았네.”
이로서 송수겸이 제갈 사혁을 노리고 있다는 아주 빼도 박도 못할 정보를 손에 넣었다.
괄귀는 제남의 답변이 만족스러웠는지 고문도구를 뒤로 치우고 제남과 두 눈을 마주보며 마지막 질문을 했다.
“송수겸은 어디에 있소?”
“운남(雲南) 이부성가(李夫星家). 겉보기에는 상인들이 들락거리는 장원인데 송수겸을 대신해 그의 부하인 진해창이 장주로 있으니 거기가면 만날 수 있지 않을까 싶네.”
수많은 낭인들을 부하로 데리고 있으면서 동시에 장원도 소유하다니 어떤 의미에서는 이미 하나의 문파라 해도 과하지 않을 단체를 일궈 놓은 상태였다.
“사실대로 말해주어 고맙소. 제남 형.”
“그대 앞에서 거짓을 고해봤자. 내 몸만 상할 뿐이지.”
상대가 상대인 만큼 제남은 살수로서의 자존심보다 자신의 몸을 택했다.
“끝났냐?”
“네 끝났습!”
모든 게 끝나자 제갈 사혁은 호황을 뽑아들어 제남에게 휘둘렀고 이를 본 괄귀는 단검을 교차시켜 간신히 제갈 사혁의 호황을 막아냈다.
“도련님!”
시종일관 제갈 사혁을 나으리라 부르며 여유를 부렸던 괄귀가 도련님이라 부르며 이를 악물자 제갈 사혁은 호황을 집어넣었다.
“내가 내 목숨 노리던 놈을 살려줘야 하는 이유 세 개만 말해봐.”
“제남 형을 꿰어내기 위한 함정은 제 머리에서 나왔으니까요.”
“또?”
“결국에 제남 형은 도련님을 해치지 않았으니까요.”
“또?”
“내일모레가 제 생일입니다. 제 생일 소원으로 제남 형 목숨을 살려주시죠.”
죽이려고 했을 뿐 정말 제갈 사혁을 죽인 것은 아니기 때문에 제갈 사혁은 일단 괄귀의 부탁을 들어준다는 명분하에 자신의 고집을 꺾었다.
괄귀는 특별히 가후가 밖에서 데리고 온 사람이었다. 그만큼 실력 있었고 가문을 위해서 꼭 필요한 자였다.
(저놈 죽여 봐야 뭐가 나오겠어. 장소가 장소인 만큼 이쯤 해둘까?)
그 정도 이유면 자신의 고집을 꺾어줄만 하다며 스스로를 이해시켰다.
“데려가라.”
만약 괄귀가 그냥 무영대 대원이라면 필시 제남을 죽였을 것이다. 제갈 사혁은 그런 사람이니까.
괄귀가 제남을 데리고 나가려 하자 갑자기 제남은 제갈 사혁의 어깨를 붙잡았다.
“내가 노리고 있다는 걸 어떻게 알았소?”
제남은 괄귀처럼 유명하진 않지만 그래도 운남 무영곡에서는 알아주는 살수로 통했다. 아무리 제갈 사혁이 고수라지만 고작 20대 초반에 불과한 몸으로 살수의 은밀한 감시를 알아내기란 여간해서 쉽지 않았다.
“내 뒤에 누가 있다는 걸 아는데 발소리가 안 들리면 일단 의심하겠지. 소리를 내지 않고 걷는 사람은 없으니까.”
“그럼 그것만으로 알아낸 것이오?”
“객잔에서 나한테 살기를 쐈잖아. 그때 처음 알았지 그리고 서점에서 날 따라온 적이 있었지?”
“그렇소.”
“아까도 말했지만 걷는 소리가 안 들렸어. 그런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야.”
내심 제갈 사혁의 주의를 끌지 않기 위해 암살자 특유의 보법을 펼쳤을 뿐인데 설마 꼬투리 잡힐 일이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내가 살기를 보낼 때 찻잔 가장자리를 손으로 문지르던데 그것은 버릇이오?”
“무슨 소리야? 무슨 찻잔? 내가? 난 그런 버릇없는데 살기는 느꼈지..... 객잔에서 식사할 때.”
본인도 기억하고 있지 못하는 것으로 보아 살기를 느끼고서 무심코 행한 행동이었다. 만약 그때 그것을 알고 처음부터 다시 암살을 준비했다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았다.
“괄귀는 언제 불렀소? 내가 하루도 빼놓지 않고 불철주야(不撤晝夜) 그대를 지켜보고 있었는데.”
“내가 도박장 자주 다니는 건 알거 아니야.”
