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화산의협-97화 (97/262)

<-- 97 회: 제갈 사혁이라는 이름. -->

일격에 고개가 돌아간 낭인은 그대로 기절을 해버렸고 손쉽게 한명을 처리한 제갈 사혁은 바로 옆에서 밥을 먹고 있는 낭인에게 눈길을 주었다.

“돈 내놔.”

“드... 드리겠습니다.”

“필요 없어!”

또 밑도 끝도 없는 꼬투리를 잡더니 이번에는 멱살을 잡아다가 객잔 밖으로 던져버렸다. 그러자 슬슬 제갈 사혁이 미친 척하면서 일부러 시비를 걸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은 낭인들은 칼을 뽑아들었다.

“어린놈이 아주 기세가 등등하구나!”

“나중에 디지게 쳐 맞고 울면서 빌어도 소용없다.”

이게 바로 제갈 사혁이 원하던 방향이었다. 이부성가 쪽에 고용된 낭인만 아니면 누구한테나 시비를 걸어도 문제가 되지 않았고 일이 커지면 나중에 반드시 이부성가가 개입하게 되어 있었다.

“형님들 밥 좀 먹여주쇼. 형님들 돈으로.”

얄미워서 뺨을 한 대 때리고 싶을 만큼 제갈 사혁의 말투는 짜증이 났고 참을성 없는 낭인들은 하나 둘 먼저 제갈 사혁에게 달려들었다. 제갈 사혁은 누가 먹고 남긴 돼지 족발 뼈를 들고 낭인들의 검을 막았다.

제갈 사혁의 손에 쥐어진 이상 그것은 평범한 돼지 족발이 아니었다.

“이 건방진!”

돼지 족발로 얼굴을 후려치자 피가 섞인 치아가 뿜어져 나오며 사방에 튀겼다. 그리고 그 모습을 본 낭인들은 어리다고 함부로 할 사람이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낭인들의 눈에서 패색을 읽어낸 제갈 사혁은 오히려 더 삼류 건달처럼 행동했다.

“나도 인생에 쓴맛 단맛 다 본 사람이라 이거야!”

윗옷을 벗자 지방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군살 없는 근육이 드러났고 이를 본 낭인들은 침을 꿀꺽 삼키며 제갈 사혁과 감히 눈을 마주치지 못했다.

“뭐 이 새끼들아 구경났어!”

낭인들도 자존심이 있는 터라 칼까지 뽑은 이상 쉽게 뽑은 칼을 집어넣을 수 없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제갈 사혁에게 덤빌 수는 더더욱 없는 일.

“무슨 일이냐?”

“어.... 어르신!”

그때 객잔 안으로 비단 옷을 입은 사내가 이부성가의 낭인들과 함께 객잔에 들어오자 방금 전까지 제갈 사혁을 죽이네 살리네 했던 낭인들은 전부 빼든 칼을 집어넣고 사내에게 무릎을 꿇었다.

“무슨 일이냐고 물었다.”

사내가 두 번 묻자 가장 가까이에 있던 낭인이 고개를 숙인 채 이번 일을 설명했다.

“갑자기 타지에서 온 저 어린놈이 객잔에서 난동을 부리지 뭡니까”

분위기를 보아하니 제법 한가닥하는 놈 같아보였지만 무림인으로서의 실력은 그다지 대단해보이지 않았다.

“이름이 뭐냐?”

(이름?)

이름이 뭐냐는 말에 제갈 사혁은 하는 수 없이 이번에도 아버지의 성함을 빌렸다.

“주원입니다.”

여기서부터가 중요했다. 높은 사람에게는 비굴해보이되 끈기든 오기든 독기든 쓸만한 놈이라는 점을 상대에게 느끼게 해줘야 했다.

“힘 좀 쓰는 것 같은데 사문이 어디냐?”

“낭인이 사문이랄 게 어디 있겠습니까. 옛날에 칼밥 먹던 노인네 시중들어주며 몇수 배웠을 뿐입니다.”

“몇 살이냐?”

“나이는 정확히 모르겠는데 사부님이 누가 물으면 스물 하나나 둘이라고 말하라 했습니다.”

“아직 어리군. 여긴 무슨 일로 왔냐?”

