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5 회: 하오문 난립(下午門 亂立) -->
일단 호사마라는 인물이 사천에 와서 누굴 만났는지 알아봐야 할 필요가 있었다. 그리고 그런 일을 시키기에는 무풍대가 정말 제격이었다. 하지만 이 일은 첫 단추부터 잘 못 끼워졌다. 그것도 제갈 사혁 자신에 의해.
“뭐? 다시 말해봐.”
“진해창을 만났습니다.”
하지만 진해창은......
“도련님이 땅에 묻어버리셨죠.”
폼 좀 잡는다고 애들 앞에서 하남 사는 놈은 사천 사는 놈한테 죽는다. 뭐 이딴 개소리나 했으니 미칠 노릇이었다.
“호사마가 진해창이랑 왜 만났는데?”
“모릅니다.”
“그럼 진해창 말고 만난 새끼가 또 누가 있어?”
“소연자(蘇沇者)를 만났습니다.”
소연자라는 이름을 듣는 순간 제갈 사혁은 얼빠진 표정을 지었다.
“그 양반이 아직도 살아 있어?”
“네? 무슨 소립니까. 도련님. 나이가 여든이 넘었지만 아직 팔팔합니다.”
소연자. 실제 본명은 알려진 게 없고 현 하오문의 문주다. 제갈 사혁이 아는 한 정사대전이 터지자마자 살해당한 걸로 기억하고 있다.
(용화장에서 청하 소저가 죽지 않았으니 정사대전도 일어나지 않았고 그로인해 소연자도 살아 있나?)
마교에 의한 무당파 제자의 용화장 살해사건. 즉 그 당사자인 청하를 제갈 사혁이 살렸기 때문에 이번일은 변수가 많았다. 일단 소연자는 정 사 마 어디에든 중립을 지키고 겉으로 드러난 사람인만큼 공식적인 절차를 통해 만나볼 필요가 있었다.
제갈 사혁은 일단 무풍대와 청하 그리고 이신을 데리고 소연자의 현 주거지인 사천 매림방(梅琳坊)으로 향했다. 이름이 매림방이라서 문파로 오인할 수 있지만 그냥 하나의 시골 마을이었다.
“정말 이런 시골에 소연자가 산단 말이야?”
제갈 사혁이 영 못 믿겠다는 눈초리로 무풍대 대장을 노려보자 청하는 재빨리 제갈 사혁의 어깨를 잡아당겼다.
“저기 소연자 어르신인데요.”
“에?”
하오문의 문주인 소연자는 커다란 매화나무 아래 평상을 위에 누워 코를 골며 자고 있었다.
주머니에 손을 넣고 껄렁껄렁하게 평상 앞으로 다가가더니 갑자기 발을 높이 들었다.
“사부!”
“갈사 소협!”
청하와 이신은 본능적으로 제갈 사혁이 또 폭력으로 사건을 해결하려 하자 재빨리 제갈 사혁을 말렸다.
“사람이 왜 이렇게 무례해요. 우리는 소연자 어르신께 무언가를 물어보기 위해 왔단 말이에요. 정중해도 모자를 판에!”
“호사마가 마교 쪽 놈인데 정파인 우리가 와서 호사마랑 무슨 이야기하셨어요? 라고 물으면 얼씨구나 하고 잘도 가르쳐주겠네요. 이럴 때는 그냥 주먹이!”
“사부 제발 청하 누나 말대로 해요.”
설득이 전혀 씨알도 먹히지 않자 청하는 무풍대에게 시선을 주었고 무풍대는 껄끄러운 표정으로 제갈 사혁의 양 팔과 양 다리를 붙잡았다.
“놔 새끼들아! 니들은 누구 편이냐?”
“도련님의 행동 하나 하나에는 가문의 위신이 걸렸습니다. 참으시지요.”
가문의 위신이라는 말에 제갈 사혁은 쥐죽은 듯 가만히 있었다.
