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7 회: 절제 할 수 없는 -->
장갑이 마음에 드는지 연신 얼굴을 비비는 모습이 여간 귀엽지 않을 수 없었다.
“소선도 머리 묶어. 왜 풀고 다녀?”
“난 항상 풀고 다녀.”
“내가 해줄게. 내가 예쁘게 묶어줄 게.”
머리를 묶어준다며 그 작은 손으로 머리카락을 모우고 모우는 게 어찌나 귀엽던지 입이 귀에 걸리지 않는 게 이상할 정도였다.
“!”
순간 유희를 돌보느라 화왕문으로 향하는 기척들을 이제야 느낀 제갈 사혁은 서둘러 호황을 뽑아들었지만 이미 상대는 화왕문의 담장 위에 올라가 있었다.
“유희 안으로 들어가!”
“소선?”
제갈 사혁은 다짜고짜 먼저 칼을 빼들고 그들을 향해 달려갔다.
사도일섬(邪道一閃).
횡(橫) 방향으로 길게 검격을 발하자 경신법을 발휘해 검격의 간격에서 벗어난 이들은 일제히 제갈 사혁을 향해 달려들었고 이들의 공세에 모든 신경을 집중해 막았다. 여러 명이서 수시로 압박하며 촘촘하게 공격하는 것 같지만 자세히 보면 이들은 약속된 움직임으로서 서로간의 합을 맞추고 있었다. 약속된 움직임은 그 틈이 있기 마련이고 틈을 노린 제갈 사혁은 목을 노리고 들어오는 검을 왼손으로 붙잡은 후 호황으로 그자의 손목을 베어냈다. 그러자 다른 이들의 검이 제갈 사혁을 노리고 들어왔고 급히 몸을 뒤로 빼 공간을 확보했다.
“핫!”
일부러 크게 소리를 지르며 왼손에 쥐어진 주인의 손목 달린 검을 집어 던져 적들의 정신을 분산 시킨 후 구궁검법(九宮劍法)으로 가장 가까이 있는 자의 목을 쳤다.
제갈 사혁이 순식간에 두 명이나 처리하자 남은 두 사람은 서로의 고개를 끄덕이며 똑같은 기수식을 잡았다. 그리고 제갈 사혁을 향해 둘이서 하나인 듯 똑같은 초식으로 압박했다.
“안된다니까 그러네.”
두 사람의 검이 제갈 사혁의 가슴을 노리고 찔러오자 제갈 사혁은 경신법을 응용해 두 사람의 팔위에 안착해 쭈그려 앉았다.
“훈련은 잘 됐는데 그래봐야 집지키는 개 수준이네.”
이런 놈들이야 흔하디 흔했다. 언뜻 보면 검의 달인이라 생각하기 쉽지만 주입식 교육이나 타인과의 협동에 의해서만 그 실력을 발휘하는 뭐 호위무사들이 이런 경향을 보이는......
(호위무사? 그럼!)
이들이 호위무사라면 분명 이들의 주인이 가까이에 있을 게 분명했다. 그리고 순간 몸이 자동적으로 긴장을 한 상태에서 어디선가 공격이 날아왔다.
긴 장창이 머리를 향해 날아오자 제갈 사혁은 있는 힘을 다해 창을 쳐냈지만 창에 실린 어마어마한 힘에 압도당했다.
(이런!)
제갈 사혁이 할 수 있는 거라고는 사력을 다해 창의 궤도를 바꾸는 일 뿐이었다. 평소라면 창이 아니라 쇠기둥을 던져도 어렵지 않게 쳐낼 자신이 있었지만 이건 상식을 초월한 힘이었다.
빗겨나간 창은 그대로 제갈 사혁의 머리카락을 스쳐 지나갔고 그 덕에 유희가 묶어준 끈이 풀렸다.
“뭐하는 놈인지 모르지만 제법이구나.”
제갈 사혁에게 창을 던진 사내는 탄탄한 근육을 자랑하는 성질 더러워 보이는 노인이었다.
“소선.....”
방에 들어가라고 했는데 어느새 유희는 제갈 사혁의 등 뒤에서 벌벌 떨고 있었다.
“유희 방에 들어가라고 했잖아.”
“하지만 저 아저씨들 무서운 걸......”
순간 제갈 사혁과 유희를 본 노인의 표정이 심상치 않았다.
“유희? 유희란 말이냐? 그 아이가 유희냐?”
