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4 회: 복수 -->
제갈 사혁이 마교의 영역 밖으로 나갈 때까지 마교의 호위무사들은 좌우 양 옆에서 둘러싸 죄수압송 하 듯 정파의 영역까지 인도했다.
“그럼 안녕히 가십시오.”
마교의 호위무사가 정파의 무림인을 안내해주는 꼴이 상식적으로 엇나가는 상황임은 분명했지만 제갈 사혁도 그 난리를 쳤으니 더 이상 망나니처럼 날뛰지 않았다.
“또 보자. 나중에 일 크게 터지면.”
마교의 호위무사들에게 이끌려 쫓겨나는 꼴이 우스웠는지 제갈 사혁은 끝까지 질려고 하지 않았다.
제갈 사혁이 순순히 화왕문 방향으로 돌아가자 마교의 호위무사는 나무 위로 시선을 돌렸다.
“괜찮으십니까? 대장. 친구라 하지 않았습니까.”
“만남이 있으면 헤어짐도 있는 법 애초에 우리는 이별주를 나누지 않았으니 이 또한 헤어짐이 아니지. 그리고 그가 말했잖은가. 일 크게 터지면 보자고.”
그들과 비슷한 양식의 옷을 입은 사내가 나무 위에서 느긋하게 제갈 사혁을 바라보며 쓰고 있던 방립을 살짝 들어올렸다.
“잘 가시게. 제갈 무진.”
그리고 그런 자신의 상관을 보며 부하는 고개를 저었다.
“일 터지면 잽싸게 사표 쓸 겁니다. 저런 미치광이랑은 마주하기 싫으니까요.”
제갈 사혁의 이름을 그러한 이명(異名)으로 부르는 이는 전 무림의 단 한 사람뿐이었다.
설용이는 아버지를 참 많이 좋아했다. 비록 그리 대단한 객잔은 아니지만 나중에 좀 더 크면 아버지와 함께 가업을 이어 나가는 게 설용이의 꿈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객잔으로 무림인들이 찾아왔다.
이 근방에는 무림인들이 많아서 그리 특별할 건 없었다. 그런데 그 사람들이 갑자기 설용이의 아버지를 폭행하기 시작했다.
설용이는 맞고 있는 아버지를 구하기 위해 뛰어갔지만 주방장 아저씨의 손에 의해 저지당했다.
“음음음!”
주방장은 설용이의 입을 막고서 조용히 말했다.
“설용아 제발 가만히 있어. 너까지 가면 큰일 나! 저놈들은 사람이 아니여....... 어린 아이라고 해서 봐주지 않는단 말이여.”
어린 소년은 아무것도 할 수 없었고 그렇게 아버지가 고통 속에서 지르는 한 맺힌 비명소리를 듣기만 했다.
마교에서 화왕문으로 돌아 온지 7일 째 되는 날 제갈 사혁은 밤새 화왕문의 무너진 담장과 박살이 난 대문을 고치느라 상당히 피곤해진 상태였다. 체력하나는 자신 있지만 역시 노동할 때의 체력과 무공을 연마할 때의 체력은 달랐다.
“망치질 한번 더럽게 힘드네. 힘으로 때려 넣기만 하면 되는데 왜 이렇게 피곤한 거야.”
화왕문 수리를 위해 무림맹에 예산신청을 했지만 화왕문의 용도가 마교가 쳐들어왔을 때 습격을 알리는 방울 같은 역할이라 돈을 투자할 가치가 없다는 이유로 거부당한 상태였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현재 화왕문의 임시 책임자인 제갈 사혁이 직접 공문을 보냈음에도 불구하고 예산이 나오지 않을 정도라면 누가와도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무림맹 이 개새끼들. 내가 이 한 몸 바쳐서 추백성 그 양반을 반쯤 죽이고 돌아왔는데 뭐가 어쩌고 어째? 이 새끼들이 미쳤나? 집행거부? 집행거부!”
어디까지나 자신의 기준으로 추백성과 대등하게 겨뤘다 주장하며 제갈 사혁은 연장함을 발로 차고 악을 지르며 진상을 부렸다.
“화왕문 담당자 휴가만 끝나봐. 당장 사천으로 올라가서 무림맹 예산 담당자 손모가지를 부러트리려니까.”
“계십니까?”
