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2 회: 절제 할 수 없는 -->
길게 뻗어 찬 일격에 거구의 몸은 저택 외벽을 뚫고 수십 장을 날아갔다.
그 모습을 옆에서 본 십궁성주는 구궁성주 망지성을 안타깝게 쳐다봤다.
“이런~ 아무래도 이 저택은 자네가 따로 고쳐서 써야겠고만.”
걸어서 나가도 될 것을 굳이 건물 외벽을 박살내서 밖으로 떨어져나게 만든 제갈 사혁의 몸에서는 흡사 뇌전과도 같은 기가 흘렀다.
“후우!”
내심 제갈 사혁을 얕보고 있었던 추백성은 심호흡을 하며 마음을 가다듬었다. 상대와의 대전에서 제대로 된 아픔을 느꼈던 적이 얼마만일까?
“놀랍군. 전혀 절제하지 않는 힘이라.”
추백성이 서서히 몸을 일으키자 미친 듯이 뛰어온 제갈 사혁은 그의 면상에 주먹을 내리 꽂았다. 그 충격으로 추백성의 목이 돌아간 사이 재빨리 등 뒤로 돌아가 두 팔로 그의 허리를 단단히 붙잡은 후 정교한 곡선을 그리며 뒤로 넘겼다. 그러자 단단한 지면이 으스러지며 그 충격은 보는 이들로 하여금 뒷목이 뻐근해지도록 만들 정도였다.
“저건 또 무슨 초식이야.”
먼지를 뒤집어 쓴 채 자리에서 일어난 추백성은 이를 악물었다.
“어줍잖은 삼류 무림인 몇 놈 이겼다고 제법 날뛰는 구나!”
추백성이 호흡을 가다듬기 위해 일부러 말을 걸자 제갈 사혁은 들을 필요도 없다는 듯 그의 얼굴에 인정사정없이 발길질을 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처음과 달리 추백성의 몸이 단 일장도 나가떨어지지 않았다.
“어른이 말을 하면 들어야지 꼬마야.”
자신의 얼굴을 향해 날아오는 발차기를 맞으며 이 악물고 버텨낸 추백성은 자리에서 일어나 제갈 사혁의 얼굴을 향해 주먹을 날렸다.
그 거대한 주먹 한방에 나가떨어진 제갈 사혁의 몸은 오늘 따라 왜소해보였다.
피가 섞인 기침을 내뱉으며 제갈 사혁은 자신의 뺨을 때렸다. 평소와 달리 십궁에서의 대결로 인해 한쪽 귀가 제 역할을 하지 못해 제대로 된 몸 상태는 아니지만 지금 눈앞에 있는 상대는 그야말로 절대적인 힘의 상징.
추백성이 허공을 향해 손을 올리자 저택 내에서 경호를 하고 있던 호위무사가 나타나 추백성을 향해 창 한 자루를 날렸다.
“꼬마야. 제대로 놀아보자!”
추백성이 사용하는 창은 일반적인 장창. 하지만 거구인 추백성이 사용하자 그 길이는 일반적인 창과는 차원이 달랐다. 게다가 추백성은 장창을 한손으로 사용하는 괴력의 소유자.
“!”
사정거리는 길고 무기의 휘두름은 가희 살인적이었다.
바람을 가르는 소리와 함께 창대를 휘두르자 제갈 사혁은 마음의 준비를 하고 창대를 막았다.
“뭐하는 거냐? 꼬마야. 뽑아라.”
검을 뽑으라며 신호를 주자 제갈 사혁은 오히려 미소를 지었다.
“나는 분명 뽑을 기회를 줬다.”
천라만섬(天羅滿閃).
제갈 사혁이 눈으로 본 것만 총 열 아홉 번의 찌르기.
창대를 손바닥으로 쳐내 궤도를 바꾸는 것으로 방어해낸 제갈 사혁은 초식이 끝나자 몸을 최대한 숙여 추백성 왼쪽 무릎 관절을 노리고 하단 발차기를 날렸다.
“큭!”
아무리 단련된 육신을 자신한다 해도 관절은 나이를 먹으면 약해지기 마련이다.