“어르신 일어나보십시오.”
그때 문뜩 시키지도 않았는데 무풍대 대원 하나가 소연자를 흔들어 깨웠다. 그러자 그 순간 소연자는 그 대원을 껴안더니 얼굴을 가슴에 부비기 시작했다.
“요즘 애들은 푹신푹신하네.”
그러자 그 순간 무풍대 대원들은 전부 무기를 뽑아들었다.
“니네 왜 그러냐?”
“도련님! 칼을 뽑으십시오. 어서!”
알고 봤더니 그 대원은 여자였다. 무풍대는 다른 조직과 달리 여성의 비율이 살짝 높은데 그 이유는 제갈 혜부터 시작해서 가문의 식솔 중에 여인이 많기 때문이다. 그리고 사내들 비율이 상당한 무풍대에서 여성 대원은 그야말로 우상과도 같은 존재.
특히 이번에 제갈 사혁의 호출에 동반한 5번 대는 특히나 젊은 남자들이 많아 더욱 더 그랬다.
“괜찮아요. 이 정도는 가슴 좀 만진다고 닳는 것도 아니고.”
하지만 정작 성폭력의 당자사는 소연자의 팔을 꺾어서 제압하는 대담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히잉~ 요즘 애들은 당돌하군.”
소연자는 색골로 유명했지만 그것도 다 젊었을 때 이야기라서 제갈 사혁과 같은 젊은 무림인은 소연자처럼 나이 많은 노인의 부적절한 행동이 조금 충격적으로 다가왔다.
“소연자 어르신 장난 그만 치시지요. 저는 무당의 청하라고 합니다.”
“고창이 놈 제자?”
고창은 성제의 본명이었다. 보통 제갈 사혁처럼 특정 가문의 일원이 아닌 이상 종교에 기초한 법명 도호와 같은 이름으로 불리는 종교인들의 본명은 본인이 말하지 않는 이상 타인이 알기 힘들다. 본명을 알고 있다는 뜻은 보통 사이가 아니라는 뜻이기도 했다.
“네. 제자 청하라고 합니다. 어르신.”
“그럼 그 쪽이 화산망종이겠구만.”
청하의 정체를 알자마자 소연자는 제갈 사혁의 정체도 단번에 깨달았다.
“저놈들이 입고 있는 옷은 제갈세가의 무풍대 기본 복장이 분명하고 허리에 찬 저 검은 화산파의 기린아 무원의 애검 호황. 모든 것을 종합해봤을 때 단 한사람 화산망종 제갈 사혁.”
도대체가 화산의협이라는 별호가 어쩌다 화산망종이 되어버렸는지는 모르지만 소연자는 역시 그 명성대로 그냥 평범한 노인네는 아니었다.
(이번 일이 끝나면 곤륜계집한테 가서 따져야겠어!)
제갈 사혁은 약삭빠르게 성제와 소연자가 보통 사이가 아니라는 점을 파고들기 위해 청하에게 눈치를 주었고 대충 제갈 사혁의 의도를 알아챈 청하는 스승의 이름을 빌어 소연자와 이야기를 풀어나갔다.
“어르신 스승님께서 최근 마교의 호사마가 사천에 나타난 점이 혹 하오문과 관계된 일인지 궁금해 하십니다.”
이미 호사마와 소연자가 서로 만났다는 사실을 알고 왔지만 성제를 돋보이게 하기 위해 일부러 사천에서 호사마를 발견했다는 식으로 이야기했다.
“정파나 마교의 일에는 관심이 없네.”
성제의 이름을 팔아 무언가를 알아내려 하자 소연자는 징그러운 색골 노인네에서 하오문 문주로서의 표정을 지었다. 청하는 소연자의 심기를 건드렸음을 깨닫고 서둘러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저는 그저......”
그 순간 표정이 싹 바뀐 소연자가 갑자기 청하의 가슴을 향해 손을 뻗었다.
