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화산의협-138화 (138/262)

<-- 138 회: 파죽지세(破竹之勢) -->

무림맹에 도착한 후 제갈 사혁은 3일이나 지나서야 무림맹의 신임 맹주인 판가량을 만날 수 있었다. 제갈 사혁 쪽에서 먼저 만나려 해도 신임 맹주로 취임하자마자 마교의 십야성주 추백성의 정파 난입도 있었기 때문에 좀처럼 만나기 힘들었다. 전임 무림맹주 강서와 같은 40대 초반이지만 판가량은 강서보다는 말이 통하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이번 만남은 판가량의 요청에 의해 이뤄졌다.

“앉게나.”

“불러주셔서 영광입니다. 음음....”

“왜 그런가?”

“아닙니다. 목이 조금 불편해서.”

“큰일이군. 대추차가 있는데 그걸로 바꿔주겠네.”

“감사합니다.”

방파 출신의 무림 맹주지만 제갈 사혁은 지난 생애에서부터 판가량의 지지자였다. 그는 제갈 사혁과 같은 강경파기 때문이다.

“화왕문으로 임무를 갔다고 들었네. 일은 어땠는가.”

“추백성도 만나고 아주 좋았습니다.”

십야성주 추백성을 만났다는 말에 판가량의 여유로운 분위기가 어긋났다.

“보고서에 없는 부분인데 자세히 좀 알려주겠나?”

유희와 관련된 부분을 제외하고 난 후 제갈 사혁은 유희에 의해 부족한 부분을 적절히 맞춰 거짓과 진실을 절묘하게 섞어냈다. 결국 판가량에게 이 이야기를 꺼내는 이유는 어디까지나 공식적으로 마교의 우호법인 추백성 그리고 장로 중 한명인 주성임과 구궁성주의 은퇴기 때문이다.

“추백성 주성임 구궁성주의 은퇴라..... 가능하면 지금이 기회라고 말하고 싶지만 흑사련 쪽에 문제가 있어서 불가능하겠군.”

마교 아니면 흑사련 시작은 추백성의 마교가 먼저였지만 이번 일로 흑사련도 심상치 않은 반응을 보였기 때문에 지리상으로 가운데 낀 무림맹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했다.

“사설이 길었군. 내가 자네를 이렇게 보자고 한 것은......”

과거와 같은 내용이라면 이야기는 들을 것도 없었다.

“봉황대주 자리가 이번에 공석이 되었네.”

소림사의 무허대사(無虛大師). 항렬에서도 알 수 있듯 봉명공의 사형이지만 소림의 무자항렬은 나이차이가 많이 나기 때문에 실제 나이 차이는 20살 이상이다. 불혹(不惑)을 맞이한 무허대사는 현재 오대주직을 사임한 상태였다.

“봉황대주 말입니까?”

실제로 지난생애에서 봉황대주직을 받기보다는 흑랑대주직을 제안 받았다. 봉황대주 자리에는 같은 후기지수였던 금광수가 앉았다. 제갈 사혁은 당시 화산의협이라는 별호를 얻어 강호를 종횡무진하며 활약했기 때문에 조직을 맡는 것 자체를 귀찮게 여겼다.

“그 이야기라면 거절하고 싶습니다. 딱히 어떤 자리를 맡고 싶은 생각도 없고 말입니다.”

지난생애 거절했던 말 그대로 거절하자 판가량은 안타까운 표정과 함께 예상하고 있었다는 눈빛으로 제갈 사혁을 쳐다봤다.

“사실은 흑랑대주 자리도 비었기 때문에 자네와 같은 동년배 후기지수들에게 한번 씩 제의를 해봤는데 거절하더군.”

사실 이 무림맹의 대주 자리라는 게 군권을 손에 쥐었다고 봐도 무방한 자리지만 인재가 없어서 자리를 맞추기 꽤 힘들었다. 봉황과 흑랑의 전임 대주들의 임기도 고무줄처럼 늘릴 때로 늘린 상태였다.