“십야성주 조심하시오. 그 놈 허리에 찬 건 폼이오.”
허리에 찬 검이 폼 일리는 없지만 그제야 추백성은 제갈 사혁이 권법가라는 걸 인지했다.
“요 쥐새끼 같은 놈!”
위에서 아래로 창대를 휘두르자 제갈 사혁은 마음에 준비를 하고 추백성이 창을 들고 내려치기 전에 추백성의 손목을 붙잡아 힘이 발산되는 것을 막았다.
(지금이다!)
복호백열격(伏虎百閱拳).
총 스물다섯 대의 주먹 하나하나가 일격필살!
“십야성주라도 저건 위험하겠구만.”
복호백열격을 본 십궁성주는 식은땀을 흘렸다. 제갈 사혁이 사용한 권법은 눈으로 보기만 해도 엄청난 무공이었다.
십야성주를 대신해 자신이 저 무공과 대면한다면 피하려면 피할 수 있지만 저 초식을 몸으로 받아낼 재간은 없었다.
(느낌이 왔다!)
복호백열격이 온전히 들어가자 제갈 사혁은 승리를 확신했다. 하지만 그 순간 눈을 부릅뜬 추백성이 왼손으로 뺨을 후려치듯 제갈 사혁의 옆구리를 후려갈겼다. 그것은 분명히 내공이 스며든 일격이었으며 복호백열격에 흡정마공의 묘리를 접목해 사용하는 제갈 사혁에게는 엄청난 충격을 주었다.
(내공을 운용하다니 말도 안 돼.)
복호백열격이라면 전신에 스며든 모든 내공을 먼지 털어내듯 탈탈 털어버릴 수 있었는데 믿을 수가 없었다.
“무슨 짓을 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일순간 내공이 몸 밖으로 빠져나가더구나. 하지만 그리 쉽게 내공을 빼앗을 수 있다고 생각하면 착각이다.”
추백성은 자신의 가슴을 주먹으로 치며 강한 자신감을 내비췄고 이를 본 주성임은 어린아이의 얼굴을 하고 있지만 눈빛이 날카로워졌다.
“환경 녀석이 공만(鞏挽)을 익혔군.”
“공만이라니 그건 뭡니까? 장로님.”
십궁성주의 질문에 주성임은 미간을 찡그렸다.
“교주가 젊었을 때 배교를 멸문 시킨 적이 있었지.”
“그렇습니다. 분명 그때 멸문시켰지요.”
배교라니 꽤나 오랜 기억 아니 추억을 더듬어야 했다.
“그때 손에 넣은 배교 놈들의 무공이다. 환경 놈이 칠궁성주일 때 배교의 두 호법을 죽인 대가로 배교 무공에 대한 처리 권한을 가졌었지. 그때 다 불태우더니 필요한 건 몇 개 익혔나보군.”
“배교의 무공이란 말입니까?”
“배교 놈들은 상대의 내공을 빨아들이는 이상한 무공을 썼던 걸 기억하겠지?”
“기억합니다. 그 당시 저도 꽤 애를 먹었었죠.”
“모든 것을 꿰뚫을 수 있는 창이 있으면 그것을 막아낼 방패도 있어야 하는 법.”
공만. 즉 몸에 있는 내공을 지켜내는 쉽게 말해 내공을 지켜내는 외공이라 할 수 있었다.
“공만(鞏挽)과 짝이 되는 무공은 두 개가 더 있는데 그 중 공탄(恐坦)이라는 무공만 찾을 수 없었지.”
최대의 타격이라 할 수 있는 복호백열격이 실패로 돌아갔지만 제갈 사혁은 계속되는 타격으로 추백성을 쓰러트리리라 마음먹었다. 보통 사람이라면 자신의 절기가 실패한 것에 크나 큰 충격을 받을지 모르지만 제갈 사혁은 달랐다. 그리고 그것은 단 하나의 신념 때문이었다.
(맞아서 안 아픈 놈 없다!)
맞아서 안 아픈 놈 없다. 지극히 단순하지만 지극히 당연한 진리였다. 상대가 강호무림 최고의 고수라 해도 사람인 이상 언젠가 쓰러지기 마련.
