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6 회: 하오문 난립(下午門 亂立) -->
일단 호남 하오문 근처에 방을 잡은 제갈 사혁은 내내 표정이 좋지 못했다. 그러자 청하가 제갈 사혁의 미간을 손으로 누르며 제갈 사혁의 표정을 억지로 바꿨다.
“평소에는 늘 여유 넘치면서 이번엔 꼭 시간에 쫓기는 사람 같아 보여요.”
시간에 쫓겨? 어쩌면 틀린 말이 아닐지도 모른다. 제갈 사혁은 분명 미래를 읽을 수 있지만 지금 이 순간은 예정된 과거가 아닌 바뀌어 버린 현재일 뿐이었다.
소연자가 아직 살아 있고 호남 하오문 책임자가 하오문 내부문제라며 함구 했던 것 그리고 성제와 호사마.
“도련님 술 한 잔 하시겠습니까?”
“도련님 마작 한판 두시죠?”
이 좁은 방에 무풍대 10명과 제갈 사혁일행 3명이 함께 있으니 꼭 바퀴벌레 소굴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이번 일 때문에 미치겠는데 팔자 좋네.)
그렇게 무언가 전체적인 것을 놓쳤을 때였다.
“도련님.”
문 밖에서 하오문을 감시하던 감시조 대원의 목소리가 들리자 제갈 사혁은 서둘러 방문을 열었다.
“무슨 일이냐?”
“호남 하오문이 습격당했습니다.”
“!”
호남 하오문이 습격당했다는 말에 방 안에서 놀고 있던 무풍대 대원들은 제갈 사혁보다 먼저 현장으로 뛰어갔다.
“어찌 된 일이냐?”
“하오문의 검영단(劍影團)입니다.”
하오문의 검영단이라면 문주의 직속 호위대를 뜻했다. 그런데 하오문 문주 직속 호위대가 같은 하오문을 공격하다니 이해할 수 없었다.
“가자!”
“같이 가요. 사부.”
제갈 사혁이 맨발로 지붕을 밟고 뛰어나가 이를 본 이신이 서둘러 그 뒤를 따랐다.
전력을 다해 하오문이 있는 곳으로 향하는 동안 제갈 사혁은 가서 무얼 해야 할지 정확한 판단을 내릴 수가 없었다. 하오문끼리의 싸움에 끼어들어서 뭘 한단 말인가? 하지만 굳이 해야 한다면.....
(지난번에 무례를 갚는 셈 치겠다.)
제갈 사혁의 경공이 얼마나 빨랐던지 보다 앞서 달려가던 무풍대가 도저히 제갈 사혁의 앞은커녕 뒤도 따르지 못할 정도였다.
호남 하오문의 주 사업장인 비밀 도박장에서는 불길이 치솟고 있었다.
“이 냄새는?”
일반적으로 나무나 잡기들이 타서 일어나는 불과 달리 연기에 유황냄새가 섞여 있었다. 그렇다면 벽력탄에 의한 화제일 가능성이 높았다.
사태가 사태인 만큼 제갈 사혁은 공중에서 낙하를 하며 지붕을 부수고 그대로 낙하와 동시에 지하로 까지 내려갔다. 지상으로 내려와 처음 본 것은 검영단과 하오문 호남지부 호위 낭인들 간의 칼부림이었다.
제갈 사혁은 일단 하오문 책임자를 찾았다.
“이봐!”
“제갈 사혁님!”
“필요하면 도움을 청하라 했을 텐데?”
“하오문 내부의 문제입니다.”
“아직도 그런 소리!”
제갈 사혁으로서는 이번 일과 호사마의 일이 아주 연관이 없지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이번에야 말로 무엇이 됐든 진위를 알아낼 생각이었다.
“그 놈의 고집 죽으면 끝이라고!”
역동적인 움직임과 함께 손등으로 눈앞에 있는 상대를 후려치자 상대는 벽을 뚫고 날아가 버렸다.
“죽어라!”