“그 탐스러운 가슴이나 한번 만져보면.....”
“저 노인네가!”
제갈 사혁이 분을 참지 못해 호황을 뽑으려는 순간 허리에 있어야 할 호황이 잡히질 않았다.
“저기 할아버지 이러시면 곤란하거든요.”
제갈 사혁의 품에서 벗어난 호황은 이신의 손에 들려 있었고 청하의 부드럽고 따듯한 가슴에 닿을 뻔한 손은 차갑고 날카로운 호황의 칼날에 막혀 더 이상 뻗어나가지 못했다.
“고놈 순한 얼굴 뒤에 짐승을 기르고 있구나. 누가 화산망종의 제자 놈 아니랄까봐.”
이신의 청하에 대한 방어는 제갈 사혁 그 이상. 남궁세가에 있었던 시절이라면 정말 상상도 할 수 없던 돌발행동이었다.
“이신이 내 제자란 건 어떻게 아셨습니까?”
이신이 제갈 사혁의 제자라는 걸 하오문 문주가 알고 있다는 사실에 제갈 사혁은 묘한 경각심이 생겼다. 이신은 무림인이라고 부르기 부족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이신이 제갈 사혁의 제자라는 사실은 주변인물이 아니면 알기 힘들었다.
“남궁 미려와 동행했었잖아. 그리고 불과 열다섯의 나이에 쌍초겸과 흑사련 무사들을 찢어발긴 발칙한 꼬맹이를 모를 리가 없지.”
하여간 그 놈의 남궁 미려가 문제였다.
“왜 놀랐나? 아무리 하오문이 점조직에 각 지역마다 별개의 단체로 칠 정도로 결속력이 없지만 하오문은 하오문이네.”
“자~ 그럼 말 돌리지 말고 말씀하십시오. 호사마가 사천에 등장한 이유가 뭡니까?”
“날 만나러 왔지.”
“만나서 무얼 하셨죠?”
“그냥 개인적인 부탁.”
개인적인 부탁이라고 잡아뗐을 때 제갈 사혁은 모든 감각을 동원해 소연자의 심장소리에 귀 기우렸다. 심장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귀찮게 해드려서 죄송합니다.”
“갈사 소협?”
제갈 사혁이 그대로 뒤돌아 자리를 뜨자 청하는 어찌할 줄 모르다가 소연자의 능글맞은 눈길에 치를 떨며 제갈 사혁을 뒤따랐다.
청하가 아는 제갈 사혁이라면 무슨 짓을 해서든 무언가를 알아내는 그런 사람이었다. 그래도 지금과 같은 행동을 이해할 수 없었다.
“갈사 소협.”
“호남으로 갑니다.”
“네?”
“심장이 말해주던데요. 호남으로 가자고.”
개인적인 일? 하오문 문주라는 자리에 있는 자는 죽을 때까지 평생 개인적인 일이란 있을 수 없었다.
무풍대를 갈라서 몇 명은 호사마의 행방을 찾는 한편 제갈 사혁은 그래도 어느 정도 거래관계가 확실한 호남 하오문으로 향했다. 호남 하오문 책임자를 믿어서가 아니라 제갈 사혁이 아는 한 그는 진정한 장사꾼이기 때문이다.
호남에 있는 도박장에 도착하자 제갈 사혁의 얼굴을 알아본 하오문도들은 곧바로 자리를 마련했다. 그리고 얼마 후 호남 하오문 책임자가 나타나 제갈 사혁을 반겼다.
“오셨습니까.”
지난번에는 제갈 사혁이 무력과시하며 무식하게 방문했지만 뒤처리를 돈으로 깔끔하게 했기 때문에 다시 만났을 때 제갈 사혁을 대하는 하오문의 태도는 전과 많이 달라져 있었다.
“호사마가 진해창을 만난 이유.”
딱 이 한마디에 하오문 책임자에게는 제갈 사혁이 원하는 대답이 튀어나왔다.