제갈 사혁은 기수식을 바로 잡았다.
“?”
하지만 그때 왼팔의 감각이 평소와 달랐다.
(쳇!)
아무리 외공에 자신 있다지만 추백성의 그 무시무시한 공세를 막아내고 멀쩡할 리 없었다. 자율회복을 기다릴 수도 없었다. 회복을 기다리기 위해 주춤거린다면 그것은 상대에게도 똑같이 적용돼 쉬는 시간을 주는 꼴이 되기 때문이다.
(먼저 친다!)
지면을 박차고 먼저 다가간 제갈 사혁은 흡사 무공서적에 나올 법한 교과서적인 옆차기로 추백성의 가슴을 찼다. 그리고 추백성의 몸이 힘에 의해 뒤로 밀려나자 따라 들어가 같은 부위에 이문정주를 때려 넣었다.
“크악!”
이문정주가 성공하자 뺨을 후려치듯 하단 발차기로 노렸던 무릎 관절을 다시 한 번 자극했다.
“환경 녀석 제대로 걸렸군.”
“그렇군요.”
주성임의 말에 구궁성주 망지성도 동의했다.
“제갈 사혁 말이야. 정말 스물 한 살 맞나? 나이에 비해 너무 노련한데. 젊었을 땐 흔히 패기 중년에 접어들어서는 노련함인데 무인으로서 그 자체만 놓고 보면 완벽해.”
주성임이 본 제갈 사혁은 완성된 무림인 그 자체였다. 하지만 그렇다하더라도....
“녀석에겐 안 돼. 제갈 사혁이 지금 하고 있는 것들은 이미 몇 십 년 전에 환경도 해왔던 것들이야.”
자신보다 강한 자와 마주했을 때 지지 않는 패기(覇氣) 그리고 승기를 놓치지 않으려는 집념(執念). 마교고 정파고를 떠나 무엇하나 제갈 사혁을 칭찬하지 않을 수 없지만 그것은 추백성도 마찬가지였다.
“너의 패기. 너의 집념 모두 그 아이가 너만 했을 때 겪었던 거란다.”
그리고 그 말이 끝남과 동시에 추백성의 몸에서 연기가 피어올랐다.
“시작했군.”
추백성은 몸에서 커다란 열기를 발산하더니 천천히 식어갔다. 그러자 심상치 않은 것을 감지한 제갈 사혁은 뒤 돌려차기로 추백성의 손목을 쳐 창을 떨어트리게 만들었다.
만성투기(慢性鬪氣).
추백성은 제갈 사혁의 발목을 붙잡아 들어 올린 뒤 그대로 땅바닥에 패대기쳤다.
“컥!”
눈물을 찔끔 거릴 정도로 아팠지만 한순간도 멈춰 있을 수 없기 때문에 제갈 사혁은 재빨리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자 그 동작에 맞춰 추백성이 무릎으로 찍어 올렸고 정타를 크게 허용한 제갈 사혁은 찰나의 순간 의식을 잃었다 되찾았다.
상대가 기세를 잡으면 자신이 불리해진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더는 공격할 틈을 줄 수 없었다.
복호파산으로 큰 충격을 주려 했지만 복호파산을 맞은 추백성은 아랑곳하지 않고 제갈 사혁에게 주먹을 휘둘렀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때리면 반응이 왔지만 이래서는 마치 아픔을 느끼지 못하는 상대와 싸우는 기분이었다.
천지유벽세(天地柔劈細).
추백성의 주먹이 빗발치자 본능적으로 천지유벽세를 펼쳐 상대를 공중으로 띄워 틈을 만든 제갈 사혁은 추백성이 바닥에 착지한 순간을 노려 파강권(破鋼拳)을 펼쳤다.
“흠!”
분명 파강권을 맞았지만 오히려 짧은 호흡을 가다듬은 뒤 몸을 뒤로 꺾더니 새우처럼 몸을 앞으로 튕기며 두 주먹을 제갈 사혁의 가슴에 적중시켰다.
소왕권(素王拳).
“끝났군.”
주성임은 이 대결이 끝났음을 암시했고 소왕권을 맞은 제갈 사혁은 마치 수면 위를 통통 튀어 오르는 돌멩이처럼 나가 떨어졌다.
