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8 회: 인생무상(人生無常). -->
묘하게 그 미소가 거슬렸지만 지금은 술을 음미하는데 집중했다. 처음 마시는 술이지만 이신도 맛이 나쁘지 않았는지 찔끔찔끔 마시기 시작했다. 그런데 갑자기
“사부.”
“이거 왜 이래?”
남궁 미려가 있는 자리에서 이러는 건 좋지 못하지만 제갈 사혁과 이신의 아들내미에서 반응이 왔다. 천하의 제갈 사혁 어찌할 줄을 몰라하자 남궁 미려는 무미건조한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난 이런 일이 일어날 줄 알고 있었어.”
그러고 보니 구월상이 허겁지겁 자리를 피한 것도 다 이유가 있었다.
“불로초에 여러 약재를 섞어 만든 술이지. 남자한테 정말 좋아. 단 이런 부작용이 있지만 서도.”
불로초고 나발이고 이런 어처구니없는 상황이 일어나자 의자에 앉아 있던 두 사람은 유난히 강조되는 신체부위를 가리기 위해 바닥에 주저앉았다.
“너 이 새끼 정말 마음에 안 들어!”
“왜 그래 이거 마시면 남자로서의 자신감은 물론 혈액순환도 잘되고 굉장히 좋은 거야.”
제갈 사혁이 지곤의 멱살을 잡자 지곤은 얄미울 만큼 가식적인 미소를 지으며 제갈 사혁의 어깨를 툭툭 때렸다.
“사부 나 이상해요.”
“나도 이상해 임마~ 아니 그게 아니지 그건 당연한 거야. 나중에 아들내미가 반항기에 들어서 말을 안 들으면 그것도 문제..... 아니 그게 아니라!”
고개를 돌려 이신을 쳐다보자 이신의 몸에서 기가 흘러나왔다. 아니 정확히는 기가 흘러 나왔다기보다 줄줄 세고 있다고 보는 게 옳았다.
“야!”
지곤을 닦달 거렸지만 지곤은 전혀 이런 현상이 일어날 줄 몰랐다는 표정이었다. 그러고 보니 제갈 사혁도 점점 이상한 느낌이 들면서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몸에서 기가 줄줄 세기 시작했다. 그러자 지곤은 서둘러 제갈 사혁의 복부에 손을 대 기의 흐름을 살폈다. 그런데 그 순간 단순히 기의 흐름만 알아보려 했던 지곤에게 제갈 사혁의 내공이 흘러들어오기 시작했다.
“뭐야 이거 오~~”
“야!”
“너 뭐냐? 야 이거 대단한데 내공이 막 흘러들어와.”
그러면서 지곤은 제갈 사혁의 양 손목을 붙잡았다. 모르긴 몰라도 제갈 사혁을 이용해 내공을 증진하고자 하는 목적일 게 분명했다. 그리고 그 의도를 눈치 챈 제갈 사혁은 이를 갈며 소리쳤다.
“어딜 만져 어딜 만지냐고!”
“미려! 이리 와서 좀 만져봐 이거 장난 아닌데.”
남자 두 명이 옥신각신하는 모습을 보더니 남궁 미려는 눈살을 찌푸렸다. 하지만 곧 내공이 어떻고 하는 소리가 나오자 은근슬쩍 제갈 사혁에게 다가가더니 갑자기 고개를 돌려 이신을 쳐다봤다.
“둘이 똑같지? 그럼 나는.....”
말끝을 흐리며 이신에게 다가가려 하자 제갈 사혁은 남궁 미려의 목을 팔로 감으며 이신에게 다가가려는 남궁 미려를 제지했다.
“어딜 가!”
“이거 좀 놔!”
“건방 떨지 말고 그냥 내 옆에 있어.”
세 사람은 그렇게 제갈 사혁의 내공을 강제로 전이 당하며 떠들어댔고 결국 술기운이 다되자 잠잠해졌다.
혈액순환을 통해 내공을 제어하는 두 사람이기에 이런 반응이 일어났지만 술의 효과는 너무 과했다.
“이거 자주 만드냐?”
“자주는 못 만들지 들어가는 재료 문제도 있고.”
