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0 회: 흑운 공주 -->
“!”
그 얼굴을 본 순간 제갈 사혁은 넋이 나간 사람처럼 한동안 가만히 서있었다. 그 얼굴은 다름 아닌 황성의(黃聖依)였기 때문이다.
“얼굴 드러나면 안 되는데 쳇~ 너 오늘 죽어야겠다.”
독을 품은 뱀의 머리처럼 사납게 달려 들어오는 검을 피해낸 제갈 사혁은 재빨리 경공을 펼쳐 마차 위로 올라갔다.
“너 혹시 황씨냐?”
제갈 사혁의 뜬금없는 질문에 그는 허공에 검을 휘두르며 검기를 발현했다.
“내 이름은 가울(假亐)이다. 저승 갈 때 기억하도록!”
허공에 검을 흔들며 검기를 발현해 발사하는 수역비(輸力緋)임을 간파해낸 제갈 사혁은 잔상을 일으키며 옆으로 피한 뒤 신행백변(神行百變)을 펼치며 다가갔다.
“황씨가 아니란 말이지?”
“야! 그거 어떻게 피했냐? 여태까지 피한 놈이 없었는데 너 이름이 뭐냐? 아니다~ 금방 죽을 놈인데 니깟놈 이름을 알아서 뭐하겠어.”
제갈 사혁이 대수롭지 않게 수역비를 피해내자 가울은 당황했지만 우연이라 생각했는지 여전히 제갈 사혁 깔보고 있었다.
(그럼 뭐야 저 새끼 황씨가 아니었단 말이야? 아니 근데 이 새끼 말하는 말본새가!)
말본새가 마음에 들지 않았던 제갈 사혁은 개인적인 감정을 담아 가울의 복부를 사정없이 후려쳤다. 마음먹고 후려 찬 발길질에 가울은 중심을 잡지 못하고 한참을 굴렀다.
자신을 가울이라 말한 놈의 얼굴을 아무리 뜯어봐도 분명 그가 맞았다. 황성의는 다름 아닌 흑요칠마 중 한명이다. 아마 나이로는 여자인 서율을 빼고 남자 중에 가장 막내로 어렸던 걸로 기억하는데 만약 눈앞에 있는 이 자가 제갈 사혁이 기억하는 바로 그 황성의라면 지금 살막의 가울이라는 이름이 본명이건 황성의가 본명이건 상관없이 그라는 인물 자체가.....
(황성의가 맞아. 분명 황성의야. 그렇다면 놈은 처음부터 살막의 인물이었나? 종방영이 없으니 서율도 정파인에서 사파인이 되지 않았어. 그럼 이놈도 종방영이 없으니 사파인이 되지 않은 건가? 아니야! 이놈은 처음부터 살막에 있던 놈이 분명해. 서율처럼 운명이 바뀌어서 암살자가 됐을 리 없어. 처음부터 이 놈은 암살자였던 게 분명해.)
종방영의 존재를 제갈 사혁이 없앴기 때문에 서율처럼 사파인이 되지 않았다고 생각할 수 있으나 그건 아니었다. 황성의가 가울이라는 이름으로 몸담고 있는 단체가 다른 곳도 아니고 살막인만큼 처음부터 황성의라는 인물은 살막이 만들어낸 거짓 인물일 가능성이 높았다.
“이 자식이 지 수준에 맞춰서 좀 놀라줬더니 대놓고 지랄거리네.”
저런 말투를 보면 도저히 제갈 사혁 본인이 알고 있는 그 황성의라고 생각할 수는 없지만 말투 정도야 평상시 타인을 대할 때랑 지금처럼 몇 대 맞아서 반쯤 미쳤을 때랑 상황에 따라 다른 법이니 뭐.......
“야! 백년 하수오라고 들어봤냐?”
백년 하수오라니 이건 또 무슨 말을 하려고?
“내가 그걸 먹었거든 너희는 구경도 못해봤지? 잘 봐라 그걸 먹으면 사람이 이렇게 변해.”
가울은 자세를 낮추고 순식간에 파고들어오며 기묘한 검격을 날렸고 제갈 사혁은 검격을 막은 상태에서 1장(丈) 정도 밀려났다. 그러자 공격을 한 가울이 오히려 당황했다.
“어라! 이럴 리가 없는데?”
자신이 머릿속으로 떠올렸던 광경과 지금 눈앞에 보이는 광경은 사뭇 달랐다. 분명 그 일격 한방에 몸이 반쪽으로 쪼개지던가 그도 아니면 수십 장을 날아가야 하는데 겨우 1장 정도 밀려나다니.
반면 제갈 사혁은 가울이 사용한 검초에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생각해보니 그 백년 하수오는 금광수한테 빼앗은 게 아니라 살막한테서 빼앗은 게 되는 건가?)
이신에게 금광수 아니 살막에서 빼앗은 백년 하수오를 먹었기 때문에 그 효능은 익히 알고 있었지만 백년 하수오라는 영초가 어디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게 아닌 이상 강호에 두 뿌리나 나올 리 없었다.