“운남으로 낭인들이 모인다고 해서 저도 돈 냄새 좀 맡으러 왔습니다.”

그럴 듯하게 말하자 사내는 대뜸 의자에 앉더니 본격적으로 제갈 사혁에게 이것 저것을 물었다.

“뭐뭐 해봤냐?”

“쟁자수도 해봤고 여러 가지 다 해봤습니다. 돈 되는 일이라면 다.”

“돈 되는 일이라면 다?”

그 물음에는 대답 대신 고개를 천천히 끄덕이는 것으로 마무리해 분위기를 무겁게 만들었다.

“이부성가가 뭐하는 곳인 줄은 아느냐?”

“돈 버는 곳 아닙니까?”

“돈 버는 곳이라.... 돈 버는 곳.....”

부채를 몇 번 폈다 접었다는 반복하더니 사내는 자신의 뒤에 있는 부하를 불렀다.

“데려다가 밥 좀 먹이고 작당한 일 좀 시켜봐.”

“네 어르신.”

자리에서 일어난 사내는 천천히 다가오더니 부채로 제갈 사혁의 머리를 가볍게 때렸다.

“다음부터 나를 보거든 이놈들처럼 예의를 갖춰라. 나는 이부성가의 장주인 진해창이다.”

무슨 졸부라도 되는 양 어깨에 힘을 준다 싶었는데 이놈이 바로 송수겸의 측근인 진해창이라는 말을 듣는 순간 제갈 사혁은 실소를 금치 못했다.

(송수겸의 부하는 전부 낭인이라고 하던데 이거 완전 늑대 새끼가 아니라 배부른 개새끼였네.)

진해창은 겉만 번지르르했지 낭인으로서의 패기는 어디에도 없었다.

“따라와라.”

오히려 제갈 사혁을 데리고 가는 낭인이 더 무인에 가까웠다.

진해창에 눈에 들어 이부성가로 입성하자 안에서 본 이부성가는 흡사 체계가 잘 잡힌 하나의 무림문파였다. 낭인들끼리 짝을 이뤄 대련을 하고 있는 모습을 보니 어중이떠중이들만 있는 것도 아니었다.

(한 30명되나?)

중소방파가 20여명 정도의 평균인원을 가지고 있는 걸 생각하면 이미 머릿수로만 따졌을 때 중소방파 그 이상이었다.

(정말 천태파가 골로 갈 만한데.)

천태파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는 모르나 은하검파와 만왕검가에 이부성가를 더하면 이론적으로는 천태파를 쓸어버리고도 남았다.

“이놈에게 무기를 줘라. 좋은 놈으로 다.”

이부성가의 낭인들이 다른 낭인들과 구별되는 이유는 바로 이 금색으로 도금된 무기 때문이었다.

“됐습니다. 저는 최근에 새로 장만한 놈이 있습니다.”

무기는 됐다고 하자 금장 목걸이 하나를 바닥에 던져주었다.

“이걸 차고 다녀라. 이부성가의 사람이라는 증표다.”

제갈 사혁에게 이부성가를 안내해주는 낭인은 행동으로 보아 언행으로 보아 이곳 이부성가의 낭인들을 통솔하는 자로 보였다. 특별한 명칭은 없었다. 그저 그와 눈을 마주치는 자들 모두 그를 형님이라고만 부를 뿐이었다.

“계준이하고 같은 방을 써라. 젊은 놈은 젊은 놈이랑 한방을 쓰는 게 편할 거다.”

창고보다 조금 더 나은 잠자리를 생각했지만 비교적 깔끔했다.

“계준이 신입이다. 잘 교육시켜라.”

“네 형님.”

계준이라는 자는 얼굴에 큰 흉터가 있었는데 꽤나 험상궂게 생긴 자였다.

“동생 이름이 뭔가?”

말투는 전형적인 건달말투였는데 괜히 신입에게 겁을 주려고 그런 식으로 말하는 것 같아보이진 않았다.

“주원입니다. 형님.”

“나는 계준이여 여기서 이부성가에 있기 전에는 녹림백팔채(錄林百八彩)에 있었어. 우리 두목이 죽어서 산채가 다른 산채에 흡수되자마자 녹림을 나와서 낭인질하다가 이부성가가 만들어질 때 들어왔어.”

