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화산의협-133화 (133/262)

<-- 133 회: 절제 할 수 없는 -->

정신을 차렸을 땐 낯선 천장이 보였다.

(몸이 여기저기 쑤시네. 아~ 삭신이야.)

힘겹게 몸을 일으킨 제갈 사혁은 일어나자마자 여기저기 붕대로 칭칭 감긴 자신의 모습을 보고 헛웃음이 나왔다.

“쓸 때 없이 치료는 상냥하네.”

대나무 부목으로 팔과 다리를 받쳐주는 세심한 치료에는 혀를 내두를 정도였다.

“일어났냐? 꼬마.”

정면에는 추백성이 앉아 있었다. 싸울 땐 멀쩡해보였는데 지금 보니 추백성도 멀쩡한 몰골은 아니었다.

“싸울 땐 멀쩡하더니 뭐요 그 꼴이?”

병상에 누워있기 때문인지 부수지 못할 거대한 벽처럼 느껴졌던 그 위상은 몰라보게 초라해져 있었다.

“요놈아. 내 만성투기는 일시적으로 아픔을 느끼지 못하게 하는 외공이지 부상을 당하지 않게 해주는 외공이 아니다.”

그러고 보니 한순간 기세가 달라진 게 느껴졌는데 그게 무림에 전설적으로 들려오는 추백성의 만성투기였을 줄이야.

“만성투기는 무적이 아니었소? 내가 듣기로는 무적외공이라 하던데.”

“외공운용이 끝나면 고통이 한꺼번에 밀려들어 온다. 무적은 무슨! 신교 전력에 누가 되는 약점 같은 건 철저하게 숨겨왔을 뿐이다.”

만성투기에 그런 조건부 약점이 있었다니..... 그런데.

“그런 거 나한테 가르쳐줘도 괜찮은 거요?”

“곧 은퇴할 건데 뭐 어떠냐. 이놈아.”

그 말은 곧 다시는 추백성과 싸울 수 없다는 뜻이었다.

“아오~ 조금만 더 버텼으면 내 최대 업적은 구마준이 아니라 마교의 우호법 십야성주가 되는 건데.”

“이 건방진 놈이 뭐가 어쩌고 저째! 어떻게 그 구마준 무말랭이 새끼에서 이 추백성 어르신이 될 수 있는데? 급이 달라 이놈아!”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며 주저앉은 제갈 사혁을 향해 추백성은 주전자를 던졌고 주전자가 찌그러지며 뜨거운 녹차가 머리 위에 부어졌다.

“아 뜨거!”

“일어나셨습니까. 성주.”

방 안이 소란스러워 문을 열고 들어온 망지성은 추백성을 부축해 접객실로 데려왔다.

“뭐 더 토론할 것도 없고 십야성주는 구궁성주가 그리고 우리 세 사람은 오늘부로 은퇴다.”

주성임이 딱 잘라 말하자 구궁성주 망지성은 세 사람에게 은퇴 뒤에 무엇을 할 건지 물었다.

“은퇴 후에는 어떻게 하실 겁니까?”

“나야 누님이 이렇게 되셨으니 누님을 모셔야지.”

추백성에게 치매에 걸린 주성임이나 지금 이렇게 어려진 주성임이나 결과는 똑같았다. 비록 다른 집안에 입양되어 다른 성(成)을 가지고 길러졌지만 하나 뿐인 피붙이인 것이다.

“글쎄~ 나는 제자나 하나 키워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네.”

십궁성주의 입에서 제자라는 소리가 나오자 추백성은 크게 웃었다.

“흐하하하~ 제자라니 뻔하고만.”

“나도 제자 같은 건 키우기 싫었소만 결혼도 안했는데 내 뒤를 이어줄 후인은 있어야 하지 않겠소.”

“결혼은 안했지만 딸이 하나 있잖소.”

“평범하게 살고 있는 아이요. 무림인으로서의 삶을 강요하면 안 되지 이 양반아.”

십야성주 십궁성주 이 두 사람이 은퇴한다면 당분간 마교의 전력은 크게 하락한다.

