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2 회: 인생무상(人生無常). -->
쥐새끼 한 마리 남겨놓지 않고 모두 그 자리에서 목숨을 끊어버린 후 제갈 사혁은 채굴장 안으로 들어갔다. 여느 채굴장과 달리 나무로 지지대를 만들지 않고 철로 만든 점으로 봤을 때 이 채굴장을 뚫는데도 상당한 자금이 들어갔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채굴장은 탄광이 아니기 때문에 여러 갈래로 나뉘지 않은 채 딱 하나의 길만으로 이뤄졌다.
(종리 꼬마의 아버지란 사람은 어디에 있는 거지? 아니야 지금은 천근이 우선이다.)
제갈 사혁은 이신에게 신호를 주었고 이신은 호황의 칼집을 제갈 사혁에게 건넸다. 검을 집어넣자 남궁 미려도 제갈 사혁을 따라 검을 넣었다.
채굴장의 길이는 상당히 길었고 안으로 들어가면 갈수록 더워졌다.
“왜 이렇게 더운 거야!”
남궁 미려는 짜증을 냈고 제갈 사혁은 윗옷을 벗어서 아예 바닥에 버려버렸다.
“사부 옷을 버리면 어떻게 해요.”
“어차피 길 여기 하나야. 너도 그냥 벗어버려.”
“싫어요. 미려 아가씨도 있는데 실례잖아요.”
“난 괜찮아!”
갑자기 소리를 지르자 제갈 사혁은 인상을 구기며 남궁 미려를 위 아래로 훑어 봤다. 그리고 이신을 한번 보더니 전에 보기 힘들 정도로 간사한 미소를 지었다.
“아니다. 이신. 역시 내가 잘못 생각했어. 그렇지 여성분이 있는데 실례지.”
그러면서 제갈 사혁은 옷을 탈탈 털더니 다시 입었다. 채굴장 안으로 점점 들어가면 갈수록 상식을 초월한 더위 아니 열기가 도저히 참을 수 없을 정도였다.
“땅속에 묻힌 천근이 이렇게 뜨거울 리 없는데.”
그런데 그때였다. 갑자기 앞쪽에서 화염이 덮쳐 온 것은!
“쳇!”
너무 급한 마음에 엉성한 기막을 펼쳐 겨우 막아낸 제갈 사혁은 좁은 공간의 불리함을 깨닫고 이신과 남궁 미려 두 사람의 허리를 붙잡고 뒤도 안돌아보고 도망쳤다.
“뭔데 왜 그러는데?”
“안에 뭔가 있어!”
경공으로 순식간에 채굴장 안에서 빠져나온 세 사람은 채굴장 밖에서 어떤 노인과 마주하게 됐다.
“이거 남궁세가의 남궁 미려께서 이 촌 마을까지 찾아오시다니 어인 일이십니까?”
“당신은 누구죠?”
(천수검파(天水劍派) 문주 왕력(王力).)
남궁 미려와 달리 제갈 사혁은 단번에 그자가 누군지 알 수 있었다. 천수검파는 정사대전에서 가장 큰 피해를 입었던 문파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가장 큰 피해는 바로 천수검파 문주 왕력의 죽음이었다.
“천수검파의 문주직을 맡고 있는 왕력이라고 합니다.”
같은 정파지만 지금 이곳 이 분위기 속에서 알 수 있는 사실 하나는 눈앞에 있는 자가 절대 호의적인 사람이 아니라는 점이다.
“너네 둘이 그 새끼 맡아라.”
“누굴 상대해? 상대는 천수검파 문주야 같은 정파라고!”
남궁 미려는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고 그 순간 왕력의 검이 남궁 미려의 목을 노렸다.
“죄송하지만 이 이상은 안 됩니다.”
그녀의 목전을 향해 날아가는 왕력의 검을 붙잡은 이신은 피를 질질 흘리면서도 절대 붙잡은 검에서 손을 떼지 않았다. 그리고 그 모습을 본 이상 남궁 미려도 망설일 수 없었다.
“당신이군요.”
한편 그 말을 듣고 있던 제갈 사혁은 어이가 없었다. 남궁 미려한테 느끼는 감정이 아니라 왕력에게 느끼는 감정이었다. 제갈 사혁이 아는 한 왕력은 중소문파지만 대단한 의협지사였다. 그런데 지금은.....
