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9 회: 인생무상(人生無常). -->
사천지방이기 때문에 가는 동안 불편한 점은 없었지만 제갈 사혁은 마음을 단단히 먹었다. 천근 하늘에서 내려온 철 혹은 그 부산물을 가리키는 이 전설의 금속은 무기로 만들었을 때 정말 상상을 초월하는 위력을 갖는다.
“천근이란 건 실제로 본 적이 없어서 그러는데 정확이 어떤 물건이죠?”
어색한 존댓말로 남궁 미려가 천근에 대해 묻자 제갈 사혁은 곰방대에 불을 붙였다.
“신의 금속 하늘의 은총이라 불려. 이것으로 무기를 만들면 정말 상상을 초월하지. 천근은 내공을 봉인하거든.”
내공을 봉인한다는 말에 남궁 미려는 이해가 안 된다는 표정을 지었고 제갈 사혁은 직접적으로 천근이 가진 힘을 말해주었다.
“내공이 통하지 않아서 이것으로 만든 무기로 무림인을 해치면 외공의 성취와 상관없이 죽어. 외공. 강기 전부 소용없어.”
“정말이에요? 그럼 이 천근으로 된 무기가 실존하나요?”
실존? 물론 이 천근으로 만든 무기는 존재한다. 그 소유자들을 전부 알 순 없지만 제갈 사혁이 아는 한 단 한사람.
“소림사의 비룡승천봉.”
바로 봉명공이 가지고 다니던 비룡승천봉이었다. 실제로 이 비룡승천봉이 유명한 것은 소림의 기보기 때문이다. 하지만......
“비룡승천봉이 천근으로 만들어졌다면 소문이 나지 않았을 리 없어요.”
비룡승천봉이 천근으로 만들어졌다는 사실은 제갈 사혁도 직접 겪어봤기 때문에 알았을 뿐 대외적으로 비룡승천봉이 천근으로 만들어졌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실제로 혜성과 다툼이 있었을 때 그걸 주먹으로 후려쳐 본적이 있지.)
그때 분명 도검불침인 제갈 사혁의 주먹이 피범벅이가 되었다. 그리고 이 비룡승천봉을 만들기 위해서 전설적인 낭인 칠망검이 움직였다는 이야기에서 어느 정도 감을 잡은 상태였다.
“제갈 사혁은 그걸 어떻게 알고 있죠?”
“봉명공은........ 내 친구다.”
“그는 사파잖아요. 당신은 분명 그런 쪽에는 광적으로.”
아무리 그래도 광적으로라니 표현이 참.
“사람의 정만큼 질긴 것도 없으니까.”
지곤이 준 지도에 나온 대로 마을에 도착하자마자 제갈 사혁은 준비해둔 옷을 갈아입었다. 그리고 준비가 끝나자마자 서로의 역할을 확실히 해두었다.
“자~ 우리는 낭인이다. 미려는 내 연인인 걸로 해두.....”
“싫어요.”
“좋아 그러면 남매인 걸로......”
“싫어요. 그냥 친구로 해요.”
이번에도 싫어요. 소리가 나오자 제갈 사혁은 인상을 구기며 입술을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야 미려. 지나가던 낭인인 척 하는 건데 말이야. 낭인들은 안 몰려다녀.”
“예외라는 게 있을 거 아니에요. 왜 항상 반드시 그럴 거라는 확신을 하죠?”
시키면 시키는 대로 안하는 사람이 제갈 사혁은 제일 싫었지만 그렇다고 여기까지 와서 남궁 미려는 떼어놓고 갈 수는 없었다.
“좋아 그러면 이신과 나는 형제로 해두고 너는 그냥 친구! 이신 불만 없지!”
시작부터 남궁 미려가 성질을 건드리자 제갈 사혁은 욕만 안했지 평소의 성질을 어김없이 드러냈고 이를 본 이신은 그동안 그런 사부의 제자로 지냈던 세월 갈고닦은 노하우를 총동원해 그의 비위를 맞춰주었다.
“전 좋아요. 형제라고 하니까 무언가 따뜻한 느낌이에요. 역시 사부!”
이신이 이렇게까지 말하자 제갈 사혁은 기분이 조금 나아졌는지 어감이 부드러워졌다.
“그럼 미려 아가씨를 제가 어떻게 불러야 하죠?”
“그냥 미려씨라고 불러. 형제도 아닌데 뭔 놈의 누나 소리 하게 생겼냐.”