활을 든 궁수 다섯이 제갈 사혁과 하오문 책임자를 향해 활을 겨누자 마룻바닥을 맨손으로 뜯어낸 제갈 사혁은 뜯어낸 바닥을 방패삼아 궁수에게 다가간 후 마룻바닥을 휘둘러 놈들의 뼈를 분질렀다.
“뭐하는 놈이냐!”
제갈 사혁의 심상치 않은 솜씨에 검영단 전원은 제갈 사혁에게 검을 겨눴고 당사자로서는 그 모습이 여간 귀엽지 않을 수 없었다.
“죽어라!”
강단 있게 달려온 검영단원 한명이 칼을 휘두르자 제갈 사혁은 팔꿈치를 휘둘러 그가 들고 있던 칼을 부러트려 버렸다. 그러자 칼이 부러질 것을 생각도 못했는지 검영단원은 부러진 칼의 단면과 제갈 사혁을 번가라가며 쳐다봤다.
제갈 사혁은 무방비 상태로 서있는 검영단원의 멱살을 쥔 후 손뼉으로 턱을 후려쳐 턱뼈를 뽑아버렸다. 그리고 그대로 들어 올려 나머지 검영단원들을 향해 던져버렸다.
“적은 한명이다!”
적은 한명이다. 좋은 말이다. 부하들에게 승리할 수 있다는 확신을 심어주니까. 하지만 눈앞에 있는 사람은 적이 강하면 강할수록 불타오르고 약하면 약할수록 처절하게 밟아버리는 인정 없는 악귀(惡鬼).
“내 앞에서 그 따위 말은 의미가 없다.”
삽시간에 수십 명이 달려들자 집어 던지고 바닥에 내팽겨 치고....... 제갈 사혁은 마치 장난감을 가지고 노는 아이처럼 검영단을 상대했다.
“내가 상대하겠다!”
제법 몸집이 큰 검영단원이 한손에는 제갈 사혁의 몸통만한 둔기를 휘두르자 손목을 후려쳐 그것을 흘려낸 뒤 내공이 스며들지 않은 주먹으로 상대의 복부를 있는 힘껏 후려쳤다.
“카악~”
그러자 그 거대한 몸이 반으로 접혔고 그 틈을 타 그의 머리를 겨드랑이 사이에 끼웠다.
팔로 있는 힘껏 머리를 조이자 거한의 사내는 자기보다 몸집이 작은 제갈 사혁에게 제대로 된 힘을 발휘할 수 없었고 제갈 사혁은 상대를 제압한 바로 그 상태에서 왼손으로 사내의 옆구리를 사정없이 때렸다.
“칵!”
한 대씩 때릴 때마다 거한의 사내는 피를 뱉어냈고 제갈 사혁의 구타는 상대가 죽을 때까지 멈추지 않았다.
“살려줘 제..... 제발....”
갈빗대가 부러지고 그 뼈가 폐를 뚫자 그때서야 팔에 힘을 풀었다.
“이건 말도 안 돼!”
맨손으로 바닥을 들어 올리고 맨몸으로 칼에 베이지 않는 고수라니 그런 고수가 하오문에 있을 리 없었다. 하오문에서 하오문도를 위해 싸울 리 없었다.
“단주 어떻게 해야 합니까?”
검영단 단주로 보이는 자에게 부하들이 어찌해야 할지 묻자 그 역시도 마땅히 다른 대책을 세우지 못했다. 그 모습을 본 제갈 사혁은 자기 집 안방처럼 바닥에 눌러 앉아 검영단에게 한 가지 제의를 했다.
“누가 보냈는지 말한다면 전원 살려주겠다.”
만약 이 놈들을 다 죽인 후 호남 하오문 책임자에게 이번 일의 진위를 물어도 가르쳐주지 않을 수 있었다. 그렇다면 직접 이번 일과 관련 있어 보이는 검영단에게 묻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었다.
“말 할 수 없다!”
그 말은 제갈 사혁이 가장 싫어하는 말 중에 하나였다. 몰라서 가르쳐 달라는데 가르쳐줄 수 없다니 정말이지 인정머리라고는 없었다.