어떤 의미에서 이걸 악용 아니 활용해볼 생각이었던 제갈 사혁은 아쉬움에 입맛을 다셨다. 그리고 뒤돌아서서 자리를 뜨려는 그때 지곤이 제갈 사혁의 손목을 붙잡았다.
“먹고 튀기냐? 먹었으면 보상을 해야 할 거 아니야.”
“미친놈이 뭐래! 내 내공 쳐 먹고 때깔이 좋아진 주제에.”
“안 돼! 내가 뭐 때문에 이 좋은 술을 너한테 먹였다고 생각하는 거냐!”
그리고 지곤에 대해 한 가지 더 말하자면 지곤은 절대 공짜로 무얼 줄 사람이 아니었다. 그 사실을 오랜만에 떠올린 제갈 사혁은 바닥에 주저앉아 허벅지를 세게 치며 말했다.
“그래 그 부탁이란 게 뭐냐?”
“사천 소곡리(小谷里)에 천근(天菫)이 발견됐다는 말이 있는데 말이야.”
천근 또는 천금(天金) 천석(天錫)이라고도 불리는 하늘에서 내려온 돌 혹은 금속이나 흙 등을 가리키는 것으로 이게 나타났다는 것은 전 무림을 떠들썩하게 만들 만큼 중요한 일이었다.
(뭐지? 당시에 이런 게 존재했다는 말은 못 들었는데.)
어쩌면 당시에는 정사대전 중이었기 때문에 발견을 못했을 수도 있고 지금은 정사대전이 일어나지 않았기 때문에 발견 됐을 수도 있었다.
“그걸 왜 나한테 말하는데?”
원래 이 자리에 불려온 사람은 구월상 남궁 미려 그리고 제갈 사혁이었다. 그 말은 자기만 쏙 빠지고 후기지수 전부를 사건현장에서 굴려버리겠다는 속셈인데.
“이걸 해주면 넌 나한테 뭘 해줄 건데? 천근이 어떤 물건인 줄은 알지?”
“해줄 건 없다.”
“..........”
지곤은 이게 문제였다. 뻔뻔하다는 말이 아니라 매사에 정신사납고 어딘가 모자란 놈처럼 행동할 때가 많은데 꼭 이럴 때면 마치 이 순간을 단단히 벼루고 있던 사람처럼 정색을 하며 진지하게 말할 때가 있다. 그리고 본인도 이걸 심리적으로 이용하는 것 같지만 매번....
“일단 부탁대로 해줄게.”
그것에 넘어가버리는 제갈 사혁 그리고 매번 알면서 넘어가줄 수 있는, 지곤은 그런 사람이었다.
지곤의 말대로 조사를 하기위해 제갈 사혁은 청하를 찾아갔다. 달리 청하가 이번 일에 가줄 필요는 없지만 그래도 같이 가줬으면 하기 때문이다.
“갈사 소협 어서 오세요.”
청하는 자기 숙소에서 열심히 책을 보고 있었다.
“뭐하고 있었어요?”
“도법연구요.”
무당파 내에서도 도법을 다루는 청하기 때문에 도법에 대한 연구를 상당히 열심히 하고 있었다. 무당파가 굳이 도법을 연구하는 이유는 모르지만 열심히 하고 있는 청하를 보고 있자니 함께 가자는 말은 자기 욕심일 것 같아서 말을 꺼낼 수 없었다.
“무슨 일이에요.”
“아니요. 아무것도.”
“보기만 해도 알거든요. 무슨 부탁이 있어서 찾아올 때랑 놀러 올 때랑은.”
여자의 직감은 이래서 무서웠다. 물론 남자의 행동양식이 그만큼 단순한 것도 있지만.
“일이 좀 생겼는데 같이 가줬으면 해서.”
“힘든 일이에요.”
“아니 뭐 힘든 일이라기보다~”
아닌 척하면서 같이 가줬으면 한다는 뜻을 넌지시 내비치자 청하는 아랫입술을 내밀고 제갈 사혁을 안타깝게 바라봤다.
“어쩌지 오늘은 누나가 많이 바쁜데.”
청하가 놀리자 제갈 사혁은 청하의 코를 아주 살짝 잡아당겼다.