“...........”
순간 제갈 사혁은 빠르게 상황판단을 하기 시작했다. 아무리 봐도 유희는 저 사람들을 모르는 눈치지만 저들은 아니 저자는 유희를 아는 눈치였다. 어떤 관계인지는 모르지만 적어도 제갈 사혁이 판단하기에 가족은 아니었다.
“물어봐서 뭐하게?”
상대의 다음 움직임을 따라잡기 위해 가볍게 검격을 날려 움직임을 유도하려 했지만 거구의 노인이 창을 휘두르자 제갈 사혁의 검격은 산들바람처럼 사라져버렸다.
“쳇.”
“저 아이를 데려와라 가까이에서 봐야겠다.”
“존명.”
노인의 호위무사가 유희에게 다가가자 제갈 사혁은 호위무사의 뒷목을 붙잡았다.
“어딜.”
“내 말이.”
“!”
어딜 감히 자신을 지나 넘어가려 하냐며 호위무사의 뒷목을 잡은 순간 순식간에 간격을 좁혀온 노인이 창대를 휘둘러 제갈 사혁을 저 멀리 담장 밖으로 날려버렸다.
겨우 호황을 팔위에 두어 뼈가 부러지는 것은 막았지만 엄청난 힘이었다.
“뭐야 이 노인네.”
이만한 실력자가 여기에 있다는 소리는.
“설마 십야성주 추백성인가?”
실제로 이 당시에 구궁성주 망지성이 십야성주의 자리에 오르고 추백성은 은퇴를 한다. 때문에 제갈 사혁은 추백성을 본적이 없어 긴가민가했지만 지금 이 시점에 저만한 고수라고 한다면 마교의 추백성 밖에 없었다.
한편 추백성은 유희의 얼굴을 살펴보더니 갑자기 무릎을 꿇었다.
“누님.”
“누구세요?”
이 아이만한 아이를 낳아도 이상하지 않을 장성한 손자가 있을 법한 노인이 이제 열 살도 안 된 아이에게 누님이라는 호칭을 쓰자 그의 부하들은 당황하기 시작했다.
“주군. 장로님께서는 장로님과 세 살 차이십니다. 이 아이는 불과 ”
“유희는 누님의 아명이다. 그리고 유일한 핏줄인 내가 누님의 어렸을 때 얼굴을 모를 리 없지 않느냐.”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듣기 싫다. 누님을 모셔라. 청해를 떠난다.”
그 말이 끝남과 동시에 호위무사들은 유희를 데려갔고 그 순간 제갈 사혁이 먼지를 뒤집어쓰고 나타났다.
“당장 안 떨어져!”
일권복호(一拳伏虎)를 날리자 추백성은 창을 한 바퀴 요란하게 돌리며 제갈 사혁의 기격을 봉쇄시켰다.
“네놈을 잊었군. 누님을 보살펴준 것은 감사하나 더 이상 볼 일이 없어야 한다.”
흙먼지 사이로 귀신같이 파고들어온 추백성은 창대를 빠르게 휘둘러 제갈 사혁의 턱을 후려쳤고 턱이 좌우로 흔들거리자 제갈 사혁은 그 자리에서 의식을 잃었다.
한밤중에 깨어난 제갈 사혁은 십야성주에게 당했다는 사실보다 그들이 유희를 데려갔다는 사실에 화가 머리끝까지 났다.
“이 새개끼들이!”
오죽 화가 났으면 평소에 인사말보다 더 많이 쓰는 욕도 제대로 못할 정도였다.
아무리 생각해도 가족은 아니었다. 유희도 녀석들을 모르는 눈치였고 그렇다면 유희와 유일하게 연결점이 있는 소선이라는 인물과 관련된 일일 가능성이 높았다.
“일단 화산파로 돌아가야 하나.”
소선이라는 인물을 찾으려면 모든 인맥과 지위를 통동원해서 중원을 들쑤셔 놔야했다. 일단 소선을 찾고 그 다음 유희의 신변에 대해 마교와 거래를 해야 했다. 그게 순서고 올바른 판단이었다. 하지만.......
“내 장갑 내놔!”
애초에 그게 가능하다면 제갈 사혁은 지금보다 조금 더 나은 사람이 되었을 거다.
제갈 사혁은 일단 화왕문에 위치한 망루 위에 올라가 마교의 경계를 살폈다. 경계를 서는 인원이 평소보다 줄었다.
