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0 회: 인생무상(人生無常). -->
제갈 사혁과 이신 그리고 남궁 미려는 일의 우선순위가 서로 달랐지만 근본적으로는 이신이 주장한 대로 종리 아범을 구하기로 했다.
뒷산으로 모인 두 사람은 곧바로 경공을 펼쳐 산을 둘러본 후 적들의 채굴장을 찾았다. 채굴장은 보통의 탄광과 다를 바 없었으며 수많은 인부들이 돌을 나르고 있었다.
사실 종리 아범이라는 사람을 구하는데 동의한다는 식으로 이야기는 했지만 제갈 사혁은 종리 아범 구출에 대해서 회의적이었다. 만약 종리 아범에 대한 것만 아니었어도 당장 탄광에 쳐들어가 인부들을 쫓아내고 탄광을 무력점거한 후 배후 세력이 등장할 때까지 버텨보려 했기 때문이다.
(이게 아닌데.)
물론 배후 세력이 등장할 때까지 버틴다는 계획 자체가 그다지 실용성 아니 그런 걸 떠나 한심할 정도로 아주 무모하기 짝이 없지만 제갈 사혁은 그 누가와도 자신이 있었다. 늘 자신감에 차있는 제갈 사혁이지만 최근 한 단계 발전한 후로는 자신감을 넘어 자만에 이르고 있었다.
“사부 잠깐 저기 좀 봐요.”
주위를 살피던 이신이 채굴장과 떨어진 곳에서 무언가를 발견하자 두 사람의 시선이 이신이 말한 곳으로 향했다.
“뭐야 저거?”
이신이 가리킨 곳에서는 어떤 소년과 한 남자가 실랑이를 벌이고 있었다.
“뭐죠?”
“나도 몰라. 그런데 진짜 뭐야 저 꼬마 놈은.”
한참 남자와 살랑이를 벌이던 소년은 급기야 남자의 팔을 물었고 남자는 소년을 구타하기 시작했다.
“저런!”
“기다려.”
남궁 미려가 참지 못하고 뛰쳐나가려 하자 제갈 사혁은 그녀의 어깨를 강하게 압박하며 뛰쳐나가지 못하게 했다. 제갈 사혁은 일의 우선순위가 확실했고 무엇보다 결과를 중요시한다. 일의 성공을 위해서 돌발 상황에 대처할지언정 특정 상황에 나서지 않는다. 그게 과거 화산의협 시절에도 그가 임무에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였다.
“저대로 보고만 있자는 거예요? 저러다 죽으면요.”
제갈 사혁의 실제 성격이나 가치관과 처음 부딪히는 남궁 미려는 도저히 이해 할 수 없다는 표정이었고 제갈 사혁은 남궁 미려의 흥분을 가라앉히기 위해 담담하고 평소와는 달리 어눌한 말투까지 써가며 남궁 미려를 달랬다.
“진정해. 칼에 맞은 게 아니야. 그리고 왜 죽어? 우리가 발견했잖아. 주위에 다른 사람이 없는 거만 확인하면 곧바로 이신을 시켜서 데리고 갈 거야.”
많이 흥분한 남궁 미려를 진정시킨 뒤 주위를 둘러봐 아무도 없다는 걸 확인한 후 비로서 제갈 사혁은 이신을 시켜 소년을 데려오도록 시켰다.
“나도 같이 가.”
소년을 데려 올 때 남궁 미려도 함께 뛰쳐나갔다.
일단 소년의 치료를 위해 제갈 사혁은 마을로 돌아갔고 이 모습을 산 정상에서 어떤 이들이 내려 보고 있었다.
“남궁 미려가 확실하군. 얼굴은 안보이지만 저 경공은 필시 남궁 세가의 것이다.”
노인은 긴 수염을 만지며 눈썹을 파르르 떨었다.
“주군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옆에서 그의 수하가 차후 이번 일에 대한 뒤처리를 묻자 주군 되는 자는 고민에 빠졌다.
“남궁 미려는 천근에 대해서 알고 있나?”
“그것이 아니라면 이 시골 마을에 올 리 없다고 사료되옵니다.”
그 대상이 남궁 미려만 아니었다면 그가 직접 이곳에 올 리 없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남궁 미려 정도의 위치를 지닌 이를 당장 어떻게 해볼 수도 없었다. 누가 무어라 해도 남궁세가의 금지옥엽(金枝玉葉).
그녀를 해한다는 것은 곧 남궁세가와 멸문의 화를 다투는 일.
“그 아이는 누구냐? 남궁 미려가......”