누군가 들어오면서 대문을 열어 재끼자 그 순간 대문의 연결부위가 힘없이 떨어져 나가면서 문짝이 괴상한 방향으로 꺾였다.
(아! 나한테 제발 이러지 마!)
저 고물딱지에 되도 않는 못질을 해가며 겨우 고쳐놨는데 어디서 듣도 보도 못한 잡놈이 박살을 내자 제갈 사혁은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였다.
“제갈 사혁 소협이십니까?”
제갈 사혁은 그 순간 주먹을 불끈 쥐었다. 그리고 동시에 맹세했다. 내 기필코 이 녀석을 살려 보내지 않으리!
“사천에서 청하라는 분이 편지를 보내셨습니다. 제갈 사혁 소협 맞으시죠?”
청하의 편지라는 말에 제갈 사혁은 편지를 가지고 온 남자를 그 넒은 가슴으로 안아주었다.
“사랑합니다.”
“저기..... 저는 처자식이 있습니다만.”
“정말 좋아합니다. 제 마음은 절대 변하지 않습니다.”
“................”
무언가 이상하다고 느낀 남자는 제갈 사혁을 이상한 눈으로 보더니 편지를 놔두고 36계 줄행랑을 쳐버렸다. 그리고 그 모습을 보며 제갈 사혁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하여간 요즘 사람들은 농담을 웃어넘길 줄 몰라요. 우와 그런데 이거 뭐야 두루마리 두깨게 아주 그냥!”
제갈 사혁은 땅에 떨어진 두루마리를 주워 조심스럽게 펼쳤다.
실로 엄청나게 방대한 양을 자랑하는 두루마리의 두께에 제갈 사혁은 입이 떡하니 벌어졌다.
“이게 말로만 듣던 전설 속의 연서(戀書)!”
청하에게서 온 편지를 펼치는 그 손길은 흡사 무림절대 고수의 비급을 펼치는 순간만큼이나 떨렸다.
[화왕문에서의 일은 어떠세요? 마교와 닿아 있는 곳이니 많이 힘드시겠죠. 저는 갈사 소협이 없는 동안 소협을 대신해 숙소 정리를 하려했어요.]
떠나간 정인을 위해 청소를 해주는 연인이라니 제갈 사혁은 외로운 타지생활 때문인지 눈물을 흘렸다.
[그러다가 실수로 도자기 하나를 깨트렸는데 이거 비싼 건가요?]
도자기를 깨트렸다는 말에 제갈 사혁은 눈물을 흘리며 흐느꼈다.
“그거 용화장에서 훔쳐온 거예요..........”
용화장이 마교의 습격을 받았을 때 용화장에서 챙긴 재화(財貨) 중에서도 가장 마음에 들어 따로 챙겼던 물건인데 그걸 깨먹었다니 눈물이 앞을 가렸다.
[미안해요. 새 걸로 사줄게요.]
그리고 편지는 그게 끝이었다.
“뭐야 더 없어?”
정말 용건만 간단하게 적은 쪽지였다. 그렇다면 이 두루마리의 남은 여백은 무엇이란 말인가? 고작 화선지 한 장도 못 채울 말을 쓰려고 두루마리를 이용해 편지를 썼단 말인가?
제갈 사혁은 두루마리를 쫙쫙 펼쳤다. 하지만 두루마리는 온통 새하얀 여백만 자리하고 있을 뿐 연인의 그리운 마음을 담은 글씨는 보이지 않았다.
“이럴 리 없어 청하 소저가 겨우 이런 시시한 용건으로 편지를 보냈을 리 없어!”
제갈 사혁은 두루마리의 앞뒤를 살피며 뭔가가 있지 않을까? 계속 찾았다. 하지만 더 이상 청하의 흔적은 찾을 수 없었고 결국 제갈 사혁은.
“밀지다! 밀지가 틀림없어 촛불에 가져다 대면 글씨가 나오는 밀지일 거야.”
귤즙으로 만든 밀지일 거라 굳게 믿으며 촛불 위에 비춰봤지만 글씨는 나오지 않았다. 밀지는커녕 오히려 두루마리에 불이 옮겨 붙어 청하의 친필이 쓰인 부분만 타버리는 대참사가 일어났을 뿐이었다.
“후우~”
한숨을 내쉬며 타버린 두루마리를 발로 차 저 멀리 보이지 않은 곳으로 날려버린 제갈 사혁은 마루에 앉아 곰방대에 불을 피웠다. 뭔가 오늘은 되는 게 하나도 없었다.