사실은 백호대주 혜성처럼 20대 후반이나 30대 초반의 무림인들 즉 제갈 사혁의 사형이나 봉명공 세대가 맡아야하는 자리지만 그 세대의 후기지수들은 현재 화산파의 무원. 소림의 봉명공. 곤륜파의 혜성만 남아 있는 상태다.

무원의 지병과 봉명공의 파계로 인해 세대교체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고 다음 세대를 맞춰야 하는 무림맹으로서는 젊은 층에서 인재난을 겪을 수밖에 없었다. 오죽하면 혜성이 무림맹에 입성한 시기와 제갈 사혁이 입성한 시기가 비슷함에도 불구하고 오대주 직에 빠르게 앉았겠는가?

“하지만 정말 급하네. 이미 봉황대주직이 공석이야.”

(은퇴? 그렇겠군. 지금은 상황이 다르니까.)

그 당시 제갈 사혁이 대주직을 거절했을 때는 정사대전 중이었고 봉황대주직의 무허대사가 사임하지 않은 상태였다. 즉 자리 이동이 쉽지 않았던 때고 지금은 다소 냉랭하지만 어찌되었든 평화로운 시기.

“그럼 이렇게 하세. 일시적으로 대주직을 맡고 후에 후임을 정하면 그때는 자네의 뜻을 받아주겠네.”

임시직? 임시직이라 해봤자 어차피 귀찮은 건 매한가지였다. 결국 대주라는 것은 부하들을 가르쳐야 하고........

(가르쳐?)

그 순간 제갈 사혁의 머리에는 한 가지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좋습니다. 임시직이라면 저도 거부하지 않겠습니다.”

“업무는 오늘 지금 이 시간부터 해주면 고맙겠네.”

일을 제의한 판가량 쪽에서 일시적이라고 확실하게 못 박아주자 제갈 사혁은 임시 대주직을 승낙했다.

무림 맹주의 집무실에서 나오자 제갈 사혁은 우연히 성제와 마주쳤다.

“사혁군 오랜만이네.”

“오랜만입니다. 장로님.”

제갈 사혁을 위 아래로 훑어 본 성제는 어깨에 손을 올리고 가볍게 두들겨 주었다.

“이번에 청해 지역에서 데려왔다는 그 청년 말이야. 그 청년의 이야기가 무림맹에 퍼져서 사혁군 인기가 대단해.”

청해에서 데려온 청년이라면 패천방의 만백을 말했다.

치료가 늦어져(어디까지나 의도적으로) 팔 한쪽을 사용하지 못해 무림인으로서는 끝장이지만 무림맹의 문서를 관리하는 일을 시켜서 신변을 돌보고 있는 상태인데 이것이 무림맹 방파출신 장로들의 귀에 들어가 만백을 구하고 재활에 힘쓴 제갈 사혁의 평가가 상당히 높아졌다. 더불어 방파출신 무림인들 사이에서는 이번 일이 크게 화제가 되고 있다.

“이러다가 여자들이 꼬이는 거 아니야.”

그러면서 음흉한 표정으로 제갈 사혁의 옆구리를 손가락으로 쿡쿡 찔렀다.

(당신 입장에서 그런 말은 하면 안 되잖아......)

성제는 젊기 때문인지 이런 농담이 능했지만 제갈 사혁은 상식적으로 이런 성제의 태도에 유동적으로 대응할 수 없었다. 청하의 스승이면 거짓말 쪼금 보태서 아버지나 다름없는데 그녀의 정인인 자신에게 그러한 종류의 농담을 하다니 환장할 노릇이었다.

(그렇다고 이 사람한테 정색을 할 수도 없고.)

“그럼 수고해.”

여전히 그는 폭풍 같은 사람이었다. 사람의 마음을 이토록 휘젓고 다니다니.

