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화산의협-108화 (108/262)

<-- 108 회: 흑운 공주 -->

호남에서부터 죽어라 달려서 안휘성에 도착하자마자 제갈 사혁은 하오문 분타를 찾았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가 너무 늦었어요. 갈사 소협.”

하오문 분타가 있어야 할 자리엔 나무가 타는 검게 그을린 잔해와 냄새뿐이었다. 아무리 문파의 문주자리가 걸려있다고 해도 이런 식으로 무식하게 세력 다툼을 할 줄은 꿈에도 몰랐다.

(문파를 얻고자 하는 놈들이 자신의 손으로 문파의 재산을 싹 없애버리다니 이런 무식한!)

하오문은 다른 문파와 다르게 분타라는 것이 존재하고 하오문의 분타는 크고 작은 정보 있다. 그 정보가 한 장의 종이일 수도 있고 사람의 머릿속일 수도 있다. 그리고 그 다양한 종류의 정보는 하오문의 힘이 된다. 그런데 그깟 문주 좀 되겠다고 스스로 제 살을 깎아먹는 어리석은 짓을 하다니 제갈 사혁도 한 문파의 후계자 된 입장이라 이런 행동자체를 이해할 수 없었다.

“저기 사부.”

“왜?”

이신의 부름에 별 생각 없이 반사적으로 대답했지만 들려오는 말은 제갈 사혁의 상념을 깨트렸다.

“그런데 여기 왜 시체가 없어요?”

“!”

그러고 보니 건물만 타버렸지 사람의 시체는 한구도 발견할 수 없었다.

사상자가 한명도 없다는 말은 제갈 사혁으로 하여금 습격당한 게 아니라 습격을 위장해서 몸을 숨겼을 수도 있겠다는 가설을 세우게 만들었다.

“사라진 하오문 문도는 어떻게 찾죠?”

“일단 이렇게 하죠. 청하 소저 호남 분타주의 이름을 팔아서 이 근방의 점소이나 기녀들을 떠보는 겁니다.”

안휘 하오문의 존재 그 자체가 사라진 판국에 제갈 사혁 일행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주위를 돌며 수소문 하는 것뿐이었다. 그렇게 셋이서 각각 방향을 나눠 하오문 문도를 찾기로 하고 제갈 사혁은 객잔에 들러 점소이 한 명 한 명을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자네 혹시 말이야. 조망이라는 분을 알고 있나? 그 분이 호남에서 크게 사업을 하고 계시는데 말이야.”

“죄송합니다. 손님 저는 그런 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정말 쉽지 않았다. 설사 알고 있다 하더라도 함부로 타지인에게 이야기해줄 리 없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그 놈의 치료고 봉사고 간에 무풍대를 떼어놓고 오는 게 아니었다.

(무풍대 시켜서 몇 놈 잡아다가 협박을 하던지 뇌물을 주던지 뭐든 해서 털어주면 뭐가 나와도 나올 텐데.)

그렇게 한참을 돌아다닌 끝에 저녁이 되자 흩어진 세 사람은 별 소득 없이 객잔 안에 보여 저녁을 먹었다.

“미쳤지 미쳤어. 이번 일을 내가 왜 하겠다고 했는지 몰라요.”

“스승님이 하기 힘든 일을 주신 게 한 두 번이 아니지만 이번 일은 정말 힘드네요. 호사마에 대한 하오문의 접대와 흑운 공주의 호위 그리고 하오문 내부의 권력 다툼 하나만 생각해도 머리가 아파요.”

정신적으로 힘들었기 때문인지 제갈 사혁은 어느 때보다 식탐이 늘었고 청하는 평소에 잘 먹지만 이런 일로 피곤함을 느끼면서 입맛이 뚝 떨어졌다.

“여기 훈제 오리 한 마리 더!”

닭 한 마리를 뚝딱 해결하고 오리 한 마리를 더 시키자 나이가 제법 들어 보이는 점소이가 훈제 오리 한 마리를 가져왔고 이때 마치 점소이 보고 들으라는 듯이 청하가 말했다.

“그 하오 분타주 조망이라는 사람이 함정을 파놨을 가능성은 없나요?”

“함정을 팠으면 지금 쯤 뭐가 터져도 터져야죠.”

제갈 사혁이 고개를 좌우로 흔들자 청하는 그 순간 점소이를 흩기며 얼굴 표정을 몰래 살폈다. 하지만 아무리 봐도 뭐가 있을 것 같은 사람의 얼굴 표정이 아니었다.