(당분간은 조용하겠어. 이때 확 치고 들어가면 뭐가 되도 될 거 같긴 한데....)

제갈 사혁은 빠르게 앞으로의 정세를 계산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네놈은 꿈이 뭐냐?”

갑자기 뜬금없이 제갈 사혁의 꿈을 묻자 제갈 사혁은 어이가 없었다. 마교인이 정파인에게 꿈이 뭐냐고 묻다니 그래도 그런 걸 물어본 사람은 여태까지 한명도 없었기 때문에 제갈 사혁은 진지하게 답해주었다.

“마교와 사파를 없애고 정파만의 천하를 만드는 것.”

하필 마교의 한복판에서 그런 말을 하다니 분위기 파악 못하기로는 전 무림 최고라 자부할 수 있었다.

(이 망아지 같은 놈아 그런 말은 진지하게 하지 말라고 특히 이 양반들 앞에서!)

“힘들 텐데~”

살짝 주위 눈치를 본 십궁성주가 제갈 사혁의 입에서 나온 실언(失言)을 농담으로 포장하기 위해 억양을 비틀면서 장난 식으로 말했지만 이미 분위기는 싸늘해져 있었다.

“소협. 소협의 꿈은 허무하구려. 정파만 남는 무림은 가능하지 않을뿐더러 이뤄진다고 해도 적수가 없는 강호는 허무하지 않소.”

구궁성주 망지성이 좋게 타이르는 식으로 이야기하자 제갈 사혁은 광소를 터트렸다.

“흐하하! 흐하하하하! 그 끝이 설사 허무함이라고 해도! 야망이란 그런 것이다! 그 허무함만이! 남자를 멈출 수 있다. 달콤한 꿈과 이상 따위가 아니라 야욕과 욕망을 채웠을 때 찾아오는 그 허무함이 비로써 채울 수 없는 마음을 채워준다.”

그것은 명백한 도발이었고 일궁성주는 이를 가볍게 넘어갈 수 없었다.

“이 놈이!”

일궁성주는 검을 빼들었고 구궁성주 망지성은 재빨리 일궁성주를 제지했다.

“무슨 짓이오?”

“구궁성주 놓으시오. 놈이 하는 말이 농담으로 들리시오? 놈은 그냥 무림인이 아니오. 화산파의 다음 후계자란 말이오. 할 수만 있다면 20년 빠르면 10년 안에 마음먹기에 따라 무림맹주도 될 수 있소.”

무림맹주따위 거저 줘도 하지 않겠지만 그 말대로 하고자 한다면 할 수 있었다. 당금의 화산파의 위세를 이어간다면 분명히.

“너의 그 사상은 위험하다! 너는 절대 살아서 돌아가면 안 되는 자!”

급기야 일궁성주는 그 자리에서 검기를 날렸고 가까운 거리에서 검기가 날아오자 제갈 사혁은 이를 피할 수 없었다.

(피하면 죽는다!)

흡성반기공(吸星反氣功).

두 팔로 작은 원을 그려 검기를 막아낸 제갈 사혁은 두 손에 담긴 검기를 천장 위로 쏘아 보내 지붕 위에 커다란 구멍을 만들었다. 저택이 이런식으로 박살 날 때마다 십궁성주는 안타까운 눈으로 이 저택의 다음 주인인 구궁성주 망지성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어... 어떻게 내 사력검기(私力劍氣)를!”

검기를 막아낸 것도 아니고 그대로 되돌려 치자 일성궁주는 입을 다물지 못했다.

지붕 위에서 떨어지는 먼지를 뒤집어 쓴 제갈 사혁은 살기가 짙게 깔린 목소리로 일궁성주를 향해 물었다.

“내가 뭐가 다른가?”

“뭐?”

그리고 구궁성주 십궁성주 추백성 이 자리에 있는 다른 이들도 바라보며 그들에게 물었다.