“너 말고 백년 하수오를 먹은 사람이 있나?”
“알아서 뭐하게 가르쳐주면 백년 하수오라도 캐러 다니게?”
“그래봐야지 위력이 이 정도인데 찾으러 다닐만하잖아.”
“발견된 뿌리는 총 세 뿌리다. 그 중 하나는 탈취 당했는데 아직까지 행방이 묘연하지. 그걸 찾아보는 게 어때? 그냥 산에 들어가서 백년 하수오 하나 찾는 것보다 그 행방이 묘연한 백년 하수오 찾는 게 더 빠를 거야.”
그 말이 끝남과 동시에 제갈 사혁은 호황을 집어넣고 무덤덤하게 가울의 앞에 다가가 갔다.
“뭐..... 뭐하는 거야?”
제갈 사혁의 걸음걸이는 보법이 아니었다. 그냥 시장바닥을 다니는 사람처럼 아무렇지 않게 걷고 있었다. 상대의 눈을 속이기 위해 발바닥에 땀나도록 춤을 춰도 모자를 판국에 그냥 천천히 걸어서 다가오니 알 수 없는 위화감이 느껴져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애새끼 당황했네.)
허허실실(虛虛實實)과 같은 기본적인 것도 몰라 당황하다니 무공실력은 몰라도 전투경험은 그 나이 때 딱 그 수준에 머물러 있었다.
가울과 눈을 마주한 제갈 사혁은 그대로 밑도 끝도 없이 가울의 복부를 주먹으로 때렸다.
“칵!”
요상한 신음소리와 함께 가울은 정신을 놓지 않기 위해 필사적으로 이를 악물고 버텼다.
(아까부터 이 새끼가 자꾸 배를!)
아까부터 계속 저 기생오라비 같은 놈이 복부만 사정없이 때리는 터라 핏물이 올라왔지만 사나이 자존심에 피를 토할 순 없었다.
“너 뭐하는 놈이냐?”
“이제 나에 대해서 궁금해졌나보네. 너보다 별 볼일 없는 놈이라고 생각했는데 내가 좀 하는 놈이라 당황했구나? 그렇지?”
“너 누구냐고!”
“나도 니 나이 때 그랬지. 사천에서 사파 놈 하나 만나서 곤죽을 만들어주려고 했는데 그 새끼가 알고 보니까. 봉명공이라고 정파 후기지수에다 사파에서 좀 하는 놈이더라.”
일부러 지난 생애의 일까지 꺼내며 제갈 사혁은 가울을 육체적으로 그리고 정신적으로 건드렸다.
“말 했잖아! 너 누구냐고!”
가울의 외침과 동시에 제갈 사혁은 가울의 머리채를 잡고 가울이 죽인 마교인들의 시체더미 쪽으로 던져버렸다. 가울이 이번 생애에서 황성의가 아닌 이상 가울에게 볼 일은 없었다.
“니깟 놈이 내 이름은 알아서 뭐하게?”
기절한 가울의 목을 한손에 움켜쥐고 호황을 뽑아든 제갈 사혁은 진해창을 떠올리며 생각을 바꿨다.
“이거 또 대책 없이 죽였다가 나중에 곤란해질 수도 있는데.”
진해창을 버러지 취급하며 밟은 덕에 이번 일이 조금 힘들게 꼬인 사실을 깨닫고 제갈 사혁은 고심하던 끝에 한 가지 묘책을 떠올렸다.
“그래 격체전공을 해주마 꼬마야. 끌끌끌~”
제갈 사혁의 웃음소리는 이전까지 볼 수 없었던 기묘한 웃음이었다.
격체전공 말 그대로 자신의 내공을 타인에게 넘기는 것이었다. 하지만 가울에게 할 격체전공은 이신의 그것과 달랐다.
“내 내공을 전수 받으면 아마 이전과는 달라질 거다. 무공 실력도 그리고 외공도......”
이신에게 격체전공을 해줬을 때는 자신의 모든 것을 전수해주었기 때문에 상당히 힘들었지만 가울에게는 자신이 필요한 몇 가지만 넣어주면 그만이었다.
“어디 주제 파악 못하고 마음껏 휘젓고 다녀봐.”
분명 제갈 사혁의 내공을 받은 것은 축복이라 할 수 있지만 정작 제갈 사혁 본인은 절대 좋은 의도로 내공을 주입해주지 않았다.
“크악!”
남자는 비명소리와 함께 그대로 주저앉아 버렸고 이신은 남자의 가슴에서 피에 찌든 자신의 손을 거칠게 빼냈다.
“청하 누나. 여긴 제가 맡을 테니 그분을 보호하세요.”
청하와 이신 그리고 흑운 공주는 암살자를 피해 도망쳤지만 어찌된 일인지 매복하고 있던 적들에게 급습을 당하게 되었다.
“그래.....”
