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화산의협-139화 (139/262)

<-- 139 회: 파죽지세(破竹之勢) -->

당분간은 봉황대를 이끌어야 하기 때문에 숙소도 그곳으로 옮길 필요가 있었다.

“무거운 건 다 네가 들어.”

“에?”

“이것도 수련의 일부야. 근력 운동 한다고 생각해.”

사짜 냄새가 나지만 제자 신분으로 스승의 명령에 토를 달 순 없었다.

이신이 무거운 짐을 옮기는 내내 제갈 사혁은 가벼운 잡기들을 챙겼다. 그 중에서도 검은 털장갑을 아주 소중하게 여겼는데 그 모습을 본 이신은 무언가 껄끄러운 감정을 느꼈다.

“저기 사부?”

“응?”

응? 이라고 말할 때 평소에 보기 힘들 정도로 상큼한 미소를 짓고 있는 제갈 사혁을 보고 있으니.

“...............”

청하가 직접 짜서 줬다고 굳게 믿고 있는 스승에게 진실을 말할 수 없었다. 그리고 그 모습을 보자니 정말 청하의 말대로 여자의 거짓말이 남자를 위해 꼭 필요한 건가 생각하게 됐다.

“청하 누나가 깨트린 도자기 빼고 다 옮겼어요.”

“그러게 말이야. 에휴~ 그거 이제 어디 가서 사지도 못하는 물건인데.”

이신은 일부러 청하가 깨트린 도자기를 언급하며 그 사실을 다시 한 번 제갈 사혁에게 상기시켜 주었다. 청하가 싫어서 하는 말이라기보다는 장갑의 진실을 말하지 않는 대신에 꺼내 본 말이었다.

대주 특별 숙소에 도착하자 제갈 사혁은 그 엄청난 면적에 입을 쫙 벌렸다.

“역시 대주가 되면 잠자는 곳부터 차원이 다르네.”

“침대 하나뿐인데요. 저 어디서 자요.”

“바닥에서 자.”

“에에?”

바닥에서 자라는 제갈 사혁의 말에 이신은 격하게 반응했고 제갈 사혁은 그런 이신의 반응이 재미있었다.

“왜 니가 침대에서 자려고?”

“..........”

숙소 자체는 애초에 1인실이기 때문에 따로 침대가 하나 더 있지는 않았다.

제갈 사혁은 괜히 이신에게 바닥에서 자라며 농담을 했고 이신은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제갈 사혁을 바라봤다.

“뭘 그렇게 정색 하냐? 침대야 옮기면 되는 거고.”

“실례합니다.”

“누구 왔나 봐요.”

이신이 방문을 열자 젊고 아름다운 여인이 서류를 들고 제갈 사혁을 찾아왔다.

내공의 갈무리가 잘 된 것으로 보아 어느 정도 실력을 갖춘 무림인이지만 복장은 무림인이라기보다 학사에 가까웠다.

“제갈 사혁 임시 대주님이십니까?”

“그런데?”

딱 봐도 제갈 사혁보다 연상으로 보였지만 본능적으로 자신보다 낮은 위치에 있음을 감지한 제갈 사혁은 자연스럽게 하대를 했다.

“봉황대 부관인 초영(初英)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부관이면 앞으로 제갈 사혁의 옆에 딱 붙어서 제갈 사혁의 편의를 봐주는 사람이었다.

“제갈 사혁이다. 그쪽은 내 제자 이신이다.”

제자가 있다는 소리는 들었지만 제갈 사혁도 그리 나이가 많지 않았고 그 제자 역시 나이가 20대인 제갈 사혁의 제자라고 보기 힘들 정도로 적은 나이가 아니었다.

“처음부터 일을 부탁해서 미안한데 여기 침대 하나가 더 필요하니 부탁 좀 하지.”

하대도 자연스럽지만 명령하는 것도 전혀 거리낌이 없었다.

“오늘 저녁까지 가져다 놓겠습니다.”

제갈 사혁은 모든 일에 있어서 언제나 상대보다 위에 서는 경우가 많았고 초영 역시 오랫동안 봉황대의 부관을 맡다보니 나이는 어려도 제갈 사혁의 하대나 아랫사람 취급에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그런데 무슨 일이지?”

“아! 지난 번 임무에 대한 보고서를 올려야 하는데 전임 대주께서 퇴임하신 관계로 일이 마무리 되지 않았습니다.”

“지난 번 임무라고 해도 나는......”

