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화산의협-121화 (121/262)

<-- 121 회: 인생무상(人生無常). -->

제갈 사혁이 씻으러 들어가자 이신은 제갈 사혁의 없는 틈을 이용해 무명천으로 호황을 닦았기 시작했다. 호황은 이름난 장인이 만든 명검답게 제갈 사혁이 아무리 난폭하게 휘두르며 막 다뤄도 날이 상하고 녹이 슬지 않았지만 칼집에서 검을 뽑자마자 특유의 피비린내가 미세하게 코끝을 자극했다. 원래 제갈 사혁 본인도 검사라기보다는 권사에 가까워 병장기를 제대로 관리하는 지식이 부족해 늘 호황의 손질은 이신의 몫이었다. 만약 제갈 사혁이 사형으로부터 호황을 물려받지 못했다면 아마 지금쯤 쓰고 버린 칼만 수두룩했을 것이다.

“미려 아가씨.”

기껏 낭인이니 가족이니 설정을 잡아 놨지만 이신은 처음부터 그럴 생각이 없었는지 설정놀음은 깔끔히 무시하고 있었다.

“응. 왜?”

“칼 손질해 드릴까요?”

“아니야 됐어. 내가 할게.”

그러면서 은근슬쩍 이신의 옆에 앉아 자신의 검을 닦기 시작했다. 묵묵히 검을 손질하던 중 남궁 미려가 천에 물을 묻혀 검을 닦아내려 하자 이신이 그녀의 손목을 낚아챘다.

“안돼요.”

“응?”

“검을 오래 쓰려면 물 없이 마른 천으로 닦아줘야 해요.”

“미안 나 사실 내꺼 손질해본 적 없어.”

“자 보세요. 이렇게 마른 천으로 살살 닦아주면 되요. 마지막에는 술로 소독만 해주는 거예요. 오래 쓰려면 물은 쓰지 마세요.”

살살 웃는 이신의 얼굴을 보면서 남궁 미려는 무언가 말은 하고 싶은데 쉽게 이야기를 꺼내지 못했다.

“보세요. 깨끗해졌죠?”

“저.....”

“으음......”

남궁 미려가 이신과 대화를 시작 하려 할 때 종리라는 아이가 의식을 찾았고 이신은 서둘러 준비해둔 녹차를 아이에게 마시게 했다.

“이거 마시고 천천히 일어나.”

아이가 깨어나자 이신은 부엌 겸 욕실 문을 두들겼다.

“사부. 일어났어요.”

아이가 일어났다는 말에 제갈 사혁은 아랫도리만 입은 채 머리를 말리며 나왔고 그 모습을 본 이신은 인상을 구겼다.

“사부! 우리끼리만 있는 것도 아닌데 옷 좀 잘 입고 나오세요.”

이신이 남궁 미려를 의식하고 말하자 제갈 사혁은 머리를 닦던 수건을 이신에 목에 걸고 이마에 딱밤을 놔줬다.

“그래 꼬마야. 네가 종리라고?”

“누구세요?”

아이는 낯선 사람이 자신의 이름을 말하자 경계하는 기색이 역역했다.

“아버지 뭐하시냐?”

아이에게 사정설명을 하는 게 우선이겠지만 급한 쪽은 이쪽이라서 제갈 사혁은 다짜고짜 아이가 아버지에 대해 알고 있는지부터 캐물었다.

“우리 아부진 향신료 장사하시는데요.”

제갈 사혁이 생각하는 종리의 아버지는 천근을 가장 먼저 발견한 사람 그리고 지곤의 연락망이었다. 그런데 향신료 장사를 하는 상인이라니 어째 생각하는 것과 달라서 당혹스러웠다.

“아버지가 무슨 무공을 사용하거나 하진 않지?”

혹시 무공을 사용할 줄 안다면 어떻게 엮어볼 수 있었지만.

“아버지는 그런 거 못하세요. 아버진 그냥 청성파에 기부하신 적이 몇 번 있을 뿐이에요.”

보통 상인이 문파에 기부를 하는 이유는 자신의 아이를 속가제자로 넣을 때다.