“키가 커서 성인이라 착각했지만 얼굴이 어려 보였는데 속하가 보기에 남궁 미려를 호위하기 위해 창룡대에서 특별히 뽑은 자 같습니다.”
“아니 내가 말하는 아이는 그 아이가 아니다.”
“그렇다면?”
“남궁 미려가 데려간 아이 말이다.”
“즉시 조사해서 보고 올리겠습니다.”
수하가 사라지자 그의 주군 되는 자의 몸에서 내공이 흘러나와 주위에 있는 나무며 꽃이며 할 것 없이 모든 식물을 시들게 만들었다.
“천근이다. 이걸 얻기 위해서라면 남궁세가라 해도 벨 것이다.”
남궁세가를 적으로 돌릴 만큼 천근은 그만큼 엄청난 가치를 지닌 물건이었다.
한편 소년을 민박하는 집으로 데려온 제갈 사혁 일행은 아이의 몸 상태를 살폈다. 무공을 모르는 자의 손에 의해 구타를 당했지만 그래도 어린 소년이 성인에게 맞았기 때문에 내장출혈이 있을 수 있었다.
“의원에게 데려가 봐야 하는 거 아니야?”
“내공으로 치료하는 건 안돼요?”
그 방법은 내상을 입었을 때 사용하는 거지 지금처럼 통증을 완화하기 위해 사용하지는 않는다.
“아 맞다! 미려 아가씨 침 가지고 다니시잖아요.”
지난번에 남궁 미려가 침을 지참하고 다니는 것을 본 이신은 남궁 미려의 침술에 기대를 걸었지만 남궁 미려는 고개를 저었다.
“그건 안 돼.”
“왜요?”
“그건 치료 목적으로 가지고 다니는 물건이 아니야. 단전에 내공을 흐려 보내 단전을 사용하지 못하게만 할 뿐.”
어디까지나 치료 용도는 아닌 셈이었다.
“침통 내놔봐.”
제갈 사혁이 침통을 내놓으라고 하자 남궁 미려는 잠시 그의 눈치를 보며 침통을 꺼냈다.
“소독은?”
“사용할 때마다 하고는 있지만......”
치료 목적이 아니기 때문에 사용하고 청결차원에서 소독을 한번 하면 그대로 방치하는 경향이 있었다.
행여 녹슬지 않았는지 침을 자세히 살펴본 후 이신을 시켜 소독 준비에 들어갔다.
“뜨거운 물 아니 팔팔 끓는 물 받아오고 돈 있냐?”
“돈주머니 안 가져왔어요.”
“돈 줄 테니까. 술 제일 독한 걸로 사와. 곡주 안 된다. 투명한 걸로 사와. 그래 노곡특주(瀘州特曲)있으면 그걸로 사와. 아! 그리고 무명천도 사와 제일 깨끗한 놈으로.”
이신이 혼자 준비를 다 하자 마냥 가만히 있기 뭐했던 남궁 미려는 뭐라도 도울 생각으로 제갈 사혁에게 이것저것 물었다.
“나 손수건 있는데.”
“깨끗한 게 아니면 안 돼.”
“깨끗해.”
“됐으니까. 그냥 있어.”
남궁 미려는 묘한 기분을 느꼈다. 지금 이 상황은 꼭 어렸을 때와 같았기 때문이다.
(나이 차이도 한 살밖에 안 나는데 뭐야 이거 꼭 아버지하고 있는 것 같잖아.)
어른들이 무언가를 하고 있으면 자기 딴엔 뭐 하나라도 돕고 싶어서 이것저것 하는데 그럴 때마다 어른들이 괜찮으니 가만히 있으라고 했던 기억을 떠올랐다.
곧 이신이 술과 무명천을 사오고 민박 집 아주머니를 통해 끓는 물을 구했다. 그런데.....
“이게 뭐여? 종리 아니야?”
“아주머니. 아는 아이십니까?”
‘종리’라는 이름을 듣는 순간 이 아이가 누구인지 감이 왔지만 타인의 입을 통해 확실하게 하고 싶었다.
“행방불명 된 종리 아버지 아들이구만! 이 아이가 왜?”
시골 아낙이라지만 일이 복잡해질 수 있는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굳이 진실을 이야기 하지 않아도 됐다.
“산에서 굴러 떨어진 걸 저희가 구했습니다.”
침술 도구를 본 민박 집 아주머니는 제갈 사혁이 침술을 할 줄 안다고 판단해서 종리의 치료를 맡겼다.
“그럼 총각 부탁 좀 할게. 촌마을이라서 의원이 있는 곳으로 가려면 하루가 걸려.”