(아무리 정사대전이 터지지 않았다지만 남궁세가를 적으로 돌리려 하다니 천근이 좋긴 좋은가 보네.)
왕력과 이신 그리고 남궁 미려의 대립이 시작됨과 동시에 동굴 안에서 느꼈던 열기가 느껴지며 제갈 사혁 일행을 공격했던 자가 그 모습을 드러냈다.
“그쪽 호싱이라는 자요. 서장 철방사(哲蚌寺)에서 왔으니 한번 놀아보시오.”
거의 제갈 사혁의 세배에 달하는 거구에 스님처럼 삭발을 했지만 아무리 봐도 철방사 출신의 중이라기엔 생긴 게 그냥......
“불경 외우는 것보다 사람 죽이는 게 취미인 것 같은데.”
그리고 그 말과 동시에 공중으로 뛰어오른 제갈 사혁은 위에서 아래로 내려찍어 호싱을 무릎 꿇렸다.
“반갑다. 나랑 취미가 같네.”
거칠게 팔을 휘둘러 제갈 사혁을 떼어낸 호싱은 허리춤에서 술을 꺼내 마시더니 그대로 제갈 사혁을 향해 뿜었다. 따로 불을 피워 무언가를 한 것도 아닌데 입에서 뿜어져 나온 것은 사지를 뒤덮는 화마(火魔)였다.
(뭐야 저거? 그냥 입에서 뱉었는데 불이 뿜어져 나오잖아.)
팔을 좌우로 흔들며 성난 황소를 연상케 하는 기수식을 잡은 호싱은 빈틈이 보이자 제갈 사혁의 옆구리에 묵직한 주먹을 날렸다. 이건 내공도 뭣도 아닌 엄청난 힘이었다.
평소 같으면 아픈 곳을 손으로 만지지 않을 텐데 오늘은 예외였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 한 대에 마음 약해질 제갈 사혁이 아니었다.
공격은 최대의 방어 발을 이용해 상대의 눈을 어지럽히고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간격을 유지한 채 수 십 대를 때렸다. 호싱이라는 놈은 비명한번 지르지 않았지만 쏟아져 나오는 피를 참지 못하고 뱉어냈다. 그러자 방어에 틈이 보였고 양손으로 놈의 관자놀이를 붙잡은 제갈 사혁은 있는 힘을 다해 뛰어올라 무릎으로 호칭의 턱을 으스러트렸다.
완전히 기세를 잡았다고 생각한 제갈 사혁은 호싱의 얼굴에 정타를 때려 넣었고 그 순간 호싱은 두 손으로 제갈 사혁의 팔을 붙잡았다. 처음에는 무슨 짓을 하려는지 감이 잡히지 않았지만 호싱이 붙잡은 팔이 점점 뜨거워지더니 불에 달군 쇠처럼 뜨거워졌다.
“으아아아!”
왼손 주먹을 쥐고 망치처럼 내려찍어 겨우 빠져나온 제갈 사혁은 화상 입은 손을 꾹 눌렀다.
(자율 회복하는데 오래 걸리겠어.)
불에 지져져서 다른 때보다 회복속도가 빠르지 못했다. 대충 그간 행동을 보아 상대는 오행을 다루는 자였다.
“어디 끝까지 해보자고 차력사!”
제갈 사혁이 주먹을 휘두르자 손쉽게 낚아챈 호싱은 자신 쪽으로 상대를 끌고 들어와 무릎으로 복부를 후려친 뒤 상체가 숙여지자 주먹으로 등을 사정없이 때렸다.
“으아!”
악을 쓰며 버틴 제갈 사혁은 상체를 들어 올리면서 머리로 호싱의 턱을 다시 한 번 들이받은 후 낙영장법(落英掌法)을 때리려 했지만 조금 더 빠르고 정확하게 손날로 인중을 가격하자 생각지도 못한 곳을 공격당한 제갈 사혁은 그 자리에서 쓰러져 바닥을 굴렀다.
누가 손가락으로 인중을 툭툭 쳐도 아픈 판국에 도끼 날 같은 손으로 인중을 찔렀으니 제아무리 제갈 사혁이라도 참는데 한계가 있었다.