청하는 제갈 사혁과 달리 용화장 잠입 임무나 이런 쪽의 임무를 많이 맡았고 수사에 대한 나름 촉이 있었다. 그래서 일부러 점소이가 이쪽 식탁으로 온 시점에 호남 하오 분타주의 본명을 거론하며 점소이의 눈치를 살폈지만 아무것도 나오지 않았다.

그날 밤 객잔에서 방 하나를 잡고 세 사람이 잠을 자고 있을 때 어둠을 틈타 누군가가 제갈 사혁 일행의 방으로 들어왔다.

이 방에 낯선 손님들이 방문한 순간부터 깨어 있었던 이신이 살짝 눈을 뜨자 옆에서 자고 있던 제갈 사혁이 조용히 이신의 눈을 손으로 가렸다.

“일단 분타주의 명령대로 조용히 데려갑시다.”

그러더니 바닥에서 자고 있던 청하를 자루에 넣은 후 들쳐 업고 이내 제갈 사혁과 옆에서 이신도 자루에 넣었다.

(갈사 소협 아무래도....)

(그런 것 같습니다.)

전음으로 의견을 주고받는 사이 목적지에 도착하자 제갈 사혁과 청하는 이곳이 객잔과 그리 멀지 않은 곳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자신들의 몸을 감싸고 있던 자루를 손으로 찢어버렸다.

“답답해 죽는 줄 알았네.”

주위를 둘러본 제갈 사혁은 이곳이 약방이라는 사실을 알 수가 있었다.

“그러게 말이에요.”

갑자기 제갈 사혁과 청하가 깨어나자 당황한 사람들은 무기를 들고 두 사람을 위협했지만 제갈 사혁은 그 자리에 주저앉아 특유의 거만한 표정으로 손을 저었다.

“서로 힘 빼지 말고 무기 내려놓읍시다. 우리가 누군 줄 알면 후회할 텐데.”

납치한 쪽보다 납치를 당한 쪽이 오히려 당당하게 나가자 괴한들은 당황했지만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대담하게 나갔다.

“당신들은 누구기에 조망이라는 이름을 알지?”

질문을 한 남자는 이들 중에 가장 나이가 많아 보이는 사내였는데 나이는 호남 분타주 조망과 비슷해 보였다.

“나는 제갈 사혁이라고 한다.”

“갈사 소협 어르신께는 존댓말을 해야죠.”

“지금 그런 게 중요한 게 아니잖습니까.”

“무슨 일이에요? 무슨 일인데요? 사부 나 좀 꺼내줘요.”

제갈 사혁을 납치했던 자는 바로 하오문 안휘 분타주였다.

부하들을 돌려보내고 자리를 따로 만든 후 제갈 사혁은 호남 분타주와 있었던 일을 노인에게 가르쳐주었다.

“대충 이렇게 된 일이지.”

“그렇습니까? 저희도 소협께서 조망 그 친구를 도와주었다는 이야기는 들었습니다. 하지만 직접 저희를 돕기 위해 여기까지 오실 줄은 몰랐습니다. 조망 그 친구가 보내신 분이니 마음은 든든하지만.......”

역시나 안휘 분타주도 호사마와 제갈 사혁으로 대변되는 마교와 정파의 대립을 걱정하고 있었다.

“호사마를 돌려보내면 되지 않겠나? 그보다는 내가 나을 터.”

확실히 그건 맞는 말이지만 호사마를 통해 흑운 공주를 지키려 했던 건 다 이유가 있었다.

“호사마를 통해 마교의 이름을 빌어 흑운 공주를 지키고자 했다면 그건 그거대로 괜찮은 방법이다. 하지만 그게 가능하지 않을 때도 있는 법이다.”

제갈 사혁은 미래를 알고 있었지만 그것을 논리적으로 이들에게 설명할 수는 없었다. 그렇다고 대뜸 흑운 공주를 우리가 지키겠다며 강압적으로 나설 수도 없었다.

무엇보다 어쩌면 이번에는 성공할 수 있었다. 지난 생애와 이번 생애가 다른 점은 정사대전이 터지지 않았다는 점에 있다. 지난 생애에서는 정사대전 중이었기 때문에 암살하려는 쪽에서 호사마를 죽이는데 망설임이 없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다르다. 호사마를 죽이면 분명 그 불똥은 당사자와 그 배후에게 미친다.