“추백성이 마교로 귀환했으니 아마 인원은 더 줄었을 거야.”
일단 제갈 사혁은 가장 가까운 마교의 경계를 뚫을 생각이었다. 마을로 가서 상인을 구하고 그들과 동행하기에는 너무 시간이 없기 때문이다.
십야성주의 위치는 생각할 필요도 없었다.
“일단 뻔해 십야성주니까. 십궁에 있겠지 가서 유희만 데려오는 거야.”
말은 그렇게 했지만 마음은 이미 단단히 먹은 상태였다.
숲 사이를 지나가며 제갈 사혁은 절대 경공을 쓰지 않았다. 내공 사용이 감지되면 일이 복잡해지기 때문이다. 발각되면 그 놈들을 죽여야 하고 그렇게 될 경우 흔적을 남기기 때문이다.
“!”
어디선가 활시위가 팽팽해지는 소리가 들려오자 제갈 사혁은 호황에 손을 댔다. 활이 당겨지고 그 소리가 점점 가까워지자 제갈 사혁은 빠르게 앞으로 달려갔다. 그러자 두 번째 활시위가 당겨졌고 이로서 자신을 노리는 누군가가 있음을 감지했다.
“어디서 날아오는 거지?”
그런데 갑자기 소리가 두 개가 됐고 공격하는 이가 한명이 아니란 사실을 깨달은 제갈 사혁은 재빨리 몸을 일으켜 주위를 살폈다.
정확히 양 옆에서 활시위를 당기는 이들의 복장은 십야성주 추백성을 따라온 호위들과 같았다. 아마도 제갈 사혁이 뒤를 따를 것이라 판단해 여기에 놔두고 간 듯 보였다.
“이동 경로가 너무 단순했나?”
궁수 한명을 제압한 후 나머지를 제압하는 방법도 있지만 제갈 사혁은 정면 돌파를 택했다.
“너희들 하고 놀아줄 시간 따윈 없다.”
있는 힘껏 경공을 펼치자 그들도 제갈 사혁을 따라 잡기 위해 활에 내공을 실어 날렸다.
경공보다 빠른 화살이 제갈 사혁의 뺨을 스치고 지나가자 속도는 느리지만 갈(之)자를 그리며 좌우로 왔다갔다 상대를 교란 시켰다.
정사대전에 터졌을 때 화살에 내공을 담아 쏘는 공격은 아주 흔했기 때문에 피하는 건 그리 어렵지 않았다. 그렇게 화살을 피하던 제갈 사혁은 갑자기 풀 사이로 몸을 숨겼다. 그러자 화살을 쏘며 제갈 사혁을 추적하던 두 사람은 공격을 멈추고 두 눈을 감은 채 제갈 사혁의 기를 찾기 위해 기감을 펼쳤다.
“저기다!”
기를 감지해 제갈 사혁을 찾아낸 그들은 곧바로 화살을 당겼다. 화살을 쏜 후로도 제갈 사혁의 기가 그 자리에서 느껴지자 두 사람은 화살이 명중했음을 확신하고 제갈 사혁이 있는 곳으로 다가갔다. 하지만 그곳에 있는 것은 자색의 빛을 뿜어내는 호황이었다.
“!”
“!“
무언가 심상치 않은 기운을 느낀 두 사람은 재빨리 뒤를 돌았고 그 순간 제갈 사혁의 손이 그들의 복부를 꿰뚫었다.
“뒤에서 쫓으니까. 사냥 하는 기분이었냐? 건방 떨지 마라.”
============================ 작품 후기 ============================
브리키오님 질문에 답변드리겠습니다.
보통 소문을 내죠. 하지만 제갈 사혁은 유희라는 이름으로 찾기 보다는 소선이라는 인물을 찾기 위해 유희의 옷을 살 때 포목점 상인과 동네 여인들에게 소선이라는 인물을 찾으면 화왕문으로 와달라고 합니다.
결국 유희의 보호자 이름으로 소문을 내죠. 하지만 이건 별 소용이 없게 됩니다. 그리고 그건 나중에 밝히겠습니다.
지금 감기 때문에 몸 상태가 그리 좋지 못합니다.
글을 더 쓰고 싶지만 도저히 힘드네요. 죄송합니다. 목감기에서 벗어나자 마자 또 다른 종류의 감기에 걸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