“그렇소. 늘 두 냥 정도 이윤을 남기지 않았소?”
역시나 제갈 사혁이 생각한대로 제남은 거기까지 따라붙었다.
“하오문은 도박만 하는 곳이 아니야. 정보를 사고파는 곳이기도 하고 정보를 전해주는 곳이기도 해. 도박장에 들어선 순간 아무나 붙잡고 전서를 띄우면 그만이야. 무슨 말인지 알겠어?”
그랬다. 도박장이든 어디든 결국 하오문의 한 부분일 뿐이었다. 하오문에서 일하는 사람 아무나 붙잡고 돈을 쥐어주며 전서를 띄우면 그것이 목적지까지 도착하는 것은 시간문제였다.
“두 사람은 어떻게 만나서 일을 꾸몄소?”
분명 제남은 제갈 사혁을 잠잘 때 빼고 확실하게 감시했다. 하물며 자신이 잘 때는 낭인들을 시켜 숙소 주변을 감시했다.
“아~ 진짜 목숨 하나 살려줬더니 묻는 것도 많네.”
제갈 사혁이 귀찮아하며 짜증을 내자 서둘러 괄귀가 끼어들었다.
“제남 형은 도련님만 감시하느라 주변을 살피지 못했겠지만 내가 여기에 온 것은 5일째 되오.”
5일 씩이나 된다는 말에 제남은 아랫도리가 서늘해졌다.
“도련님이 묵고 계시는 객잔의 점소이로 변장하고 있었기 때문에 제남 형이 내 존재를 알아내기 쉽지 않았을 것이오.”
아무리 뛰어난 살수라 해도 한낱 점소이에 관심을 두는 자는 없었다.
“가장 먼저 내가 한 일은 제남 형을 찾는 일이었소. 찾아서 죽을까? 했는데 제남 형을 죽이지 마라는 도련님의 분부가 있었소. 그래서 그 연극을 한 것이오. 도련님이 도망칠 때 들고 다닌 족자는 제남 형을 잡기 위해 만리제독선을 뿌린 것이고.”
“왜지? 왜 그렇게 번거로운 일을 했지?”
“나도 살수였소. 어금니에 있는 독단을 물어 제남 형이 자살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요.”
결국 제갈 사혁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송수겸의 위치였고 송수겸의 위치를 아는 사람은 의뢰를 받은 살수 제남이었다.
“그럼 가십시다. 우리 나으리께서는 변덕이 심하다오.”
어느새 호칭이 도련님에서 다시 나으리로 바뀌었지만 제갈 사혁을 대하는 괄귀의 태도는 시종일관 변함이 없었다.
“아참~ 나으리.”
“?”
철문을 열고 나가려는 순간 괄귀는 갑자기 제갈 사혁을 부르더니 기분 나쁠 정도로 생글 생글 웃으며 말했다.
“소인의 생일은 소인도 모릅니다.”
“뭐 이 새끼야!”
제갈 사혁이 화를 내며 쫓아가려 하자 특유의 귀신같은 경공으로 제갈 사혁의 눈앞에서 사라졌다.
“누가 들으면 정말 지깟 놈 생일 소원 때문에 살려준 걸로 알겠네.”
그렇게 말하면서 제갈 사혁은 실없는 사람처럼 웃었다.
“제갈 시주.”
밀실에서 나오자 밖에서 기다리고 있던 비구니 스님이 제갈 사혁을 반겼다.
“일은 잘 보셨습니까?”
“덕분에 잘 해결됐습니다. 스님.”
일전에 사천의 괴인과 관련해 아미파에 적을 둔 적이 있기 때문에 아미파의 회계실을 이용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정도 무림의 영웅이신 소협이 부탁하시는 일이라면 아미파는 최선을 다할 뿐입니다.”
“감사합니다. 스님.”
============================ 작품 후기 ============================
오늘은 하루 종일 글과 씨름했습니다.
글을 쓰다보니 자연스럽게 온라인 게임도 끊게 됐네요.
컴퓨터에 몇시간이나 앉아 있는 건 똑같지만 온라인 게임을 안하니 스트레스도 덜 받는 것 같고.
(내 캐릭터 하향 먹었다고 파티 강퇴시키냐!!!! 라는 등으로 스트레스 많이 받았지만)
요즘 라면을 이상하게 끓여 먹고 있습니다.
라면을 다 부순 후 물을 적게 넣어 거의 졸인 뒤 밥에 부어먹습니다.
분명 제가 제 손으로 그렇게 만들어 먹고 있지만 무슨 의도로 만들어 먹는지 저도 모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