“너희에게 묻겠다. 너희가 이루고자 하는 것과 내가 이루고자 하는 것 그것이 뭐가 다른가? 하나도 다르지 않다. 마교를 중원 유일의 종교로 만들겠다는 너희의 야망에 비하면 나의 야망은 순수하지 않은가? 너. 너. 너! 말해봐라. 날 보고 있는 너희가 한번 말해봐라. 나는 위험한가?”

“힘 좋은 젊은이들. 우리 늙은이들은 이제 은퇴한단 말이야. 흑백논리 같은 거 씌우지 말았으면 좋겠군. 안 그래? 이젠 우리와 상관없는 이야기인데 말이야.”

은퇴를 결심한 이상 강호가 어떻게 돌아가든 이제 알고 싶지도 알려고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구궁성주와 일성궁주 아니 마교와 흑사련. 정파의 모든 적들에게 제갈 사혁은 현실적인 위협이었다.

“적당히 해둬. 여기서 끝을 보겠다면 말리지 않겠어.”

어린아이의 모습을 하고 있지만 주성임은 연장자다운 분위기로 주의력 없는 멍청이들을 진정시켰다.

“이거 찾으러 왔지?”

주성임이 장갑을 건네주자 제갈 사혁은 조심스럽게 장갑을 품속에 넣었다.

“너도 적당히 해. 꼬마. 날 돌봐준 건 고마워. 하지만 이 이상은 소선 아니 담종 진인에게도 좋을 게 못돼.”

“누님.......”

주성임에게 소선 담종 진인의 이야기는 금기나 다름없었다. 그것을 알기에 구태여 자신의 입으로 직접 그 이름을 올리는 주성임이 추백성은 안타까웠다. 그리고 주성임과 마주하는 제갈 사혁 역시 마음이 복잡했다. 그리 긴 시간은 아니었지만 애 돌보는 일이 마냥 의미 없지만은 않기 때문이다.

“주성임이라고 했지?”

“존댓말을 써라. 누님은 네놈 스승보다 한참 위시다.”

“됐다. 이 꼴이 돼서 나이를 늘어놓고 싶은 마음은 없다. 환경.”

“허나 누님....”

주성임. 그 이름을 들었을 때 줄곧 제갈 사혁은 한 가지 듣고 싶은 게 있었다.

“마교의 장로 중에 주씨 성을 쓰는 자가 몇 명이지?”

분명 외삼촌이라고 했다. 그렇다면 적어도 주성임은 아니었다.

“관계를 굳이 따지자면 내 조카 놈이 하나 있다.”

녀석의 아버지는 중이라 성이 없다. 그래서 녀석은 외가의 성을 쓴다. 그리고.....

“어디가 가야 만날 수 있지?”

“그 아이는 어딜 가든지 만날 수 있단다.”

어딜 가든지 만날 수 있다? 이런 식의 농담을 그리 좋아하진 않지만.

“소협. 그만하시고 본교를 떠나시는 게 어떻겠습니까?”

구궁성주 망지성이 마교를 떠나줄 것을 요청하자 제갈 사혁은 망지성을 보며 웃었다.

“구궁성주. 그대와는 묘한 인연이야. 그렇지 않소?”

“호위를 붙여 별 무리 없이 떠나실 수 있도록 해드리겠습니다.”

말은 그렇게 하지만 절대 호위가 아니었다. 제갈 사혁이 행여 딴 짓을 하지 못하도록 감시하기 위한 족쇄일 뿐.

============================ 작품 후기 ============================

쟁반짜장을 시켜먹었는데 중국집은 역시 어디서 먹든 돈 아깝다는 생각이 듭니다.

어렸을 땐 정말 좋아했는데 요새는 짜장면도 비싸고 맛도 없고.....

이번편은 써놓고 뭔가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이미 지우고 쓰고 지우고 쓰고를 반복한 상태라 오늘은 연재를 접을까? 생각까지 하게 됐습니다.

머릿속에는 멋진 그림이 그려지는데 현실로 옮기려면 뭔가 부족한 느낌입니다.

지난편만큼 폭발력이 없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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