봉황단의 제갈 사혁은 무림맹 연무장을 돌고 돌아 간신히 이신을 찾았다. 이신은 역시나 남궁 미려와 함께 있었다.

(제법인데 남궁 미려.)

두 사람의 비무는 밀고 당기는 맛이 있었다. 확실히 그 목적이 살인이 아니라면 비무에 있어서는 아직까지 남궁 미려가 이신보다 뛰어났다.

솔직히 말해서 남궁 미려를 보고 딱 감이 왔지만 역시나 남궁세가기 때문에 이신이 남궁 미려와 같이 다니는 건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같은 무림인으로서 남궁 미려가 중요한 시기에 들었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제갈 사혁도 두 사람에 대해 신경 쓰지 않았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신에게도 남궁 미려는 커다란 자극이 되고 있었다.

힘을 절제하지 않는 것이야 말로 진정한 강함이라 생각하는 제갈 사혁이지만 요즘 들어 그 방식이 이신에게 맞는 것인가? 교육자로서 의문이 들었다. 그래서 이번에 봉황대주 직을 임시로 맡아서 이신과 함께 다른 이들도 가르쳐볼 생각이었다.

‘현재의 교육방식은 이신에게 얼마나 적합한가?’

이번 봉황대주 직을 임시로라도 맡게 된 것은 어디까지나 이 이유 때문이었다.

“이신.”

제갈 사혁의 목소리가 울려 퍼지자 이신에게 향하던 남궁 미려의 검이 이신의 코끝에서 멈췄다.

“이번에도 져버렸네요.”

확실히 동체시력이나 이런 건 뛰어나지만 이신이 눈으로 따라잡을 수 있는 것에는 한계가 있었다. 최근 남궁 미려의 실력이 상당히 빼어나게 상향된 점도 있었지만 남궁세가의 검법은 원래가 상대를 현혹시키는 환(幻)이 기초가 된다. 그러니 경험이 부족한 이신이 따라가기에는 아직 무리가 있었다.

무명천으로 땀을 닦으며 제갈 사혁에게 다가온 이신은 주머니에서 작은 주머니를 꺼내 제갈 사혁에게 주었다.

“곰쓸개에요. 사부.”

아침에 곰을 사냥했는지 핏물을 뺀 곰쓸개를 건네주는 이신을 보며 제갈 사혁은 조그마한 미소를 지었다. 그렇지 않아도 청해에서 돌아온 직후 갑자기 목이 아파서 침도 삼키기 힘들었는데 이런 걸 구해주는 녀석의 마음 씀씀이에 감동 받았다.

“이번에 봉황대 임시 대주직을 맡게 됐으니 같이 가자.”

“뭐야? 그거 허락했어?”

“임시직이야. 임시직. 전임 대주 두 분이 사퇴해버려서 다음 대주가 결정 될 때까지만 하는 거야.”

어디까지나 같은 후기지수로 평가 되는 남궁 미려 역시 대주직을 제안 받은 적이 있지만 개인적인 이유로 거절한 상태였다. 그런데 가장 이 일에 관심 없을 것 같은 제갈 사혁이 임시라지만 제의를 받아들였다는 사실은 그녀로서 의외였다.

“지금 가야 해요?”

“왜 바빠?”

“아니요. 바쁜 건 아닌데.....”

그러면서 이신은 남궁 미려의 눈치를 살폈다.

“난 괜찮아.”

“그럼 실례하겠습니다.”

여전히 이신은 남궁 미려에게 깍듯이 예의를 지켰고 그런 모습이 제갈 사혁에게는 조금 답답하게 느껴졌다.

============================ 작품 후기 ============================

이번 편은 주제를 사실 못 잡았습니다.

주제는 못 잡았는데 소재만 떠올라서 일단 썼는데 이거 이거 그냥 질러놓기만 하는 거 아닌지 걱정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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