“다녀와요.”
코맹맹이 소리로 작별인사를 건네는 청하가 오늘따라 여간 귀여워 보였다.
“잠깐만요.”
작별인사를 하다말고 제갈 사혁에게 다가 온 청하는 갑자기 제갈 사혁을 껴안았다. 너무 갑작스러운 상황이라 제갈 사혁은 얼음처럼 얼어버렸고 머릿속으로 수만 가지 생각이 들었다.
갑자기 이 여자가 왜 이러는 걸까? 뭔가 관계가 진전되는 걸까? 그럼 나는 이때 뭘 해야 하는 걸까?
머릿속은 온통 어찌 해야 할 줄 몰라 하면서 복잡한 그때 갑자기 청하가 귀에 바람을 불어넣었다.
“!”
예상치 못한 상황에 깜짝 놀란 제갈 사혁은 뒤로 넘어지면서 꽃병이 놓인 탁자를 깔아뭉개 버렸다. 그 모습을 본 청하는 배꼽이 빠져라 웃었고 제갈 사혁은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 표정 진짜 바보 같은 거 알아요?”
“저기 말이에요......”
“그래서 좋아해요. 그 표정.”
“........”
“가끔 보면 내가 모르는 사람처럼 표정을 지을 때가 있어요. 물론 그게 진짜 갈사 소협일 수도 있지만 ‘내가 알고 있는 제갈 사혁이라는 사람’은 아니에요.”
청하는 지난번 하오문 사건 때를 지금도 굉장히 신경 쓰고 있었다.
실제로 제갈 사혁의 행동과 언행을 옆에서 직접 보았고 그래서 그런지 친한 사람 이외의 타인을 대하는 태도가 자신이 알고 있는 그의 모습과 너무 동떨어진 것 같아서 지금까지 마음이 복잡했다. 하지만 지금 이렇게 당황해하는 모습을 보니 역시 제갈 사혁은 제갈 사혁이구나 하는 생각을 다시금 하게 됐다.
“다녀와요.”
그러면서 지난번과 같이 왼손에 입을 맞춰주었다.
“이왕이면 여기에 해주면 좋을 텐데.”
제갈 사혁이 음흉한 표정으로 입술을 가리키자 청하는 주먹으로 제갈 사혁의 인중을 세게 후려쳤다.
“까분다.”
“쳇.”
“다녀와요.”
청하의 배웅을 받으며 방에서 나온 제갈 사혁은 무림맹 입구에서 몸을 풀고 있은 이신에게 두 손을 가로저었다.
“청하 누나 안와요?”
“바쁘데.”
청하가 오지 않는다는 말에 이신은 눈에 보일 정도로 풀이 죽어 있었고 그런 이신의 등에 기습적으로 매달린 제갈 사혁은 이신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청하 소저가 안 온다니까. 되게 실망한다. 너.”
“그렇잖아요.”
실망하는 이유도 납득이 가지만 서도 각자의 사정이란 게 있으니 늘 함께 다닐 순 없는 노릇이었다. 그런데.....
“너도 가게?”
“저도 이 일을 부탁받았어요.”
남궁 미려가 자신에게 존댓말을 쓰는 건 여전히 부담스러웠다.
“존댓말 그거 꼭 해야겠냐? 나한테는 외가 쪽이고 너한테는 그냥 고모 아들인데 서로 오빠 동생 할 것도 아니고.”
“안됩니다.”
수주충과 충돌한 것도 있지만 남궁 미려가 이렇게 존댓말을 고집하는 이유는 제갈 사혁도 대충 눈치가 있어서 짐작은 하고 있었다.
“자~ 그럼 가볼까. 하늘에서 내려왔다는 전설의 천근을 찾아.”
============================ 작품 후기 ============================
전설의 천근.
판타지로 따지면 뭐 대충 아시겠죠. 여러분이 알고 있는 그거 입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판타지를 쓸 때 오르하르콘보다는 미스릴을 더 높게 치는 편입니다.
둘다 허구의 금속이지만 미스릴이 이름에서 좀 더 신비한 느낌을 주기 때문이죠.
오늘 패러디는 조금 위험했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