(하지만 그래도 곤란하단 말이지.)

만약 마교에 의한 흑운 공주 보호가 성공해도 문제였다. 그렇게 되면 차후 하오문 문주 자리에 흑운 공주가 오른다면 마교에 생명을 빚졌던 사실을 상기하고 그 마음이 마교에 기울 수 있었다.

“그럼 이렇게 하지 흑운 공주를 호위하는 호사마의 마차에 우리를 하오문 문도로서 끼어줬으면 좋겠군..”

“하지만....”

“그 정도는 가능할 거라 믿겠다. 나도 조망과 약속을 한 사이니 혹 호사마가 흑운 공주를 지키지 못한다면 내가 대신 지키겠다. 나를 그냥 정파인으로 생각하지 말고 하오문이 만든 또 하나의 대비책 정도로 생각해줬으면 좋겠군.”

굳이 흑운 공주를 호위하는 무리에 껴서 몰래 호위를 해주겠다는 사실이 고마우면서도 한편으로는 굉장히 불편했다.

상대는 제갈 사혁 그 이름만으로도 이미 평범한 사람이 아니었다.

“내 실력을 믿어라. 결코 후회하지 않는다.”

제갈 사혁이 계속 밀어붙이기만 하자 청하가 중간에 껴 분타주의 숨통을 터주었다.

“마교는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하오문 소속으로 잠입해 들어가면 마교의 사람들이 어떠한 행동을 하더라도 절대 그 행위에 반하는 행동을 하지 않겠습니다.”

분타주가 걱정하는 것은 바로 이것이었다. 정파인이 마교의 무리에 들어가서 과연 순수하게 흑운 공주에 대한 호위만 생각할 리 없었다. 하루는 괜찮겠지만 이틀이 지나고 삼일이 되면 슬슬 갈등이 생기기 마련이었고 그때 사건이라도 터지면 일이 복잡해지기 때문이다.

“사문의 이름을 걸고 약속드리겠습니다. 갈사 소협!”

청하가 눈치를 주자 제갈 사혁도 고개를 끄덕였다.

“좋습니다. 날이 밝으면 호사마 일행이 흑운 공주와 함께 떠날 겁니다. 그때 이야기를 잘 해서 껴드리겠습니다.”

기어이 승낙이 떨어지자 제갈 사혁은 알 듯 모를 듯한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그 미소를 누군가 보았다면 분명 음흉하다며 흉을 보았을 법한 그런 미소였다.

다음 날이 되자 안휘 하오문 분타주의 중개로 호사마의 마차에 합류하게 되었고 제갈 사혁 일행은 마교인들과의 마찰을 우려해 흑운 공주의 마차로 이동을 하게 되었다.

“안녕하세요.”

그것은 흑운 공주의 첫마디였다.

“네. 안녕하세요.”

청하는 여인답게 거리낌 없이 인사로 답해주었고 제갈 사혁은 개 버릇 남 못 준다고 흑운 공주를 자신의 개인적인 판단과 잣대로 평가하고 있었다.

(나이는 대충 20대 초반 같은데 무공을 익힌 흔적이 없군. 그렇다고 해서 그렇게 똑똑해보이지도 않고 이거 전형적인 아가씨네.)

흑운 공주라는 별호로 불리기에 무슨 숨겨진 한수라도 있는 줄 알았지만 그냥 평범한 아가씨였다. 이래서야 길가에 널린 여자 아이 하나 데려다 하오문 문주를 시키는 것과 다를 바 없었다.

“갈사 소협 저분 정말 미인이네요.”

청하가 귀에 다 대고 작게 속삭이자 제갈 사혁은 '청하 소저가 더 아름답습니다.' 라고 용기있게 말하고 싶었지만 자리가 자리인 만큼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오히려 그 질문의 대답을 한 쪽은 제갈 사혁이 아니라 이신이었다.

“네? 전 잘 모르겠는데요. 저 정도면 예쁜 건가요?”

이 눈치 없는 녀석이 다 들릴 정도로 크게 말하자 제갈 사혁은 당황해하며 이신의 입을 막았다.

“하하하~ 죄송합니다. 이 녀석이 눈치가 없어서 말입니다.”

제갈 사혁의 사과에 흑운 공주는 신경 쓰지 않는 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아닙니다. 옆에 청하 소저처럼 아름다운 분이 계시는데 저 같은 게 예뻐 보일 리 있나요.”

