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화산의협-130화 (130/262)

<-- 130 회: 절제 할 수 없는 -->

문을 열고 들어가자 복잡하게 늘어진 길이 나왔고 그 길의 맨 끝에 커다란 방이 있었다. 어느새 그 길을 지나 창호지로 된 미닫이문을 열자 그곳엔.....

“아우야야야야~ 살살 좀 해라. 무슨 계집애 발길이 이리도 둔탁하더냐.”

“성주님 그러니까. 적당히 좀 하시지 내일 모래 은퇴하실 분이 연무는 왜 하셔가지고.”

다 곧 장례를 치러도 이상하지 않을 노인과 그 노인의 등을 밟으며 마사지 하는 하녀가 있을 뿐이었다.

“손님 왔다. 물러나 거라.”

“네.”

하녀가 물러나자 노인은 허리를 좌우로 움직이며 몸을 풀었다.

“십궁에 도전하러 온 놈이 있다니 내가 내일 모래 은퇴라고 늙은이 상대로 일 한번 저질러 보자 이건가? 애송이.”

하지만 이자는 아무리 봐도 십야성주 추백성이 아니었다.

“왜 말이 없나? 왜 당사자와 대면하니까. 무서워서 질질 쌀 것 같으냐. 꼬마야?”

“여긴 분명 십궁이라 들었는데 어째서 십야성주 추백성이 아닌 당신이 있는 것이오? 혹시 당신을 이기면 다음 방에서 추백성이 기다리고 있는 것이오?”

십궁이니 십야성주 추백성이 있어야 하는데 그는 보이지도 않고 웬 노인네가 있다니 오직 추백성의 낯짝을 보기 위해 미친 듯이 달려왔던 제갈 사혁은 어이가 없었다.

“뭐? 추백성? 십궁? 푸하하하하~”

제갈 사혁의 사정을 눈치 챈 노인은 침까지 흘려가며 미친 듯이 웃더니 제갈 사혁과 열 걸음 이상 떨어진 곳에서 순식간에 좁혀 들어와 제갈 사혁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다가오는 것을 전혀 느끼지 못했다!)

“여긴 십궁이다. 꼬마야. 보아하니 마교인이 아니군. 예전 같았으면 내 직접 혼쭐을 내주겠지만 은퇴가 얼마 남지 않아서 뒤끝을 깨끗하게 마무리하고 싶으니 귀엽게 봐주마. 나는 십궁성주라고 한다. 이제 곧 은퇴할 사람이니 잘 기억해둬라.”

친구라도 되는 듯 어깨동무를 한 채 노인 아니 십궁성주는 제갈 사혁을 어디론가 데려갔다.

“그렇다고 해도 정말 생각이 없구나. 열 개의 궁을 지배한다고 해서 십야성주라고 부른다. 내 위에 있는 사람이란 말이다. 열 번째 성을 지배한다고 해서 내가 십궁성주라 불리는 거고 알겠느냐? 십궁에 살아서 십야성주가 아니란 말이다.”

사실 이 정도 상식을 모를 제갈 사혁이 아니었지만 워낙 십야성주 추백성과의 만남이 충격적이었고 그 십야성주에게 유희를 빼앗기는 일까지 일어나다 보니 추백성을 향한 목적의식만 남아서 십궁과 십야성주의 차이를 생각하지 못했다.

“그런데 우리 꼬마는 이름이 뭐냐?”

“제갈 사혁입니다.”

마교도에게 존댓말을 쓰는 게 영 마음에 안 들었지만 십궁성주 정도의 고수와 어깨동무 같이 위험한 자세를 하고 있는 게 마음에 걸려 하는 수 없이 예의를 갖췄다.

“와~ 그 잘나간다는 화산파 후계자? 야 니가 구마준이 죽였다며? 마준이 그 새끼 나이도 어린 게 나한테 반말 찍찍해서 마음에 안 들었는데. 이야~ 요즘 애들은 패기가 좋아. 내가 너 만했을 때는 목숨이 아까워서 칠객 수준의 고수에게 개기는 건 꿈도 못 꿨는데 말이야.”

구궁성주는 보기와 다르게 말이 정말 많았고 구궁성주의 수다는 꼬박 하루나 지속됐다. 경공을 펼쳐서 가면 금방 도착할 길을 굳이 걸어서 하루 게다가 잠도 자지 않고.....

“여기다 여기 문 열어라 자식들아! 형님 오셨다.”

