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7 회: 하오문 난립(下午門 亂立) -->
“그럼 흑운 공주는 지금 어디에 있지?”
흑운 공주의 위치에 대해 묻자 하오문 책임자는 말하기를 망설였다. 일이 이렇게까지 됐는데도 침묵을 지키다니 제갈 사혁 입장에서는 당최 이해할 수가 없었다.
“일이 이 지경이 되었는데 침묵을 지킬 셈인가?”
“그것이...... 호사마와 함께 있습니다.”
기껏 꺼낸 말은 호사마와 함께 있다는 말이었고 제갈 사혁은 자기도 모르게 이를 갈았다. 그렇다면 애초에 호사마가 사천에서 기녀를 만난 건 어떻게 보면 하오문이 호사마에게 줄 일종의 대가였다.
“호란을 안을 수 있는 대가로 흑운 공주를 보호해달라는 거였나?”
그래서 처음부터 이 일에 관해 물었을 때 하오문 내부의 문제라고 시치미를 뗀 거였다. 마교인이 정파의 요충지에 들어와 향락을 즐기고 그것이 하오문의 중계로 이뤄졌다는 게 하오문 밖으로 퍼지면 중립 대표 문파 하오문의 신뢰가 깨지고 또 무엇보다 하오문과 무림맹 아니 심하면 흑사련과도 충돌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오문이 아무리 대단하다고 하지만 무력에 있어서는 하오문 전체가 일개 방파무리들보다 못하다.
“그래서 지금 그 호사마라는 놈은 어디에 있지?”
“외람된 말씀이오나 흑운 공주는 안전합니다.”
안전? 그렇게 안전해서 지난날 하오문 문주가 흑운 공주도 망월도 아닌 다른 사람이 되었단 말인가?
“호사마가 뭐 하는 새끼인지 알 필요도 알고 싶지도 않지만 지금 네 눈앞에 있는 사람이 누구인지 기억하고 생각해라. 안전하게 지킨다고 약속할 순 없지만 내가 지키기로 마음먹은 이상 흑운 공주를 노리는 게 그 누구든 살아서 다음 날 아침을 맞이하지 못한다.”
최근에는 칠객 송수겸까지 죽임으로서 칠객 중 한 사람이었던 구마준을 죽인 게 우연이 아님을 스스로 증명해낸 사나이.
“흑운 공주는 안휘 분타에 있습니다. 그리고 지금쯤 그리로 호사마가 가고 있을 겁니다.”
눈앞에 있는 사람은 그런 남자였다.
(그를 믿어도 되는 것인가?)
하오문 책임자 입장에서 제갈 사혁은 단지 거래 대상일 뿐이었다. 그래서 이렇게 문파의 흥망을 좌우하는 중대사를 믿고 맡길 수 있는 사람인지도 알 수 없었다.
“다음 하오 문주가 흑운 공주가 될 거라고는 약속할 수 없다. 하지만 이거 하나만은 확실하게 약속하지 다음 대 하오문 문주가 누가 되든 흑운 공주는 안전하다. 그 사실 하나만은 내 목숨이 붙어 있는 한 변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 누구보다 확실한 실력을 가진 사내였다.
“흑운 공주께 제 이름을 말한다면 기꺼이 따라가실 겁니다. 제 이름은 조망(眺望)입니다.”
하오문 도박장 밖으로 나가자 밖에서는 난리가 났다. 불을 끄던 하오문 문도들이 갑자기 괭이며 삽이며 농기구를 들고 험한 말을 내뱉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 쳐 죽일 놈!”
“쓰레기 같은 놈!”
“비루먹을 자식!”
사람들이 모여서 욕을 하자 무슨 일인가 싶어 무풍대원을 시켜 알아봤더니 살려 보내준 검영단 단원이 밖에서 불을 끄고 있던 하오문 문도들에게 폭행을 당해 목숨을 잃었다는 소식이었다.
“그럴 줄 알았어.”