(그럼 어디보자 천근을 발견한 게 이 아이 아버지고 천근을 발견하자마자 연이 닿아 있던 청성파에 연락했다?)

하지만 미심쩍은 게 많았다. 단지 청성파에 기부를 하던 상인이 천근을 발견해 청성파에 연락을 했다니 이것부터가 말이 되지 않는다. 일반적으로 천근이란 건 일반인이 구별해내기 어려운 물건이기 때문이다. 또 천근이 발견되는 경위는 우연히 길가다 돌멩이 발견하는 식이 아니다. 일부러 천근을 찾아내려고 이 산 저 산을 깎아내지 않는 이상 하늘에서 내려와 땅속에 묻힌 천근을 찾아내기란 여간해서 쉬운 일이 아니다. 즉 천근은 절대 혼자 발견할 수 없는 물건이다.

“아버지가 혹시 다른 사람을 만난 적은 없냐? 최근이 아니더라도 옛날에 만난 사람이라던가.”

“삼촌이....... 그러니까. 아버지 친구 분이 커다란 상단을 운영하세요. 그래서 주기적으로 찾아뵙기는 하는데.”

삼촌이라 부르는 아버지의 친구? 친구가 상단을 운영할 정도면 그 연줄을 이용해서 장사를 하는 게 나았다. 그런데 굳이 혼자 다니면 향신료를 팔다니 개인 사정이야 알 도리가 없지만 일반적으로 말이 되지 않았다.

“넌 왜 그 채굴장에 갔던 거냐?”

이 아이 아버지의 주변 인물들을 캐는 건 더 이상 나올 게 없었고 이제 아이가 왜 그 채굴장에 갔는지를 알아야 했다.

“난 봤어요! 채굴장 놈들이 아버지를 끌고 가는 걸.”

아버지가 납치됐고 아버지를 납치한 놈들이 채굴장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적어도 종리 아범이라는 자가 채굴장에 있을 확률이 높았다.

죽이려면 그 자리에서 죽였을 것이다. 번거롭게 납치를 할 게 아니라.

“다른 곳은.....”

남궁 미려가 종리 아범이 채굴장에 없을 수도 있다는 식의 이야기를 꺼내려 하자 제갈 사혁이 먼저 남궁 미려의 입을 막았다.

[쓸 때 없는 소리 하지 마.]

순간 남궁 미려는 자신이 하려는 말이 아이의 희망을 꺾을 수도 있다고 판단했다.

“이신 준비해라. 오늘 친다.”

준비하라는 말에 이신은 제갈 사혁을 대신해 호황을 허리에 찼다.

“저도 같이 가요!”

종리가 제갈 사혁의 바짓가랑이를 붙잡았지만 제갈 사혁은 이제부터 피비린내가 진동할지 모르는 곳으로 아이를 데려갈 수 없었다.

“꼬마는 집이나 봐. 여긴 형 누나들이 알아서 할 테니까. 그리고 아버지 오면 형 누나가 도와줬다고 잘 말하고 알았냐? 꼬마야.”

“꼬마 아니야! 열다섯 살이면 나도 어엿한 사내라고요!”

열다섯 살이라는 말에 제갈 사혁은 이신을 한번 쳐다봤다. 근육의 발달과 맞물리는 내공주입으로 성장이 빨라 열일곱 여덟 정도로 보이는 이신과 달리 종리는 많이 쳐봐야 열 네 살 정도로 밖에 보이지 않았다.

(이래서 애들은 잘 먹여야 해.)

“아무튼 안 돼!”

종리를 뿌리치고 밖으로 나온 제갈 사혁은 나옴과 동시에 남궁 미려에게 눈치를 줘 순식간에 경공을 펼쳐 종리가 따라오지 못하도록 했다.

“나도 데려가~”

메아리처럼 울리는 소리를 들으며 순식간에 마을 뒷산 채굴장으로 달려온 제갈 사혁은 손목을 돌리며 몸을 풀었다.

“인부들은 어떻게 해?”

“뭘 그런 걸 물어보고 그래 일 한두 번 해본 것도 아니면서.”

“돈 받고 고용된 평범한 사람들일 수 있잖아.”