“그냥 서류에 서명만 해주시면 됩니다.”

지난 번 임무라면 어디까지나 전임 대주였던 무허대사의 소관이지만 어차피 보고서 작성은 부관이 하는 일이기 때문에 제갈 사혁은 붓으로 서명만 했다.

“저는 항상 옆방에 있으니 필요하시면 언제든 부르십시오.”

“더 전할 말은 없나?”

“저녁에 대원들을 모아두겠습니다.”

일단 임시지만 취임을 했으니 대원들을 만나볼 필요가 있었다. 봉황대의 수준도 어느 정도 알아보고 그에 맞춰 이신의 교육방향도 생각해 볼 겸.

“저녁에 보도록 하지.”

“네. 그럼 쉬십시오.”

초영이 물러나자 의자에 앉은 제갈 사혁은 많이 피곤한지 연신 눈을 비볐다. 몸이 피곤해서 오는 피로는 아니고 무언가를 책임졌다는 정신적인 압박에서 오는 피로였다.

“이래서 갑자기 뭘 맡는 건 싫다니까.”

그러면서 제갈 사혁은 이신이 준 주머니에서 잘게 부서진 웅담을 꺼내 입에 넣었다.

“으~ 비린내.”

“사부 그거 그렇게 먹는 거 아닌데요.”

“그럼 어떻게 먹는데.”

“물에 다가....”

물이란 말에 제갈 사혁은 주전자에 입을 대고 벌컥 벌컥 물을 마셨다.

“아니....... 그렇게 먹는 게 아니라 물에 녹여서 마시는 건데요.”

“일단 뱃속에 들어가면 다 똑같아.”

다 똑같다며 배를 툭툭 치는 제갈 사혁을 보며 이신은 고개를 저었다.

“네.”

“뇌전은 어디까지 다룰 수 있게 됐냐?”

“지금 당장 하라고 하면 가능하긴 한데 조절이 힘들어요. 내공하고 달라서 생각처럼 움직여주지도 않고 힘 조절이 전혀 안돼요.”

오래전부터 오행과 관련된 부분을 부각시키고는 있지만 이것 자체가 제갈 사혁의 전문분야가 아니기 때문에 제갈 사혁도 스승으로서 정확한 방향을 제시해주기 힘들었다. 그나마 청하가 이 부분에 어느 정도 지식이 있어서 도움을 받긴 하지만 딱 거기까지였다.

“그래도 점점 나아지고는 있지?”

“처음보다는 확실히 다루기 쉬워진 느낌이 들긴 하죠.”

본인이 그렇게 느낀다면 확실히 익숙해지고 있다는 뜻이었다.

“오랜만에 비무 한 번 어떠냐? 남궁 미려와 한 걸로 피곤해지진 않았을 거 아니야.”

“저도 좋아요!”

오랜만에 스승과 하는 비무라서 이신은 상당히 들떠 있었다. 최근 들어 이신의 비무 상대는 청하 아니면 남궁 미려가 전부였기 때문이다.

연무장 가운데에 선 두 사람은 비무를 하기 전에 간단하게 몸을 풀었다.

“먼저 쓰러진 사람이 지는 거다.”

제갈 사혁과의 비무는 항상 둘 중 하나가 기절하는 게 아니라 쓰러지는 게 승리 조건이라서 이신도 제갈 사혁을 상대로 생각보다 많이 이긴 적이 있었다.

몸을 풀던 중 갑작스럽게 제갈 사혁이 주먹을 휘두르면서 비무는 시작됐고 이신은 눈으로 보며 공격을 모두 피했다.

(녀석! 몸을 다루는데 많이 익숙해졌어.)

이신의 상태를 일일이 확인해보는 한편 제갈 사혁은 공방에 있어서 알게 모르게 약간씩 이신의 편의를 봐주며 이신 스스로에게 자신감을 심어주었다. 예를 들어 이신이 큰 공격을 했을 때 피하기보다는 공격을 막아내면서 타격을 허용해주는 식이었다.

이신 정확하게 자신의 왼쪽 옆구리를 향해 주먹을 찌르자 주먹이 힘이 크게 실리지 않았다는 걸 깨달은 제갈 사혁은 이것이 진짜가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

사각으로 들어오는 왼쪽 무릎 찍기를 겨우 피해낸 제갈 사혁은 간담이 서늘해졌다.

“쳇!”