“이렇게 될 줄 도련님은 알고 계셨습니까?”
애초에 다 계산하고 살려 보내줬다.
“동료들 없이 혼자 몸으로 적진에서 빠져나가는 게 가능할 리 없잖아. 그리고 무엇보다 내가 누구 살려주는 거 봤어?”
처음부터 제갈 사혁은 단 한명도 살려줄 마음이 없었다. 처음부터.....
“...........”
정말이지 항상 느끼는 거지만 윗사람으로서는 믿음직스럽지만 인간적으로는 상종하고 싶지 않은 종류의 사람이었다.
“사부.”
밖에서 하오문 건물에 붙은 불을 끄고 있던 이신의 표정은 그리 좋아 보이지 않았다.
“왜 그러냐? 축 쳐져서는.”
“조금 충격 받아서요.”
하긴 열다섯 밖에 안 먹은 녀석이 보기엔 그리 교육적이지 못한 건 사실이다.
“여러 사람에게 둘러 싸여서 맞아 죽는 게?”
“...........”
볼 것 못 볼 것 다 보고 산 제갈 사혁도 저런 장면은 눈살이 찌푸려질 정도니 어린 이신은 오죽할까 만은 뭐 이 세상이 다 이런 거 아니겠는가.
“그래서 소수의 힘 있는 자는 절대로 힘 없는 다수를 얕보면 안 되는 거야.”
검영단이라는 늑대 무리에 섞여 있을 때는 다른 하오문도들이 소떼처럼 보였겠지만 무리에서 벗어난 늑대는 성난 소의 발에 짓이겨질 뿐이었다.
“이번 일도 잘 보고 배워.”
“어떻게 어떤 걸요?”
“보고 있는 것 보고 느낀 것.”
제갈 사혁은 항상 이신에게 무공 이외의 것을 가르쳐주었다. 하다못해 길을 가다가 누군가 싸우는 것을 보면 그 안에서 조차 가르침을 내려주었다. 그리고 또 한편으론 그러한 가르침 뒤에는 항상 이신의 가치관을 인정하면서 동시에 자신의 생각이나 고집을 강요하지 않았다.
난 이렇게 한다. 넌 앞으로 어떻게 할 거냐? 이것이 제갈 사혁이 이신을 가르치는 방법이었다.
한쪽에서는 청하가 부상 입은 사람들을 돌보고 있었다.
“청하 소저”
“갈사 소협 약방에서 약초 좀 사오세요. 여기 사람들이......”
그녀답다면 그녀다운 행동이지만 지금은 그럴 때가 아니었다.
“애들 시켜서 보내겠습니다. 그러니 일단 자리를 뜨시지요.”
“안돼요. 지금은 사람을 살리는 게 우선이에요.”
먼저 해결해야 할 일이 있었지만 청하는 치료하는 일을 우선순위에 두었다. 보통 때라면 청하의 의견을 존중하겠지만 지금은 그 상황이 달랐다.
“우리가 지금 안가면 다음번에 이와 같은 일이 일어났을 땐 여겨 있는 사람들 모두 부상 정도로 끝나지 않을 겁니다.”
무림맹의 임무와 관련된 일이라면 모르겠지만 지금 상황에서 청하를 설득하는 일은 숨 쉬는 것보다 더 쉬웠다.
“그게 무슨 말이죠?”
“하오문 후계자 싸움입니다. 이번 일 잘 해결하지 않으면 하오문은 끝장납니다.”
“그럼 여기는 무풍대 분들에게 맡기겠습니다.”
“소저 그럼 다녀오십시오. 여기는 저희가 확실하게 책임지겠습니다.”
어차피 제갈 사혁 입장에서는 무풍대가 있으면 편한 거고 없으면 조금 귀찮을 뿐 그들의 동행이 일에 큰 영향을 주진 않았다.
그 시각 하오문 본파.