꼬막 하루를 걸려 어느 저택에 도착한 두 사람은 으리으리한 저택의 마당을 지나자 곳곳에서 살기를 느낄 수 있었다.

“너 정도 되면 어떠냐? 여기 바로 찾아왔으면 십궁 애들보다 쉽게 끝낼 수 있겠느냐?”

마당에서부터 자신들을 감시하고 있는 호위무사들을 두고 품평을 하듯 십궁과 차이를 묻자 제갈 사혁은 실없이 웃었다.

“훗! 여기가 더 빨리 끝날 겁니다.”

십야성주의 저택을 지키고 있는 무사들의 솜씨는 솔직히 말해 십궁의 아이들과는 그 격이 달랐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십야성주의 저택 무사들을 더 빨리 끝낼 수 있다니 어떤 근거를 두고.

“사람 수가 적잖아요. 잘 훈련되어 봐야. 스스로의 이름을 내걸 수 없는 개에 불과한 조무래기들 어차피 그런 놈들은 많으면 많을수록 시간만 낭비할 뿐이죠. 저라면 좀 더 적은 쪽이 낫습니다.”

“너 정말 마음에 든다. 너 같은 놈이 우리 일월신교에 입교해야 하는데 요즘 우리 애들은 패기가 없어요. 패기가..... 당장 일궁성주 새끼만 하더라도 아우~ 진짜 은퇴하기 전에 이 새끼를 어떻게 해야 하는데.......”

십궁성주는 젊은 세대가 마음에 들지 않은 듯 계속 외지인인 제갈 사혁에게 내부 불만사항을 토로했고 그 모습은 중원 어디에나 있을 법한 어른의 모습이었다.

“십야성주 계시오?”

문을 활짝 열어 재끼자 어린 아이에게 죽을 떠먹이고 있는 추백성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그 주변에는 다른 두 사람도 있었는데 그 중 한 사람은 화운산에서 만난 적이 있는 구궁성주 망지성이었다.

“십궁성주 어쩐 일이시오. 아니 그 놈은!”

제갈 사혁을 알아보자마자 추백성은 주먹을 불끈 쥐어보였고 제갈 사혁을 보자마자 죽을 떠먹고 있던 유희는 냉큼 달려가 제갈 사혁에게 안겼다.

“소선!”

그로부터 며칠이 지났지만 유희는 제갈 사혁이 준 장갑을 아직도 끼고 있었다.

은근슬쩍 장갑을 이유로 마교에 쳐들어오긴 했지만 서도 이렇게 잘 간직하고 있다니 정말 대견스러웠다.

“정파의 꼬마 놈 두 번은 없다.”

추백성은 당장이라도 제갈 사혁의 목을 꺾어버릴 기세였고 그런 추백성을 십궁성주가 막아섰다.

“진정하시오. 십야성주.”

“십궁성주 어쩌자고 이놈을 여기에 데려왔소!”

“마교인은 아니지만 십궁을 격파했으니 이놈은 차기 십궁성주 아니오.”

“!”

차기 십궁성주라니 제갈 사혁은 이 노인네가 노망이 들었나 싶었고 너무 황당해서 말이 나오지 않았다.

“십궁성주라니? 십궁성주 이놈에게 졌소?”

추백성은 절대 믿을 수 없다는 눈치였다. 비록 십야성주. 십궁성주라 불리고 있지만 십궁성주는 절대 만만하게 볼 자가 아니었다. 자신도 그와 마지막으로 겨룬 건 20년 전 십야성주 자리를 놓고 처음이자 마지막이었을 정도니 말이다.

“내가 아무리 다 죽어간다고 해도 이런 새파란 놈에게 지겠소? 싸우진 않았지만 십궁을 올랐으니 십궁성주 자격이 충분하잖소.”

“십궁성주도 이기지 못하고 성주자격을 얻었다니 웃기지도 않소.”

말의 진위를 깨닫자 추백성은 안심하는 한편 십궁성주는 제갈 사혁을 보며 털털한 미소를 지었다.

“안심해라. 요놈아. 아무리 네놈이 마음에 들었기로서니 정파 놈을 그 자리에 앉힐 리 없다. 십궁을 언급한 건 네놈과 저 양반을 이해시키기 위해서다.”

이해라니 그게 무슨?

“십야성주. 아무튼 이 녀석은 십궁을 격파했으니 정파인으로 보기 보다는 무인의 한 사람으로서 인정하고 공격하지 말아주시오.”

“좋소. 십궁성주가 그렇게 말한다면 내 더 이상 손대지 않겠소.”

