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화산의협-135화 (135/262)

<-- 135 회: 복수 -->

“마교로 가서 뭐하려고 어디 뭐 아무데나 쳐들어가서 무공이라도 배우게? ‘마교의 무사님~ 무공 좀 가르쳐 주세요~’ 이렇게 말이야.”

비꼬아도 한참 비꼬았지만 남자아이는 담담하게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리고 그게 그 녀석의 진심이란 사실을 깨달은 순간 제갈 사혁은 미간을 찡그렸다. 정파의 영역에 사는 놈이 마교에 가서 무공을 배우고 싶어 하다니 출생부터 정파 그 자체인 그로서는 절대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이었다.

“뭐 때문에 마교에 가서 무공을 배우려는 거냐? 여긴 청해야. 정파 관련 방파라면 모래알보다 많아.”

“정파에서 무공을 배우면 복수를 못하니까요.”

“뭐?”

“정파에서 무공을 배우면 아버지의 복수를 못하니까요.”

아버지의 복수라는 말에 제갈 사혁은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그 복수를 해버린 자신 앞에 똑같이 아버지의 복수를 하겠다며 무공을 익히기 위해 마교로 건너가려는 사람이 눈앞에 있다니 그리고 하필 그자와 떡하니 만나게 되다니 피로 얼룩진 강호무림에서 복수이야기야 흔하고 흔하지만 묘해도 너무 묘했다.

제갈 사혁은 곰방대에 불을 끄고 못마땅한 눈으로 남자아이를 노려봤다.

“너 이름이 뭐냐?”

“설용이요. 곽설용.”

“올해 몇 살이냐?”

“열 두 살이요.”

그래 열 두 살 참 좋은 나이다. 하지만 열 두 살 꼬마가 이런 생각을 하도록 만든 놈들은 도대체 뭐하는 놈들이란 말인가?

“아버지 복수를 한다고?”

“네.”

“그 놈들이 누군데 아버지 복수를 하겠다는 놈들이 누군데?”

“패천방(覇天幇) 만금(萬金) 형제요.”

패천방 만금 형제라? 듣도 보도 못한 이름이었다. 그렇다는 이야기는 별 시답잖은 놈들이라는 이야기인데.

“내가 그 새끼들 죽여주리?”

“..........”

“말해봐. 내가 가서 죽여줄 게.”

“형이 그렇게 강해요?”

“마교에 우호법 추백성도 내 이름만 들으면 바지에 오줌을 지려 알고 있냐?”

아이 앞에서 되도 않는 허세를 부려봐야 뭐하겠냐만...... 제갈 사혁은 평소와는 다르게 사실에 입각하지 않은 허무맹랑한 소리를 아이 앞에서 늘어놓았다.

“그럼.....”

아버지의 복수를 해주세요. 그게 제갈 사혁이 예상한 설용이의 답변이었다. 하지만 설용이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렇게 하기는커녕.

“무공을 가르쳐주세요. 아버지의 복수를 할 수 있게.”

“......”

만약에 설용이가 아버지의 복수를 해달라고 부탁을 하면 제갈 사혁은 설용이의 뒤통수를 후려치며 쫓아낼 생각이었다. 물론 그렇게 돌려보낸 뒤 복수는 꼭 해줄 생각이었다. 무슨 영웅흉내를 내려는 게 아니라 어째서 그런 일이 일어났는지 정황을 파악한 후 처벌할 일이 있으면 무림맹의 법도 아래 처벌할 생각이었다. 그런데 자기 손으로 복수를 하게 무공을 가르쳐달란다?

(돌겠네. 진짜.)

무공을 가르쳐달라니 정말 미칠 노릇이었다. 가르쳐달란다고 가르쳐줄 마음도 없지만 보통 그 나이 때 애들이라면 자신이 하지 못하는 일은 타인에게 부탁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설용이는 제갈 사혁에게 부탁하지도 않았다.

“무공을 가르쳐주세요.”

“내가 대신 죽여준다니까.”

“싫어요. 제 손으로 반드시 복수 할 거예요.”

일단 설용이의 고집이 꺾일 것 같지 않자 제갈 사혁은 설용이를 데리고 그 아이가 살고 있는 집으로 향했다.