자신의 서재에 앉아 있던 흉조는 자리에서 일어나 낡은 도자기 안에 손을 넣어 열쇠를 꺼냈다. 그리고 그 열쇠를 이용해 금고를 연 뒤 눈앞에 있는 사내에게 금고에서 꺼낸 커다란 함을 건넸다.
“천하제일의 암살 집단이라 불리는 살막의 실력을 한번 보겠습니다.”
“무례한 놈. 고작 푼돈이나 놀리는 주제에 건방이 지나치구나.”
“기분이 나쁘셨다면 죄송합니다. 하지만 살막이라는 단체를 이용해 본적이 없어서 말이죠.”
흉조가 얄미우리만큼 성질을 건드렸지만 의뢰를 맡은 이상 참아야했다.
“그런데 하나만 물어봐도 되겠습니까?”
“........”
“마교의 높은 자리를 차지하는 자는 아니지만 호사마입니다. 그를 죽이게 되면 마교를 적으로 돌리게 됩니다.”
사내는 마교를 적으로 돌린다는 흉조의 말에 오히려 미소를 지었다. 마치 그것을 원하는 사람처럼.
“마교는 당금 천하제일이라던데 한번 맞서보고 싶군. 호사마라는 자도 같이 죽이면 그렇게 되려나?”
“참아주십시오. 마교를 건드리고 살아남을 수 있는 곳은 없습니다. 그 잘난 정파도 무리를 이뤄 무림맹이라는 패거리를 만들어야 했고 힘을 숭배한다고 헛소리 지껄이던 사파도 결국에 흑사련이라는 집단을 이뤘습니다. 모두 다 마교라는 하나의 세력 때문이지요.”
무림에 있어서 마교가 갖는 의미는 그만큼 어마어마했다. 특히 몇 십 년 전 종교적인 문제와 관련해서 소림사와 대립을 했을 때도 피해를 본 곳은 소림사지 마교가 아니었다.
“농담이다. 바보가 아닌 이상 정말 마교를 상대하고 싶겠나? 흑운 공주만 처리하고 뒤로 빠지겠다. 불만 없겠지?”
“그게 바로 제가 원하던 겁니다. 불만이라니요.”
흉조는 사내의 확답을 받은 후에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보통 살수였다면 이런 비위맞추기 따위 절대 하지 않을 것이다.
“가울(假亐)공만 믿겠습니다.”
천하제일의 살수 집단인 사천의 무영곡과 더불어 최근 그 위세가 대단해진 살막의 천주 가울. 그자가 바로 신비인 살경제와 그 어깨를 나란히 한다는 전설의 암살자였다.
“그런데 호사마 말고 다른 변수는 없나?”
“네? 무슨 뜻입니까?”
“아니다. 그냥 내 개인적인 소망이다.”
정말이지 종잡을 수 없는 사내였다.
가울이 떠나자 흉조는 공방대에 불을 피웠다.
“10년 전까지 그저 그런 쓰레기 집단인 줄 알았는데 딱 10년 만에 살막을 이렇게까지 키워 내다니 대단하군. 살막의 천주도 그리고 그들의 우두머리인 막주도.....”
살막이 이토록 이 업계에서 무영곡과 함께 이름을 날리게 된 이유는 10년 전 지금의 막주가 살막의 막주 자리에 오른 후부터였다.
============================ 작품 후기 ============================
죄송합니다.
제가 오타 수정을 위해 수정하던 중에 손가락이 미쳤는지 삭제 버튼을 눌렀습니다.
거기다 뭐가 뜨길래 무시하고 사뿐하게 엔터도 쳐버렸으니....
일단 마영전 이야기를 하자면 그 게임은 그냥 무기 터지면 접을만 한 게임입니다.
분명 잘 만들었어요. 하지만 마비노기는 나무에 비유하자면 뿌리가 썩은 나무입니다.
운영이 틀려먹었어요.
그냥 미련없이 접을 수 있어서 오히려 기쁠 정도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