쉽게 말해 산적질 하다가 모시던 두목이 죽으니까 그 길로 낭인이 되었다는 말이었다.

“계준이 형이라고 불러. 내 출신이 산적이라서 그런지 형님소리는 듣기 뭐하니까. 주 동생. 성이 주씨지?”

“네. 맞습니다. 딱 맞추셨네요.”

아버지의 이름을 빌린 거니 당연히 성은 제갈이지만 일단 같은 방을 쓰는 이상 사소한 아부는 반드시 놓치지 않아야 했다. 계준은 그 뒤로도 제갈 사혁에게 이것저것을 물었고 제갈 사혁은 거짓말을 왕창 보태 막힘없이 대답을 해주었다.

“삼람이 새끼들이네.”

“사람이요?”

“아니 삼람이 말이야. 동생 돈 주머니 빼앗아 갔다는 놈들.”

돈주머니 빼앗긴 거야 뭐 이미 대범하게 털어버렸다.

(어차피 여기 있는 놈들 다 죽여 버릴 건데 그깟 놈쯤이야.)

“편히 쉬어 주 동생 내가 앞으로는 삼람이 패거리 얼씬도 못하게 할 테니까.”

산적이라고 해서 형님 대접 받으려 할 줄 알았지만 계준은 의외로 사람이 괜찮았다.

“그럼 송수겸은 여기 자주 안 오나요?”

“주 동생 말조심해. 우리한테는 주군 되시는 분이야.”

제갈 사혁은 서둘러 자신의 말실수를 깨닫고 사과와 동시에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이해는 해. 칠객이 어디 우리 같은 사람들은 말로만 들었지 실제로 보는 게 가당키나 하겠어. 나도 뭐 밖에 있을 땐 송수겸 뭐 그렇게 불렀지 그런데 여기서는 밖에서처럼 외인(外人) 부르듯 부르면 목이 무사하지 못할 테니 입조심해. 주군은 가끔씩 이곳을 둘러보고 가시기만 하지 이곳에 모든 일은 장주께서 통솔하고 계셔.”

밤이 되자 제갈 사혁은 몰래 기척을 숨기고 방에서 빠져나와 살금살금 지붕을 타며 진창해의 방으로 향했다.

“....... 이냐?”

진창해의 방에서 소리가 들리자 제갈 사혁은 귀에 모든 감각을 집중해 방 안에서 들려오는 대화를 몰래 엿들었다.

“네 그렇습니다.”

진창해와 대화하는 사람은 이곳에서 형님이라 불리는 낭인이었다. 그리고 이곳 장주인 진해창이 대장이라고 부르는 것으로 보아 대화 속의 대장은 송수겸이 분명했다.

“제갈 사혁을 죽이기 위해 보낸 애들이 전부 죽었습니다.”

“구마준을 죽인 놈이야. 애초에 그런 애들 몇 명으로 처리할 수 있었다면 지금 살아 있는 건 제갈 사혁이 아니라 구마준이여야지.”

“그걸 알면서도 대장께서는 무슨 생각이신지....”

“대장께서 제갈 사혁을 노리고 있다는 소문이 중원에 퍼질 때 쯤 천태파는 이 땅에서 사라진다. 그렇게 되면 운남은 우리의 것이야. 물론 언젠가 대장께서 직접 제갈 사혁을 쓰러트리실 거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야. 대장은 그저 자신의 이름을 이용해 제갈 사혁을 물고만 계실 뿐 지금 삼켜야 할 건 운남 무림이다. 제갈 사혁이 아니야.”

“그럼 애들을 계속 보내는 이유가 뭡니까? 이러면 전력하락만 생길 뿐입니다. 이목을 끌기 위해선 소문을 내는 것만으로 충분하지 않습니까.”

“소문만 가지고는 안 돼. 확실하게 보여줘야 할 필요가 있다. 그 애송이에게는 특히나! 대장과 같은 칠객을 죽인 것은 쉽게 넘어갈 일이 아니야. 그리고 전력하락? 이미 은하검파와 만왕검가가 우리 편이지 않느냐.”