반면 이신은 이번 공격이 실패로 돌아갔다는 사실에 크게 실망했다.

(이번 공격이 실패했으니 사부는 진짜로 싸울 거야. 초반이 아니면 점점 이기기 힘들어지는데.)

실제로 이신이 제갈 사혁을 비무에서 이겼을 때는 모두 초반 탐색전에서의 승리였다.

스승으로서 제자의 성장을 확인하고 있을 때 그때가 아니면 이신에게 더 이상 그 후는 없었다. 그리고 제갈 사혁은.....

(항상 정면으로만 오더니 이제는 속임수에도 능숙해졌는데. 제법이야. 인정하긴 싫지만 남궁 미려가 도움이 되긴 됐어.)

이걸로 확인을 끝낸 상태였다.

“연무장에 누구지? 저기 봐.”

제갈 사혁과 이신이 비무를 펼치고 있는 그때 봉황대 연무장으로 향하는 수많은 여인들은 연무장 한 가운데에서 강렬한 기운을 뿜어내는 두 사람을 발견했다.

“젊은 남자잖아. 혹시 임시 대주 아니야. 그 제갈 사혁이라는 그 왜 있잖아. 화산파의 차기 장문인.”

임시 대주라는 말에 모두들 호기심을 보였지만 젊은 남자는 제갈 사혁 말고도 또 한명이 있었다.

“그럼 저기 있는 저 사람은 누구인데?”

“같은 후기지수인가? 아닌데 난 저 사람 처음 보는데.”

제갈 사혁과 마주보고 있는 이신에 대해 모두가 궁금해 하던 중 어디선가 나타난 우락부락한 사내 한명이 손뼉을 쳤다.

“저 녀석은 이신이다.”

“앗! 백호대 아저씨 갑자기 어디에서 나타난 거예요? 그런데 뭐라고요?”

“제갈 사혁의 제자 이신이다. 너희도 잘 봐두라고 저 꼬마 무공을 수련한지 1년도 채 안됐으니까.”

백호대 출신의 남자가 그렇게 말하자 모두들 믿기 힘들다는 표정이었다.

“정말이야. 아저씨? 하지만 저걸 봐. 어딜 봐서 저게 1년 짜리야.”

“금방 탄로 날 거짓말을 왜 하겠냐. 꼬마야. 아직 열다섯이라고 했으니까. 빠르면 5년 늦어도 10년 안에 지 스승보다 유명해질지도 모르지.”

하지만 일반적으로 20대에 제자를 두는 경우는 흔치 않았다. 자기 앞가림도 하기 힘들 때에 제자라니 아무리 제갈 사혁이 이름 난 고수라지만 어느 정도라는 게 있었다.

아직 나이도 어린 제갈 사혁의 제자. 그러니 그 무공도 별 볼일 없을 것이다. 이게 이신을 바라보는 봉황대의 시선이었다.

“말했잖아. 금방 탄로 날 거짓말을 왜 하겠냐? 저 둘이 싸우는 걸 잘 보기나 해.”

그 말과 동시에 연무장으로 모든 눈길이 쏠렸고 그 순간 이신의 파강권이 제갈 사혁의 어깨를 관통했다.

============================ 작품 후기 ============================

브리키오 님의 댓글에 답변을 해드리자면 제갈 사혁은 그렇습니다.

무림인으로서 무림인의 허무함을 잘 알고 있죠. 스스로도 무림인이기 때문에 한번 죽었고......

하지만 한편으로는 무림인이 아닌 다른 삶을 살수 없습니다.

밭을 갈거나 장사를 하거나 학문을 연구하며 살 수 없기 때문에 제갈 사혁은 무림인으로서 자신의 존재가치를 타인에게 증명합니다.

사람을 죽여서 이득을 얻는 자신의 직업에 애증을 가지고 있죠.

자기는 좋아서 하지만 자식에게는 물려주기 싫은 직업입니다.

하지만 이신은 왜 제자로 받았냐? 라고 물으신다면 전개상 필요는 제 사정이고.....

이신의 경우 본문에 나오지만 제갈 사혁이 아니더라도 남궁세가에서 태어나 무림과는 뗄래야 뗄 수 없는 운명을 지녔습니다.

하지만 설용이는 다릅니다.

설용이는 무림인에게 아버지를 잃어서 복수를 하려하지만 복수를 해주면서 동시에 무림에 대한 트라우마를 갖게 만들어 무림과 멀리 떨어지도록 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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