실제로 이신이 싸우는 것을 이번에 처음 본 청하는 여태까지 보아왔던 이신의 모습과 다른 잔인한 모습을 어안이 벙벙했다. 적을 죽이는 게 문제가 아니라 죽이는 방식이 문제였다. 주먹으로 때려도 꼭 적당히 내장을 파괴하면 될 텐데 이신이 주먹을 뻗으면 반드시 상대의 몸을 꿰뚫었다.
시야의 사각에서 낭인이 검을 휘두르자 이신은 엄지손가락을 세워 그의 어깨를 찔렀다. 장파와 함께 쓰지 않는 점이 어설프긴 하지만 제갈 사혁의 잡기 중 하나인 나찰이었다.
뒤에서 낭인이 두 명 더 달려들자 이신은 망설임 없이 자신이 붙잡고 있는 낭인의 몸을 휙 돌려 사람을 방패로 삼았다.
“끄악!”
방패로 삼은 낭인이 비명을 지르자 이신의 간계(奸計)로 인해 동료를 찌른 낭인들은 순간 움찔했고 이신은 그 틈을 절대 놓치지 않았다.
“파!”
기격을 무식하게 날려 낭인들을 전부 날려버린 이신은 땅에 떨어진 칼을 들고 검술을 펼쳤다. 사숙조인 도오 진인에게 배운 백팔식광풍쾌검(百八式狂風快劍)이었다.
“소풍소래(小風蘇崍)!”
백팔식광풍쾌검의 소풍소래로 적들의 발을 묶은 후 청하에게 다가가는 낭인 한명을 향해 들고 있던 칼을 던졌다.
“무기를 던지다니 어리석구나!”
어차피 이신 입장에서 칼 따윈 있으나 없으나 마찬가지였다. 물론 청하 정도의 실력이면 낭인을 상대하는데 문제가 없겠지만 절대 그것을 용납할 수 없었다.
“녀석을 상대하는데 힘 뺄 것 없다! 흑운 공주를 노려라!”
우두머리 되는 자가 흑운 공주만 노릴 것을 지시하자 이신은 이를 악물었다.
폭류신공을 펼쳐 순식간에 낭인 사이를 가로질러 날붙이로 만들어진 나뭇가지사이를 지나 그들의 앞을 막은 이신은 과장되게 팔을 벌려 가장 앞에서 그들을 지위하던 우두머리의 따귀를 날렸다. 그러자 우두머리의 목은 피를 뿌리며 땅바닥에 굴렀다.
“나한테 집중해..... 나한테!”
폭류신공의 발현과 함께 감정을 주체하지 못한 이신은 물건을 걷어차듯 낭인들을 걷어찼다.
거침없는 공격 하나 하나는 적들의 사지를 부러트리기보다 아예 찢어버렸다. 그만큼 이신은 분노로 인한 힘을 조절하지도 할 생각도 하지 않았다.
적당히 그리고 필요할 때는 확실하게 힘을 분배하는 제갈 사혁과 비교했을 때 힘을 사용하는 방법이 너무나도 다르지만 이것 역시 제갈 사혁의 가르침이었다. 제갈 사혁은 항상 이신에게 분노를 제어하는 법보다는 분노를 효과적으로 이끌어내는 법을 가르쳤다.
============================ 작품 후기 ============================
음..... 제가 인터넷을 하다가 이것저것에 정신을 팔고 있다는 걸 후기로 남겼습니다. 어제!
그런데 저 말고도 다들 그렇게 인터넷 하신다는 겁니까?
처음에 웹툰 보려다가 인기 검색어에 뭐라도 뜨면 그거 누르다가 쓸 때 없는 연관검색어 누르고 웹툰 보는 건 까맣게 잊어버린 채 인터넷하다가 게임을 하고 뭐 이런 식으로????
저만 그런 게 아니었군요. 다행입니다. 전 저만 그런 줄 알고 내심 걱정했거든요.
내가 집중력이 부족한가? 하는 생각도 했었고....
이번에 나온 캐릭터인 가울은 대충 감이 오실 겁니다.
제갈 사혁과 성격이 비슷하죠. 영약 먹고 강해져서 자기가 뭐라도 되는 양 설치는 것도 그렇고 자기가 제일 쎈 줄 알고 여유 부리는 것도 그렇고
처음 하오문에서 의뢰 대금을 받았던 가울과는 말투가 전혀 다르지만 그때는 캐릭터 정립이 안되서 말투가 어른스럽지만 지금은 딱 20대 초반의 철없는 애송이 느낌입니다.
원래 이 캐릭터도 예정된 캐릭터였습니다.(만화로 따지면 겨우 콘티 수준이었지만) 살막 출신이었지만 사파 무림인이자 흑요칠마의 일원으로 위장할 생각이었는데 이 이야기를 구상하면서 그냥 살막의 가울로서 등장하게 된 거죠. 제갈 사혁은 회귀를 했기 때문에 얼굴만 보고 살막의 가울과 흑요칠마의 황성의가 동일인물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는 설정이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