“이런 개새끼! 아으~~”
처음엔 몸도 가누지 못할 정도로 미친 듯이 아팠지만 곧 상대를 향한 분노가 끓어올라 도저히 당한 그대로 갚아주지 않으면 참을 수 없을 것 같았다.
“하아!”
있는 힘껏 발로 상대를 밀어내 거리를 벌린 제갈 사혁은 검지 손가락을 세워 장대비처럼 대천성신지(大天星神指)를 쏟아냈다. 원래는 침처럼 내공을 가늘고 얇게 벼려 멀리서 상대의 혈관을 막아 내공의 흐름을 원활하게 하지 못하는 무공이지만 제갈 사혁의 대천성신지는 상대를 꿰뚫는 화살에 가까웠다.
피를 뚝뚝 흘리면서도 호싱은 멈출 줄 몰랐다. 오히려 기세가 한껏 올라 통나무 같은 팔뚝으로 제갈 사혁의 목을 후려치자 거구의 일격에 제갈 사혁의 몸은 공중에서 한 바퀴를 빙빙 돌며 고꾸라졌다.
“이런 미친.....”
잘못 쓰러진 덕에 쿡쿡 쑤시는 허리를 만지며 자리에서 일어난 제갈 사혁은 거대한 주먹이 얼굴을 향해 날아오자 옆 방향에서 손목을 후려쳐 공격이 빗나가도록 유도한 뒤 빠르게 몸을 돌려 호싱의 등 뒤에서 척추 뼈를 정확히 때렸다.
“칵!”
호싱이 헛바람을 들이키자 등 뒤에서 힘으로 호싱을 눌러버린 뒤 왼쪽 어깨를 누르고 그대로 팔을 꺾어버렸다. 그러자 호싱은 여태까지 들었던 목소리 중에 가장 큰 비명을 질렀다. 미친 소처럼 몸을 바둥바둥 거리는 통에 숨통을 끊을 수 없게 된 제갈 사혁 입맛을 다시며 아쉬워했다.
“가만히 좀 있어. 빨리 끝내 줄 테니까.”
고통과 분노로 인해 이성을 잃은 호싱은 제갈 사혁의 목을 움켜쥐었다. 호싱의 거대한 몸집에 비하면 제갈 사혁은 통나무 앞에 나무젓가락이나 다름없었지만 목을 잡히고도 그 표정은 여유로웠다.
“뭐해 꺾어. 확 비틀어버려.”
자신의 목을 꺾으라며 재촉하는 제갈 사혁과 달리 호싱은 제갈 사혁의 목을 비틀지 못했다. 하니 비틀 수 없었다.
“흐아아................”
비명을 지르는 호싱의 목소리가 점점 옅어지는 순간 제갈 사혁의 목을 움켜쥔 호싱의 손에 힘이 풀리기 시작했다. 제갈 사혁의 목을 조르기에 앞서 제갈 사혁이 먼저 그의 왼쪽 가슴을 잡아 뜯어내 듯 움켜쥐고 비틀면서 힘 싸움이 무의미해졌기 때문이다.
감정이 없는 얼굴로 호싱의 왼쪽 가슴을 비틀자 손끝에 뜨거운 피가 닿아 손끝을 적셨다.
호싱의 눈이 점점 죽어가자 제갈 사혁은 인상을 구기며 오른손을 잡아당겼다. 그러자 호싱의 피가 제갈 사혁의 얼굴에 튀기며 그 거대한 거구고 뒤로 넘어갔다.
“그래서 내가 말했잖아. 빨리 비틀어버리라고.”
============================ 작품 후기 ============================
목감기에 걸렸습니다.
겨울에 감기라니 한번 쯤 걸려봄직하지만 목감기는 싫어! 그거 오래간단 말이야!
판타지와 무협을 다르게 생각 하느냐 하신다면 아무래도 상황이나 여러가지를 따졌을 때 판타지를 좀 더 잔혹하게 봅니다. 그냥 저 개인의 편견이죠.
어차피 "배경"이 달라져도 어떠한 "행동"을 행한다라는 "과정"은 주위 "환경"에 상관 없이 일어나기 때문에 판타지와 무협의 허용치는 같다고 생각합니다.
무협보다 판타지가 더 잔인하고 19금스러워요. 가 아니라
제가 쓰는 무협보다 제가 쓰는 판타지가 더 잔인하고 19금스러워요.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