“검영단! 여기서 저자를 쓰러트린다! 모두 벽력탄을 꺼내라!”
벽력탄은 불만 붙일 수 있다면 누구라도 대량 살상이 가능하기 때문에 나라에서도 소유를 불허하는 물건이다. 그런데 그런 물건을 개인 당 하나씩 가지고 있다니 서역에서 밀수한 물건일 가능성이 높았다.
“죽어라!”
수십 명의 검영단원이 제갈 사혁을 향해 벽력탄을 던졌다.
“아오~ 젠장 더럽게 아프네!”
하지만 터져야 할 벽력탄은 단순한 쇠구슬이 되어 제갈 사혁의 몸에 통증만 줄 뿐이었다. 어찌된 영문인지 몰라 주위를 둘러보자 벽력탄의 심지가 바닥에 떨어져 있었다.
“또 없어? 숨기지 말고 던져봐.”
“이놈!”
최후의 방법이었던 벽력탄이 소용없게 되자 검영단 단주는 제갈 사혁에게 달려들었고 제갈 사혁을 베기 위해 검을 높이 든 바로 그 순간 무릎이 반으로 접히며 얼굴이 바닥에 사정없이 내쳐졌다.
“도련님 모두 제압했습니다.”
어느새 뒤에서 나타난 무풍대는 검영단 단원들을 전부 몸으로 깔아뭉갠 채 한명의 희생자 없이 제압했다.
“빨리도 온다. 이거 터졌으면 나 죽는 거 몰라?”
“죄송합니다.”
“청하 소저와 이신은?”
“소저께선 밖에 계시고 이공자께선 하오문 문도들과 함께 불을 끄고 계십니다.”
두 사람이 여기까지 들어오지 않는다면 얘기는 끝난 것이나 다름없었다.
“분타주.”
하오문 책임자를 부르며 눈치를 주자 하오문 책임자는 고개를 끄덕거렸다. 너무나도 원하던 답변이었기 때문에 제갈 사혁은 기쁜 마음으로 검영단 단주에게 다가갔다.
“지금부터 내 질문에 답하면 살려주겠다. 기회는 세 번이다.”
“미친놈!”
여자한테 퇴짜 맞는 건 남자의 숙명이다. 하지만 남자에게 퇴짜 맞는 건 정말 참을 수 없었다.
“사..... 살려주십시오.”
제갈 사혁의 질문이 거절당함과 동시에 무풍대 대원 한명이 검영단 단원 한명의 목을 찔렀다.
“다시 한 번 말한다. 기회는 두 번이다.”
“절대 말할 수 없다.”
검영단 단주가 단호하게 말하자 죽은 동료 바로 옆에 있던 검영단원은 발짝을 하며 단주에게 애원했다.
“단주님 살려주십시오! 제발 살려주십시오.”
하지만 무풍대는 무자비했다.
“마지막 기회다.”
“제가 말하겠습니다! 제가 다 말하겠습니다! 살려주십시오!”
그때 가장 어린 단원 한명이 대신 말하겠다고 하자 제갈 사혁은 무릎을 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는 그 어린 단원을 일으켜 세우고 갑자기 얼싸 안으며 반겼다.
“이 멋진 녀석 기회를 잡을 줄 아는 구나!”
말투는 지극히 부자연스러웠고 특유의 가식이 넘쳐흘렀다. 그리고 가벼운 손짓 하나에 수십 명의 목숨이 사라졌다. 그것은 가볍디가벼운 학살자의 손짓이었다.
“자 말해봐. 누가 시켜서 왔어? 하오문주야?”
“호남 전주 흉조요.”
“호남? 여기가 호남이잖아. 그리고 지금 호남 분타주는.......”
호남 분타주의 얼굴을 바라보자 그는 고개를 좌우로 저었다.
“분타주는 흉조 그자가 맞습니다. 저는 임시직로 위임 받았을 뿐입니다..”