미적 감각이라는 게 상당히 객관적이지만 이신의 경우에는 그럴 법도 했다. 어려서부터 남궁세가에서 남궁 미려와 남궁 이화를 보았고 화산파에서는 서희를 비롯해 다른 사고들을 보고 무림맹에 와서는 청하를 매일 매일 보고 있으니 눈이 높아지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아닙니다. 스승인 제가 교육을 제대로 시키지 못한 죄입니다. 용서 하십시오.”

“그런데 제갈 사혁이라 하셨죠? 소협은 생각하던 것보다 많이 다르네요.”

“네? 도대체 어떤 생각을 가지셨기에?”

“패악하기 그지없다기에 우락부락하고 외모도 왠지 무서울 것 같고 몸도 곰처럼 클 것 같았는데 지금 보니까 상당히 잘 생기셔서요.”

그 말을 듣고 있자니 내심 스스로 한 없이 작아지는 느낌이었다. 외모는 둘째쳐도 패악스럽고 성격 더러운 건 사실이기 때문이다.

“아니에요. 갈사 소협은 얼마나 따뜻한 분이신데요. 그 소문은 다 거짓이에요. 소협은 불의를 보면 참지 못하고 도움이 필요한 자가 있으면 그를 돕기 위해 백방으로 노력하는 사람이에요.”

청하가 자신을 감싸주자 제갈 사혁은 감격의 눈물을 흘렸지만 곧 들려오는 전음에 눈물이 쏙 들어가 버렸다.

(외모에 대한 것을 빼고는 정말 정확하게 알고 있네요. 아~ 정말 거짓말하기 힘들다.)

(칭찬 아니죠. 흉보는 거죠? 나 울어도 돼요?)

(어서 울어요. 내 가슴을 빌려줄 테니.)

확실히 그 사건이 있은 후 제갈 사혁을 대하는 청하의 태도가 조금 달라지긴 했지만 이런 청하의 모습도 나쁘지 않았다.

“그런데 호사마는 어떤 사람입니까?”

“마교 사람이 신경 쓰이시나요?”

제갈 사혁이 노골적으로 호사마에게 관심을 가지자 흑운 공주는 제갈 사혁에게 직격타를 날렸다.

“아니 뭐.....”

그냥 평범한 아가씨라고 생각했는데 입담은 정말이지 보통이 아니었다.

“할아버지 지인이라고 알고 있어요. 그냥 저한테는 그냥 할아버지 친구고 아편 중독에 아침에는 항상 삶은 달걀 두 개를 삶아 먹는다는 것 정도? 강호를 떠들썩하게 만들고 있는 소협의 명성대로라면 단칼에 베어버릴 수준이에요.”

이렇게까지 말하자 천하의 제갈 사혁도 얼굴을 들 수가 없었다. 과연 하오문의 흑운 공주였다.

“그런데 하오문 건물은 왜 태운 겁니까?”

마교인을 죽이네 어쩌네 하는 말을 타인의 입으로 듣는 게 불편했던 제갈 사혁은 일부러 화제 전환을 위해 불에 타서 전소(全燒)된 하오문에 대해 물었다.

“호남 분타가 검영단에 공격 받는다는 말을 듣고서 위장을 위해 태웠어요. 원래 안휘성은 남궁세가의 위세 때문에 도박장도 점조직 형태로 운영해요. 호남 하오문처럼 크게 만들지는 못하죠. 애초에 거긴 그냥 하오문의 업무만 보는 곳이라 그곳을 없애도 크게 문제 될 것은 없었어요.”

생각해보니 지난 날 안휘성을 찾았을 때 도박장의 규모가 그리 크지 않았던 것을 기억하고 있었다. 오히려 적룡파니 뭐니 하는 시정잡배들이 설칠 정도였으니 말이다.

============================ 작품 후기 ============================

12시 연재는 못했지만 하루 1일 연재는 무슨 일이 있어도 지키려 노력하고 있습니다.

정말 피치 못할 사정이 없는 한 이 글을 찾으시는 분들을 위해서라도 열심히 쓰려고 합니다.

늦어서 정말 죄송합니다.

오늘도 12시 연재가 가능할지 모르겠지만 꼭 연재를 펑크내는 일 없도록 하겠습니다.

10월 30일이 되면 10월 30일에 글이 나오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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