주변 정리가 끝나자 이번 소동의 원인을 깨우친 십궁성주는 원인을 파해치기 시작했다.

“장로님께서 치매에 걸리셔서 정파의 소굴로 간 건 나도 알고 있소. 그리고 거기서 정파 놈을 만났다는데 그게 이 놈이오?”

“그렇소.”

“십야성주. 소선이란 자를 기억하시오.”

갑자기 소선이라는 인물에 대해 말하자 내심 소선이라는 인물에 대해 궁금한 점이 있었던 제갈 사혁도 귀를 기울였다.

“기억하오. 그 분은 어린 시절 우리 남매의 은인이었소. 내 그를 은혜를 한시도 잊은 적이 없소.”

“장로님께서 이 아이를 왜 소선이라 부르는지 아시오?”

“모르겠소. 이놈과 그 분은 전혀 닮지 않았소.”

“이놈 이름이 제갈 사혁이오. 십야성주도 들어봤잖소. 화산망종 제갈 사혁 무진.”

“!”

제갈 사혁의 정체를 들은 그는 조금 전까지 유희를 떠먹이던 숟가락을 놓쳤다.

“내가 스스로 맹세를 깨버리다니.....”

갑작스러운 추백성의 행동에 제갈 사혁은 십궁 성주에게 왜 저러냐는 듯 눈치를 주었다.

“십야성주와 장로는 어린 시절 화산파의 소선에게 은혜를 입은 적이 있다. 그 후로 십야성주는 절대 화산파에 해를 끼치지 않겠다고 스스로 맹세했는데 네 놈을 공격해 해를 입혔으니 꽤나 충격 먹었겠지.”

“그런데 소선이 누굽니까?”

화산파 사람이라면 모를 리가 없는데 소선이라는 이름은 처음 들었다.

“너 모르고 있었냐? 하긴 너하고는 배분차이가 심하니까. 모르는 게 당연하지. 담종 진인의 이름이 소선 아니더냐. 이놈아.”

태사숙의 본명이 소선이라는 것은 제갈 사혁도 처음 듣는 이야기였다. 하지만 유희가 자신을 태사숙과 동일 시 하는 건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저는 태사숙과 닮지 않았습니다.”

“자하신공이다.”

정신을 차린 십야성주가 자하신공에 대해 이야기를 꺼냈다.

“누님은 아마도 네놈이 익힌 자하신공을 느끼셨을 게야.”

“자꾸 누님누님 하는데 설마 유희가 그쪽이 말하는 누님이라는 겁니까?”

그에 관해서는 십궁 성주가 설명해주었다.

“맞다. 화산 꼬마야. 그 분이 십야성주의 누이이자 우리 마교의 열두 장로 중 한분이신 주성임(主星林)님이시다. 두 사람의 성이 다른 건 각자 다른 집안에 입양되었기 때문이지.”

하지만 유희는 아무리 봐도 어린 아이였다. 어떻게 노인인 추백성의 누나가 될 수 있는 걸까? 여동생이라고 해도 말이 안 될 나이인데.

“치매에 걸리셨는데 어찌된 일인지 정파의 경계를 홀로 넘으셨고 그 뒤로 ‘이렇게’ 되셨다.”

노인이 다시 젊어졌다니.

“반로환동(返老還童)? 말도 안 돼! 그런 건 있을 수 없습니다. 반로환동이 실존한다는 이야기는 처음 듣습니다.”

“당연히 없지 쉐키야! 그게 가능한 일이었으면 내가 무공을 쎄빼지게 열심히 익혀서 젊은 시절로 돌아가면 전 무림의 여자들을 후리고 다녔을 거야! 당연히 반로환동은 말이 안 되는 이야기지 4일 전까지는 말이야.....”

모두의 시선이 유희에게로 닿자 유희는 그 시선이 부담스러웠는지 제갈 사혁의 등 뒤로 숨었다.

“소선. 나 이 할아버지들 무서워.....”

유희가 부담스러워하자 모두의 시선은 다시 제갈 사혁에게로 닿았다.

“그래서 그런데 꼬마야. 자하신공을 펼쳐보아라.”

선뜻 적진에서 자하신공을 펼치기 부담스러웠지만 자신을 소선이라 부르는 유희를 본 제갈 사혁은 자하신공을 펼쳐보였다.

자하신공을 조금이라도 발현하면 온몸에 내공이 한줌도 남지 않게 되지만 그 누구도 이곳에서 자신을 공격하지 않을 거라는 계산에서였다.