“미려 씨.”
“여동생으로 부탁드립니다. 오라버니.”
이신의 무미건조한 미려 씨 호칭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남궁 미려는 재빨리 가족 설정을 찬성하기에 이르렀다.
“이름은 헷갈리니까. 너는 신 너는 려 나는 혁.”
모든 준비가 끝나자 제갈 사혁은 기합을 넣고 마을로 입성했고 기세등등한 그의 뒷모습을 보며 이신은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저었다.
(사부는 이런 설정 되게 좋아한단 말이야.)
특히 자기보다 낫은 신분 그러니까 남들한테 무시당할 만한 직종 혹은 사람으로 위장하는 걸 상당히 좋아했다. 분명 그 노림수도 알고 뭣 때문에 그렇게까지 하는지도 알지만 지금은 그냥 모른 척 해주기로 했다.
제갈 사혁이 마을에 들어서자 작은 마을이라서인지 마을의 분위기를 쉽게 감지할 수 있었다.
(인부들인가? 역시 천근이 발견됐나보군.)
보통 마을과 달리 등에 삽이며 곡괭이를 짊어진 우락부락한 사내들이 많이 돌아다녔는데 이를 본 제갈 사혁은 금세 이 마을이 지곤의 말대로 천근이 발견 된 장소라는 걸 확신했다.
객잔은 분위기로 봐서 그들의 숙소가 되어 있었기 때문에 민박을 하는 방을 하나 얻었다.
민박하는 집 마루에 앉아 마을 분위기를 살핀 제갈 사혁은 고개를 저었다.
“딱 보기에도 천근 캐러 온 놈들이네.”
“지곤은 이 정보를 어떻게 손에 넣었죠?”
“사문의 힘을 이용하면 이런 정보를 손에 넣는 게 뭐가 어렵겠냐? 그것보다 슬슬 움직여야지 우리가 뭣 때문에 이런 설정놀음을 하는 건데.”
말은 꼭 일이 지겹다는 듯이 하고 있지만 재미있는 놀이를 하기 전 어린아이 같은 표정은 숨길 수 없었다. 한편 마을 입구에서부터 이 세 사람을 주시하고 있던 남자는 제갈 사혁 일행이 움직임과 동시에 어디론가 급히 향했다. 그리고 마을 객잔 꼭대기 층에 올라가 글을 적더니 전서구를 띄웠다.
-낭인 셋 발견 그 중 하나 남궁 미려로 추정 나머지 둘 추정불가.
세간에서는 남궁 미려를 이렇게 부른다. 중화제일미(中原第一美).
미녀가 가는 길에는 항상 세상의 시선이 집중되기 마련이다.
제갈 사혁은 낭인행세를 하며 마을을 돌아 다녔고 여기저기를 기웃거렸다. 이 마을은 마을 토박이들과 외지에서 온 인부들로 나뉘었는데 제갈 사혁은 마을 토박이들을 집중 공략했다.
“여기 이 자리에 놓으면....”
마을 어르신이 두는 장기에 훈수를 두다가.
“예끼 이놈아!”
곰방대로 머리를 맞는가 하면
“우리 남편은 집에서 통 움직이질 않아.”
“아줌마 그거야 바깥양반이 바깥일 하다보면 집에서 쉬고 싶은 게 당연하잖아요.”
“모르는 소리. 집안 일이 얼마나 힘든데! 남편은 해떨어지면 일 끝이지만 여자는 눈 뜨면 눈 감는 순간까지 일이 끝나지 않는다. 이 말이야!”
“총각! 쉰소리 하지 말고 어여 가!”
동네 아낙들이 남편 흉보는데 끼어서 분위기를 망쳤다.
자기 나름대로 사람들과 섞여보려고 하는 거지만 이신과 남궁 미려가 보기에는 무리수도 그런 무리수가 없었다.
“늘 이런 식이야?”
“말하지 마요. 자기 딴엔 최선의 방법이라 생각하고 있을 테니까.”
그냥 동네 분위기가 궁금하면 물어보면 될 일이다. 외지인이라고 인색하게 굴면 상이라도 한상 차려주면 될 일이다. 그럴 모를 사람도 아닐 텐데 매번 매 순간 되도 않는 일에 새로움을 추구하려 한다.
이렇게 해서 얻어낸 정보는
“한 달 전부터.......”