이유가 어찌되었건 가장 이 일에서 중요한 것은 설용이의 아버지를 죽인 자들을 처벌할 수 있는 지에 대한 기준이었다. 무공을 가르쳐주네 복수를 대신해주네 이러쿵저러쿵 시끄럽게 주절거리는 건 그 다음이었다.

설용이를 따라간 곳은 시장에 자리한 작은 음식점이었다.

“아저씨.”

“설용아. 서당에도 가지 않고 어딜 갔던 거냐? 한참 찾았지 않느냐!”

설용이가 아저씨라 부른 노년의 사내는 험악한 인상을 가졌지만 겉모습처럼 나쁜 사람으로는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이분은 누구시냐?”

“화왕문에 사는 형이요.”

아직 통성명도 하지 않은 상태기 때문에 설용이에게 제갈 사혁은 그냥 화왕문에 사는 형이었다.

“화왕문의 임시 책임자인 제갈 사혁입니다.”

제갈 사혁의 이름은 모르지만 제갈이라는 성을 듣자마자 남자는 입을 다물지 못했다.

“제갈세가의?”

“네. 그렇습니다.”

“아니 어떻게 그런 분이 여기에.....”

“보호자 되는 분과 이야기를 조금 나눠보고 싶은데 시간되십니까?”

음식점에 딸린 단칸방에 자리한 후 제갈 사혁은 설용이 화왕문에 찾아와 했던 말을 그에게 하나하나 설명해주었다.

“이렇게 된 겁니다.”

“그 아이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단 말입니까?”

설용이가 무슨 생각을 품고 있는지 알게 된 윤가는 곰방대를 물었다.

“무슨 일이 있었던 겁니까?”

“지금은 작은 음식점을 하고 있지만 1년 전에는 제법 알아주는 객잔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날은.....”

이야기를 듣고 있던 제갈 사혁은 어이가 없었다.

무림인이 객잔에서 행패부리는 거야 하루 이틀이 아니니 그러려니 하지만 보통 객잔 직원에게 시비 거는 놈은 없었다. 객잔에서 고만고만하게 힘자랑하는 무림인들끼리 만나다보면 쎈 척도하고 허세도 부리다가 수틀리면 객잔을 뒤집어 놓으며 개판을 만들 뿐이다.

“무슨 이유로 설용이 아버지를 죽인 겁니까?”

“잘 모르겠습니다. 저는 주방장이었고 손님상은 항상 설용 아비가 했기 때문에 제가 주방에서 나왔을 땐 이미 일이 벌어지고 난 후였습니다.”

“그 장면을 설용이가 봤군요.”

“이 손을 입을 막을 게 아니라 눈을 가렸어야 했는데.....”

아버지가 어떤 놈들한테 맞아 죽는 걸 봤으니 스스로 무공을 익혀 복수를 하겠다고 나서는 것도 이해는 갔다.

“패천방은 뭐하는 뎁니까?”

“이 지역에 오래된 정파입니다. 비록 방파지만 유일하게 이 지역에서 무림맹 소속이라 그 위세가 대단하지요. 청해 땅이 워낙 넓다보니 곤륜파가 아무리 청해 제일문파라고 해도 청해지역에서는 다 이렇습니다.”

일단 패천방에 대해 알 필요가 있었다. 제아무리 제갈 사혁이라지만 같은 정파고 제갈 사혁 본인에게 위해를 가하지 않은 이상 패천방에 쳐들어가 만금 형제를 죽일 순 없었다. 그렇지 않아도 무림맹 내에서 명문정파와 지역 방파들 간의 보이지 않는 신경전이 나날이 심해지고 있는데 제갈 사혁이 나서서 만금 형제를 죽이면 무림맹 내에서 불만의 목소리가 터져 나올 게 분명했다.

(이래서 정치적인 입장은 복잡하단 말이야.)

낭인과 사파 그리고 마교에 힘자랑할 순 있지만 같은 정파라면 이야기가 조금 달라진다. 특히 지금처럼 무림맹의 결속력을 다져야 하는 이 때라면 더더욱.

“이 일은 제게 맡겨주십시오.”