호남 하오문 책임자가 호남 분타주가 아니라는 말에 제갈 사혁은 아리송했다. 그리고 그 순간 떠올렸다. 호남 분타주 흉조. 다름 아니라 호남에서 용화장과 관련해 청하의 밀지를 빼돌린 것으로 의심했으나 증거가 없던 자였다.
(젠장 그런 걸 잊고 있었다니!)
“그럼 여기는 호남 분타인데 왜 호남 분타주가 자신의 지역을 공격했지?”
그 질문에는 하오문 책임자가 대답해주었다.
“임시직이지만 사실상 제가 분타주기 때문입니다. 전임 분타주 흉조는 지금 하오문 장로직에 앉아 있습니다.”
이제 대충하오문 임시 책임자의 입도 열릴 것 같고 더 이상 검영단의 애송이를 긁어낼 필요가 없어졌다.
“그래 가봐.”
뒤통수를 세게 후려치면서 검영단 애송이를 쫓아버리자 무풍대 대원 한명이 검을 뽑아들었다.
“처리하고 오겠습니다.”
“아니야 됐어. 가게 놔둬 난 분명 살려준다고 했으니까. 그보다 하던 이야기 계속해서 전임 분타주가 여길 공격한 이유가?”
“전임이라고는 하나 저는 그가 선택한 후임이 아닙니다. 현재 하오문은 후계자 문제로 각 지역 분타끼리 눈치를 보고 있는 상황입니다.”
하오문 후계자 문제라니 제갈 사혁으로서는 처음 듣는 소리였다. 제갈 사혁이 아는 한 소연자 뒤에 후계자는 별 탈 없이.......
“!”
그게 문제였다. 지난 생애에서는 소연자가 죽었기 때문에 후계자 문제가 없던 것이었다. 지금은 소연자가 멀쩡하게 살아 있으니 당연히 후계자 문제도 시끄러울 수밖에.
“망월(滿月)파와 흑운(黑雲)파로 나뉘어져 있습니다.”
(보름달과 검은 구름이라니 뭐야 서로 이름 맞췄어?)
“흑운 공주를 중심으로 한 흑운파는 하오문의 정통적인 후계세습을 원하는 자들입니다. 그리고 망월파는 망월을 중심으로 한 혁신 지지자들입니다.”
결국 혈통계승이냐 새로운 질서냐가 주된 대립이유였다.
“흑운 공주라는 자는 누구고 망월은 또 누구지?”
“흑운 공주는 현 문주의 손녀입니다. 그리고 망월은 문주의 제자죠.”
“하지만 내가 아는 한 말이야.......”
“네?”
갑자기 제갈 사혁이 끼어들자 모두의 시선이 제갈 사혁에게 닿았고 그 시선들이 부담스러웠던 제갈 사혁은 고개를 저으며 이야기를 계속 하도록 했다.
“아무튼 문주께서도 이번 일에 어느 편을 들어주셔야 할지 모르시니 일이 이렇게 됐습니다. 원래 하오문은 결속력이나 상하관계가 확실했던 것도 아닌 터라 더 더욱....”
일단 일이 이렇게 됐으니 하오문 후계자 싸움에 끼어들어보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만약 후계자 중 하나를 도와서 그가 후계자가 되면 얻을 것이 많기 때문이다. 그럼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이거였다.
“그쪽은 어느 쪽을 지지하지.”
“저는 흑운 공주를 지지합니다.”
“그럼 정해졌네. 내가 도와주지.”
단순히 무언가를 얻어내려고 돕겠다 말했지만 사실 제갈 사혁은 남들이 모르는 사실 한 가지를 알고 있었다.
(이 제갈 사혁이 아는 한 그 두 사람 중에 하오문 문주가 된 사람은 없단 말이지!)
그랬다. 소연자 사후 하오문의 후계자는 그 두 사람이 아니었다. 그리고 제갈 사혁이 노리는 것은 자신에 의해 세워진 하오문의 문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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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바보 같은 짓을 하다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