“역시 자하신공. 신공이라 부를만하군.”

모두가 자하신공을 구경하고 있을 때 갑자기 유희가 정신을 잃고 쓰러졌다.

“누님!”

추백성은 재빨리 유희를 침실에 눕혔고 제갈 사혁은 한쪽에서 운기조식을 하며 내공을 회복했다. 그리고 그런 제갈 사혁을 두고 일단 그들은 자신들이 모인 중대사항을 의논하기 시작했다.

“어차피 십야성주도 나도 은퇴할 것이니 구궁성주 자네를 십야성주로 추대할 생각이네.”

토론의 중점은 구궁성주 망지성의 십야성주 등극과 관련된 것이었고 이에 대해서는 당사자인 망지성의 반대 의견이 있었다.

“십궁성주라면 모를까? 십야성주라니 아니 될 말입니다. 약육강식의 신교에서는 특히.”

“하지만 자네 밑으로 아무도 자네를 이기지 못하지 않은가? 일궁성주 자네가 말해보게.”

30대 초반의 일궁성주는 두 장로의 의견에 동의했다. 실제로 구궁성주라고 부르고 있지만.

“두 분께서 은퇴하시면 구궁성주의 적수는 없습니다. 저를 제외한 나머지 칠궁도 인정하는 것이고요.”

만약 이를 두고 문제가 생긴다면 간단한 일이다.

“일단 십야성주 자리를 받게나. 그 후 문제가 생기면 힘으로 해결하면 될 일.”

어차피 구궁성주나 십궁성주나 십야성주 할 것 없이 모두 힘으로 지켜내야만 하는 자리.

뒷말이 나온다면 힘으로 주둥이를 으깨버리면 될 일이다.

“더 이상 거부하지 말게 아니면 우리 두 늙은이 중 하나가 그대와 진정 손을 섞어봐야겠는가?”

그렇지 않아도 망지성은 외부인물이라 스스로 이런 일에 민감한 반응을 보였다. 하지만 두 사람이 이렇게까지 이야기하니....

“알겠습니다. 십야성주 자리에 앉아 보겠습니다.”

야망이 없다는 것 하나만 빼면 망지성은 정말 괜찮은 인물이었다.

“이야기 다 끝났으면 볼 일 좀 봤으면 합니다.”

이야기가 끝나자마자 무섭게 운기를 끝마친 제갈 사혁이 일어났다.

============================ 작품 후기 ============================

반로환동. 이 부분은 본문의 대화에서도 나오지만 전설속 경지입니다.

화산의협에서 반로환동에 대한 무림인들의 생각이 어떤 느낌이냐면 우리가 신라의 시조 박 혁거세가 알에서 태어났다는 소리를 듣기만 했지 믿지는 않는 것과 동일하다 보시면 됩니다.

리얼계를 추구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검기나 내공이 없는 건 아니니까요. 환골탈태 정도는 제갈 사혁도 경험해봤던 거고.

하지만 반로환동처럼 허무맹랑한 경지는 조금 얍삽하게 다룰 필요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다음편에서 이 반로환동의 진정한 정체도 나올 거고.

일단 이제 여기서 나왔 듯 소선이라는 인물의 정체 그리고 왜 유희가 제갈 사혁을 소선이라 부르는 것까지 나왔습니다. 자하신공으로 이것을 억지로 연결했는데 솔직히 설득력 있는 부분이 아니라는 것은 알지만 설득력을 부여하기 위해 제갈 사혁과 유희의 만남을 바꿔버리면 이야기자체가 틀어져서 그냥 진행했습니다.

아 그리고 이건 별거 아니지만 이와 관련해 쪽지가 많이 와서 답변해드립니다.

상상에 제한을 두지 마세요. 어차피 모든 건 허구입니다. 작가의 설정에 달린 거죠.

사실 자하신공도 무슨 버프개념으로 만들었지만 여러분이 나중에 글을 쓰실 때 자하신공에 대해서 쓰신다면 하나의 초식을 갖춘 무공으로 표현하셔도 됩니다.

예를 들어 제가 무슨 검법을 표현하면 무슨 검법 몇초식 이런 식이 아니라 그 검법 자체를 단 하나의 초식으로 만들어버립니다. 실체가 없는 허구기 때문입니다.

질문에 답변해드리겠습니다.

"자하신공은 신체능력을 올려주는 무공인가요?"

"아니요. 화산의협에서는 버프개념이지만 다른 소설에서는 아닙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