“저야 그래주시면 좋지만 솔직히 썩 내키지 않습니다. 복수고 뭐고 가능하면 어디로 도망치고 싶습니다. 그게 안 되면 저 아이만이라도 강호와 연이 닿지 않았으면 합니다.”

방에서 나온 제갈 사혁은 주방에서 양념장을 섞고 있는 설용이의 목덜미를 낚아채 밖으로 끌고 나왔다.

“만금 어쩌고 하는 놈들 얼굴 다 알지?”

설용이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거렸다. 모를 리 없었다. 잊을 리 없었다. 아버지를 밟아 죽인 그 사람들을.

“어디야. 데리고 가봐. 일단 얼굴 좀 보자.”

일단 그 사람 같지도 않은 놈들의 얼굴을 알 필요가 있었다. 설용이에게 이끌려 간 곳은 어느 개인 도박장이었다.

“여기에 있어?”

“네.”

도박장에 출입하려 하자 문 앞을 지키고 있던 경호원이 제갈 사혁을 제지했다.

“아이를 데리고 오실 수는 없습니다.”

“사회공부다.”

그러면서 제갈 사혁은 경호원에게 은자를 찔러주었다. 만금인지 만돌인지 하는 놈들의 얼굴을 알아보려면 설용이도 함께 들어가야 하기 때문이다.

“손님 그러시면 안 되시죠. 어른이 되셔서 이러시면 됩니까.”

아무리 문 앞을 지키는 경호원 일을 하는 왈패라지만 이건 아니었기 때문에 경호원은 설용의 출입을 허락하지 않았다.

이때 도박장의 책임자가 바람을 쐬기 위해 밖으로 나오면서 이 모습을 보게 됐다.

“설용이 아니냐!”

도박장 책임자는 설용이를 알아봤고 설용이는 그에게 공손히 고개를 숙여 인사를 했다. 그냥 동네 아는 아저씨를 만났다고 보기에는 서로 알고 지낸지 꽤 돼보였다.

“무슨 일이냐?”

도박장 책임자가 무슨 일이냐며 묻자 경호원은 아까 있던 일을 설명해주었고 제갈 사혁을 위 아래로 훑어보던 도박장 책임자는 설용이와 함께 제갈 사혁을 안으로 들여보내 주었다.

“무림인이시지요?”

도박장 책임자는 제갈 사혁이 무림인임을 금세 알아챘다.

일부러 호황도 허리에 차지 않았고 옷차림도 한량처럼 껄렁하게 입었지만.

“어떻게 알았지?”

“살인귀 같은 눈은 감춰진다고 감춰지는 게 아닙니다.”

살인귀라니 이 대목에서 제갈 사혁은 무림인을 향한 그의 적대감을 느낄 수 있었다.

“설용이랑 같이 오신 걸 보면 그 일 때문입니까?”

“......”

“여기 앉으십시오. 여기가 제일 잘 보입니다.”

자리에 앉아 거의 옷을 안 입은 것 같은 여인이 패를 돌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설용이가 제갈 사혁의 소매를 잡아당겼다.

“저기요.”

설용이의 손끝이 닿은 쪽으로 시선을 두자 왠 젊은 아니......

“뭐야? 저 새끼들이 만금 형제야?”

설용이는 고개를 끄덕거렸고 제갈 사혁은 어이가 없다는 듯이 코웃음을 쳤다.

아무리 봐도 저 놈들은 성인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많이 쳐줘봐야 열여덟 적게 쳐서는 열여섯 정도였다. 강호 무림에서 살인을 하는데 나이가 뭐 그렇게 중요하겠냐만 그 대상은 분명 어린놈들이 쉽게 업신여길만한 사람이 아니었다.

한 아이의 부모다. 그런데 그 부모를 아이의 눈앞에서 죽이다니 그것도 어린 놈들이.

“세상 참 잘 돌아간다. 미친.......”

============================ 작품 후기 ============================

식스센스는 브루스 윌리스가 유령이야!

유주얼서스펙트는 그 절름발이가 카이져소제야!

원피스는 없어!

나루토는 게이야!

지난편 제갈 사혁이 우편배달원에게 게이드립친 것은 얼마전 여러분이 가르쳐준 빌리라는 인물을 검색하다가 생각난 개그입니다. OO버거의 마스코트가 그 남자였군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