“호사마는 진해창을 만난 이유는 다량의 아편을 구입하기 위해서입니다. 마교에서는 담배만큼이나 아편이 흔하죠.”
호사마가 진해창을 만난 이유는 정말 그것뿐이었다. 하지만 제갈 사혁도 알다시피 진해창의 양귀비 밭은 하남에 있다. 하남에서 하필 다른 곳도 아니고 사천을 경유해 갈 이유는 없었다. 특히 그 과정에서 하오문 문주를 만날 이유는 더더욱.....
“하오문 문주를 만났다던데.”
“그렇습니까...... 이거 큰일이군요.”
호사마를 만난 게 왜 큰일인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호사마가 소연자를 죽인 것도 아니고 그 양반은 매화나무 아래에서 실컷 낮잠이나 자고 있었기 때문이다.
“무슨 일이지?”
“아닙니다. 여기서부터는 하오문 내부의 문제입니다.”
하오문 내부의 문제라면 끼어들 수 있는 명분이 없었다. 하지만 이 일의 시작은 성제 때문이었다.
호사마가 어떤 기녀랑 잠을 잤는데 거기가 사천이었다. 마교 놈이 기녀랑 자려고 사천에 온 것이 부자연스럽다.
즉 이게 이번 일의 시작이었다.
“그럼 하나만 묻지 호사마는 왜 사천에 왔지?”
“죄송합니다. 그게 바로 하오문 내부의 문제입니다.”
호사마가 사천에 있는 기녀랑 잠을 잔 게 하오문 내부의 문제? 정말 그럴 리 없다는 걸 잘 알고 있지만 제갈 사혁은 이 이상 캐물을 수 없었다. 호남은 제갈 사혁에게 좋은 거래 대상이고 앞으로 잘 신경 써줘야 하는 곳이다. 호남 하오문과의 관계는 그 자체만으로 이득이었다. 무작정 성격대로 나가서 불이익을 감수할 수는 없었다. 그렇다면 거래대상은 거래대상답게.....
“필요하면 보수를 받고서 도와줄 테니 연락하도록.”
“신경써주셔서 감사합니다.”
대가를 받고 거래를 할 뿐이다.
제갈 사혁과 함께 강호활동을 제대로 해본 적 없는 청하는 제갈 사혁의 일처리 방식을 이해할 수 없었다. 하오문 문주는 폭력을 써서 깨우려 하고 하오문 문주보다 낮은 지역 책임자에게는 그 태도를 달리했다.
“뭘 그렇게 보십니까?”
“아니요. 그냥 하오문의 총 책임자를 대하는 것과 지역 담당자를 대하는 게 너무 달라서요.”
상식적으로 끗발이 더 쎈 쪽을 고르라면 단연 하오문 문주기 때문이다.
“청하 소저.”
“네?”
“무림맹에서 밥을 잘 먹으려면 주방장한테 잘 보이는 것보다 식당 아줌마한테 잘 보여야 하는 법입니다. 우리 밥그릇에 밥을 퍼주는 사람은 식당 아줌마지 주방에서 요리하는 숙수가 아닙니다.”
청하는 알 듯 모를 듯한 표정이었고 제갈 사혁은 무풍대에게 은밀히 호남 하오문을 감시하도록 지시했다.
이번 일을 하면서 깨달은 건데 이번 일을 의뢰한 성제는 역시 가볍게 볼 수 없는 사람이라는 점이다. 하오문 문주가 성제의 본명을 알고 있다면 성제 역시 하오문 문주와 보통 사이가 아니고 이는 곧 성제가 제갈 사혁 그리고 청하를 통해 무언가를 해보려 한다는 뜻이 분명하다.
“이리가고 저리가고 이게 무슨 짓이야. 그냥 무림맹 임무 뺑이 치는 게 훨씬 낫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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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조금 더 열심히 쓸 계기가 생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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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하다 무기 터졌어요. 망할 놈의 게임 접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