“걱정 마십시오.”
“필요한 거 있으면 불러 언능 구해다 줄 테니께.”
팔팔 끓는 물에 침을 소독한 제갈 사혁은 무명천을 술로 적시고 소독한 침을 천으로 닦아냈다.
“침술도 할 줄 알아?”
“사매한테 배웠어.”
비록 전공분야가 아니라서 능숙하진 않지만 그래도 척척 침을 놓기 시작했다.
“아이씨~ 호침(毫鍼) 잘 못 꽂았다.”
“사부!”
침을 잘못 놨다는 말에 이신이 크게 당황했고 제갈 사혁은 괜찮다며 손사래 쳤다.
“괜찮아. 괜찮아. 안 죽어.”
“아니....... 그게 아니잖아요.”
침을 잘못 놓은 제갈 사혁은 얼굴색 하나 바꾸지 않고 다시 침을 놨고 옆에서 이를 지켜보던 이신과 남궁 미려는 치료를 받고 있는 소년이 걱정되었지만 어찌할 방도가 없었다. 지금은 그저 제갈 사혁을 믿는 수밖에.
“후~ 끝났다.”
별일 아닌 듯 잡아뗐지만 솔직히 침을 잘못 놨을 때는 제갈 사혁도 등골이 오싹해졌다. 이래서 사람 살리는 일은 체질에 안 맞았다.
땀으로 흠뻑 젓은 이신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목욕 물 좀 받아 놔라.”
이신이 목욕물을 받아 놓을 동안 제갈 사혁은 남궁 미려가 있다는 것도 잊어버리고 윗옷을 벗었다.
“...........”
뒤늦게 남궁 미려의 존재를 눈치 채고 서둘러 상체를 가렸지만 남궁 미려는 마치 처음 청하에게 상체를 드러냈을 때와 같은 반응을 보였다.
“신경 쓰지 마. 어려서부터 웃통 벗고 칼 휘두르는 남자들을 많이 봤으니까.”
남궁 미려가 괜찮다고 하자 제갈 사혁도 별로 신경 쓰지 않았다.
“남자의 몸은 역시 강하구나. 남자의 몸은 꼭 태어날 때부터 강해지기 위해 만들어진 몸 같아.”
어느새 남궁 미려는 예전처럼 제갈 사혁에게 말을 편하게 놓고 있었다.
“난 여자라서 늘 남자들의 강함이 부러웠거든.”
중원 무림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자라는 수식어가 싫은 건 아니지만 무림인인 이상 아름다움보다 강함을 우선시하고 싶었다.
“그때 신이는 정말 강했어.”
그때라면 그 난리가 났던 그때를 말하는 거였다. 이신이 처음 살인을 하고 그것을 마치 별일 아닌 것처럼 말해서 제갈 사혁을 당황하게 했던.
“솔직히 그때의 이신과 싸우면 질 거 같다는 생각도 가끔씩 해. 고작 몇 개월 사이에 이신은 그렇게 변해버렸어. 그럼 그 아이를 그렇게 만든 넌 얼마만큼 강하지?”
남궁 미려에 대한 편견이 있었던 건 사실이다. 하지만 이제 보니 남궁 미려도 청하와 같은 족속이었다. 그리고 그런 점이 정말 마음에 들었다.
“사부 물 받았어요.”
벽 너머로 이신의 목소리가 들리자 제갈 사혁은 긴 머리카락을 팔에 차고 있던 끈으로 묶으며 말했다.
“언제나 네가 상상하는 것 그 이상이겠지.”
============================ 작품 후기 ============================
요리왕 비룡을 필두로 옛날에 본 만화영화를 보고 있습니다.
무책임 함장 테일러라는(국내명 캡틴 테일러) 애니를 보고 있습니다.
물론 더빙판으로요.
어렸을 때는 게으른 주인공에 운빨만 넘치는 그냥 그저 그런 애니였는데 커서보니까 아니네요.
그리고 무엇보다 이 애니에는 아젤린이라는 여성황제가 나옵니다.
더빙판에서는 골 16세인데 일본판을 찾아보니 그 명칭이 '고자 16세'
여자인데 고자라니!
아이스크림이라는 이름의 먀약을 끊지 못하겠습니다.
특혜 더 아이스크림을 샀는데 멍때리고 있는 사이에 한통을 혼자 다 먹고 있더라구요.
술도 안하고 담배도 안피우는데 그 이상으로 아이스크림에 중독되다니.....
여러분은 무언가에 중독된 적 있으신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