피를 흘리며 바닥에 쓰러진 제갈 사혁은 하늘을 올려다보며 문뜩 제자인 이신을 떠올렸다. 돌아가면 무슨 말을 해야 할까? 이건 뭐 평소처럼 별 거 아니었다며 허세 떨만한 일이 아니었다. 마교에 엄청 쎈 놈이 있는데 그 놈하고 싸우다 져버렸다 이렇게 말해야 하는 걸까?
“.......... 리잖아.”
스승이란 제자에게 세상에서 가장 강한 사람이여야 한다. 그런데 져버렸다고 말하면.
“쪽팔리잖아!”
손은? 간신히 주먹을 쥘 수 있었다. 다리는? 일어서는 건 가능했다.
그거면 됐다. 그거면 다시 한 번 싸울 수 있었다.
“어이~ 아저씨!”
“어쭈구리 요것 봐라.”
“다시 해보자고.”
자색 기운이 제갈 사혁의 몸을 감싸자 주성임은 못마땅한 표정으로 제갈 사혁을 쳐다봤다.
“꼬마야. 자하신공의 다음은 없어.”
자하신공 분명 신공이란 이름이 아깝지 않지만 그것에 다음은 없었다.
자하신공에 의해 가속력이 붙은 다리는 순식간에 추백성의 면전에 닿았고 제갈 사혁의 두 주먹은 있는 힘을 다해 추백성의 얼굴을 때렸다.
“흥!”
자하신공과 마주한 추백성도 제갈 사혁을 향해 주먹을 날렸다.
두 사람은 결코 서로의 주먹을 피하지 않았다. 피하지 않으려 한 게 아니라 자신의 두 주먹으로 먼저 상대를 쓰러트리려 했다. 두 사람의 생각이 똑같았을 때 사방으로 피가 튀겼다.
“십야성주는 은퇴하려면 아직 멀었군. 아직도 청춘이야.”
나이가 들면 저런 무식한 싸움은 피하게 된다. 하지만 십궁성주는 아직도 저런 싸움을 할 수 있는 십야성주가 부러웠다.
“아직 멀었어!”
추백성이 제갈 사혁의 왼쪽 어깨를 치자 제갈 사혁은 오른손으로 추백성의 귀를 붙잡은 뒤 박치기를 날렸다.
“노인네 그만하고 쓰러지라고!”
박치기에 이어 무릎으로 턱을 치며 추백성을 흔들었지만 그는 결코 흔들리지 않았다.
“말했잖아..... 너의 패기 너의 집념 모두 너만 했을 때 그 아이도 겪었다.”
주성임의 말과 동시에 추백성의 눈에서 인광(燐光)이 뿜어져 나왔다.
“질성싶으냐!”
제갈 사혁이 주먹을 휘두른 순간 제갈 사혁의 주먹을 붙잡은 추백성은 자신의 품으로 잡아당긴 후 팔꿈치로 제갈 사혁의 얼굴을 찍어 내렸다. 그리고 그 순간 쓰러지지 않을 것 같았던 제갈 사혁이 쓰러졌다.
============================ 작품 후기 ============================
“너의 패기. 너의 집념 모두 그 아이가 너만 했을 때 겪었던 거란다.”
“말했잖아..... 너의 패기 너의 집념 모두 너만 했을 때 그 아이도 겪었다.”
이 대사가 오늘의 연재분의 모든 것입니다.
사실 어떻게보면 주인공의 패배는 썩 내키지가 않습니다. 무협에선 특히나.
하지만 제갈 사혁의 패배는 그 상황이 달라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제갈 사혁은 분명 회귀를 하면서 지난생애와는 다른 자신감과 힘을 얻었습니다.
어느 매체에서나 주인공의 승리에는 패기와 승리를 향한 집념이 승리의 열쇠가 됩니다.
이렇게 말하면 조금 유치하게 보이겠지만 제갈 사혁에게 가르쳐줄 필요가 있었습니다.
집념과 패기 근성 오기 이런 건 너만 가진 게 아니라는 것을 가르쳐줄 필요가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