“천근을 캐내려는 채굴장에 인부들이 보통 사람일 리 없잖아.”

그 말이 나오기가 무섭게 동굴 안에 있던 인부들은 칼을 빼들고 나왔다. 그 모습은 마치 제갈 사혁 일행을 기다리고 있었다는 가정 하에 보일 수 있는 행동들이었다.

“봐라. 다들 우리가 좋다고 마중 나온 거.”

인부들이 개떼처럼 달려들자 제갈 사혁 주먹으로 가장 가까이에 있는 자의 광대뼈를 박살냈다.

“난 언제나 이 시간이 제일 즐겁단 말이야!”

사선으로 검이 날아오자 바로 자신의 옆에 있는 인부의 팔을 잡아당겨 대신 베이도록 했다. 그리고 그 모습을 본 남궁 미려는 그가 얼마나 이런 싸움에 능숙한지를 금세 알 수 있었다.

“죽어 이 잡놈의 새끼야!”

사방에서 제갈 사혁에게 칼을 휘두르자 별다른 대응 없이 수 십 자루의 칼에 찔리도록 내버려 뒀다.

“내공 사용할 줄 아는 놈이 없고만.”

평범한 칼부림으로는 제갈 사혁의 옷을 넝마로 만들 수 있을지언정 도검불침의 육신을 벨 수는 없다.

상대가 내공운영을 모르는 무뢰배들이란 사실을 깨달은 제갈 사혁은 더더욱 기세가 올라 싸우는 방식 또한 달라졌다. 칼을 휘두르면 마음대로 베라는 듯이 피하지도 않고 일격에 처리하기보다는 상대의 목이나 팔을 비틀며 적들을 유린했다. 그리고 그 행동 하나하나가 상대로 하여금 내가 너희를 괴롭히고 있다는 느낌을 주었다.

“난 더 이상 싸우지 않겠어.”

“나도....”

그 감정은 전염병처럼 그들에게 전염되어 전의를 상실하게 만들었다. 칼로 베이지도 죽지도 않는 상대와 싸우는 건 자살행위였기 때문이다.

“이신!”

제갈 사혁이 이신을 부르자 쏜살같이 도망치는 이들의 앞을 가로막은 이신은 허리에 차고 있던 호황을 뽑아들어 가장 앞에 있는 적의 목을 벴다. 그리고 이신의 그런 모습을 처음 본 제갈 사혁은 살짝 위화감을 느꼈지만 곧 담담해졌다.

자신에게 적의를 드러낸 사람을 살려 보낼 정도로 인정 넘치는 멍청이는 아니다. 하물며 천근과 관련해서 조금이라도 무언가를 알고 있을 가능성이 있는 인부들을 살려두면 또 다른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 죽이고자 한다면 필살(必殺).

“사... 살려줘 우린.....”

살려달라는 말에 이신은 벌벌 떨고 있는 인부들 사이로 호황을 던졌고 그 순간 등 뒤에서 악귀가 튀어나와 붉은 피를 뿌렸다.

“그런 소리하지 마. 마음이 약해지잖아.”

마음이 약해져서 고통을 느끼지 못한 채 죽도록.....

“배려를 해줘버리잖아.”

============================ 작품 후기 ============================

스토리를 떠나 글이 정말 형편 없이 써질 때가 있습니다.

이게 한번은 아닐 겁니다. 스토리가 생각 안나면 그냥 영화를 보던 만화를 보던 소설을 읽던 머리를 자극해 활력을 넣으면 되는데 이럴 떄는 정말 괴롭습니다.

이걸 어떻게 설명할수 없는데 저도 이런 이상한 일을 겪는 게 살짝 괴롭습니다.

아침에 들어와보니 한 독자분이 쪽지를 보내셨습니다.

화산의협은 19세가 아니냐고.....

네. 눈치 채셨군요. 사실 19금입니다.

내용이 야해서가 아니라 제갈 사혁은 행동 그리고 머리에 든 생각이 잔인하죠. 하지만 무협은 이 정도는 해야한다고 생각해서 19금 체크를 안했습니다.

만약 이게 판타지였다면 전 19금 체크를 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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