“집에 가고 싶다. 차라리 마교 애들이랑 서로 죽이려고 칼부림 했을 때가 재미있었는데 여긴 뭐 최전선이라는데 긴장감도 없고.....”
사실상 추백성이 귀환한 후로는 마교의 도발도 더 이상 없었다. 망루에 올라가도 전혀 명중시킬 생각이 없는....... 그저 인사치레 같은 화살만 날아올 뿐이었다.
“무림맹에 있는 게 차라리 나았는데.”
무림맹으로 복귀하면 임무 열람판에서 일 몇 개 골라다가 그 놈들 찾아서 두들겨 패주고 살려달라며 무릎 꿇고 벌벌 떠는 놈들 구경하면서 우월감에 도취되는 게 더 나았다.
“그 맛에 무림인을 하는 건데 사숙은 어쩌자고 나를 이 촌구석에 쑤셔 박은 거야.”
사숙의 명령은 곧 스승의 명령이었다. 항명이란 있을 수 없지만 그래도 이건 좀 너무한 처사였다. 추백성도 돌아갔는데 이쯤 되면 사숙이 나서서 귀환명령을 해줘도 모자를 판국에.
“계세요?”
오늘따라 화왕문에는 찾아오는 손님도 많았다.
“뭐냐? 넌 또.”
화왕문에 찾아온 사람은 열 둘? 한 많이 먹어봐야 열 셋 정도 먹었을 법한 남자아이였다.
“형이 화왕문 책임자에요?”
대뜸 화왕문 책임자냐며 묻는 아이가 당돌하게 느껴진 제갈 사혁은 뚱한 눈초리로 남자아이를 위 아래로 훑어봤다.
걸음걸이를 포함한 기본적임 움직임 그리고 사소한 행동 하나 하나를 쭉 봤을 때 무림인은 둘째 치고 운동 한 번 안 해봄직한 그 나이 때 평범한 꼬마였다.
“뭐 일단은 내가 화왕문 책임자인데 그건 왜?”
“마교로 가려면 어떻게 해야 해요. 어디로 가요?”
순간 잘못 들었나 싶었다.
“뭐?”
“여기서 마교로 가려면 어떻게 해야 해요?”
아니 무슨 화왕문까지 찾아와서 마교로 가려면 어디로 가야 하냐니 제갈 사혁은 어이가 없었다.
“너 여기가 무림맹 관할인지 알고서 그런 걸 물어보는 거냐?”
“네. 알아요.”
알면서 마교로 가는 방법을 알려달라니 제갈 사혁은 어이가 없었다. 이건 뭐 화산파에 찾아와서 무당파가 어디냐고 묻는 것과 똑같기 때문이다.
“마교는 어떻게 하면 갈 수 있어요.”
“여기 뒤에 담장 보이지?”
“네.”
“이대로 쭉 가서 담장을 넘어가 그러면 마교야.”
말이 그렇다는 거지 정말 화왕문 담장을 넘어가라는 소리는 아니었다. 하지만 남자아이는 진지한 얼굴로 화왕문의 담장을 넘으려 했고 제갈 사혁은 녀석의 어깨를 잡아 끌어냈다.
“깜빡했는데 저 담장을 넘는 순간 화살이 수 백 발 날아올 걸.”
“그럼 어떻게 해요?”
아이의 눈을 본 순간 제갈 사혁은 어떠한 말을 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그럼 어떻게 해요? 이 말은 곧이곧대로 마교로 넘어가는 법을 가르쳐달라는 말이었기 때문이다.
(어쭈~ 요것 봐라.)
============================ 작품 후기 ============================
사이드 스토리 구상에 꽤 오래거렸습니다.
늘 하나의 글을 쓸 때 테마를 잡고 쓰는 데 아무것도 몇일 동안 떠오르지 않았습니다.
공지라도 미리 올렸어야 했는데 공지도 올리는 걸 깜빡 해버리고....
정말 죄송합니다.
슬슬 무림사에 깊게 관여되면서 동시에 널널하게 풀어서 무겁지 않게 가기위해 이번 편을 사이드 스토리로 정했는데 설마 미그적 거리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복수를 테마로 정한 건 이미 제갈 사혁이 아버지의 복수를 한 것으로 끝냈지만 이 복수관련 테마를 조금 다른 시각으로 풀이해보려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