“한 달 전부터 인부들이 찾아와 땅을 파기 시작했다고요.”
“어떻게 알았냐?”
“민박집 아주머니가 가르쳐주시던데요.”
제갈 사혁은 하루 종일 마을 사람들과 친해져서 얻은 정보인데 이신이 쉽게 알아버리자 김이 새버렸다.
“그리고 아주머니가 말씀해주신 게 또 있어요. 종리 아범 이야기.”
제갈 사혁은 이신이 자기보다 더 많은 정보를 알고 있다는 사실에 감탄한 한편 이를 갈았다. 자기는 그렇게 어렵게 고생해서 얻은 정보를 방구석에서 탱자탱자 놀면서 얻다니.
“천근이 발견 된 건 이 마을 뒷산이에요. 그리고 그걸 발견한 사람은 종리 아범이라는 사람인데 지금은 그게 발견 된 뒤로 집에 들어오지 않고 있어요.”
종리 아범 이야기를 듣던 제갈 사혁은 어떤 촉을 감지했다.
“집에 안 들어온다고 거기가 마을 뒷산이라며?”
이신의 무표정한 얼굴을 본 제갈 사혁은 종리 아범이라는 사람이 납치됐다는 걸 알 수 있었다.
“한 가지 또 있어요.”
이번엔 남궁 미려가 끼어들었다.
“마을 사람들은 뒷산에서 발견 된 게 단순한 석탄인 줄로만 안다는 거죠.”
원래 그 정도야 당연한 일이었다. 일반인이 천근에 대해서 알지도 못할뿐더러 천근이 발견됐다는 소식이 들리면 전 무림이 떠들썩해지기 때문이다.
“그건 당연한 거 아냐.”
“그럼 지곤은 이게 천근이라고 어떻게 확신하고 있죠?”
청성파의 힘을 이용해 이번 정보를 손에 넣었다고 단정 지었을 뿐 그 과정에 대해선 생각도 하지 않고 있었다. 그런데 남궁 미려의 말을 듣는 순간 종리 아범 이야기에서 느낀 촉과 비슷한 느낌을 받았다.
“종리 아범이라는 사람이 그러니까......”
제갈 사혁은 알 수 없는 손동작을 보였고 남궁 미려는 고개를 끄덕거렸다.
“청성파와 관계된 사람이구나.”
관계된 사람. 즉 정보원이나 어떤 끈이 닿아 있는 사람을 말한다. 나쁘게 말하면 하수인인데.
“그 사람을 구해야 해요.”
“그리고 천근의 매장양도 알아봐야지.”
“그리고 땅을 파고 있는 사람들의 정체도 알아봐야 하고요. 사부.”
세 사람은 일의 순서를 확실히 했다. 일단 천근도 중요하지만 그 종리 아범이라는 사람을 구해서 자초지정을 들을 필요가 있었다. 그리고 그 종리 아범을 감금한 놈들의 정체도 알아야 했다.
천근을 노리고자 하는 놈들이라면 분명 보통 놈들이 아니기 때문이다. 천근을 얻는 순간 그것을 지키는 것 또한 힘이 있어야 가능한 일이었다.
“흑사련이네 흑사련.”
“왜 그렇게 확신하죠?”
“마교놈들 아니면 흑사련인데 흑사련이나 마교나 어차피 우리한테는 거기서 거기잖아.”
제갈 사혁의 논리는 참 단순했다.
“마교나 흑사련이나 어차피 거기서 거기.”
왜 일까? 그리 심각한 이야기는 아닌데 갑자기 등에서 식은땀이 흐르는 건 도대체 왜 일까?
============================ 작품 후기 ============================
3시간 전에 요리왕 비룡을 보는데 말입니다.
아참! 요리왕 비룡 기억하시죠? 암흑요리사들과 비룡 일행의 대결.
암흑요리사들은 암흑요리를 이용해 중국을 장악하려 하지 않습니까. 근데 걔네들이나 비룡이나 요리를 만들 때 엄청난 내공을 발휘한다 이말입니다. 특히 비룡과 함께 다니는 두 형님들은 요리사라기 보다 무림인에 가깝던데 그리고 그건 암흑 요리사들도 마찬가지고
그래서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C8 그냥 요리대결하지 말고 칼들고 싸워 이 자식들아!"
암흑요리사들보면 맨손으로 바위도 부술 것 같은데 요리로 대결하다니 애들 참 순진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