“그 놈들은 정파 놈들 아닙니까. 언제 어디서 뒤통수를 때릴지....”

“대장이 계시는 한 그럴 일은 없다.”

듣고 있으려니까 이가 갈려서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 고작 천태파와 자신을 저울질한 후 가장 필요 없는 쪽을 연막으로 쓰겠다는 소리기 때문이다. 일단 송수겸이 이부성가에 자주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는 계준의 말대로라면 지금 당장 창호지로 된 창문을 발로 차고 두 놈의 모가지를 따면 되지만 제갈 사혁은 묘하게 여유를 부렸다.

송수겸이 없다는 사실을 알자마자 그 놈의 썩을 허세가 드러난 것이다. 허세도 이쯤 되면 정말 병이었다.

“그럼 며칠 낭인 놀이나 해볼까.”

아침이 되자 형님이라는 자가 이부성가의 모든 낭인들을 모아두고 검술 시범을 보였다. 제갈 사혁이 보기에도 형님이라는 자는 기본이 되어 있는 검사였다.

“너희들은 내공이 부족하기 때문에 힘을 쓸 때는 정말 필요할 때만 써야 한다.”

이른바 이론 교육이었는데 제갈 사혁이 보기에도 형님이라는 자는 사람을 너무 잘 가르쳤다. 그래도 보고 배울 것은 있다고 듣는 김에 제갈 사혁은 이신을 가르칠 때도 참고하기로 마음먹었다.

교육이 끝나자 아침 식사가 훈련장 바닥에서 이뤄졌는데 갑자기 껄렁껄렁한 사내들이 우르르 몰려와 제갈 사혁에게 시비를 걸었다.

“신입이라며?”

“오~ 이제 보니까 어제 그 새끼 아니야.”

자세히 보니 삼람인지 사람인지 하는 패거리였다. 제갈 사혁은 삼람을 본 순간 호황에 손이 닿아 있었다. 일단 자신이 먼저 삼람의 심기를 건드려서 저쪽에서 먼저 검을 뽑으면 정당방위를 핑계삼아 호황을 뽑을 기세였다.

“너 이씨! 삼람!”

“뭐야? 계준이 니네 방 새끼였냐?”

계준은 허리에 찬 검을 뽑으려 했고 삼람 패거리들은 여유를 부리며 계준의 심기를 건드렸다. 급기야 삼람은 계준의 멱살을 잡았고 계준은 그런 삼람의 팔을 있는 힘껏 쥐어 압박했다.

“옛날부터 니 놈 새끼가 정말 마음에 안 들었어. 그거 알아 이 새끼야!”

이부성가가 생겼을 때부터 자리를 잡은 계준과 최근 몇 개월 사이 무리를 만들어 다니는 삼람의 사이에는 묘한 경쟁심이 있었다.

“이번에 조직에 터만 잘 잡히면 그때 한번 보자 이 개새끼야.”

그렇게 말하면서 멱살을 놓는 삼람의 팔이 후들후들 떨리고 있었다.

제갈 사혁이 보기에 삼람과 계준의 실력은 막상막하였다. 하지만 무리를 이루지 않는 계준이 불리했다.

“주 동생. 어여~ 밥이나 먹어 저 놈들 괜히 신입왔다니 새끼 엮으려고 하는 거야.”

“엮어요?”

“겁을 주든 회유를 하든 자기네 편으로 만들려는 거지.”

============================ 작품 후기 ============================

Demodex 님께서 이번에 배신자로 묘사되는 단체가 둘인데 셋으로 나왔다 하셨는데

정확히 보셨습니다. 원래 하나 더 넣으려 했는데 복잡해지면 제대로 회수를 못하는 관계로 내용을 바꾸다가 수정을 못했습니다.

저도 참 크게 벌려놓기는 좋아하는데 잘 회수를 못해서 탈이에요.

힐러링님은 밥줘 패러디 눈치 채셨네요. 케이블에서 무한도전 추석편 하길래 한번 썼습니다.

정말 밑도 끝도 없지만 제갈 사혁은 늘 밑도 끝도 없죠.

그래도 밑도 끝도 없는 괴짜가 그게 낫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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